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느끼는 세상
존 헐 지음, 강순원 옮김 / 우리교육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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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손끝으로느끼는세상 #존헐 #우리교육 #시각장애 #함께 #점자



나는 독자들이 이 일기를 읽고 시각장애를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후기 첫 문장



점자를 처음 배울 때 추천받았던 책.

시각장애를 가진 유명 유튜버분도 있지만 그분의 영상을 찾아 보면서도 사실 시각장애라는 것이 ‘안보인다‘외에는 잘 몰랐다. 영화 <올빼미> 속 천경수처럼 명암에 따라 시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알지 못했다. 그저 보이지 않으니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울까? 정도였다.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막연함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도와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시각장애인과 관계를 맺어 가야 할지 잘 모른다. 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일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다. -본문 119쪽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반성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특히 위의 발췌문 속, ‘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려고한다‘라는 문장을 보고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짧지만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는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대화하고 식사를 하면서도 사실 크게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려는‘그분들의 노력이 있었겠구나 싶었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보인다는 것이 반드시 배려를 할 수 있는 입장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책에서 들려준 사례중의 실제 많이 실수 할 만한 내용은 그들을 차로 바래다 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 맞은편에서 길만 건너가면 된다고 내려준다거나, 시각장애인 바로 앞에 있는 문이 고장났을 때 무작정 끌어서 통과할 수 있는 문으로 데려가는 것도 위험하다. 팔을 잡아서 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팔을 내어주는 것, 그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그들이 도움없이 목적지 혹은 자리에 착석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다.



다른 친구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리로 안내를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고 겸손하면서도 재빠르게 내 손을 잡아 가까이에있는 의자 등받이 쪽에 가볍게 놓아 주었고, 나는 아무런 도움말도 듣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중략- ˝이제까지 한 번도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러나 느낌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었지요.˝ -본문 121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그를 위한다면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것처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섭리(province)라는 단어는 원래 ‘앞을 내다보다(looking ahead)‘라는 의미이며 전통적으로 하느님께 사람을 일정한길로 인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섭리‘라는 단어를 돌이켜 본다는 뜻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지나간 운명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0쪽



서서히 시력을 잃은 그를 향해 누군가 ‘왜‘그런일이 생겼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통해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또 기독교인들이 장애인들을 향해 ‘은총‘을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니 일정부분 동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은총‘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종교학과 교수이다보니 종교적인 해석이 종종 등장하는데 편향적이지 않은 사고에 공감이 되었다. 장애 혹은 비장애가 운명인것도 아니고 당연한 인과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가 생겼다고 끝없이이유를 따져보며 절망속에 살아갈 필요도 없고, 운명이라며 낙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연‘의 결과물일 뿐이다. 장애가 생겼든 아니었든 그런 수많은 우연속에 그저 삶의 의미를 깨닫고 발견해가며 살아가야한다.



미사가 진행되면서 교회 안과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찼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그 축복을 받아들일 겁니다. 축복을 받아들인다구요.˝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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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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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감. 그렇습니다. 베이비케어 사용자의 대다수는...... 외로우셨어요. 단순히 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군요. 아기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아기는 특히 사용자가 아기를 처음 돌보는 경우라면 더더욱, 철두철미하고 완전한 주의 집중을 요구합니다. -중략-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많은 인원이 그 시간을 나눠 감당해주면 수고를 덜겠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아직도 이상에 불과하고요. -본문 중에서



아이를 낳고 6개월 동안, 내 수면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만 ‘잤다‘라고 말할 만한 시간을 더하면 그정도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다 결국 아이와 함께 엉엉 울기도 했다. 외로 ‘우셨다‘, 라고 생각한다. 우셨다. 울었다 랄까. 이경 작가의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젖병소독기에 장착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얼굴을 한 AI의 등장이 놀랍다기 보다는 AI가 등장하는 시대가 와도 결국 아이를 돌보는 일은 변함이 없으리란 사실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생과사라는 생각이 든다. AI돌보미를 장착한 회사의 입장이 바로 서두에 발췌한 내용에 담겨 있다. 단순히 육아의 편의를 위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고립된 육아전담인들을 위한 가장 필요한 인공지능을 개발한 것이다. 실 사용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외형까지 알아서 생성되다보니 미주에게 나타난 AI돌보미의 얼굴이 ‘타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였던 것이다. 정작 최애는 따로 있다는데 어떤 이유로 알렉산더의 얼굴이 된 것인지 며칠 동안 미주와 미주의 남편 그리고 알렉산더는 함께 추리해본다. 평소에 천사를 떠올렸을 때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보편적인 천사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취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등등.



