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살리는 역설 건강법 - 금오 김홍경의
김홍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1. 해산 조헌영 선생은 그의 저서 [통속한의학원론(通俗漢醫學原論)]에서 동양의학이라고도 부르는 한방과 서양의술인 양방의 차이점을 논(論)하고 있다. 동양의학은 종합적, 치본(治本)의학이고, 서양의학은 국소적, 치표(治標)의학이라고 한다. 또 한방은 자연치료 의술이고, 양방은 인공치료 의술이라는 비교도 하고 있다. 질병의 근본 치료에는 동양의학이 능하고 응급처치에는 서양의술이 능하다는 표현도 한다. 조헌영 선생은 그 외에도 많은 비교를 하면서 동서 의학이 진정한 인술로 융합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동, 서양 의학의 차이점을 논하는 것이 이 책이나 리뷰의 목적이 아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고자 한다.


2. 이 책 [내 몸을 살리는 역설 건강법]의 저자 김홍경은 한의사이다. EBS TV 특장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 으로 많은 시청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51회차의 특강 직후 의학 수련과 전파를 위해 7~8 년 동안 해외 생활을 한 후 귀국해, 현재는 신농백초 한의원에서 10명의 제자 한의사들과 함께 사암침법을 중심으로 한 진료 활동 및 무료 의료 봉사와 후학 양성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저자 역시 한, 양방 진료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후배 한의사들을 질타하고 있다. "인체는 하나인데 한의학적 관점에서 보느냐 양의학적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질병을 찾아내는 방법과 결과가 다르다. 이는 단순히 관점의 차이를 떠나 보다 깊고 오묘한 그 무엇이 개입된다. 환자를 진료 할 때 손으로 만지는 진맥과 복진(腹診)이전에 눈으로 환자의 자태와 용모, 안색 등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진단과정인데 요즘 (한)의사들은 만사를 제치고 먼저 컴퓨터에 엉겨붙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만이 진리요" 를 외치는 서양의학자들만큼 개탄스러운 모습이라고 한다.


4. 책의 처음 시작은 마치 후배 한의사들의 교육용 서적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로 무겁게 나갔지만, 읽어 나갈수록 일상생활 중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계속 이어진다. 몸 건강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5.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뇌에 있을까? 심장에 있을까? 서양의학에선 마음이 생각과 함께 자리를 잡으니까 뇌에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받아 들이면(한의학적 관점이기도 하지만)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한다. 심장이 기억을 주관한다고 한다. 심(心)의 기능이 비정상적이면 사고, 판단, 기억 등 정신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양방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살해된 사람의 심장을 공여받은 소녀가 심장이식 수술 후 살해당하는 악몽을 계속 꾼다. 이를 심장의 기증자와 공여자의 기억이 공유되는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증후군이라고 한다.


6. 날이 갑자기 더워지면서 찬물을 자주 찾게 된다. 나는 원래 찬 음식을 안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리 더워도 냉커피보다는 온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갈증이 나다보니 찬물을 자주 들이키게 되는데 속은 별로 안 편하다. 그런데, 저자가 권유하는 음양탕(동의보감에는 '생숙탕(生熟湯)'이라고 되어있다)을 마셔보니 속도 편하고, 훨씬 갈증이 덜하다. 


7. 어떻게 좋다는 것인가를 저자의 표현을 빌려서 옮겨보면, 팔팔 끓인 물(여건상 정수기 온수물을 사용)반 컵에 차가운 물을 조금 부어서 바로 복용하길 권한다. 뜨거운 양의 기운인 물과 차가운 음의 성질이 만나서 상하순환(대류현상)이 될 때 마시면 좋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토사곽란, 위장병의 명약으로 나와있다. 같은 이야기지만, 아래의 뜨거운 물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위의 차가운 물기운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 대류 현상이 인체의 상하순환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1:1 비율까지 괜찮다고 하는데 그냥 원샷에 마실 만큼 너무 뜨겁지 않은 정도가 좋은 듯. 컵에 뜨거운 물을 먼저 받고 차가운 물을 넣은 후 흔들지 말고 그냥 마심). 


8. 히포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먹은 것들이 바로 나다. 음식을 약으로 삼고 약을 음식으로 삼아라!" 히포크라테스의 이 말은 단순히 질병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한 인간을 대하며 사람의 생활방식과 습관을 고려해 '인체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시키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9. 저자 역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지적해주고 있다. 문제는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약이 되는 것인데, 본인의 체질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다. 사상의학을 제대로 공부한 한의사를 만나야 체질 또한 분명하게 알게 될텐데, 더러 진맥하는 의사에 따라 다른 체질을 지적해주니 이 또한 문제다. 


