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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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서 잠깐 소개를 해드렸던 책이지만, 오늘은 좀 더 살을 붙여서 리뷰를 올립니다. "인간의 생애란 너를 만나서 너와 헤어지는 일 / 아직 헤어짐을 짓지 않은 너에게, 음악에게" 음악은 표현입니다. 그 안에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시작과 끝이 녹아 있습니다.

 

2. 이 책의 지은이 정강현은 현재 중앙일보 취재부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최근 몇 년전 대중음악 분야를 취재 하면서 '인디 음악'에 폭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음악이 일상의 관습을 뛰어넘은 사운드의 언어라서, 나는 음악을 사랑하겠노라 맹세했었다. 그래서 내게 좋은 음악의 첫째 조건은 관습으로부터 달아난 사운드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운드와 멜로디와 리듬을 발굴해내는 음악에 매료되곤 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미 존재하는 사운드를 재생산해내는 게으른 음악은 내게 좋은 느낌을 주지 못했다."

 

3. 지은이는 특히 홍대 언저리에서 사귀게 된 뮤지션들이 그를 감전시켰고, 넘어뜨렸다는 표현을 하는군요, 홍대 음악가들은 흔히'인디'라고 합니다. '인디'란 말을 누가 맨 처음 붙였는지는 모른다고 하네요, 또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이 '인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고 합니다. 뭐 굳이 '사회적 합의'까지 갈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지은이의 추측으로는 1990년대 중반 홍대 둘레에서 생성된 밴드들을 기존 음악 시장과는 구별 짓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디(Independent)'라는 말의 뜻 그대로, '독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이들이 '인디 뮤지션'이라고 합니다.

 

4. 요즘 홍대 주변에는 수백 개의 밴드가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인근 합정동이나 문래동의 라이브 클럽까지 포함하면 1000개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이 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중앙일보' 지면에 '인디 카페'라는 연재 기사로 실었던 내용을 토대로 해서 새롭게 쓴 글이라고 합니다. 책은 4부로 되어 있습니다. 그 타이틀들이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생활 저항의 록 스피릿, 두근거리는 무한의 음악, 소박한 소리들의 풍경, 당신이라는 유일한 음악 등입니다.

 

5. 책에는 많은 인디음악 뮤지션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인디 록 밴드의 음악 풍경을 소개합니다. [크라잉넛] 을 지은이는 '개념없음'의 미학(美學)'이라고 표현하는군요. 그러나 그 '개념'의 개념이 사회에서 음악 세상으로 넘어 올 때는 예술이 된다고 합니다. 예술가 자체가 이미 좋은 의미로 '개념 없는'이들이라는 것이지요. 이들(크라잉넛)에겐 음악을 향한 열정을 그저 '재미'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이 처음 홍대앞에서 작당을 하고 모였던 때는 네 명 가운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개념 있는 클럽사장 한 사람이 이 개념 없는 친구들에게 미래를 걸게 됩니다. 넷은 그날로 악기를 사고 연주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크라잉넛에게 록이란 무엇인가. 직설이라고 표현합니다.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대놓고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떠들지 않는 것.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외부에 있다는 것이지요.

 

6. 밴드 '훌(wHOOL)'의 음악은 '두근거리는 무한'이라고 합니다. 퓨전 국악 밴드입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새 음악을 만들자"는 뜻에서 이름이 '훌'입니다. 이들은 국악에 덧씌워져 있던 온갖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국악도 대중음악이라는 것이지요. 하긴 대중과 멀리 있는 음악은 도대체 어디에 쓰임새가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음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훌의 음악은 퓨전이 아니다. 전에 없던 한국의 새로운 음색이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

 

7. 음악은 주로 어떤 때 들으시는지요? 나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서 소위 이지 리스닝 음악을 주로 틀어놓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연주곡이나 경음악이 종종 그 대상이 됩니다. 환자와의 대화나 치료에 지장이 없어야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단점은 계속 듣다보면 나른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땐 좀 격한 음악으로 정신을 추스립니다. '옥상달빛'이라는 밴드의 노랫말을 보는 순간 이들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 정답을 알긴 할까 /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 나에게 실망한 하루 / 눈물이 보이기 싫어 / 의미 없이 / 밤하늘만 바라봐 //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 슬픔보다 더 큰 /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 수고했어 오늘도 / 아무도 너의 슬픔에 / 관심 없대도 / 난 늘 응원해 / 수고했어 오늘도."   리듬은 어떤지 몰라도 노랫말은 나의 정신을 다시 재정비시켜주는 힘이 느껴지는군요.

