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할멈과 호랑이 - 2004 볼로냐아동도서전 수상작 꼬불꼬불 옛이야기 1
서정오 / 보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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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는 두려움의 대상인 강자를 약자가 꾀를 내거나 힘을 합쳐 골려 주는 형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호랑이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를 상징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옛이야기 또한 그런 류의 이야기로, 할머니를 잡아 먹으려는 호랑이를 주변 사물들이 합심하여 혼내주고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팥을 심던 할머니는 갑자기 불쑥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는 호랑이에게 팥죽 쑤어 먹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하여 보낸다. 추운 겨울이 되어 할머니가 팥죽을 쑤어 놓고는 슬픔에 잠겨 있자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게, 멍석이 와서 팥죽을 한 그릇씩 얻어먹는다.

 할머니를 잡아 먹기 위해 다시 온 호랑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다 밤톨에게 눈을 다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라, 쇠똥, 맷돌 등에게 연이어 호되게 당하고는 결국 혀를 빼물고 멍석 위에 뻗는 호랑이의 모습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지게가 호랑이를 강물에 빠뜨리고 난 뒤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독자는 할머니의 안도감과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다. 특히 이야기 속의 할머니가 아직 살고 계신다고 끝을 맺는 결말 부분은 아이들에게 정말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함을 가지게 한다. 

 이 책에서는 "팥죽 한 그릇 주면 내 살려 주지."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아이들은 이처럼 반복되는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그리고 '엉금엉금, 떼굴떼굴, 왈강달강, 겅중겅중' 등과 같은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와 구수한 입말이 입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부엌 곳곳에 숨은 사물들을 그림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보는 재미에 한 몫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 장면마다 까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림 작가가 까치 호랑이 민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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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점에서 옛이야기 책을 살피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 두 권을 꺼내 놓고 어느 그림책을 선택할까 한참을 고심했던 적이 있다. 두 그림책 다 할머니를 잡아 먹으러 온 호랑이를 여러 사물이 합심하여 혼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문체나 내용도 조금 다르고(서정오님이 글을 쓰신 그림책은 내용이 짧고 간결한 편), 그림도 차이를 보였다.

 두 권 다 욕심이 났는데 나는 세밀화풍으로 사실적인 느낌을 살린 그림이며 호랑이의 거대함을 잘 살리고 있는 커다란 판형의 이 그림책에 좀 더 끌렸다. 반면 아이들은 호랑이의 무서움이 부각되는 이 그림책보다 만화적인 화풍으로 해학과 익살적인 느낌을 한껏 살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더 재미있어 하여 결국 후자를 선택하였다. 

 - 작년에 또 한 권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를 보았는데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그림을 맡은 이 작품은 한지 종이로 만든 인형으로 할머니와 사물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부분이 특색 있으며 더욱 정감 있게 다가왔다. 호랑이나 알밤, 자라 같은 대상보다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할머니의 실감나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 책 해설을 보면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이 '팥죽'인 까닭은 (팥처럼) 붉은 색에 나쁜 기운을 쫓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세 권을 두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니 <팥죽 할멈과 호랑이/보리>는 사실적인 그림이 멋지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보림>은 내용이 재미있고,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는 한지 인형으로 만든 할머니가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한다. ^^

 옛이야기는 그 내용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지만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방법은 극적인 요소와 입말을 얼마나 잘 살려서 읽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호랑이 울음 소리도 "어흥~"하고 커다랗게 울부짖어 주고, 훌쩍거리며 우는 시늉도 하고, 쿵~ 하고 나자빠지는 모습도 그럴싸하게 연출하면서 들려 주어 보라. 글도 가락을 실어 읽어주면 듣기에도 흥겹고 한층 이야기의 느낌이 살아나서 듣는 재미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관객)은 책 한 권으로 연출해 내는 이 연극에 단박에 혹하여 한동안 그 책만 읽어달라고 들고 오게 된다.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같은 이야기라도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표현을 달리하는 것처럼 꼭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만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 바로 그런 점이 같은 이야기라도 늘 색다르게 다가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책을 몇 번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책 속에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를 외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는 묘미도 생겨난다. 엄마, 아빠가 연출가, 배우, 음향효과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책을 읽어준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누렸던 즐거움을 내 아이들에게도 누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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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2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공꺼 사서 읽어줬었는데 애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나머지 저 책들도 모두 보고싶네요. 아이들이 아는 얘기라고 안볼려고 할까요? 도서관에 다음에 가면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08-0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희나 작가 책 보고 맘에 들어서 샀는데 다른 출판사 책도 궁금해요. 같은 이야기도 다른 그림으로 읽혀주면 또 그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1-2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보림이 젤 재미있고, 시공은 백희나 작품에 압도당하고...보리는 그림이 좋았다고 기억되고, 세권 다 나름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낸 책이라 생각돼요.

