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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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대는 어땠어?"  "혼자 자기에 너무 넓지?"  생각이 있어서 큰 맘 먹고 싱글이 아닌 더블 베드를 들여놨습니다. 비록 세미 더블이긴 하지만, 친구 요시코 말마따나 좀 넓긴하군요. 빈 공간을 채울 일만 남았습니다.  책 제목에 '침대'를 등장시킴으로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마치 침대가 주인공 같습니다.


2.  이 책의 작가 다나베 세이코.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소개 됩니다. 1928년 생이니까 놀라지 마십시요. 2013년 현재 86세 입니다. 작가 프로필을 안 보고 소설만 읽으면 20~30대 작가가 쓴 것 처럼 느낄 정도로 문체가 감각적이고 톡톡 튀기까지 합니다. 혼기를 앞 둔 또는 사회 통념적으로 약간 넘어선,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마치 남성들은 액스트러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습니다.


3.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문단 경력이 50여 년의 세월이다 보니 화려하다 못해 대단하군요. 이미 국내에도 제법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고, 영화화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비롯하여 '노리코 3부작'외에 여러 권이 있습니다.


4.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침대의 주인인 '와다 아카리'의 프로필입니다.  여자. 서른 한 살. 오사카 거주. 단기대학 영문학과 졸업. 무역회사 근무 중. 경력 10년의 베테랑 직장인. .......그리고 아직 미혼.


5. 여자 나이 31살을 결혼에 적용시킬 때 요즘 추세로 보면 그리 안달복달할 때는 아직 아닌 듯 한 것 같긴합니다. 아닌가요? 그저 내색을 안 하는 것 뿐.인.가.요? 여러 해전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가 송년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 나이가 내년이면 계란 한 판이 되요. 쓸쓸해요."  요즘은 계란이 한 판이 아니라 아담하게 팩으로 나오는지라. 순간 한 판이 몇 개? 하며 두뇌회전을 했지요. 그러나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20은 아니고, 40도 아니고, 아..30개, 30살...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죠. 혹시 해 바뀌고 누가 나이 물어보면 작년에 29 이었어요. 다음 해엔 재작년까지 29 이었어요. 그렇게 꿋꿋하게 밀고 나가라고 했지요.


6. 주인공 '와다 아카리'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일찌감치 가족들과 떨어져서 독립을 했군요. 이사오기 전 살던 여성 전용 아파트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고 있었지요, 비록 여자들만 사는 건물이긴 하나 겨울에는 추워서 일일이 가운을 걸치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아, 따뜻한 이불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으면'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지요. 그 소원대로 이사를 오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침대를 하나 들여 놓으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침대를 들여놨으니 남자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미혼 여성이 결혼을 하기 위한 첫 준비과정이 침대를 들여놓는 것이라면 가구 회사나 상점은 저희들끼리 하이 파이브 하기 바쁘겠습니다.


7. 어쨌든 침대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군요. 물론 침대를 들여 놓기 전 그녀의 일상과 생각도 이어집니다. 키 포인트는 30 전후 또는 조금 넘어의 미혼 남녀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 남성이 갖고 있는 여성의 생각 그리고 그 반대의 마음들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군요. 일본은 한국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 문제에 대해선 한국보다 좀 관대하면서 적나라한 면도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만..


8. 와다 아카리와 절친 요시코.  두 사람의 성격과 각기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이젠 결혼을 해야겠다 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짐짓 심각한 듯 하면서도 미소를 자아내는군요. 


9. "어쨋든 요시코랑 '어른스럽지만 순진한 여자는 싫어.' '히스테릭한 여성주의자도 아닌 것 같아'로 일단 합의를 보긴 했는데, 그러고 났더니 남은 길은 단 하나, 남자를 이해하는 내조 잘하는 여자, 그 길뿐이었다. "이걸로 가자"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기본 노선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당연히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임기웅변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때에는 "어른스럽지만 순진한 여자." 도 괜찮을 테고, 어떤 때에는 "어른스러운데다가 내조 잘 하는 여자."도 괜찮을 거다. 상대 남자에 따라 조합을 바꿔보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나랑 요시코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한다 한들, 실제로 써먹을 기회는 별로 없다. 상대가 나타나야 말이지.."


10. 남녀 간의 이야기가 재밋게 펼쳐집니다. 미혼 남녀가 읽어보면 뭔가 한 수 배울 듯 합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도 방과후 학습 삼아 읽어보면 도움이 될 부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교훈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남녀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는 재미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래서 침대 나머지 공간이 채워졌냐구요? 아, 그건 말 안하렵니다.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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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그들이 절대 하지 않는 것들
나쓰가와 가오 지음, 고정아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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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첫 부분, '들어가는 글'에 적힌 이 대목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잘해보려다 지쳐버린 당신에게" 이런 기억 나도 있다. 아니, 지금도 가끔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그러고 있기도 하다. 


