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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달팽이 ㅣ 0100 갤러리 10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서문, 크리스티네 라인스 그림, 장순란 옮김 / 마루벌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 세계사를 배울 때 만해도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는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교육을 받았고, 나 또한 아무런 의심없이 그런 사람들은 세계 발전에 기여한, 존경받을만한 위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미지의 개척지라고 지칭된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발견'이라는 칭하는 것이 결국 '침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야 나는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그림책에 실린 글들은 멸망의 길을 걸은 아즈텍 문명을 기억하는 후손들로부터 이끌어 낸 문명의 흔적들을 문자로 기록한 것으로, 비유와 묘사를 통해 시적으로 구현된 간결한 문장에는 아즈텍인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담겨 있다.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쓴, 멸망의 길을 간 아즈텍 문명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애쓴 '베르나르디노 수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서문, <이 책의 이해를 위하여>는 문명의 말살이 원주민(아즈텍족의 후손들)들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서문 중에 특히 "그들 중의 한 사람, 즉 말살자는 오늘날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잊혀져 버렸습니다"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오래 전 스페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아즈텍인들과 그 문명에게 가해진 가혹한 일들을 나로서는 낱낱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인들이 저지른 문화말살과 침탈을 떠올려 본다면 침략자들에 의해 어떠한 일들이 잔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은 달, 소나무, 오셀롯, ...., 카카오, 페요테, 달팽이 집 등의 각각의 사물들에 관한 글이 실려 있는데, 각 사물의 핵심적인 부분을 잘 포착하여 몇 줄의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어를 설명하는 글이 실린 사전 같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밋밋하게 여겨지는 글도 있고, 오래 전에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던가 하는 놀라움을 안겨주는 글들도 있다. 처음에 읽어줄 때만 해도 큰 아이는 이야기 형식의 책이 아니라서 재미없다고 하더니 몇 차례 책을 보고 나서는 이 책에 나온 글들이 마치 수수께끼같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이에게 보이지 않도록 책을 들어서 글을 읽어주고는 어떤 사물을 말하는 것인지 맞추기 놀이를 하는 것도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작은 아이는 "거울돌"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는데, 요즘에 사용하는 거울도 책에 나오는 거울돌을 갈아서 만든 것이냐며, 자기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하였다.(반짝이는 것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 딸~ ^^) 나는 최근에 읽고 있는 <식물의 역사와 신화>라는 책에 "페요테"라는 이름의 선인장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던지라 거북이처럼 생긴 이 선인장에 대한 글에 관심이 갔는데, 아즈텍인들은 이 선인장의 효능에 대해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살펴보면 배경이 되는 흑백의 그림과 실물처럼 그린 사물의, 색을 입힌 그림이 대조를 이루어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림책에 실린 본문만 놓고 보자면 너무 과장된 문구로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쓴 것 같기도 하지만-어쩌면 이 책을 직접 보신 분도 그렇게 평가할지도- 이 책 덕분에 나와 아이들이 멸망한 아즈텍 문명의 기억을 들여다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지라 조금은 거창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책에 실린 글처럼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찾으려는 위대한 노력"에 의해 태어난 소중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