책향기 2008-02-0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림에서 나온 책을 갖고 있어요. 한 이야기에 여러 책을 비교해보는것도 재미있네요^^
 
안데르센 동화 - 개정판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정문영.이병렬 옮김, 리즈베스 츠베르거 그림 / 마루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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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을 다 알고 있거나 심지어 비슷한 내용의 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그림 작가의 그림을 보고 싶다거나 갖고 싶어서 탐나는 책이 있다. '리즈베스 츠베르거'도 그런 그림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난쟁이 코>를 통해 처음으로 이 작가의 화풍을 접하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에 지금은 절판된 그녀의 작품 다섯 권(도도 명작그림동화 시리즈/작가 이름:리즈벳 쯔베르커로 되어 있음)을 공구 형식으로 구입하기도 했었다. ^^*
- 알라딘은 표지에 나와 있는 이름이 아니라 "리즈벳 쯔베르커"로 올려 놓았는데 어느 쪽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책은 2007년에 나온 개정판으로, 1판에는 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개정판에 3편-엄지 아가씨/돼지치기와 어리석은 공주/나이팅게일-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구판을 미리보기로 비교해 보니 문장도 조금 손본 듯) 아직 안데르센의 작품을 모두 접해보지 못하였는지라 이 책에 실린 "모래 아저씨"나 "높이뛰기 선수들" 같은 동화는 나나 아이들이나 처음 보았다. 작은 아이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큰 아이(초등 5학년)는 이 책을 들고 들어가서는 자라고 해도 책을 덮지 못하는 거 보면 엄마의 잔소리도 이겨낼 만큼 매력적인가 보다. -결국 불 켜진 마루로 나와서 다 보고 자러 갔음. -.-

 간결하면서도 차분한 느낌과 스케치한 선의 섬세한 느낌이 살아있는 수채화의 담백한 매력을 발산하는 리즈베스 츠베르거의 그림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그림을 직접 보면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처럼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 권에 실려 있는 경우 삽화가 낱권 책보다 풍부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절판 그림책과 비교해 보니 삽화가 다 실린 것이 아닌 모양이다.("엄지 아가씨"를 절판 그림책과 비교해 보니 삽화가 반 정도만 실려 있다. 두 책의 번역자가 달라서인지 문장도 차이가 나는데 본 책의 문장이 내용 묘사가 좀 더 자세하고 내용도 풍성함.) 

 글 분량도 많고, 책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대상 연령은 저학년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권선징악 구조의 옛이야기와는 다른 스타일인지라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주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동화 내용을 손질한 책이나 축약본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 어릴 적 읽었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읽는 동화의 작가 안데르센의 삶과 작품 세계, 작품의 배경 등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삽화가 다 실리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별점을 넷으로 함. 저작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르겠지만 '리즈베스 츠베르거'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서라도 절판된 작품들이 다시 선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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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1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를 위한 첫 안데르센 동화 이쯤 될까요? 미리 보기를 통해보니 그림이 정말 매력적이네요. 나중에 예린이를 위해서 찜해놓습니다.

totorojjan 2008-01-1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렀습니다. 요즘은 아이들과 통 책볼시간도 없었네요 언제나 아이들과 책과 교감하는 아영엄마의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저희 둘째도 이제 5학년이 될 참인데 아직도 글씨가 많은 책에 손을 대지않아서 그림책을 좀더 보도록 해야할까 하네요 요즘은 이 문제가 좀 걱정스럽기도 하답니다. ^^ 이책 탐나서 저도 하나 사려구요 잘 보고 갑니다.^^

아영엄마 2008-01-1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유아들이 혼자 들고 보기에는 책이 좀 무거운데요. (^^)> 아이들 조금 더 큰 다음에 사셔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토토로짱님~ 우리 큰 아이도 5학년인데 그림책도 좋아해서 자주 보는걸요. (저는 아이가 역사책 쪽으로 좀 봤으면 싶은데 별 흥미를 안 느껴서 고민입니다. -.-)
 