2. 이 책의 지은이 나쓰가와 가오는 다수의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인재 프로듀서로도 활약하며 각 분야에서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해 네트워크를 통한 비조직 프로젝트로 많은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3.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전한다. 직업상 뛰어난 경영자들을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저자가 잘 나가는 한 경영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까지 읽으신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경영자가 답하길 "책 말인가요? 소설은 자주 읽는데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 같은 건 전혀 안 읽습니다.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기에 더욱 그렇다. 경영자가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적을 많이 안 읽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안 읽는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4. 하긴 나도 몇 해 전 모 인터넷 서점 신간서평단에 선정되어 근 1년간 자기계발서만 지속적으로 본 적이 있다. 5~6권쯤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자계서는 많이 볼 것이 못 되는구나." 그 이유는 책이 잘 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그 중 하나라도 실천을 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안 해도 한 것 같은 착각속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5. 저자는 자기계발서의 공통점이 'Doing List'라는 점을 의식하며 역발상으로 뽑아낸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Stop Doing List'라는 것이다. 두말 할 나위없이 현대의 각종 방법론은 모두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고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요령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6. 각 챕터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한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정보를 모으지 않는다.',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등이다. 내가 남자인지라 스마트한 사람을 남자로 그린다면 열거한 소제목들 몇 가지는 '나쁜 남자' 가 연상된다. 혼자 짊어지지도 않고,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풀이하기 나름이겠지만 일일이 말하지도 않는 남자와 같이 일하는 것이 과연 스마트할까?


7. 저자는 '정보수집에 급급해서 다가온 기회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묻고 있다. 하긴 정보가 너무 많으면 '직관'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직관도 직관 나름이겠지만, 지식이 많다고 유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공감한다. 온갖 정보(인포메이션)를 수집하다보면 지식이 쌓이기는 하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아인슈타인은 오로지 지식만 수집하는 것을 부정했다. 상대성이론을 펼칠 때 정보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8.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성공과 실패 둘 다 포함한다. '모든 것을 맡기고 책임은 리더가 진다'는 말로 표현된다. 이 부분에는 상대방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동반된다. 사실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위험 요소가 숨어 있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차피 내가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러 지켜보면서 한심해 보이고, 깊숙히 관여하고 싶지만 믿고 맡기는 훈련도 필요하다.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일면 편해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다.


9.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 역시 불안한 면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남의 말 속에 부정적인 요소, 혹시 내가 너무 잘 나갈까봐 짐짓 염려하는 척하면서 위험요소만 지적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이다. 저자는 이 예로 '세븐일레븐'의 사례를 들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일본 기업인 줄 처음 알게됨)이 창업 당시 주변에선 온통 그만두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우리 속담에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면서 말린다.'는 그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대형 슈퍼마켓의 시장 진출로 중소 소매점이 점점 쇠퇴해 가는데 작은 가게가 잘 될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10.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모범답안은 없다. 또 새로운 것도 없다. 각자의 꿈과 그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꿈을 이루는 과정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 좀 더 욕심을 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점검해보는 것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좀 더 생산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에 나오는 조언들을 모두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방법론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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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과 인간 지만지 고전선집 499
유카와 히데키 지음, 남정순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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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과학은 과연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만 보여주고 있는가?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서 인간 본연의 모양과 색깔은 점점 퇴색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한편 우리는 더욱 과학의 일상에서 벗어난 삶을 생각하기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없다손 치더라도 우린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 이 책의 저자 유카와 히데키는 누구인가? 교토제국대학 이학부 물리학과 졸업. 도쿄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53년 이후 정년 퇴직할때까지 교토대학 기초물리학연구소 소장을 역임. 과학뿐 아니라 동양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중간자 이론을 제창해 원자핵과 소립자물리학 발전에 커다란 공적을 쌓음. 소립자이론으로 1949년 일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그는 또한 오랫동안 세계 평화를 둘러싼 운동에 헌신적으로 노력함. 


3. 저자에 따르면 현대과학은 우리 인간에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공했고, 그 가능성 중에는 인류를 행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것도 있지만 공포와 파멸로 이끄는 것도 있다고 한다. 또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의 문제라기보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4.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된다. 1부는 '과학과 인간', 2부는 '기초과학의 진흥'이다. 1부에서는 과학과 인간이라는 소주제와 별도로 과학과 도덕, 과학자의 책임, 문명사회와 인간의 역할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이어진다. 2부에선 시간의 문제, 소립자의 수수께끼, 소립자와 통일장, 기초과학의 현재와 미래, 과학의 분화와 종합 등의 글이 실려 있다.