10. 최근 광풍적인 인기를 끄는 '1일 1식' 또는 '간헐적 단식'이 좋다고 체질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한 끼를 먹고 몇십 시간을 공복으로 보내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건강비법을 찾아 멀리 돌아다니거나 언론에 노출된 정보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가 전혀 없다. 건강비법은 바로 내 몸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릇된 식욕과 식습관으로 부터 나를 보호하자!"

11. 요즘 건강에 대한 무수한 정보와 몰림 현상을 보면, 여러해 전 '새벽형 인간'의 분위기가 연상된다. 나는 다행히 그 쓰나미에 휩쓸리진 않았지만, 개인의 바이오리듬을 무시하고 때아닌 새벽에 일어나서 활동하다가 병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12. 저자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위한 챕터에선 '바쁜 사랑에 아픈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타이틀부터 관심을 끈다. 병이 나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더 먹인다? 칭찬은 아이를 춤추게 한다? 아이들에겐 조깅이 좋은 운동이다? 뚱뚱한 아이에겐 오렌지 주스가 좋다? 성장기 아이에게 과일, 달걀, 우유는 필수식품이다?  등에 대해 일일히 답을 열거하기엔 무리이다. 반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답이다. 병이 나면 안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이 낫고, 지나친 칭찬은 아이를 교만하게 만들고, 어린이에겐 조깅보다 고요한 잠이나 명상이 좋고, 뚱뚱한 아이에게 신 음식은 비만을 부르고, 성장기 아이에게 일률적으로 과일, 달걀, 우유를 먹이는 것보다는 체질에 따라 먹는 양이 달라져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에 수긍이 가는 면이 많다.

13. 한자로는 표기가 안 되었지만,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내 몸을 살리는 역설 건강법]의 역설은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역설(逆設) 과 역설(力設). 언뜻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통념에 반(反)하는 듯 하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저자의 힘찬 주장과 논지가 담겨 있다. 다소 어려운 듯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건강한 일상을 만드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조와 18세기 - 사로서 18세기, 서구와 동아시아의 비교사적 성찰
역사학회 엮음 / 푸른역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1. 왜 18세기에 관심을 갖는가? 이 책의 필진을 대표해서 서문을 쓴 김경현 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는 자부의 세기"였다고 표현한다. 서양에서 18세기가 절대왕정, 계몽사상, 시민혁명의 시대라면, 그 시기 중국은 경제번영, 평화의 시대였고, 한국은 상공업 발달, 문예부흥, 영,정조 같은 탕평군주의 시대였다고 한다. 


2. 책은 10명의 필진이 참여하고 있다. 손과 손가락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목적, 같은 주제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각기 그 내면의 표현이 다르다. 오수창은 18세기 조선의 정치현실과 정치이념을 알기 위해선 앞뒤 시기인 17세기와 19세기의 맥락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있다. 영, 정조대의 군주에 대한 이미지는 서구의 절대왕정에는 못미치지만,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였다. 당시 조선의 군주론은 주자학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구성된 왕 개인의 제왕학 혹은 정치기술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18세기 조선의 탕평정치나 그와 연관된 정치사상에서 진보성의 계기를 확인하기 힘들다고 한다. 


3. 박광용은 탕평정치를 '일통'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는 18세기 국내 정치의 양상을 백성 일반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 당시 공론의 주도권은 군사로서 군주와 향촌의 백성들에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경구의 [조선왕조실록]을 텍스트로 한다. 조사에 의하면, 18세기 이래 조선의 새로운 사조에 '실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이미 실학이라는 단어의 전서(前史)가 있었다. 


4. 19세기에 이르러, 실학은 서양학, 과학, 공학을 포함하는 학문으로, 주로 개화파가 지향하는 문자그대로 실용기술학의 의미로 쓰여졌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실학은 조선의 근대 사상의 기원으로서 기반을 다진다. 계승범은 조선중화론을 이야기한다. 조선중화론은 망한 명을 대신해  조선이 중화문명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논리다. 이는 탈중화가 아니라 중화의 변형이었을 따름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5. 경제사가인 이헌창은 18세기 조선은 근대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조선의 인구밀도는 일본과 중국의 선진지대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그 결과 농업 부문 기술 수준도 꽤 성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율은 대단히 낮아(3~6퍼센트) 18세기 전세계의 평균(9~10퍼센트)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18세기 조선의 경제는 농업기술과 인적 자본 등에서 성장하고 있었지만, 근대경제로 도약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 한승현은 18세기 중국을 동시대 서유럽 및 조선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중국과 조선은 강력한 군주권을 구축하려한 점에서 흡사하다. 한승현은 조선이 국경 너머 중국의 사정에 대한 정보를 통해 답습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벤치마킹이었다.