 

8. 각 챕터 말미에는 인디클래식이라는 소제목을 붙여서 산울림, 한국재즈1세대밴드, 빛과소금, 김광석 등이 소개됩니다. 음악은 교감입니다. 뮤지션들의 가슴에서 태어난 음악들이 내게로 오고, 내 귀와 가슴이 받아들이는 순간 그 뮤지션의 감성이 나의 가슴엔 떨림으로 옵니다.  그래서 '당신이 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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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박태원 지음, 김종회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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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기억속 청계천의 모습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약수동에서 청계천은 그리 먼거리가 아니었지요. 약수동과 청계천 중간 쯤에 위치한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같은 반 친구가 집에 놀러가자고 하자 얼떨결에 따라나선 길이 청계천 판잣촌 동네였습니다. 생선을 담았던 나무 상자와 베니어판 그리고 다른 나무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던 집이었습니다. 좀 크면서 동남아 지역의 수상가옥을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며 그 판잣집이 연상되었지요. 수상가옥은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라도 풍기지만 청계천 판잣집은 어린 마음에도 '아, 이런집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때가 장마철로 기억되는데, 물을 피해 다소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집의 계단을 올라가며 바닥에 흐르는 물들과 집과 바닥을 지탱해주는 기둥 이곳 저곳에 오물과 쓰레기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더군요.

 

2.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내가 본 청계천의 모습에서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8년 2월 초부터 다음 해 정월 말까지 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청게천변의 복잡다단한 삶을 50개의 절로 분절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30명을 웃도는 인물들이 등장해 식민지 도시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의 행태와 도시의 음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이 책의 지은이 박태원(朴泰遠)은 1910년 서울 수중박골(지금의 종로구 수송동)에서 출생합니다. 필명으로 몽보(夢甫), 구보(九甫, 丘甫, 仇甫)등을 썼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작문, 시, 평론 등을 신문과 문학잡지에 발표합니다. 19세 때 춘원 이광수에게 문학 개인지도를 받습니다. 1929년에 일본 동경 법정대학 예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는 중에 영화, 미술 등과 모더니즘 문학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해서 '신생' 10월 호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이 책 [천변풍경]과 함께 자전적 소설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있습니다.

 

4. [천변풍경]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기법이 최고조로 발휘된 박태원의 대표작으로 소개됩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 당시 평단에서 세태소설 또는 리얼리즘 논쟁을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몇 절만(목차에 각 이야기 꼭지가 '절'로 표시)간략하게 옮겨 봅니다.

 

5. - 청계천 빨래터 -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따는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 않은 모양이다." 빨래터에 한 식경만 앉아서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온 동네 집집의 숫가락 숫자와 반찬의 종류까지도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의 면모까지도 그려질 것입니다.

 

6. - 시골서 온 아이 -
시골 '가평'에서 동경해 마지않던 서울로 올라온 소년의 이야깁니다. 청량리에 들어서서 전차
를 보고 한번 올라 타봤으면 하지만, 동행한 아비는 들은척 만척입니다. 시골 구석에서 단순한 모든 것에 익숙해 있던 눈과 귀가 정신을 못차리는군요. 전차도 전차지만, 웬 자동차가 그렇게 많은지, 어디에 '장'이 선 것 같지도 않은데, 사람은 어찌 이리도 많은지, 또 집들하며 간판하며 시골 아이의 혼을 쏙 빼놓는군요. 이 당시 서울의 명칭은 '한성'이었지요. 아비는 '마소 새끼는 시골로, 사람 새끼는 서울로'의 속담 하나만 믿고 아들을 한성에 두고 갈 작정입니다. 아비가 아들을 데리고 찾은 곳은 청계천변, 한약국입니다. 아비는 다시 고향으로 되잡아 내려가고, 소년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야깁니다.

