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버 클럽 Medusa Collection 11
리사 가드너 지음, 이영아 옮김 / 시작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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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코모라는 남자가 세 명의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 날 호송차에서 내리다가 살인청부업자의 총에 맞아 숨진다. 그리고 살인청부업자는 누군가 차에 설치한 폭탄으로 살해된다. 그 날은 그리핀이 자신의 옆집에 살던 소아성애자인 데이비스, 일명 캔디맨을 잡아 넣고 휴직을 했다가 복직한 첫 날이기도 했다. 그리핀은 첫 날부터 바쁘게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서바이버 클럽을 조직해서 에디 코모가 재판받기만을 바라던 질리언, 캐럴, 메그를 살인 용의자로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살인 다음으로 가장 악날한 범죄가 성폭력 범죄다. 그것은 정신을 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 서바이버 클럽은 살아 있기만 하다면 다기 일어설 기회는 만들기 나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무너지게 된다. 아내가 암으로 죽어 고통스러워 하는 그리핀처럼. 그러니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그저 피해자로 동등하게 생각하고 숨기지 않게 사회가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폭행범을 살인범에 준하는 처벌을 하던가. 

이야기는 주요 등장 인물들의 각자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 모두의 관점을 담아내고 있다. 서바이버 클럽을 만든 가장 적극적이며 당당해 보이는 질리언은 여전히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캐럴은 그 이후 남편과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면서도 말도 못한 채 무너지고 있다. 메그는 그 당시 상황을 기억조차 못해서 그것으로 불안해 하고 메그의 부모는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이런 이들과 아들의 아버지인 에디 코모의 애인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고 경찰들은 그 사이에서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과 가해자에 대한 울분의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고 사건을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범죄가 어떻게 꼬이게 된 것인지 에디 코모의 DNA가 나왔는데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지, 경찰이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그 이면에 더 큰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지 서서히 밝혀낸다. 하지만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목처럼 생존자가 생존을 위해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죄 짓지 않은 사람은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다. 혼자서 사회로 나올 수 없다면 서로 뭉쳐 힘을 함쳐 이겨내는 것도 좋다.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건 그런 이유니까 말이다. 

맨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죄를 보여주고 있다. 반전의 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것보다 범죄자가 범죄를 권력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범죄자는 범죄에 있어서는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간다. 피해자와 경찰은 그들보다 늘 조금씩 뒤쳐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잠재적 피해자를 놓고 경찰과 시민을 위협하는 이들이다. 절대 그들이 피해자로 인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망상에 빠지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악을 영원히 몰아내려 애를 써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피해를 입었다고 주저 앉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니까.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세 명의 여성의 심리 묘사와 변화 과정, 그리고 가족간의 유대감이었다. 또한 그리핀에 대한 묘사도 좋았다. 피해자와 경찰이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들이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것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보기 드문 일일지라도. 범죄는 늘 사람들 주변에 있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지지는 말자. 그들의 의도대로 휘둘려 주저 앉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결코 승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바이버 클럽이 존재하는 이유다. 생존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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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cjfgns 2010-02-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희대총여 사건이 생각난다. 애꿏은 사람을 잡을뻔한...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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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ifice, 제물 또는 희생이라는 단어다. 이 작품에서는 희생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고 제물이라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 그건 희생자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모든 새크리파이스는 선택이 필수조건이다. 산다는 건 모든 살아감의 형식을 떠나 늘 선택의 연속기이기 때문이다. 사이클의 로드 레이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라도 트루 드 프랑스라는 경기가 있다는 것과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암을 극복하고 그 극한의 경기에서 여러번 우승한 대단한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 작품은 생소한 로드 레이스라는 팀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달리기 선수를 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채이고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희열없는 1등의 기대에서 벗어나고자 시라이시는 사이클로 종목을 바꿔 실업 선수가 된다. 그가 사이클을 선택한 이유는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로드 레이스는 에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팀 경기다. 며칠씩 일정을 짜서 같은 코스를 여러번 돌고 그때마다 1등하는 선수도 있지만 결국 종합 성적으로 등수를 정하는 경기다. 그리고 그 에이스가 1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시스턴트라는 선수가 그 선수를 앞에서 끌어준다. 그는 에이스를 돕는 선수로 남게 될 뿐이다. 