7. 하우봉은 18세기 일본 사상계가 유교(주자학) 전통의 대안을 찾는 역동성을 설명하고 있다. 고학, 국학, 난학의 세 사조를 주목한다. 이 중 난학(蘭學)은 국학과 달리 외래학, 특히 네덜란드어 서적을 통한 서구문물의 탐구경향을 가리킨다. 일본의 에도시대는 난학이 꽃핀 때이다. 실학 진흥정책과 더불어 난서의 수입금지가 풀렸고, 난서가 속속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해부학서[해체신서]의 번역은 난학 성장의 기폭제였다.


8. 이영림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은 종교적 갈등이 원인이었고, 계몽사상은 18세기 중엽부터 비로소 혁명의 에너지가 된다고 한다. 김기봉은 조선의 18세기가 17~18세기 프랑스처럼 근대를 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비슷한 점을 두 군주의 절대왕권의 기획을 통해 참고하고 있다. 루이14세가 왕권신수설을 통해 절대왕정을 수립하려 했듯이, 정조는 천명사상(특히 군주도통론)에 입각해 왕권의 초월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9.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술하는 사람에 따라, 어느 뷰포인트에 위치해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근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재와 함께 같은 동선에 위치한 미래를 보는 계기도 된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분위기가 주변 국가인 청, 일본 그리고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서양의 18세기와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통사 지만지 고전선집 592
박은식 지음, 최혜주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1. "지금 일본 사람들이 대한제국을 빼앗기 위해 전후 체결한 조약이 10여 가지나 되는데, 그 조약문을 읽어보면 대서특필할 내용이 아닌 것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를 보존해 제3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황실의 존엄을 보존해 준다.', '한국과 일본의 우의와 동아의 평화를 오래도록 유지케한다.', '한국의 독립과 치안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은 통감부를 설치해서 정권을 빼앗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베트남처럼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이 일본에 합병할 때도 한국의 영토와 치안을 보전한다고까지 말했다."


2. 이 글은 이 책의 '서(序)'로 공자2465년(1915) 2월에 갱생(更生)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갱생은 강유위를 말한다. 중국 근대의 사상가, 정치가이다. 그는 서(序)말미에 '중국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는 해도 분발하지 않으면 제2의 조선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라고 했다. 갱생은 1927년 이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의 우려대로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지나사변)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3. 이 책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지은이 박은식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 집필해 1915년 상해(上海)의 대동편역국에서 순한문으로 간행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국내로 반입이 금지되었다. 박은식이 '나라 잃은 미친 노예(太白狂奴)라는 필명을 가지고 쓴 이 책은 범례, 목차, 서(갱생), 서언, 삽화 그리고 본문, 결론, 후서, 발(한진,韓震)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책 제목이 한국통사(通史)가 아닌 통사(痛史)라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통할 '통'자가 아니라, 아플 통(痛)자다.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역사이다.


5. 이 책에서 지은이가 비판하는 것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원군의 내정 계획을 가치 매길 수 있지만 그는 세계정세에 어두워 중흥의 기운을 막았다.

2) 민씨 정권이 자주적 근대화를 실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문호를 개방해, 우리나라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3) 갑신정변은 여건 미숙으로 실패했고, 일제의 술책에 말려들어 타력(他力)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독립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4) 동학농민전쟁은 신분 해방을 실현한 개혁의 선구이나, '폭동'이라는 정치혁명으로서의 한계를 지녔다.

5) 명성황후 시해라는 일본의 만행과 아관파천 때 친러파에 대한 문제가 있다.


6. 일제의 한반도 강점 과정에 대해

1) 독립협회의 활동을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그들은 조급한 행동으로 개혁에 실패했다.

2) 을사조약은 부당하게 강제로 체결되었다.

3) 열강들은 우리나라의 이권을 쟁탈하고 일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본의 한국 병합을 묵인했다.

4) 일진회 회원, 을사오적 등은 일본의 한국 병합을 도와 그 공으로 작위를 받은 친일 인사들이다.


7.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망 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망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정신이 존속해 멸망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 할 때가 있을 것이다."