 

7. 한성에는 어찌어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할 수 없이 올라온 사람들이 많군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때우는 일밖에는 주어지지 않는 현실. 작가는 이런 정경을 그저 무심 한 듯 그려가고 있습니다.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는 여인도 등장합니다. 같은 조선 사람의 생활이면서도, 시골에서 경영해 오던 살림과 한성의 그것은 다르기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무척 많습니다. 

 

8. "천변을 등 장사가 지난다. 등은 무던이나 색스럽고, 풍경은 그의 느린 한 걸음마다 고요

하고 또 질거운 음향을 발한다. 날도 좋은 오늘은 바로 사월 팔일 - "  다시 또 빨래터가 나옵니다. 작가의 이런 표현이 참 정겨우면서도 예리합니다. "얼마 동안 계속되는 개인 날씨에, 빨래터는 역시 언제나 한가지로 흥성거렸다. 아낙네들은 그곳에 빨래보다도 오히려 서로 자기네들의 그 독특한 지식을 교환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것이나 같이. 언제고 그들 사이에는 화제의 결핍을 보는 일이 없다."

 

9. 책을 읽다보니 마치 1930,40년대의 한성(서울)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보는 듯 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겐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 있는 서울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젊은 세대들에겐 사료적인 면에서 볼 수 있는 글들입니다. 일본 동경이나 경성 내 일본인 거주 지역이 상징하는 근대 도시의 보편적 삶과 대비되는 식민지 도시 경성의 특수한 삶, 청계천변의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그려내면서 작가는 반성적 의식과 윤리적 자각을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소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읽는 재미를 느낍니다. 이 점이 박태원이라는 작가가 지닌 문장력의 특징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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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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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이 풍기는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책의 제목, 마치 춤을 추듯 날아오른 글씨, 그리고 사.무.치.다..는 표현까지 그렇다. "뭘 봤으니까 저 수선을 떨겠지." 도대체 뭘 봤을까? 그리고 봤다치고 표현할 능력과 재주가 없으면 그만일텐데 그 무엇일까? 궁금점에 불이 붙는다. [노름마치]라는 책의 제목만 보고 '노름'이라는 것을 연상해서 얼핏 이 땅의 역사상 대단한 '겜블러'에 대한 내용인가도 생각했다.

 

2. [노름마치]라는 뜻이나 제대로 알고 책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저자가 책머리에 독백처럼 풀어놓은 글 중에서 그 뜻을 알아본다.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고 한다. 곧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마쳐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고 한다. 요즘 말로 바꾸면 '끝판왕'이다.

 

3. 책의 내용은 총 6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을 마당으로 표현하면 한 마당마다 세 분의 예인(藝人)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이 분들을 공연을 중심으로 또는 살아온 직업, 이 땅에서 비슷한 시기에 함께 호흡하던 분들을 모두어 한 마당에 모셨다고 한다. 많은 분들을 소개하다보니 한 분 한 분 깊이있게 소개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단다. 저자는..

 

4. 이 책에 소개되는 분들은 전통예술계에서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분들보다는 변방에서 묵묵히 본인의 길을 가던 분들인 듯 하다. 그 분들의 평균 연령이 80세라고 하니 저자가 참으로 바빴겠다. 만사가 그러하지만, 시간을 붙들어매놓고 할 수 없는 작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5. 각 마당의 이름. 그 명칭만 봐서는 감(感)이 잘 안 오지만, 이렇게 명명 되어있다. 예기(藝妓),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등이다. 아, 이렇게 열거만 해놔도 웬지 숙연해진다. 그 분들 한 분 한 분 만나보기도 전에 그 분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헤아려진다. 물론 그 분들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예(藝)의 한 끈을 붙잡고 살아오셨고, 살다 가셨음이 분명하건만 그래도 웬지 가슴이 애틋해진다.