팀 오지에는 에이스 이시오가 있다. 그는 이기기 위해 무자비하다고 소문이 난 선수다. 그가 선수 생활을 못하게 만든 선수도 있다고 한다. 이바는 차세대 에이스를 노리는 선수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선수다. 하지만 시라이시는 이기지 않기 위해 달리는 선수다. 그저 달릴 수 있으면 좋은 선수다. 1등이라는 목표가 오히려 중압감으로 작용하는 이상한 선수다. 그는 말한다. "골인 지점에 맨 먼저 뛰어드는 의미를." 천생 어시스턴트로 태어난 선수가 아닌가 싶은 선수다. 

이들이 모여 로드 레이스를 한다. 에이스 이시오를 위해서 어시스턴트를 하기도 하고 에이스가 뒤쳐지면 그대로 1등을 해도 좋은 경기를 다른 팀과 함께 한다. 그때 시라이시는 스페인 팀에서 일본 선수를 스카우트할거라는 소문을 듣는다. 그는 갈등한다. 어디에서 어시스턴트가 되어도 좋지만 좀 더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그렇게 시합을 국내에서도 하고 벨기에까지 가서 하게 된 팀 오지 선수들, 하지만 에이스 이시오에 대한 소문은 점점 무서워지고 그때 시라이시의 첫사랑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언제였더라, 마라톤 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가. 그것도 페이스메이커를 직업으로 하는 선수가 있다고 해서 놀랐었다. 그 선수는 왜 마라톤 완주를 하지 않고 중간까지 끌어주는 페이스메이커를 하는 것일까 의아했었다. 그러다가 선수들이 너무 뒤쳐지면 그 선수가 1등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그래서 황당한 일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이해가 갔다.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르고 선택하는 길이 다른 법이라는 것을. 그것은 희생이 아닌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골퍼에게 캐디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위해 그런 일을, 어시스턴트든, 페이스메이커든, 캐디든 무엇이 되었든간에 정상에 올라설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1등만을 강요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위치의 선수만을 좋아하고 뒤에서 그들을 바쳐주는 이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축구에서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해서 골을 어시스트해주는 선수가 필요하고 야구에서 1점을 위해 안타가 아닌 1루 주자를 2루에 보내기 위해 희생 번트를 하는 선수가 그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처럼 누군가 어디에서든 1위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새크리파이스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사라져가는 스포츠맨쉽, 페어플레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방법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그런 삶에 대한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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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09-07-09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라고 리뷰를 올리고 싶긴 한데..글재주가 없어서 참,, 이책은 정말 반전(?)의 뒷통수라 할만 합니다^^ 재밌게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물만두 2009-07-09 20:53   좋아요 1 | URL
잔잔한 작품이지요^^
 
