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쫓아오는 밤 (반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4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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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작가의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드는 놀라운 소설이다. 고등학생 이서와 아직 어린 6살 이지는 엄마는 같지만 아빠가 다르다. 아빠와 셋이 오랜만에 떠나온 야영지에서 그들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엄청나게 크고 공포스러운 '그것'과 마주한다. 엄마없이 셋이서 여행을 떠나온 이유를 작가는 굳이 숨겨두고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이서의 감정을 독자가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성인이라 해도 누구나 한 가지, 자신의 잘못으로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가슴아픈 기억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거나 주변의 지인 혹은 여러 매체를 통해 상처가 아무는 경우도 있지만 이서처럼 그저 참고 견디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서와 함께 '그것'과 대적하는 또 한명의 상처받은 아이 '수하'. 수하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아버지를 피해 엄마와 도망쳤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분노를 자제하는 것이 버거워진 수하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두게 되고 엄마의 부탁으로 교회 수련회에 참가해 이서네가 놀러온 수련장에 오게 되었다. 이서와 수하 모두 또래가 가지는 벅찬 희망, 성인이 되어서 마주하게 될 환상적인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삶의 의지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그것'과의 만남은 주어진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엄청나게 비대한 몸으로 이 두 사람을 쫓아오는 그것은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폭풍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늑대와 곰을 닮았으나 눈빛은 인간의 눈을 가졌다는 인물들의 목격담을 통해 그것이 외형을 짐작해볼 수 있다. 활자로 읽는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인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는데다 영화로 만들어질 경우 과연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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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응원해
후이 지음, 최인애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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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고 단박에 "응"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왜 '응'이라고 답하지 못하는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별로인 삶을 살고 있는거냐며 비난할 수도 있겠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후이의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라는 책은 결혼상대로서의 조건적인 문제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챕터와 또 소제가 따라 붙지만 타이틀을 전부 무시하고 한 번에 쭈욱 읽었는데 어쩌면 이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읽고나니 명확하게 분류해서 읽을만한 내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략의 내용은 결혼상대를 고를 때 여러가지 우선순위와 반드시 갖춰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품위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말고 우선 실행에 옮기라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부분은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다. 과거 영화<광식이 동생 광태> 속 광식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한 번 못하고 결국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알고보니 상대도 같은 마음이었던 여자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안하는 것 보다는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측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또 십여년 흐르고 보니 의외로 하지 않으면 '후회'로 끝나는 일이 저질렀을 때 최악의 경우 극복할 수 없는 '사고'가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인연이라는 것이 거부하려고 해도 만나지는 것이 '인연'이라는 생각에 맘이 기울었다. 그러니 내가 진부하다고 했다고 해서 저자 후이의 글들이 진부하다고 단순하게 결론짓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반면 크게 와닿았던 이야기도 있는데 저자가 8살이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떤 자동차와 살짝 부딪힌 사건이었다. 와서 부딪힌 것이 아니라 서로 지나치다가 생긴 긁힘이면 당연히 어린 아이를 붙잡고 시비를 걸 문제가 아닌데 인성이 덜 된 운전자가 아이를 붙잡고 집이 어디냐, 부모에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등으로 겁박을 하는 것을 주변 어른들이 도와줄 생각은 않고 둘레를 만들어가며 같이 비난했던 것이다. 결국 울음이 터지고 주저 앉아버리기 직전, 평소에 인사만 하던 이웃집 할머니가 모여든 어른에게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아이를 보호해주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자 운전자와 아이,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만 남았을 때 가족이 아니면 참견하지 말라는 말에 해당 도로가 일방통행이었던 점을 알려주며 운전자마저 별무리 없이 돌려보낸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할머니가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닿았다.

다른 사람의 하늘이 무너질 때 네가 받쳐줄 수 없다면,

그저 눈 감고 못 본척하는 게 도와주는 거란다.