8. 동학 혁명이 일어 날 때 지은이는 서울에 있다가 나라에서 청국에 원병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국자에게 "동학교도는 오합지졸에 불과해 관군들이 힘써 소탕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 텐데 어찌 중국에 원병을 청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구구하게 일어나는 내란을 스스로 진압하지 못하고, 외국에게 이런 위급에서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 아닌가? 또한 갑신년(1884)의 천진조약에 명시된 바에 따라 만약 청국에서 파병하게 되면 일본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양국 군대를 불러들이게 되면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우리나라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그는 대답을 못했다. 결국 지은이의 말은 적중했다.


9. 책의 후반부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기록이다. 도둑 맞도록 문을 열어준 친일파 을사오적(乙巳五賊)은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매국노들. 아. 이 땅에 친일파들의 명(命)은 참 질기기도 하다. 해방 이후 그들이 권력의 변방에 자리잡은 시간은 고작 10년이란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던가. 그 외엔 참 잘 나갔단 이야기다. 그간 잃어버리고 망가뜨린 아픔과 치욕의 우리 역사 시간이 얼마인데 그들은 아직도 기가 막히게 당당하다. 


10. 지은이 박은식은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 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소설가 방현희의 단편집. 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낯설지가 않다. 작품의 공통점은 치밀한 구성력과 생동감 있는 물고기의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는 느낌이다. 아울러 표현력이 뛰어나다. 


2. "당신이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기이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로 시작되는 '로스트 인 서울'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굴러온 룰렛 구슬로 묘사되는 그렉 안나가 주인공이다. 카지노의 룰렛 구슬이 굴러가는 곳은 구슬과 바라보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 그저 매번 굴러갈 때마다 새로울 뿐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그럴 지도 모른다. 주어지는 자극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렉안나는 촉망받는 인재였다. 고국의 대학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어느 우수한 대학 정문으로 들어가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 이젠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어찌어찌하다가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그렉 안나는 삶의 방향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봐도 핑핑 돌아가는 룰렛 판처럼 한창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에 던져진 그녀는 이제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잃어버린 것은 그녀의 꿈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작가는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든다.


3. '세컨드 라이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아내와 중국의 가흥이라는 곳을 갔지만, 내 몸과 혼은 따로 노닐고 있다. 나에겐 그 거리의 구석구석이 모두 어제 일처럼 훈기가 돌지만, 아내는 힘들다. 이야기가 걷돈다. 나는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내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 난 여기 살았었어.   - 당신이 언제 여기에서 살아? 당신은 나하고 죽 함께 살았는데?   - 구 년이나 십년 전이야. 이제 모든 게 기억나.    - 정신 차려, 우린 한국에 살고 있고, 결혼 십육 주년 기념으로 여행 온 거야. 결혼 기념 여행이라곤 생전 처음이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여행 다닐 새가 있기나 했어? 여긴 언제 왔다는 거야.  아내는 점점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화를 낼만도 하다. 그래도 '나'는 형과의 묘한 신경전과 형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독자인 '나'는 화자인 '나'의 기억을 믿기로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형은 그 당시 시국사범으로 수배령이 내려져서 쫒기는 몸이었다. '나'의 혼은 분명히 형과 함께 했다. 그러니 이렇게 생생히 기억 날 수 밖에 없지.  - 기억 속의 유령인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유령인지, 당신은 알아?


4. 어떻게하든 감옥에서 빠져 나가고 싶다. 일단 내 몸 속의 내장을 하나 둘씩 먼저 내보냈다. 순조롭게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남은 것은 빈 껍데기 뿐이다. 나가지도 못했다. '탈옥'은 완전 실패다. 그 실패의 기록이다. 치밀하게 계산했지만, 구멍 투성이다. 수인(囚人)이 되면 아마도 같은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병이 걸린다. '나'는 수감되어 있는 동안 세 번의 수술을 했다. 첫번째는 편도선을 떼어냈고, 두 번째는 위궤양으로 위를 반쯤 잘라냈고, 세번째는 맹장을 떼어 낸 것이다. 물론 그 때마다 탈옥을 꿈꿨다. 밖에 크게 한 판 벌려 놓은 것을 챙긴후 영원히 잠적 할 계획이었다. 네 번째 시도를 했다. 완전 모험이다. 그런데 역시 실패다.  간수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다.  - 나는 알고 있었어. 네가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감옥을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넌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네 내장을 송두리째 다른 곳으로 도망시킨다 해도.

어쩌면 우린 일상의 삶에서 이렇게 나를 탈출시키려고 무언가 내게 소중한 것을 먼저 내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예비역대령 루트비히 폰 트랍의 가족들이 하나 둘 ..차례로 지혜롭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들은 새 땅을 밟았지만, 과연 이 시대에 새 땅이 있기나 한 건지..