사람에겐 자신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힘이 없다.
내가 찾은 답은 이거야. 사람에겐 알고리즘의 신비를 파해칠 힘이 없다. -본문 중에서



며칠 전 읽었던 원빈스님의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의 서평을 적으면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지를 모르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마치 그런 나의 모습을 나를 위한 AI가 알고리즘으로 이 책을 만나게 해준건가 싶을 정도다. 소설의 배경도 그렇고 이정도 수준이면 조만간 우리집 거실 소파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나 물마시러 나온 내게 말을 걸어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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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2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3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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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번연의 천로역정 1부를 먼저 읽고 2부를 읽으면 좋았겠지만 사정상 2부를 읽다가 도저히 궁금함을 참지못해 1부를 뒤늦게 함께 읽었다. 시작부터 ‘이건 내 이야긴가‘ 싶었는데 특히 크리스티아나가 담대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순례 길을 떠나는 부분이 와닿았다.

📖
남편이 강을 건너가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 후로 크리스티아나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소. 처음에는 남편을 잃었다는 생각뿐이었지. 남편과의 사랑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생각 말이오. 알다시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갖가지 무거운 상념에 잠기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소? -중략-

‘내가 남편에게 못되게 굴어서 남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걸까? 남편이 그래서 나를 떠난 게 아닐까?‘ 33-34쪽

후회하는 크리스티아나의 말들은 평소에 내가 자주 하는 후회들 중 하나였다.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면서 자책하는 모습은 앞으로나아가지도, 주님께로 향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티아나는 곧바로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하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흉악한 것들의 대화만 보더라도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악들이 존재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긍휼이 우는 모습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군중을 보시며 가여워하시던 예수님을 떠올리게 했다. 동시에 초대받지 못해 문이 열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은 세례받기 전의 나의 모습이었다. 예비자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어떻게하지?, 혹 사고나 사건으로 세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면? 등 혼자서 어리석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문지기의 말처럼 간절한 기도, 주님께 더 가까이,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그 가난한 마음을 주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그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세요. 81쪽

일가친척을 다 두고 떠나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던 긍휼의 이야기를 듣고 해석자는 룻과 그 아내를 언급했다. 현실이나 과거에 너무 매이면 앞으로도 갈 수 없고 주님께도 갈 수 없다. 무엇보다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서두에 밝힌 것처럼 잦은 횟수로 나는 나를 너무 매며 살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나의 모습과 긍휼의 모습은 누군가의 말처럼 모두 내 모습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정말 내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담대하게‘라는 말을 이전에는 큰 의미없이 사용했지만 ‘겸손의 골짜기‘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깊어졌다.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136쪽

이전에 읽었던 존 비비어의 <거룩한 두려움>이 생각났다. 주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은 결국 가난한 마음으로 그 말씀에 떠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이 있지 않으면 친근함을 넘어 교만에 빠질 수 밖에 없고, 그 교만은 결코 주저함 없이 우리를 죄로 이끈다. 믿음이 약해지는 것에도 두려움을 가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분께서 용서든 은총이든 주시지 않거나 주실 수 없다는 나로 가득찬 시선에서 멀어져야 한다. 크리스티아나의 말처럼 두려움씨처럼 ‘괴로움이 짓누를 나머지 쉴 수 있도록 마련된 집의 문조차 두드리지 못하는(159쪽)‘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마법의 땅은 원수가 순례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설치한 마지막 안식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보다시피 순례 길이 거의 끝나 가는 이곳에 있는 거지요. 그래서 더 위험한 곳입니다. 여행 끝 무렵에는 몸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라서 그냥 앉아서 쉬고만 싶은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간절해 지니까요. 234-235쪽

천로역정을 읽으면서, 또 존 번연의 삶을 보더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이 때론 흔들리고 자책하며 우울에 빠지더라도 그것이 다름아닌 ‘순례의 여정‘임을 떠올리며 멈추지 말아야겠다.

#천로역정2 #존번연 #공동체 #순례 #크리스천#두포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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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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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싹만큼 작았을 때, 할아버지의 정원은 아주 컸어요.

유태은 작가의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의 책소개를 보는 순간, 이건 '내 아이와 우리 아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농장에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멋진 정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는 유아용 자동차를 타고 씽씽 달리기도 하고, 연못에 사는 물고기에게 밥도 준다. 장난감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으로 식물에게 물을 주기도 한다. 노는 것 처럼 보여도 아빠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그러니 이 책을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고 또, 추석에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는 모습도 보고 싶어졌다.

정원에서는 흙냄새가 났어요.

꽃도 가득했고 작은 곤충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어른들도 물론 그렇지만 독서지도를 할 때 강사들끼리 고민하는 내용 중엔 주변환경과 소품을 활용 부분도 비중이 크다. 후각으로 전해지는 영향도 막대한데 '흙냄새가 났어요'라는 이 부분이 사소한 듯 하지만 나중에 커서 아이는 비슷한 냄새를 맡게되면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따금 어린 아이가 어른을 도와 이것저것 열심히 해내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었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물통은 아이가 조금 흘리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빈 물통이 아닌 이상 드는 것 조차 무리다. 오히려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속 할아버지와 소녀처럼 할아버지가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그 모습들을 가만가만 마음속에 저장해두는 편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모란꽃은 점점 자랐고,

나도 자랐어요.