 

6. "진작 좀 오잖구."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라 이름 붙여진 심화영님을 만나본다. 여든아홉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국악교습소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가 뵙기를 청하고 찾아가자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는 '춘향가'중 한 대목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중고제는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된 판소리라 한다. 2009년 11월 향년 96세로 별세하셨다는 대목이 이 분의 기록 마지막에 남아 있다.

 

7. 2번째 마당에선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을 만나본다. 예나 지금이나 춤추는 남자는 화제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우선 현 시대의 이야기부터 꺼낸다. 남학생이 '무용학과' 다닌다고 하면, 대뜸 '무역학과'로 알아듣는다고 한다. 애써 '무용학과'라고 힘주어 말하면, 힐끗 보며 피식 웃는다. 웃음이 덜된 짧은 '피식'에는 '멀쩡한 놈이 무용(無用)한 놈일세'라는 의도가 삽입되어 있다고 하니 흘러간 시간 속 그 분들의 삶은 어땠을까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마지막 동래 한량이라 소개되는 문장원 선생을 만나본다. 동래에서는 한 해를 춤으로 열고 닫아 삼백예순날이 춤판이었다고 한다. 문장원 선생은 그의 (춤)소질이 '못된 소질'이었다고 회고한다. 1990년 초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지만, 그 스스로 이름 붙인 못된 버릇인 춤을 통해 잊혀진 근육과 혈관을 일깨우며 발을 내디뎠고, 현역 춤꾼으로 다시 춤추고 춤 일을 보고 계시다고 한다.

 

8. 마지막 유랑광대 강준섭 선생. 선생은 전남 진도군에서 대대로 무업(巫業)을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를 마친 열세 살에 무명 세 필을 훔쳐 여수를 향했다. 굿판에서 썩고 싶지 않았고, '당골네'소리보다 '예술'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긴 여정이 시작된다. 유랑단체에 합류되어 걸어온 삶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9. 칼춤 곧 '검무(劍舞)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가 법도와 볼품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그 검무의 무대 중앙에는 김수악 선생이 자리잡고 있다. 그녀는 고령의 나이에 걷는 것이 두렵지만, 춤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한다. 오장육부의 감각이 음악으로 움직이는지라, '춤 들린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10. 책을 통해 많은 예인(藝人)들을 만나봤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고, 다행히 전수 받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가르침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예(藝)라는 것이 단지 가르침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공간에는 6,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를 깊이 연구하는 언어학자 니컬러스 에반스는 전 세계 언어의 수가 10년 안에 50퍼센트 정도로 줄어 들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언어도 문화이고, 이 책에 소개되는 예인들의 소리와 몸짓도 문화이다. 그 문화들이 소리없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오직 물질에만 촛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말것이라는 우려심이 생긴다. 이 책 [노름마치]가 그 분들의 '끝판 놀음'으로만 그쳐지지 않게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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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웃긴 사진관 - 아잔 브람 인생 축복 에세이
아잔 브람 지음, 각산 엮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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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처럼 비가 계속 내리자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남성이 기상청에 항의 전화를 했답니다. "날씨를 바꿔주세요. 저는 오늘 오후에 중요한 외출이 있습니다." 아니, 기상청 직원이 날씨까지 조정하나요? 일기예보 하기도 버거워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들고 다니는 기상캐스터도 있다고 하는 판에, 어찌 비를 멈추게 하나?  웃자고 하는 이야기 같지만, 항의 전화 한 사람은 매우 진지했답니다.

 

2. 얼마 전 웹을 통해 뉴스를 스캐닝하던 중에 본 기사 한 꼭지가 생각납니다. 그룹회사 임원 한 사람이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스튜디어스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치고, 라면이 푹 삶아져야 하는데 덜 익었다고 마구 화를 내고 폭언을 내뱉더랍니다. 그 승객이 소란을 피우자, 기내 사무장까지 나서서 비행기는 고도와 기압의 영향으로 그렇게 푹 안 삶아진다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나가다가, 폭행까지 했다나 어쨌다나.