오늘은 좋은 날 - 꼬마야꼬마야 17 꼬마야 꼬마야 17
케빈 헹크스 지음, 신윤조 옮김 / 마루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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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머피의 법칙이라도 적용된 것처럼 하는 일마다 꼬이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등 유난히 운이 좋지 않은 날이 가끔 있다. 그런 날은 속상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내내 그 생각이 나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아이들도 그런 날이 있을 게다. 소중한 것을 잃거나 곤란을 겪은 아기 동물들에게 곧 좋은 일이 생긴다는 내용의 이 그림책은 <내 사랑 뿌뿌>의 작가, 케빈 헹크스의 작품이다. 영아들을 위한 '꼬마야꼬마야' 시리즈 책.

  아기 새는 가장 아끼던 꼬리 깃털을 잃어버리고, 강아지는 목걸이 줄이 꼬여서 애를 먹는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 여우, 도토리를 연못에 빠뜨린 아기 다람쥐. 이들에게 오늘은 별로 좋지 않은 날이다. 그렇지만 조금 있다가... 아기 다람쥐는 아주 큰 도토리를 찾았고, 아기 여우는 엄마를 찾아 기뻐하고, 강아지는 꼬인 줄을 혼자 힘으로 풀고 뛰논다. 누가 도와주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이라서 더 예쁘다.

 예전에 둘째 아이가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갔던 구슬 팔찌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아끼고 좋아하던 거라 그 날 내내 팔찌 생각을 하며 무척 속상해 했는데 그런다고 해서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을 곱씹으며 멈추어 있어 봤자 발전도, 좋은 일도 다가오지 않는 법. 노란 아기 새는 잃어버린 깃털 생각을 털어버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 깃털은 소녀에게 좋은 날이 되게 해준다. 

  이번 그림책은 그림의 선이 굵직굵직한 것이 특징이다. 동물이나 나무 등도 외곽선을 굵게 그려 두드러지게 하고 있으며 네모난 그림 테두리도 굵은 선으로 마무리하여 그림 액자 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앞부분과 내용이 전환되는 중반에 알록달록한 색으로 세로선을 넣은 책장을 삽입한 것이 눈길을 끈다. 

 글자도 큼지막하며 왼쪽 책장은 백지에 본문 글만 싣고, 오른쪽 책장에는 그림을 나오는 반복된다. 표지에 보이 네 마리만 등장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 문장 속에 노란, 하얀, 주황색 등의 단어도 포함되어 있어 이제 막 사물을 인지하기 시작한 영아들에게 색과 동물을 익힐 수 있는 책으로 접해주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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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산 (양장) 보림 창작 그림책
류재수 지음, 신동일 작곡 / 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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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우산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글자 없는 그림책은 언제고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2002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된 류재수씨의 작품.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역동적이면서 힘찬 기상을 담아낸 <백두산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처음에는 '재미마주'에서 출판되었는데 재출간되면서 (가격도 오르고) 출판사도 바뀌었네그려. -.-

  배경은 비 오는 날의 흐린 날씨를 반영하여 전반적으로 회색을 띠고 있는데 주택과 가게가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에 파란 우산, 주황 우산, 초록 우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밝은 색의 우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그림은 점차 밝은 색채로 가득 차게 된다. 작가가 이 작품에 담고자 한 것은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며, 다채로운 색의 조화, 그리고 색들의 즐거운 리듬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우산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펼쳐지는 색의 향연에 눈이 즐거워지고 기분 또한 경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산만으로도 비가 오는 상황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지만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는 빗방울이 강물에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모습으로 비가 내리고 것을 좀 더 현실감 있게 형상화하였다. 작가는 비가 올 때면 그네 밑에 물이 고이고, 놀이터를 가로질러 물줄기가 흐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둥근 모양으로 짜 맞춰 놓은 보도블록도 지나고, 철길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부지런히 건너는 우산들... 우산을 들고 가는 이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조잘대는 아이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면은 우산들이 접힌 모습으로 우산꽂이에 꽂혀 있는 그림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비가 올 때면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많은데, 돌이켜 보니 어렸을 때는 비가 오는 것도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신발이 젖거나 말거나) 바닥에 고인 물로 장난을 칠 수 있어 신났고 , 예쁜 우산을 쓴다는 자체도 좋았고, 우산을 쓰고 어딘가로 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이 작품은 그림책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을 주는데 총 14개 곡이 들어 있는 CD에 담긴 음악소리를 곁들이니 그 밝고 경쾌함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잔잔한 듯이 시작했다가 통통 튀는 빗소리를 경쾌한 리듬으로 담아낸 피아노 소리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용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몇 번을 봐도 늘 새롭고,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다시 듣고 싶어지는 피아노 선율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사족: '우산'하면 이 동요(우산-윤석중 작사/이계석 작곡)부터 떠올라서인지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라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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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아이 트리혼 동화는 내 친구 52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지음, 에드워드 고리 그림, 이주희 옮김 / 논장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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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키가 줄어들기 시작한 아이와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관심의 부재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트리혼은 자신의 키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줄기차게 말하지만 어른들은 관심을 표명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 어른들. 그 어른들이 바로 내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절제된(거의 무표정한), 에드워드 고리의 간결한 흑백 펜화 그림이 이 작품의 풍자적인 느낌을 적절하게 살려주고 있다.