콜드 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7 링컨 라임 시리즈 7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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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링컨 라임이 듣게 된다. 고문하듯 살해하고 시체 옆에 항상 달 모양이 있는 손목 시계를 놓고 간다고 해서 '시계공'이라는 이름을 용의자에게 붙이고 그를 잡기 위해,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증거 수집에 총력을 기울인다. 언제나 믿을 것은 증거뿐이라고 생각하는 링컨 라임이고 그에게는 연인이자 든든한 그의 목표를 이뤄주는 아멜리아 색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멜리아 색스도 바쁘다. '시계공'사건 외에 한 부유한 사업가의 자살이라 생각했던 사건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고 조사하던 중 뜻밖에 경찰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심쩍은 사건은 한 건 더 있었고 그들의 아지트인 술집에서 묘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이 경찰과 어울렸거나 다퉜다는 내용이다. 118지구대에는 과연 부패 경찰들의 은폐된 범죄가 있는 것인지 아멜리아와 그의 조수 풀라스키는 급기야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이야기는 자칭 시계공이 화자로 등장해서 사건을 저지르는 장면과 링컨 라임이 시계공을 추적하는 장면, 그리고 아멜리아 색스가 담당한 118지구대 관련 사건이 교차되면서 이어지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시켜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온 동작학으로 범죄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캐스린 댄스다. 그녀의 역할은 작품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링컨 라임의 신뢰를 얻기에 이른다. 후에 캐스린 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하니 그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품은 이전과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링컨 라임이 '이전과 이후'로 상황은 나뉜다고 생각하듯이 그렇게 나뉘게 된다. 아멜리아는 자신의 청렴한 아버지가 부패 경찰이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후 경찰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이때부터 링컨 라임은 아멜리아가 있는 범죄 현장과 없는 범죄 현장, 그녀와 함께 공유하던 생활과 점점 멀어질 생활에 고뇌한다. 또한 시계공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도 나눌 수 있다. 시계공으로 인해, 물론 그 이전에도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에게 시간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었지만 더욱 1분 1초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반전의 대가답게 단순하고 복잡한 반전을 배치하고 있다. 또한 너무 과한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유머러스한 면도 보여준다. 그것은 모두 풀라스키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제 2의 아멜리아 색스를 꿈꾸는 경찰이 주는 기분 좋은 보너스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과학적 증거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으로만 범인을 잡으려는 링컨 라임의 행동에 나날이 복잡해지고 영악해지는 범죄자를 링컨 라임과 같은 대등한 반열에 올려 놓고 쫓기 위해 동작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연구하며 인간의 동작, 신체가 말하는 것을 분석해서 증거로 삼는 캐스린 댄스를 그의 동료도 만들어 작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것은 시계공이라는 범죄자가 시계의 원리처럼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영리한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는 링컨 라임이 상대하기에는 까다로운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링컨 라임 또한 시계의 작동 원리로 범인을 잡는 타입이다. 범죄자는 시계를 완벽하게 작동시키려하고 링컨 라임은 그래도 그 시계에서 떨어진 작은 부품을 찾아 시계가 작동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변치 않은 능력과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의 개인적인 고뇌, 경찰이라는 직업이 주는 압박감,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모습 등을 작품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고. 링컨 라임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의 에너지는 모든 사람에게 순수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링컨 라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 그리고 그 링컨 라임을 꾸준히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제프리 디버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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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09-05-29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프리 디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군대에서 처음 알라딘이랑 물만두님 서재를 알게된뒤 추천하시는 작품중 코핀댄서를 봤었는데 정말 그때의 전율이 아직도 느껴지는군요. 매 작품마다 이렇게 실망시키지 않은 작가도 드문것 같아요. 반전소설이라는 특성상 그러기가 정말 쉽지않을것 같은데 말이죠. ^^

물만두 2009-05-29 20:42   좋아요 1 | URL
반전도 좋지만 링컨 라임과 아메리아 색스 등의 등장 인물들의 조화가 좋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0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찜 ^^
아~~ 근데 한주일 독서를 매진하지 못했더니 싾이네요..