5. 이어지는 단편들도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나, '후쿠오가 스토리'나..그런데 이 작가 실제로 요트를 많이 타 본 듯 용어와 분위기가 리얼하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에선 작가들이 선뜻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인체 해부가 펼쳐진다. 대충 잘 묘사가 되고 있다. 사인을 밝히고자 부검대에 오른 그녀.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그녀. 스스로 '맨발의 이사도라'라는 아이콘을 붙였지만, 발레리나로 성공하기엔 상체가 너무 두툼하고 다리가 가냘픈 신체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대 무용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그녀에게 정작 부족했던 것은 신체적 결점이 아니라 '신체 깊은 곳으로 감정을 농밀하게 모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단다. 


6.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외롭고 힘들다.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낯설지가 않다. 어쩌면 모양만 다소 다를 뿐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다. 방현희. 주목할 만한 작가로 내 마음에 담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 책은 지은이 김희경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흔히들 '카미노'라 부르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은이 자신의 '발견기'라고 합니다. 물음표를 안고 길을 떠났으나 답을 가진 사람은 못 만났다고 합니다. 그 대신, 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고 외롭다고 느끼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섞었다고 하는군요.


2.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진 가톨릭의 성지입니다. 이 길을 사람들이 순례한 역사는 천 년도 넘었다고 하네요.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로프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길'이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3. 셜리 맥클레인, 파울로 코엘료 등 명사들이 카미노에서 체험한 영적 깨달음, 삶의 변화를 고백하면서 이 길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도보 여행가 김남희 씨의 순례기가 출간된 것을 기점으로 관심이 부쩍 늘었고 인터넷에 '카미노 카페'가 개설되어 있답니다. 순례자중 50%는 한국인과 독일인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4. 지은이는 도중에 들른 한 알베르게(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의 방명록에 어느 한국인이 적어둔 글귀를 보며 씩씩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혼자이면서 함께이고,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길." 비록 출발은 혼자였지만, 순례를 마치는 때는 혼자가 아니라는 뜻도 담겨있지요.


5. 여행. 그것도 도보여행 중에는 먹고 자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은이는 가는 길에 동행을 만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환경에. 카미노가 좋은 것 중의 하나는 걷다 지칠 때면 적당한 지점에 커피나 와인, 맥주,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바가 있다는 것이지요. 카미노는 지나쳐가는 마을의 살림에 꽤 중요한 젖줄이라고 하네요. 순례자들 때문에 생긴 마을도 있다 합니다.


6. 지은이는 도보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만남 중 나의 마음이 함께 머무는곳이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개가 만나기도 하는군요. 이탈리아에서 온 바르바라란 여성과 개(프리다)가 만나는 과정은 마치 숙명인 듯 합니다. 바르바라가 프리다라고 이름 붙여준 커다란 검은 개는 늘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있군요. 물론 도보여행길에도 함께 합니다. 바르바라는 혼자 프랑스 루르드에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출발한 지 며칠 만에 피레네 산맥 기슭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던 날 혼자 숲 속을 헤매던 바르바라 앞에 더럽고 큰 개가 나타났습니다. 개가 다가오는 걸 보는 순간, 바르바라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 개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상태를 체크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수백 킬로미터를 함께 걷는 중이었습니다. 이탈리아로 돌아 갈 때 집까지 데려갈 생각이라고 합니다. 


7. 카미노엔 '노란 화살표'가 있어서 순례자들의 여정을 돕기도 하지만, 때로 그 화살표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군요. 갈림길에 서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이 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길을 잃으면 무조건 성당을 찾아가. 원래 카톨릭 순례자들이 걷던 길이라서 늘 성당 근처에 가면 숙소가 있거든."


8. "여기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꿈틀대는 걸 느껴. 설명하기 어려운데...길의 끝에 가면 나도 뭔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카미노가 내면의 무엇을 찾게 만들긴 하는 것 같아. 겉으로만 여행을 하는 게 아닌 거지."  카미노 노상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평소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속마음과 비밀을 쉽게 털어놓곤 한답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종종 치밀어 오르는 고해의 충동 때문일까요? 지은이의 입장에선 한국 순례자들보다 낯선 외국인과 낯선 언어로 이야기할 때 더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소한 영어라도 그런데로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카미노를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9. 긴 여정. 순례의 길을 마치고 나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카미노 순례를 마쳤다는 '순레자 증서'를 주는군요. 물론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순례의 마무리는 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까 나의 '버킷 리스트'에 담아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순서를 앞으로 바짝 끌어올려야겠다는 욕심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