할아버지 당신이 좋아하는 꽃이 아닌 손녀가 좋아하는 모란꽃을 선물해주는 멋진 할아버지. 그 모란꽃과 함께 성장하는 소녀의 변화된 모습이 그림으로 마주하는데도 감동적이었다. 이제는 제법 할아버지를 도와 분갈이하는 모습은 아이가 성장했음을 잘 보여준다. 곁에 있던 강아지가 개로 성장한 것도 깨알같이 귀엽다.

내가 해바라기만큼 자랐을 때,

할아버지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어요.

아이는 아직 이 문장이 주는 안타까움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버린 나는 좀 전까지 미소지으며 읽다가 울컥 하고 말았다. 내가 아빠를 만날 때 마다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병원이랑 마트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하는 게 좋지 않냐며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부모님의 편의와 건강을 염려해 했던 말인데 이렇게 글로보니 너무 내 입장만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아직 시간 개념이 자리잡지 않은 아이는 여전히 "아까 나도 할아버지랑 꽃에 물 뿌렸어. 덤프로 물 줬어."라고 신나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아이는 그림이 많았던 책 보다 글밥이 조금 많은 책을 함께 읽는다.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은 한글을 몰라도 그림 자체가 정말 예쁘고 색감이 풍부해서 맘에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좋았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용자체도 입장에 따라 심오한 생각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어 꼭 추천하고 싶다. 만약 정원이 있거나 식물 기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선물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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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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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언 니 그리파의 <목구멍 속의 유령>은 저자가 아일랜드의 고전 시인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의 아일린 더브의 삶을 쫓는 과정을 담은 책이자, 네 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엄마’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제목으로 쓴 ‘누가 누구의 삶의 출몰하고 있는가?(본문 237쪽) 역시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아일린이 저자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속에서 오히려 저자가 아일린의 삶의 혹은 동시대를 살았거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여전히 남성으로부터 혹은 시대로부터 삭제되어진 여성들이 서로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느껴져 망설임없이 제목으로 정했다. 왜냐면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의 텍스트‘기 때문이다.

📖
​나는 아일린 더브가 이 고통을 혼자 겪게 두지 않을 것이고, 당신 또한 그럴 것이다.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서자. 우리는 이 순간에 이성이 끼어들게 놔둘 수 없다. 우리의 움직임을 막을 생각은 하지 마라. 201쪽

✍🏼
사랑하는 연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아트를 잃은 아일린을 사랑하게 된 이후 저자는 이 불편을 당연하게 감내한다. 숨을 거둔 남편 곁으로 단 세걸음에 뛰어갔을 때 두 사람 주변에는 늙은 노파뿐이었다. 이 노파는 나이든 아일린의 현현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 노파의 모습이 우리 중 누구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전혀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상처받았던 소중한 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때 하지 못했던 위로를 건네며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아일린 더브를 쫓는 과정도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지만 저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그녀가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어느 날은 애인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성을 위로하기 위해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위로한다. 그 순간 저자는 이전의 노파처럼 그녀에게 ‘괜찮아질거에요‘라는 거짓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며 오래 전 해부학 실습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의 자신을 잡아준 실재하지 않은 존재를 떠올린다.


📖
살이 빠졌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늘었고, 머리는 지저분해진 데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나는 이 노동이 어떻게든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증명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을 뿐이었다. 158쪽


✍🏼
실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두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여성을 돕는 자신을 보며 여성이 여성에게 흔적으로 남는 텍스트를 통해 혹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실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처입은 여성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저자의 체험을 보며 나또한 길을 잃었을 때 나의 손을 잡아준 여성을 떠올리며 공감하고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사물에 대한 시선이었다. 새로운 집에 딸린 정원을 바라보며 ‘온전히 내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오래전 처음 그 정원을 가꾸었을 여성을 생각한다. 그가 심어놓은 구근, 그가 바라보았을 찬란한 빛의 율동성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집을 거쳐간 여성들의 노고가 쌓이고 쌓여 자신이 그 사랑스러운 정원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일린 더브를 알고,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몬다. 집에가면 기운이 날 만한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숨겨둔 새 공책을 펴는 게 좋을 것 같다.

-중략-

나는 내가 노트의 첫 페이지에 쓸 문장을 이미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작을 담당할 메아리,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376쪽

✍🏼
순수하게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은 4시간 10분이지만 손에 쥐고, 육아를 하느라 읽지 못해 안타깝고 아쉬워한 날들은 그 보다 훨씬 길다. 저자처럼 어린 아이를 육아하는 여성들의 책읽기란 별별 방법을 다 시도하게 만든다. 그 방법은 하나같이 불편하고 도대체 그렇게까지 읽어야 할 이유가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왜냐면 그 모든 시련과 기쁨이 전부 ‘여성의 텍스트’가 되었고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기를 읽은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도서제공 #암실문고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문학 #목구멍속의유령 #을유문화사 #데리언니그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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