 

3. 뭐 굳이 심리학 동네까지는 안 가도 이런 류의 사람들의 행위는 프로젝션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엉뚱한 곳에서 발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집에선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다니면서 밖에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을 만들어내곤 하지요.

 

4. 이 책은 30년 넘게 수행승으로 살아온 웃음의 명상가 아잔 브람의 에세이집입니다. 책의 제목이 [슬프고 웃긴 사진관]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저자가 인간의 삶을 살아오며 들여다보며 '슬퍼서 눈물나고 웃겨서 눈물나는' 인생 사진 38장을 스냅형식으로 적어나갔기 때문입니다.

 

5. 웃음이 건강에도 좋다고 알고는 있지만, 참으로 웃을 일이 드물지요?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어느 결에 곰팡내나는 고서적을 들여다보는 노학자의 얼굴로 변한 적은 없으셨는지요? 가끔 내가 그럽니다. 저자는 웃음과 미소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입술 모양만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입술 꼬리가 아래로 처지면 부정적인 태도를, 입술 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으면 긍정적인 태도를 말해줍니다." 여기에서 빠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어찌 구별하는지 아시나요?  '눈'이 같이 웃느냐 입만 웃느냐 구별해야겠지요. 나의 뇌에선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잘 구별 못해서 일단 엔돌핀을 쏘아 준다고는 하지만..

 

6. 저자가 숙제를 하나 내주는군요.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알아보고, 거기에 물을 준다면, 바로 우리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같이 따라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종이에 써서 가족들이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날마다 소리내어 읽으십시오."[꽃에다 물을 주면 꽃이 자라고, 잡초에 물을 주면 잡초가 자란다.] 그런데 이것을 벽에 붙이기 전에 Think a Twice a Action ..'아니 그럼 내가 여태 잡초였단 말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되길..

 

7. 저자가 젊었을 적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 학교에서 잠시 수학 교사로 재직 중에 있었던 이야기에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첫 시험 문제를 출제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히더랍니다. 난이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선배 교사가 이렇게 조언을 해줬습니다.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칠십 점이 되도록 시험 수준을 맞추라"는 이야기죠. 만일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삼, 사십점 선에서 멈추면 학생들이 기가 죽어서 더 이상 수학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구십오~백점 짜리가 많이 나오면 너무 쉬워서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나머지 삼심 퍼센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가 숙제겠지요. 삼심 퍼센트는 '실수'라고 이름 붙이지요. 우리가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자리로 남겨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8. 그저 차 한잔을 마시면서 스냅 사진첩을 들여다 보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야기는 가벼운 듯 하지만 그 안에 실린 뜻과 생각이 들뜨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네요. 어차피 우리 살아가는 삶이 한 편의 스냅사진의 연속일 뿐입니다. 스냅은 싫고 동영상으로 가고 싶다구요? 동영상은 배터리가 충만해야 하는데..충분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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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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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과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독일 태생의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사이코 스릴러물입니다. 작가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킹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이라고. 그 다음 작가의 말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제가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에 가본 적도 없는데 이제 곧 당신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고 인물들이 살아나 움직이게 되겠지요. 당신에게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종이 위에 태어난 인물들이 말입니다." 자, 그럼 책을 읽어서 잠든 자들을 깨워야하겠지요. 비록 그들의 캐릭터가 맘에 안 들지라도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2. 이런..책이 '맺음말'부터 시작되는군요. 어쩌란 이야긴지. 이런 표현 좀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시작합니다. "듣는 사람의 정신 속에 녹슨 갈고리를 점점 더 깊이 박아 넣는 죽음의 나선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더 읽지 말라~!" 입니다. 작가가 지능적입니다. 읽지 말라고 하면 더 읽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는군요.