8살의 저자가 저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기억할 수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저 말보다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과 함께 '도와줄 수 있을 때는 돕고, 그렇지 못할 때는 모른 척 해줘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성서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돌팔매질을 당하기 전, 예수님께 그녀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묻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예수님은 그녀를 나서서 옹호하지도 그렇다고 함께 돌을 던지시지도 않았다. 그저 한 마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하셨을 뿐이다. 저자가 예로 든 것처럼 친척 중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걱정을 가장한 수덕거림 보다는 그저 조용히 그들이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훨씬 낫다. 소셜에 자주 등장하는 '마녀사녕'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잘못된 행위를 비탄할 수는 있지만 일을 더 크게 부풀리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일들을 퍼나르는 일들도 결국 지나치게 남의 일에 관여하면서도 그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에서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려는 행위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와줄 수 없을 때는 모른 척 해주는 것. 무관심이 아닌 가장 숙연한 상태의 도움이 아닐까 싶다. 

이런 류의 책들은 사실 읽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읽게 되면 나조차 잊고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지금 내가 고민했던 문제, 특히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상대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둘 모두 운 혹은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알게된다. 일흔의 나이에 젖먹이 손녀를 이웃들의 도움으로 잘 길러낸 할머니의 말처럼 '누구보다 내가 나를 가장 많이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이야기 중 앞서 언급했던 타인의 불행을 보았을 때의 처세와 '누구보다 내가 나를 도와야 한다'는 이 말을 건진 것 만으로도 책을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책 제목만 보고서도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게 해주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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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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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길래 궁금해서 구매했던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어제 새벽에 읽었다. 구매이력을 찾아보니 지난 2월이니 6개월도 더 지난 것이다. 녹색의 겉표지를 벗겨내면 책그림이 그려진 본서가 등장하는 데 첫 페이지에 이미 '헌책방'이란 키워드가 보이니 아마 애서가들의 마음을 훔치기 적당한 책이구나 싶었다. 배경이 1950년대라서 그런지 아주 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그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한 부분이라는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헌책방'이란 단어가 주는 영향력이 이정도라니.

'나'는 대학원 논문에 바쁜 상태지만 조만간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있다. 그녀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소중하다고는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헌책방에 있던 H전집을 사던 전후의 내용이 글의 초반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전집을 판 사람을 이미 알고 있던 약혼녀와 그와의 사정들이 등장하는 등 '나'의 시선으로만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라서 일인칭 시점에서 쓰여지는 소설들에 비해 훨씬 답답함이 적었다. 후기를 적기위해 찾아보니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인데다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은 책이라고...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80년대 젊은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고민은 수백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념, 사랑이 중요한듯 싶다가도 어느순간 자아찾기만큼 중한 것은 없는듯 하고 유년시절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을 탈피하듯 고독을 즐기다 결국 외로움에 방황하다 가족으로 돌아가든, 하늘로 돌아가든 어디로든 돌아가게 되는 순서.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다른듯 하지만 내게는 그 질문이 이전에 어느 신부님 강론 중에 나왔던 질문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죽어서 예수님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메멘토모리.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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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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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호흡을 통해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전부 믿지 않고 버릴 수 있도록 수련하는 과정이 담긴 책.
기도를 할 때면 특히 묵주기도를 바칠 때면 '분심'이 드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괴로울 때가 자주 있었다. 분심 드는 것 자체가 죄라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비난하다보면 애초에 정했던 지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는데 종교를 떠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다스릴 수 있어 좋았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추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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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울어? - 자녀교육 그림책
전성희 옮김, 장-마리 앙트낭 그림, 바실리스 알렉사키스 글, 곽금주 도움글 / 북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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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아이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심지어 '왜 우느냐고'다그칠 때 마저 눈물방울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다른 페이지에 등장하는 표정 그대로다. 감정기복이 커도 문제겠지만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나는데도변화가 없다면 아마 그 아이는 이미 그런 상황에 익숙해진 상태로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가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원하는대로 따라주면 당연히 좋겠지만 엄마에겐 할 일이 많다. 함께 웃고 옷을 더럽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러워진 옷은 세탁해야하고 아이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새로운 관심거리에 몰두하고 그마저도 금새 흥미를 잃고는 엄마의 옷을 붙잡고 칭얼거린다. 미소 가득한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가 어느새 험악한 표정에 고음으로 변화는 과정이다.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듯 아이도 엄마를 이해할 순 없다.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가깝게는 공동양육자인 배우자, 가족그리고 사회가 함께 해줄 수 있어야한다.

그나저나 그림책 본문만 보면 엄마인 자신의 말투를 돌아보고 아이의 마음을 뒤돌아 볼 마음이 들텐데 굳이 '부정형보단 긍정형으로 말투를 바꾸라' 등의 조언을 수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편집이 아쉬운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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