5. 저자는 과학의 진보는 인간 밖에 있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와 함께 외부 세계에는 인간에게 미지인 것과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6. 우주 전체의 긴 역사로 볼 때, 또 인류 역사로 보아도, 짧은 시간에 과학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다. 그 중에서도 기계는 눈부시게 발달해왔다. 이미 기계가 인간의 두뇌 할동을 대신 해주고 있는지 오래되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이곳저곳에 붙지만,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 이름을 붙여주기에 손색없는 물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허황되지가 않다. 


7. 그렇다면 기계의 발달은 앞서 간다치고 인간의 내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저자는 자연과학과 그에 따른 기술의 진보로, 우리 인간을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새롭게 생겨나는 점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 저자가 언급한 여러 이야기 중 '인간의 세 가지 역할'에 주목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 세 가지 중 최소한 한 가지 역할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역할은 과학자와 관계된 것으로 '과학 연구'다. 두 번째로는 과학자 또는 그 그룹에서 새롭게 발명된 것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좀 막연한 표현이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역할'이 요구된다고 한다.


9.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을 담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근원적인 과학의 존재, 혹은 미래의 과학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과학개론서라고 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느낀 단상과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시절 독서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과학자인 저자는 문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이 있는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10. 중국문학인 [홍루몽]에 대해선 이런 평을 적었다. "구체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이상하리만치 강하다. 또한 시간적이고 음악적이라기 보다 공간적이며 회화적인 구성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홍루몽의 작가인 조설근(曺雪芹)이 화가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균형감있는 사유(思惟)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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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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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모두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마음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유한의 생명력'을 생각해본다.

 

2.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 지하철 속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65세의 여성이 마치 삼림 속 나무 한 그루처럼 묘사된다. 퇴근 길 평범한 그림 같지만 서장부터 사건이 일어난다. 여인의 이름은 조각(爪角)이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킬러이다. 그들끼리 통하는 언어로는 방역업 종사자이다.

 

3. 손톱 '조'(爪), 뿔 '각'(角). 가명이지만,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찌하다보니, 아니 운명처럼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하긴 평범하다면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 안 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는 핑계도 대지 않아. 개개인의 정의 실현이라면 그거야말로 웃다 숨넘어갈 소리지. 하지만 말이다,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4. 이 소설의 작가 구병모는 1976년 서울생이다. 제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은 필명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습작하면서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이름을 쓰고 싶었고, 소설의 분위기도 좀 남성적으로 가려고 필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와 분위기, 스토리 전개의 박진감에 잠시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여인인 '조각'의 섬세한 심리 상태 묘사에선 역시 여성 특유의 감각이 들어있다.

 

5. 주인공에게 '조각'이란 가명이 붙게 된 것은, 날카롭고 빈틈없으며 조금의 끈적거림이나 미적거림도 없이 깔끔한 뒷마무리에 이르기까지의 업무 처리 능력에 감탄한 팀매니저가 농담처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리 굳혀졌다고 한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이젠 그만 은퇴하시잖구.'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후에 뭔가 변화된 삶을 기대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6.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문득 냉장고 야채 박스를 열고 복숭아가 뭉그러진 채로 담겨 있는 것을 본다. 잊고 있었던 그 과일 봉지를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그것을 마저 치우다가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좀체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여인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7. 파과(破果)에서 그녀는 그녀의 몸과 마음이 이젠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가 당차게 달려온 삶의 시간들에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내가 뭉그러진 복숭아를 치우듯 결국 나의 몸도 그리 되고 말 것이라는 암시를 받게 된다.

 

8. 과연 그녀는 진실로 무엇을 없애고 싶었을까 묻고 싶다. 그녀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이었을까? 그 마음 안에서 끝도 없이 일어나던 차가운 기운이었을까? 소설이 전체적으로 흐름이 빠르지만, 특히 끝부분은 매우 스피디하면서도 리얼하다. 투우라고 불리우는 그 젊은 동역자와의 만남 역시 숙명이다.