물만두 2009-06-01 15:31   좋아요 0 | URL
네,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괴기소설을 쓰는 검은 옷만 입어서 별명이 드라큐라 백작인 일명 백작이라는 남자와 일정한 직업없이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낸 삼십대의 사루와타리라는 남자가 두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나 두부 맛집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 모음집이다. 백작이야 직업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사루와타리라는 남자가 백작보다 더 기이하게 느껴진다. 백수에 근근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것 같은데 미식가고 중고차라지만 차도 수시로 바꾸는 모양새가 읽을수록 수상하게 여기게 된다. 사루와타리, 당신은 누구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아시야 가의 몰락>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에드거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을 오마쥬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작품이 한 작품 더 있는데 <황금벌레>를 오마쥬한 <송장벌레>가 그것이다. <아시야 가의 몰락>은 사루와타리가 두부 맛집에 들렀다가 대학교때 사귀던 하타 유리코가 사는 곳 근처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연락을 해서 그 본가에 가서 만나게 되는 기묘함을 담고 있다. 일본 전설을 교묘하게 잘 배치시켜 <어셔가의 몰락>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송장벌레>는 그보다는 조금 더 현대적이면서 더 괴기스러운 작품이다. 길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난 사루와타리는 친구가 갖고 싶어하던 사진기를 빌려주며 같이 일을 하던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 풍경 사진을 찍어다 달라고 해서 찍었다가 현상을 하던 중 사진기에 벌레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친구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느끼게 되는 마지막까지 오싹하게 소름이 돋게 하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고양이 등 여자>는 현실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섬뜩할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괴담이라 하기 어렵지만 상상인지, 피해망상인지, 죄책감인지, 착각인지 모르지만 사루와타리가 대학시절 겪은 등이 고양이 등처럼 굽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 내 칫솔에 손을 댓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인간의 편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섬뜩한 작품이다. 어쩌면 기담이나 괴담 모두 이런 인간의 잔인한 생각들이 표출된 결과일지 모른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겉모습, 보여지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중성이 개인을 거쳐 집단화되면 하나의 전설이나 괴담, 공포를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카르키노스>는 게에 대한 이야기다. 백작이 강연하러 가는 길에 따라 간, 맛있는 음식 꾀임에 넘어간 사루와타리가 그 마을 선주에게 흉측하게 생겼지만 맛은 좋은 게를 대접받고 그 집에서 묶었다가 겪게 되는 괴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서기超鼠記>는 한자 그대로의 이야기다. 이 작품도 옛날 괴담을 현대 괴담으로 재 탄생시킨 것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건물에 들끓는 쥐를 잡기 위해 전문가가 덫을 놓는데 그 덫에 걸리라는 쥐는 안 잡히고 말 못하는 어린 소녀가 발이 붙어 있는 것을 사루와타리가 구해주면서 건물 주인인 선배와 관련이 되는 이야기다. <케르베로스>는 <카르키노스>에서 만난 여배우의 초대로 그 여배우의 본가를 찾아 그들이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연을 듣고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이야기다. 역시 모티브는 일본 전설, 관습이다.  
 
<물소 떼>는 간만에 정식으로 취직했다가 쫓겨나 불면증만 생겨 다 죽게 된 사루와타리가 연민이라는 생각의 뚜껑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독자는 이 모든 작품들이 어떤 작품은 사루와타리만 등장하고 어떤 작품은 백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괴기소설 작가라고 해서 백작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화자는 물론이거니와 소재를 제공한 이가 바로 사루와타리였음을 백작이 밝힌다. 그러니 부제인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에서 노트의 주인은 사루와타리인 것이다. 뭐,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직장도 없으니 글을 쓰면 될텐데 소심해서 그런지 한사코 사양하고 있다. 어디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볼까? 작가가 설마 사루와타리를 늙어 죽도록 이 상태로 만들지는 않겠지. 뭐, 이런 성격이었으니 기담이 잘 목격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사루와타리의 재미있는 점과 백작의 진지한 면, 그리고 사루와타리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담겨져 작품은 공포 그 이상을 선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같아 보이는데 그 안에 현대인의 환상과 공포,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 그리고 광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에는 그저 에드거 앨런 포우에 대한 오마쥬를 어떤 식으로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봤는데 역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수록 괜찮고 읽고 나서는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지는 작품들이다. 전설의 발생 원인, 관습이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기묘한 전설과 괴담으로 재탄생되고 그 남겨진 괴담은 다시 현대라는 시공간과 결합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각색된다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에도가와 람포의 계승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함에서 스토리를 간결하게 전개하면서도 삽입하는 환상과 공포를 독자가 만끽하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깔끔해서 좋았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괴담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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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5-2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기괴한 소설이라.제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네요^^
근데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불릴만 하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역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면 에도가와 란포가 아닐까 싶네요.그의 포우풍의 기괴한 작품은 근래에 발매된 그의 단편집에서 잘 들어난다고 생각됩니다.
츠하라 야스미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만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까진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기 보다는 에도가와 람포의 계승자정도가 아닐까 싶네요.이 작가가 더 많은 작품을 내놓고 계속 인정을 받아 란포의 명성을 뛰어넘게 된다면 그때 이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만두 2009-05-21 14:42   좋아요 1 | URL
에도가와 람포의 대를 잇는다고 쓰고 싶었는데 에드거 앨런 포우의 오마쥬 작품이 있어서요. 에도가와 람포는 이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에도가와 람포 그 자체로도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의도하시는 바는 알겠는데 어디의 누구하는 이야기는 뛰어넘는 자를 뜻하는게 아니라 그보다 못하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작가가 에드거 앨런 포우를 뛰어넘는 작가라면 굳이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쓰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석 2009-05-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순정만화풍의 표지는 좀 거시기하지만;;

물만두 2009-05-21 14:42   좋아요 0 | URL
그래서 백귀야행스럽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5-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도가와 란보의 <고도의 마인>이 으시시하고 묘하게 매력이 있더군요.음...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물만두 2009-05-21 17:03   좋아요 0 | URL
전 단편집을 더 좋아합니다.^^
고도의 마인, 음울한 짐승도 좋지만요.
 
