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총 요정 말로센 시리즈 2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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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센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처음부터 하드보일드하게 시작한다. 벨빌 한복판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폭력 경찰인 바니니가 한 겨울 얼음판 길을 가던 할머니를 도와주려다가 순식간에 할머니가 쏜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는 개 쥘리우스까지 합치면 네명, 하지만 그들은 경찰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푸티는 집에 돌아와 이야기하지만 남자가 꽃이 됐다는 소리에 모두 흘려 듣는다. 말로센 집안은 그거말고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뱅자맹의 연인인 기자 쥘리는 무시무시한 취재를 하러 어디론가 떠나서 소식도 없고 엄마는 또 임신중인데 벌써 나와야 할 아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쥘리가 사라지기전 보호를 요청한 네명의 마약중독에서 벗어나 말로센 집에서 살게 된 할아버지들이 마약을 하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뱅자맹은 휴가를 냈는데 자보 여왕께서 다시 일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벨빌가에서는 노인들을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어 반 티안 형사는 호 부인으로 변장을 해서 미끼 역할을 하는 중이다. 그러던 파스토르 형사는 한 여인이 고문당한 후 버려진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여인의 신분을 알아내려 애를 쓴다. 또한 뱅자맹은 스멜 할아버지가 명예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어떤 여자가 마약을 주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클라라의 사진속에서 발견하고 쥘리에게 알리려고 아파트로 찾아가지만 아파트는 쑥대밭이 되어 있어 그를 절망하게 만든다. 

문제는 타고난 희생양 뱅자맹에게 뱅자맹도 모르는 사이 모든 사건이 그에게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 살인 사건, 노인에게 마약을 하게 하고 더 빨리 죽게 만드는 사건, 바니니 살인사건까지 뱅자맹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른채 뱅자맹은 엄마가 드디어 나은 아기를 이제 막 숨을 거둔 베르뒹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서서히 자신에게 조여오는 올가미를 느낄 새가 없다는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희생양 뱅자맹이 직접적인 희생양 노릇을 할 사이도 없이 진짜 하드보일드하게 시작하고 끝이 난다. 물론 말로센 일가의 활약은 언제나 왁자지껄하지만 중심이 말로센 일가가 아닌 것같이 느껴진다. 한 편의 경찰 소설을 본 느낌이다. 나이 들었지만 명사수인 반 티안 형사와 취조의 달인 파스토르 형사의 이야기. 그리고 늘 존재하는 나쁜 형사와 좋은 형사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야기.  

말로센 시리즈 가운데 누군가는 항상 주인공이었다. 그 인물로 인해 뱅자맹이 희생양이 되니까.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뱅자맹의 애인 쥘리가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태어난 베르뒹이 주인공도 아니고 말로센 일가에 합류하게 되는 반 티안 형사와 파스토르 형사가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이 작품은 말로센 부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와 추리소설로서 하드보일드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쥘리의 상태만 봐도 너무 하드보일드하니까 말이다. 두번째 작품으로서 작가는 말로센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여신에 대한 동경처럼 느껴지지만 역시나 베르뒹을 낳은 엄마는 또 사랑에 빠져 떠난다. 