 

3. 마지막 장, 끝은 다리 위입니다. 마음의 병을 깊이 앓고 있으면서 이미 두 건의 아동 유괴 미수죄가 기록 된 한 여인이 이번에도 다른 사람의 육개월 된 갓난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 생각하고 아슬아슬하게 다리 위에 기대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운디네 신드롬(Undine's syndrome, or Ondine's curse)이 있습니다. 희귀한 선천성 질환입니다. 중앙 신경계의 교란 증상이 문제로 호흡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수면 중에는 기계로 호흡을 시켜줘야 하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제 정신이 아닌 이 여인이 알턱이 없지요. 엄마 품이 아니라는 것을 안 불안한 아이와 함께 동반 자살 또는 아이를 물에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 협상책임자로 선정된 알렉산더 초르바흐. 이 사람이 이 소설을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받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협상이 잘 안 되었군요.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이 다리 위 사건으로 힘든 일상을 이어가게 됩니다. 다행히 아이는 살았습니다.

 

4. 좀 불편하지만 '눈알수집가' 이야기를 언급해야겠군요. 대단한 사이코패스입니다. 그는 아이들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에게는 아이를 다시 찾을 시간을 겨우 몇 시간 주며, 그 시간이 넘으면 아이들을 은닉한 장소에서 질식해 죽게 만들고, 게다가 아이 시체마다 왼쪽 눈알을 제거해버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로 그려집니다. 이미 사망자는 여섯 명이나 되는군요, 엄마 셋, 소녀 둘, 소년 하나.

 

5. 소설은 남은 시간 44시간 38분 부터 카운트 다운이 됩니다. 소설 리뷰할 때는 사실 조심스럽습니다. 책 내용을 너무 상세하게 적다보면 읽는 이들은 "거저 먹었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뭐 굳이 안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기회를 뺏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긴 합니다. 척박한 도서 시장을 향해서도 그렇구요. 특히 이런 사이코 스릴러 소설은 더욱 그러합니다.

 

6. 소설 이야기보다는 작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an_sum&logNo=150171314744
작가는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답니다.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성장 과정에서 뭔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요?" 혹시나 있었을지도 모를 작가의 트라우마를 염려하면서 묻는다는 겁니다. 그럴 때 작가는 "그러는 당신은 뭐가 잘못됐길래 이 책을 읽는 건가요? 제 악몽을 돈을 주고 사다니요" 하며 답변을 피해가곤 했답니다.

 

7. 작가는 그래서 굳이 어렸을 때 기억을 자주 더듬게 되는 모양입니다. "진짜 그랬나?"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군요. 그래서 테니스 선수가 되어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들었답니다. 테니스 선수로 빛을 못 보자 록 스타가 되기로 합니다(고딩때). 드러머로 젊음을 불태우면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돈이 될 만한 공부를 택하다보니 수의학을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3개월만에 법학으로 갈아탑니다. 그래도 공부는 좀 한 모양입니다. 저작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땄다고 하네요.

 

8. 작가는 살벌한 스토리 메이커 답지 않게 유머 감각이 뛰어난 듯 합니다. "저는 제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임신했을 때 초음파 사진을 찍다가 제가 뱃속의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을지 물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산부인과 의사 같은 사람 말이죠." 그리고 이런 말도 남기는군요. "우리가 낭독회에서 만나게 된다면 저에 대한 의견을 가감없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에서 다 풀지 못한 궁금증이 있다면 제게 질문하셔도 좋아요. 왜 좀 미친 사람들만 저를 좋아하는지, 또는 왜 제가 딸의 방에 벌레퇴치 기능이 있는 전화기를 놓아줬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때까지 계속해서 제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몸 조심하시고요."

 

9. 소설은 읽을 만 하냐구요? 이런 류의 책이 맥박과 심장의 횟수를 증가시킬까봐 염려 되시는 분들에겐 굳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컬러의 책을 즐겨 보시는 분들에겐 또 하나의 새로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을 맛보는 계기가 될 듯 합니다. 한 꼭지당 평균 3장 분량인지라 진도도 잘 나갑니다. 나는 3시간 동안 타고 내려왔습니다. 사이코 스릴러라 이름 붙여진 롤러코스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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