셜록 홈즈 최후의 해결책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3
마이클 셰이본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사에 절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작가 또는 등장 인물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우를 제외하고 추리소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의 명작들도 마찬가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잊어버릴 수도 없다. 크리스티여사의 작품이 선사하는 놀라운 마법같은 트릭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 작가들과 작품들은 작가 자체로는 책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고 <모르그가의 살인>은 모리스 르블랑이 오마주한 작품이 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 여러 트릭들은 다른 작품 속에서 모방되거나 재창조되기는 하지만 위대한 셜록 홈즈처럼 캐릭터 자체가 살아 다른 작가들이 그 캐릭터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하지는 못한다. 코넌 도일의 위대함은 셜록 홈즈를 탄생시켰다는데에 있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작가는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추리소설을 쓰건 안쓰건 간에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해서 작품을 쓰고 싶게 만드니 말이다. 이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사립탐정 필립 말로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필립 말로는 다른 여러 탐정들에게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한 탐정이지만 필립 말로 자체를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결정적인 차이가 아직도 여전히 가장 위대한 탐정이 셜록 홈즈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이미 너무 늙어버린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은퇴 후 여전히 벌을 치며 혼자 살고 있지만 관절렴에 시달리며 죽 사발에 코를 박고 품위없이 죽는 건 아닌가를 걱정하는 일밖에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기운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은 나날을 보내는 괴팍한 노인네가 되어버린 홈즈를 보는 일은 씁쓸함을 안겨준다. 그런 그에게 뜬금없이 말 못하는 소년과 소년 대신 말을 하는 앵무새가 나타난다. 전쟁 중이고 앵무새가 하는 독일어로 미루어 독일에서 어떤 일을 겪고 영국까지 오게 된 유태인 소년같다. 그 소년은 마을의 목사이자 하숙집인 패니커씨 댁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중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앵무새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 벨로스 경감과 퀸트 경관이 홈즈를 찾아 온다. 그의 명성은 전설처럼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젊은이다. 살인범으로 지목된 패니커 집안의 망나니 아들은 잡혀 갔는데 홈즈가 도울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앵무새가 말하는 숫자는 도대체 무엇일까? 누가 앵무새를 잡아간 것일까? 나이 든 홈즈가 과연 예전처럼 사건을 해결해 홈즈는 살아 있음을 증명해보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작품은 150쪽 남짓되는 중편 정도의 분량의 작품이다. 작가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보다는 5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홈즈의 분위기, 작가가 말한 것처럼 베이커가 221B번지의 모습과 지금 사는 오두막의 분위기는 같다던가, 아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던가 하는 점, 그리고 사람의 관찰하고 주체하지 못하는 호기심은 변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 든 홈즈가 그 세월만큼 변했다는 것도 보여준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던 끈질김보다 알지 못해도 상관없는 것은 그것대로 놔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마지막 홈즈의 생각 속에서 한결 여유로워지고 세상사에 초월한 것 같은 홈즈를 만나게 된다. 그래도 나이 든 홈즈는 어색해서 싫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병이 들고 죽게 마련이지만 이미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홈즈는 그래서 더욱 나이를 먹지 않은 모습만 보고 싶은데 자꾸만 작가들은 나이 든 홈즈를 등장시킨다. 어쩌면 이것은 코넌 도일과 비교되고 싶지 않은 작가의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아무리 잘 쓴다해도 원작자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작품을 읽는 내내 코넌 도일의 위대함과 셜록 홈즈가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트리뷰트 작품이었다. 읽고 나면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고 싶어질테니까. 그러므로 셜록 홈즈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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