제목인 <기병총 요정>은 맨 처음 사건을 본 프티가 "저 요정을 봤어요."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기병총을 든 나이든 요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말로는 전달이 잘 안되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할머니들이 총을 들고 다니지도 않고, 요정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느낌보다는 작품 안에 더 많은 서로 다른 인종들이 모여 다른 점은 인정하며 어울리는 점이 이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작품에는 아랍계, 베트남계로 다른 인종들이 등장하고 역사와 지리학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 다른 이념에 의해 충돌했던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또한 텍스트적으로 볼때 소설 안에 희곡적 요소를 포함시켜 그 이질적인 두 가지가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작품은 노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노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노인이 살해당하고, 노인에게 마약을 팔아 중독자를 만들어 돈을 갈취하고, 점점 독거노인들이 혼자 사는 아파트는 비어만 간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늙음을 추함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쉽게 폐기처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늙지 않으면, 아니 어떤 사람은 늙는다 해도 모를지 모르겠다. 그래서 말로센 부족이 나이 든 사람들만이 가진 장점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 반 티아보다 더 쉽게 베르뒹을 조용히 만들 수 있겠냐고 말이다. 우리도 늙는다. 그건 자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이치다. 거스르지 마라. 존중만이 우리의 노후를 대비하는 길이다.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늘 말로센 시리즈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동화를 아직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은 따뜻한 가정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곳, 누구나 받아들이고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기위해 눈물, 콧물 다 짜낼 각오를 하고 있는 뱅자맹이 지키고 있는 말로센 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할아버지들의 수면을 위해 이층 침대의 할아버지 위에 아이들을 자게 하는 가족이라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살고 싶지 않을까. 꿈 같은. 정말 환상적인 동화같은 이야기다. 전개는 하드보일드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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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1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후기도 참 좋습니다~

물만두 2009-06-19 13:49   좋아요 0 | URL
더 좋은 건 출판사가 말로센 시리즈를 다 내겠다고 한거랍니다^^

카스피 2009-06-1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출판사인지 정말 대단한 의지입니다^^ 그리고 물만두님 후기는 언제 보아도 책을 사게 만드는 힘이 계신데 저는 그게 정말 두럽습니다.책살돈이 없으니까요..

물만두 2009-06-19 19:04   좋아요 0 | URL
문학동넵니다.
카스피님 그러시면 안되십니다. 읽으셔야지요~^^
 
은폐수사 미도리의 책장 8
곤노 빈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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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경찰이 범인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일본 경찰 소설의 대가라는 곤노 빈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 특이한 경찰 소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발로 뛰는 경찰은 나오지도 않는 작품이다. 경찰 내부의 문제를 집중 조명한 작품이다. 제목만 보고 무슨 경찰의 부패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하드보일드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색다른 경찰 소설을 읽을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이제라도 출판이 되어 다행이다 싶다. 한마디로 독특한 경찰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경찰청 총무과장 류자키는 모두가 별종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세상물정 모르는 별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도쿄대를 나온 캐리어임에 대한 우월감과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다. 처음 류지카를 보게 되면 '재수없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 정도로 그의 생각은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도쿄대를 가고 경찰 캐리어가 되기 위해 청춘을 바쳤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만큼 헌신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열심히 일하고 가정은 아내에게 맡겼다.  

이때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조직폭력배의 싸움으로 생각했지만 연쇄 살인으로 바뀌면서 피해자들 사이의 공통점인 소년범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자신을 괴롭혔던 이타미 형사부장이 수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떨떠름하지만 그와 자주 연락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류자키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의 아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타미는 묻어두라고 하고 심정으로 류지카도 그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인 그는 그를 용납할 수 없게 되고 연쇄 사건에도 관여하게 된다.