 

9. 소설은 범죄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작가는 보다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의 생명력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무언가 버려야 될 것을 금지옥엽 움켜쥐고 있지는 않는가. 마지막 장면에 그녀가 네일 숍에서 손톱을 내맡기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평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손톱을 단정하게 자르고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부피와 질량을 감추는 수백 가지 소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철저하게 검박한 손톱은 고무찰흙에조차 상처를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여 손톱주인에게 내재한 공격성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이미 상실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녀의 최후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손톱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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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 - 쉽다, 맛있다, 남지 않는다
김민희 지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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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젊은 나이에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 노후대책을 이야기할 때 돈이면 다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진정한 노후대책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정답이다. 한 10년 전쯤 가족들과 떨어져서 2년 가까이 지방에서 혼자 지낸 적이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로 와서 가족들과 지내다가 일요일 밤 막차를 타고 갔다. 점점 꾀가 나자 집에 다녀가는 횟수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줄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에 제일 불편했던 것이 먹고 사는 문제였다.

 

2. 이 책은 '먹는 것'을 해결해주자고 나선 네이버 파워블로그 "천재 야옹양의 생활"의 운영자 김민희가 꾸민 책이다. 타이틀은 '쉽다, 맛있다, 남지 않는다'로 되어 있다. 나를 위한 만찬 [1인분 요리]. 페이스 북에서 한 싱글족 페북 친구가 본인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는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촛불과 꽃으로 장식한 테이블 세팅을 보며 '그래, 맞아 내겐 무엇보다 내가 소중해.'라는 생각을 했다.

 

3. '혼자서 하기 힘든 일'중 하나가 '혼자 밥먹기'라고 한다. 그렇다고 물 말아서 대충 먹거나 건너 뛰거나 하면 건강 전선에 문제가 생길 것은 불보듯 훤하다. 이 책은 아무래도 요즘 부쩍 늘어난 싱글족에게 도움이 많이 될 듯 하다. 그 다음엔 나처럼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겠다.

 

4. 일인분을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 까짓 4~5인분은 못 만드랴. 책은 7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푸짐하게 엄마밥 한 상, 10분 완성 밥반찬, 든든한 밥 한 그릇, 통조림으로 일품요리, 입맛 도는 반주 한잔, 마이 홈 카페 브런치, 가볍게 샐러드 1인분.

 

5. 우선 레시피가 간단하다. 왼쪽에는 완성된 요리의 사진. 오른쪽엔 준비물과 순서가 간략하지만 알차게 실려있다. 요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그냥 한번 쓱 읽어보고 원샷에 할 사람들도 있겠다. [보쌈]요리가 눈에 띈다. 육류 섭취를 하고 싶어도 요즘 잇몸이 약해져서 고기를 먹고 나면 며칠 힘들다. 보쌈은 괜찮을 것 같다. 돼지고기 삼겹살이나 목살을 통으로 준비하는 것이 시작이다. '고기는 전날 칼 집을 깊이 넣은 뒤 사이사이에 월계수 잎을 넣어두거나, 익힐 때 된장 대신 인스턴트 커피를 조금 넣어도 누린내가 나지 않아요.'라는 Tip이 붙어 있다.

 

6. 10분 완성 밥반찬에선 '소시지김치볶음'이 눈에 띈다. 칼칼한 맛을 선호하는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은 메뉴다. 소시지와 김치만 있으면 되니 준비도 간단하다. 덮밥처럼 밥에 올려 먹어도 되겠다. 프랭크 소세지, 비엔나소시지나 햄을 이용해도 된다 한다.

 

7. 혼자 있다보면 냉장고는 아무래도 보존 기간이 여유 있는 통조림 식품이 점령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내가 지방에 혼자 있을 때 그랬다. 통조림 아니면 밑반찬 빼면 없었다. '통조림으로 일품요리'라. 구미가 당긴다. 재고 정리 한 판 벌여도 되겠다. 스팸고추장 찌개를 보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 온다.

 

8. 부록으론 '알아두면 좋은 15가지 드레싱과 1인분 요리를 위한 미니정보가 실려 있다. 요리의 기본인 '파, 마늘,고추 등 자주 쓰는 재료'의 보관법을 머릿속에 입력시킨다. "파, 마늘, 고추 등은 늘 구비해놓는 것이 좋아요. 사용하기 편하게 썰어서 지퍼백이나 밀폐 용기에 담아 냉동시키면 편리합니다.파는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 한 뒤 송송 썰어 지퍼백에 넣고 냉동실에 보관하세요. 마늘은 껍질을 까서 곱게 다진 뒤 얼음통에 담아 얼리면 조금씩 꺼내 쓰기 편해요."

 

9. 그러나 내가 제일 하기 싫고, 못 하는 것이 요리이다. 재미도 재주도 없지만,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 그러나 내 아내에게 차마 시간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돌아올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 시간은 남아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이 들어서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 시켜먹는 모습처럼 쓸쓸하다 못해 궁상맞은 그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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