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이 길

 

논둑길이나 걷다보면 낫는다

속이 울음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을 걸으면 낫는다

 

울음 밑이 시퍼런 우물인

웃음 밑이 떨리는 절벽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

약(藥)으로 걸으면

가을 가 겨울

 

눈길 걸어

길 잃으면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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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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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5 01:07   좋아요 0 | URL
시집의 글인지..쑥님의 글인지..
알려도 주시면 더 좋겠어요.
시인의 글이라면 밑줄긋기를 이용해보심이...
좋을것 같고요.
쑥 님의 글이라면..영광입니다.

2015-03-05 01:09   좋아요 1 | URL
<찬란>의 첫 시에요. 북플로 작성한 글이라서..

[그장소] 2015-03-05 01:16   좋아요 0 | URL
아..그럼 이병률 시인의 시가 되겠네요.^^
북플 기능이 찬찬히 보시면 좀 됩니다.
아주 다기능 은 아니어도요..ㅎㅎㅎ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린다
선로 위에서 몸살을 앓다
엉거주춤 깨어 보는 새벽달
너의 세계는 고즈넉하고 차갑게 빛난다
바다는 가없다
바다새는 날기를 포기한 채

파도에 실려 표류중이다

까마귀는 가스등 위에서

발열한 채 부서져 내리고
해안선은 그 자리에서 둥글게 이어진다
하늘은 눈보라만큼 어둡기만 해서
나는 열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고
못다 본 새벽달은
달고 따듯한 목소리로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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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린다

선로 위에서 몸살을 앓다가
엉거주춤 깨어 보는 새벽 달
차고 고즈넉한 너의 세계는
어둡게 빛난다

발열하는 까마귀가 앉은 가스등은
차갑게 빛나며 길을 쫓는데
눈보라를 기다리던 빨간 열매는
추락하며 부서진다

끝간데 없는 바다가
갈매기를 실은 채 너울거리고
못다 본 새벽 달은
달고 따듯한 목소리로 떠있다

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고
나는 열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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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보고 네 이름을 떠올려 보지만
너는 원하지 않음을 안다
너의 세월
네가 우러른 하늘
네가 견딘 눈발
네가 떨군 잎새
그 모든 것이 열매에 들었다는
나를
나의 시선을 너는 거부한다
네가 옳다
나는 수만 가지 색의 조화로 아름다운 들판을 두고
한 가지 색으로 단조로울
너를 보러 갈 것이다
너는 무던히 늘 거기 있을 것이고
무던하지 않은 나는

널 그리며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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