작품은 정공법을 쓰려는 류자키와 변칙법을 쓰려는 이타미를 통해 경찰이라는 조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찰이란 존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작은 일에도 무너지기 쉬운 조직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비밀을 만들고 조직의 결속을 다지고 경직된 사고로 일관하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류자키에게 경찰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의 사명이자 임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 조직이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 길을 가려고 은폐공작을 벌이게 놔둘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최악의 선택임을 알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인 경찰 지위를 걸고 은폐를 막고자 한다. 이것을 속도감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불안한 심리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류자키의 독자적인 모습이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적절해보이도록 쓰고 있다. 거기에 점점 류자키라는 인간에 대해 알아가게 만드는 점도 작품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단순하고 깔끔한 작품이었다. 군더더기가 없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경찰 내부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잘 묘사하고 있고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어떤 상투적인 재주도 부리지 않는 묵직함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경찰 내부의 묘사와 경찰들의 심리 묘사로 일관하는 점이 독특했다. 류자키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이 진부하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로 생각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너무 많은 부패가 만연해 있고 이타미가 놀리듯이 말하기도 쑥쓰러운 "국가공무원이란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니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입에 달고 사는 인물이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꽉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 꽉 막힌 인물이지만 요즘은 너무 희귀해져서 오히려 더 끌리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보여지는 모습이 보이고자 의도한 모습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본 모습일 수도 있다. 판단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 판단하기 어려울때가 있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인생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류자키가 보여주는 정도를 따르고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행동으로 앞 길을 열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답답한 인생이지만 정도에서 벗어나 류자키의 말처럼 '처음에 제대로 했더라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말이다. 인간이란 아주 단순하고 간단 명료한 일도 제 꾀에 제가 넘어가 무리해서 꼬아 스스로 그 꼬임에 갇히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장 조직적이고 약간의 잘못만으로도 철밥그릇이 날아가는 경찰청에서 그 원칙을 고수한 남자라면 따라도 좋지 않을까 싶다. 류자키, 읽을수록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작가의 다른 <은페수사> 시리즈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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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09-07-30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따라가려는지 책장뒤로 스윽~ 넘어가버렸습니다..참 난감한 시츄에이션~ 핑계김에 여름맞이 대!책장뒤집기를 한판 해야될 모양입니다 ㅡ,.ㅡ; 엄두가 안나긴 하는데 일단 같이 산 크로스파이어로 맘을 달래보렵니다..꼭 해야만되는 청소는 아무래도 미루게 됩니다^^;

물만두 2009-07-30 10:31   좋아요 0 | URL
저런, 저도 그런 책이 있어요. 더 난감한 건 하권 찾고 상권을 못 찾은 경우죠. 마음 달래시고 힘쓰세요^^
 
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작가가 인도를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희망을 담아내려고 하는 모습에서 현대인은 여전히 동화적 감상을 버리지 못했음에 기뻤다. 그런 작가가 이번에는 미스터리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처음 시작은 열혈 신문 기자가 사건의 발단에서 어떻게 6명의 용의자가 모이고 그들에게 동기가 생겨나게 되는지를 천천히 잘 묘사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인도의 내무부장관 아버지를 믿고 범죄도 서슴지않고 저지르는 비키 라이가 한 젊은 여자 바텐더를 쏘아 살해하고도 기소면제 처분을 받고 풀려나면서 시작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셈이다. 이미 시민들은 분노하지도 않는다. 너무 많은 부자들이 그렇게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은 너무 쉽게 죽는데 말이다. 이 와중에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모이게 되는 6명이 등장한다. 

사이비 영매가 벌이는 쇼에서 간디의 영혼이 씌어 간디에서 부패한 정치인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한 쿠마르, 핸드폰 도둑에서 하루 아침에 수상한 돈가방을 횡재한 뒤 비키 라이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문나 모바일, 부족을 위해 소안다만제도의 신성한 돌을 찾아 인도까지 오게 된 에케티 옹게, 인도 최고의 섹시 여배우에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샤브남 삭세나, 샤브남 삭세나를 이용해 사기를 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인도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인도로 온 월마트 지게차 기사이자 래리 페이지, 총리를 노리다 아들 비키 라이 때문에 실패한 뒤 아들을 살해하기로 한 아버지 자간나트 라이, 이렇게 서로 다른 6명이 각기 다른 이유로 뻔뻔하게도 법원의 결과를 두고 자축 파티를 벌이는 날 모두 모이게 된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는 심각한 부정 부패가 그려지고 가난한 젊은이의 모습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담아낸다. 소수 부족 청년의 인도 체험을 통해서 소외된 자들과 그들을 소외시키는 자들의 모습이 등장하고 발리우드의 나라답게 여배우의 생활에서는 인도 영화와 여배우의 애환이 펼쳐진다. 생뚱맞게 등장하는 어리버리한 미국인의 모습에서 미국인을 대하는 이중적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씁쓸했다. 여기에 이들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무시할 수 없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인도 소개서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문나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찬티의 모습이 보팔 사건에 의한 것이라는 것과 아직도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부패한 정치인, 무능한 경찰, 타협하는 언론, 정경유착과 노동착취,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절대 부자가 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려는 폭력 속에서 정의는 죽고, 진실은 눈멀고, 사랑은 사기가 되고, 간디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이젠 도저히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다. 용서는 사라지고 오직 복수만이 남아 불타올라 결국 또 다른 살인을 낳고 희생자를 만들고 마니 말이다. 보는 내내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위안이 된다면 말이지만. 