  트리혼은 자신의 키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븐을 들여다보며 케이크가 잘 부푸는 지에만 신경을 쓴다. 아빠는 의자에 똑바로 앉으라고 말하며 줄어드는 사람은 없다고 대꾸한다. 마침내 트리혼의 키가 줄어든 것을 발견하지만 안 좋은 일로 치부하며,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뭐라 말할지에 대해 걱정을 한다. 우체통에는 손이 닿지 않고, 급수대에서 물을 먹기 위해 깡충 뛰어야 하는 트리혼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친구는 바보 같다고, 운전사 아저씨는 작아지는 사람은 없다고, 선생님은 줄어들면 안 된다고 말할 뿐이다.

 요컨대 트리혼의 키가 왜 줄어드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왜 키가 줄어드는지 트리혼에게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며칠 뒤 트리혼은 미처 끝내지 못한 게임을 하면서 원래의 키로 돌아온다.-게임의 말을 뒤로 움직여야 할 때 하지 못한 탓에 대신 트리혼의 키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관심의 부재를 절감한 뒤인지라 트리혼은 자신의 온몸이 연두색으로 변하자 생각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아이의 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엄하게 대하거나 내 할 일에만 신경 쓰는,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안 된다는 말만 해대는 어른들의 모습, 낯설지 않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썼다고 말하며 훌쩍이는 트리혼의 엄마의 모습이 나를 비추는 거울인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진다. 요즘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지 않고, 내 존재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인지 부모, 친구, 선생님에게 계속해서 외면당하는 트리혼의 모습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경험으로 느꼈다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비록 한 쪽밖에 들리지 않는 귀지만 그 귀를 좀 더 크게 열고 귀기울여 보리라. 내 아이와 주변 사람들은 이런 좌절감, 느끼지 않도록...


* 이 작품은 <줄어드는 아이>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 책은 트리혼이 버스를 탄 장면을 앞표지로 썼다. 원서의 표지를 찾아보니, 벽에 그려진 -아이의 키를 표시한- 금에 못 미치는 트리혼의 모습을 앞표지에 담은 이 작품과 동일하다. 앞표지 그림과 함께 온몸이 연두색으로 변한 모습을 담은 뒤표지가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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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12-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다섯개 ; 엄마의 모습이 보이네요.

순오기 2007-12-2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한 어른들을 비추는 거울이군요.
책을 읽으면 다 내가 반성할 일 뿐인지... ㅠㅠ
한번 봐야겠어요. 좋은 책 알려줘서 감사해요. ^^

bookJourney 2007-12-2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렇게 보는 그림책마다, 동화책마다, 소설마다 ... 반성하고 고쳐야하는 일만 가득한지 ... 이 책도 읽으면서 반성을 해보아야겠네요.

바람돌이 2007-12-2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면 뜨끔한 어른들 많을 것 같은데요. 저도 좀 뜨끔하죠. 반성모드로 돌입중입니다.

소나무집 2007-12-2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 생각나네요.
님,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쓴 적도 없으면서 늘 아이들만 탓하는 엄마 여기도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귀 활짝 열어놀고 아이들의 말도, 이웃의 말도 귀 귀울여 들을게요.

2007-12-24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7-12-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전히 반성만 하고 사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좋은 엄마는 못되나 봅니다. 그래도 책 보면서 반성할 때마다 바늘 한 땀씩은 좋은 엄마 쪽으로 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