비크질 찬드라의 <신성한 게임>에서 이 말을 작가가 빌려 쓰고 있다. '이 도시에 살고 싶다면, 그 전에 미리 세 번의 반전을 생각하라. 그리고 나서 거짓의 이면에서 진실을 봐야 하며, 다시 그 진실의 이면에서 거짓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이 말에 충실히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독자를 놀랍게 하려는 반전이 아니다.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반전이다. 반전이 이렇게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반전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도 사회의 거짓 이면에서 진실을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인도 사회를 포함한 모든 사회의 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간과한 거짓을 놓치지 말아야 진정으로 이 작품을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세번의 반전이란 첫번째 6명의 용의자들의 삶 자체에서 일어난다. 그들의 삶을 읽는 것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구성되고 완성됨을 느끼게 한다. 두번째 반전은 비키 라이가 살해되고 6명의 용의자가 잡혔을때 일어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정말 책 마지막에 등장한다. 6명의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보여주는 방식이 약간 산만하게도 느껴졌지만 또 한번의 인도 여행을 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들을 따라 인도의 요소요소를 들여다보고 각양각색의 삶을 엿보게 하는 것이 작가 작품의 특징으로 여겨질 것만 같다. 진지하게 볼 수도 있고 재미있게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든 작가의 위트 넘치는 문장은 힘든 삶 속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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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06-1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책 좀 땡기던데요..ㅋㅋ

물만두 2009-06-16 12:24   좋아요 1 | URL
읽으셔야할걸요^^ㅋㅋ

soyo12 2009-06-17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문했어요. 원작이 너무 좋아서.^.~

물만두 2009-06-17 11:42   좋아요 1 | URL
네^^
 
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속담은 정말 무시무시한 함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말이 바로 현대 도시괴담이 얼마나 빠르게 퍼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걸어 다녀야만 하던 때도 말은 천리를 갔다. 그러니 인터넷이 생기고 통신이 발달한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고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요즘은 순식간에 퍼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다. "얘, 너 그 소문 들어봤니?"라는 말 한마디가 돌고돌아서 그야말로 소문이 사람을 어떻게 죽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작가는 만들어 낸 것이다.  

새로운 향수 광고를 하면서 홍보 전략으로 여고생을 통해 입소문을 퍼트려 성공을 거둔다. 그 입소문 중에는 뉴욕의 레인맨이라는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향수를 뿌린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는 소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광고에서 나온 살인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 이야기 그대로. 경찰인 고구레와 나지마는 팀을 이뤄 사건을 조사한다. 고구레에게는 살해당한 여고생 또래 딸이 있고 연쇄살인이 되면서 딸의 친구가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두 피해자가 향수 모니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경찰 수뇌부는 이미 용의자를 점찍은 상태에서 그 인물만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구레 혼자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면서 눈밖에 난다. 

작품은 초반부터 소문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일본에서 일어났던 관동대지진때 재일교포들이 학살당한 이유도 소문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카더라 통신은 계속 양산되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들만 늘어나고 있고 도시괴담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불신을 조장하기에 이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라는 개인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결국 국가는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조사를 해보니 전혀 사실과 다른 일이었는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퍼져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던 것을 말이다. 그런 상황을 역이용해서 광고를 하고 상품 매출을 올리려는 상술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하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한다는 식의 발상이 지극히 현대적이고 현실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져서 더욱 오싹했다. 

소문과 뒷담화는 다시 한번 피해자를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장례식에서까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작은 일탈 속에 살던 소녀, 그녀와는 다르게 평범하면서도 개성이 강했던 소녀, 이들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자기만의 세계들과 한번 작정하면 끝까지 조사를 하는 고구레와 현장 조사와 분위기 파악에 일가견이 있는 나지마, 이 두 형사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면서 같은 상처로 동맹관계처럼 되어 버리고 서로 보완적인 모습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마치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들 사이에 컴사이트라는 광고회사의 소문을 광고로 만든 직원들의 모습이 작품에 재미와 작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광고란 인간 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십대들, 자신들이 유행을 선도한다고 생각하는 십대들의 분출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욕망을 시부야 거리 소녀들을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잊고 출세한 쓰에무라 사장의 뒤틀린 지배욕과 아는 사람을 이용하고 자신의 말이 살인을 부른 것에 일말의 생각이나 관심도 두지 않는 면은 현대 사회 상층부의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살인자의 끔찍한 욕망과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해 아무나 잡으면 된다는 식의 경찰의 보여주기식 욕망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작가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소문도 욕망이다. 누군가에게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은, 또는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싶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그 욕망이 살인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이 주는 공포, 즉 소문을 즐기고 싶은 욕망의 결과를 잘 나타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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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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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자 친구 니콜과 헤어져 헨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비서에게 전화를 새로 달라고 했는데 계속 이상한 전화가 온다. 릴리라는 여자를 찾는 전화다. 전에 그녀가 사용하던 번호를 헨리가 다시 사용하게 된 모양인데 점점 신경이 쓰인다. 도대체 릴리가 누구고 어떻게 됐길래 사람들이 릴리를 찾는 건지 궁금해서 헨리는 릴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는 단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주인공은 고독하고 외롭다. 이것은 늘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이 지녀야 하는 공통된 특징이다. 그래서 첫 장면에서 아무 것도 없는 빈 아파트에 쌓아 놓은 상자로, 침낭에서 잠을 자는 모습에서 그의 고독을 보여주고 비서가 가구를 들여 놓았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고 그의 회사의 개인 공간마저도 외로움이 느껴지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고독과 외로움은 현대인들이 모두 공유하는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의 부실한 결속력, 깨어지기 쉬운 관계와 신뢰하지 못하는 현대인 특유의 만성적 병폐를 드러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릴리라는 알지도 못하는 인물에게 말이다. 

작품은 화학자 헨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릴리를 찾는 과정과 그가 릴리를 찾게 된 동기, 그리고 릴리를 찾다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점차 헨리를 통해 그가 들어서면 안되는 곳을 기웃거릴때마다 헨리와 함께 독자를 공포로 몰아 넣는다. 자신의 작은 기업의 투자자를 구하기위해 애를 써도 시원찮을 상황에 니콜과 헤어졌다고 니콜이 그렇게 바라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생각하는 실험실을 멀리하고 해커 친구에게 그 사이트를 조사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매춘을 하는 여자나 찾아다니고 있다니 그러다가 디지털 포주격인 웬츠라는 남자에게 심하게 얻어터지고 그러면서도 릴리와 릴리와 함께 일하고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한 루시의 안전을 걱정한다. 경찰에게는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면서. 

세상은 헨리의 말대로 무섭게 변하고 있다. 경찰조차도 착한 사마리아인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위장을 한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악이 선을 잠식하게 되어 버린다. 도시는 삭막해지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위를 걱정할 뿐 남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남을 믿다가, 남을 돕다가, 아는 척을 했다가 헨리처럼 이유도 모르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다 정작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헨리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누나를 구하지 못했다는. 그의 누나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이틀동안이나 버려져 있었는데 신고한 사람이 이틀동안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왜 사람들은 신고하지 않았을까? 왜 보고도 외면을 했을까? 그래서 헨리가 릴리에게 집착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걱정해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누나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말이다. 

작품이 단순하게 릴리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면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 아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정교한 마이크로칩을 심어 놓듯이 작품 속에 단서와 복선을 심어 놓고 헨리 혼자 싸움에 뛰어 들어 그가 엄청난 발명을 해냈듯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게 만든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사악한 서스펜스 장치이기 때문이다. 숨 쉴 틈도 없이 책을 펼친 순간 헨리와 함께 릴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외치게 된다. "릴리는 왜 찾은 거야!" 마지막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마이클 코넬리표 크라임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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