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난다
장 에슈노즈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인생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매사 꼬여만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 사람들은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페레처럼 보물찾기에 나설 수도 있고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아니면 자포자기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그렇게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멈춰서는 곳이 우리가 떠났던 바로 그 자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황당함, 당혹감, 서글픔이 인생이 아닐까. 푸쉬킨의 간단한 그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그 말을 되새기게 된다.

나는 떠난다. 답답하고 반복되는 질식할 것 같은 일상에서. 언제나 나를 미치게 하는 원시인같은 아내에게서. 점점 침울해지는 일들에서. 쇄빙선을 타고 북극으로 간다. 보물선을 찾아서. 그리고 자신을 스쳐 간 많은 사람들을 잊는다. 무료한 날들을 잊는다. 하지만 너무 쉬운 일은 경계해야 하듯이 그는 보물을 가져온 그날 그 보물을 노리고 있던 미지의 남자에게 빼앗긴다. 그는 자신이 떠난 일상보다 더 끔찍한 절망감에 잠식당한다. 그래도 그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날들을 만들고 보물을 찾고 잊었던 사람들과 조우하지만 그가 떠났듯이 그들도 그에게서 떠나가고 그는 다시 자신이 떠난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삶의 상징이 들어 있다. 페레가 보물선에서 골라 온 괜찮았던 은여우 모피가 와서 보니 털은 다 빠지고 가죽은 얼었던 게 녹으면서 상해서 쓰레기로 변한 것을 발견한 장면은 자신이 고른 것이 과연 빛나는 보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이혼을 위해 법원에서 기다리다 잠깐 잡지를 보던 그는 1초만 있으면 자신의 없어진 보물에 대한 단서가 될 남자가 우연히 찍힌 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덮고 만다.

이것은 인생에서 원하는 증거나 단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눈앞에 있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우를 우리는 항상 범하고 스쳐 지나가는 법이라는 것의 상징 같다. 엘렌의 변심은 인생의 주체는 결코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항상 나는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누군가 나를 떠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상징들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사소한 의문점들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실상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들라에의 죽음, 빅투아르의 실종, 엘렌의 등장, 페레가 마침내 보물을 되찾았을 때 아무 문제없는 해결 등에 대한 의문을 접는다.

페레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오정희의 단편 <비어 있는 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그 작품이 무료한 일상에 너무 집착한 글쓰기를 한 반면 이 작품은 그 무료하고 평이한 일상을 추리 기법을 사용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무료한 읽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에게 공쿠르상의 영예를 안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사 위원들이 말을 잊었다고 한다. 나도 말을 잊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독특하다. 일상에 대한 나열이... 장 에슈노즈의 작품성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길이 여러 갈래라고 생각을 한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길로 가면 그만이고 싫증이 나면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라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 페레는 이혼과 보물찾기를 선택했고, 바움가르트너는 도둑질을 선택했다. 예전의 길을 피해서. 예전과는 아주 다른 길로 떠났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 가보니 떠난 곳으로 돌아오게 되고 결국 페레는 전처를 찾게 되고 바움가르트너는 더 나쁜 상황에 처한다. 결국 페레와 바움가르트너는 같은 종류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항상 떠나지만 언제나 제자리만 맴돌았던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이루어진 인생 아닐까...

그의 작품은 쉬운 듯 어렵고 가벼운 듯 어둡다. 어느 순간 이해한 듯 느껴지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되새기게 되고 너무 무심한 그의 글을 읽노라면 오히려 당황하게 된다. 페레의 마지막 발자취는 모든 인생의 발자취다. 자신의 의지로 아내를 떠났지만 애써 돌아가려 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인간의 회귀 본능은 자신이 버림받자 결국 아내를 찾게 하고 그의 그런 초라함이 떠들썩한 연말의 파티 분위기와 대비되어 더욱 서글프게 남는다. 독특한 구성, 6개월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그 구성에 이어 추리 소설의 기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나들면서 결국 하나의 인생, 지루한 보편적 삶을 엿보게 하는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가 눈길을 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엉뚱한 책을 살 때가 있다. 그런 뜻밖의 책이 보물로 변할 때도 있다. 이 작품, 내가 처음 접하는 동독 출신의 작가 귄터 쿠네르트의 단편집이 그런 책이다. 엉뚱하게도 이 책을 추리 소설인 줄 알고 샀다. 다분히 환상적이고 추리적이고 사색적인 작품들이다. 읽으면서 그의 작품은 미스테리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SF적이고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모순을 피력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대단한 필력을 느낄 수 있고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가장 충격적인 작품인 <가정 배달>은 살인자에게 살해된 자의 묘지를 배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인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총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인가. 어떤 사람은 사고로 죽인 사람의 시체를 받기도 하고 주인공은 어린아이를 죽인 경험이 있는 애인을 비난했다가 자살한 애인의 시체를 받는다. <가정 배달>은 최근에 읽은 단편 중에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진다>는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고를 가장한 의도적인 살인, 교묘하고 계획적이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담과 이브>와 <바라던 아이>는 인간의 비관적 미래, 멸종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인식 전환을 통해 현실 사회의 인간 사이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날카롭다. 표제이기도 한 <잘못 들어선 길에서>는 인간은 발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같은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듯 하다. <동화적인 독백>은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당시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의 생각을 나타낸다. 그것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서부터 비롯된 망상이라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때아닌 안드로메다 성좌>는 그런 사회주의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지배하고 그들을 눈멀게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텔레비전 속의 황당한 지속적인 보도의 오류를 통해서. 

이 작가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인간과 인간의 사상과 미래를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물질화로 인한 비인간화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병통신>에서는 미래의 이야기를 병 통신을 통해 현재 알게 된다는 피드백 현상을 접목시켜 그들의 체제가 미래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려 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없애고 차단하여 지배만을 목적에 두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미래에서의 인간의 식량화라는 끔찍한 사태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지금이 과연 제대로 들어선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잘못된 곳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하는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듯 하다.

작품이 읽기 쉬우면서도 깊은 생각을 요구하고 많은 여운을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동독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그 사회주의 체제에 작가가 얼마나 암담한 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금, 자유주의라는 허명 아래 생활하는 우리들의 미래는 이 작품 속의 이야기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의 빅 브라더가 지금 현실이듯이 이 작품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단지 사회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의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잘못 들어선 길에서>처럼 지금 우리가 잘못 들어선 길에 서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역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 같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그거 아니?
디비딕닷컴 네티즌 지음, 정훈이 그림 / 문학세계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재미있는 책이다. 평소에 시답지 않게 생각한 의문이지만 너무 궁금했던 문제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던 문제에 대해 속 시원히 알려준 책이다. 특히 <엿 먹어라>라는 말의 기원(?)이 우리의 대단한 입시 열풍 탓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 정말 민족성이 말을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번쯤 재미 삼아 읽어보면 괜찮을 책이다. 그리고 네티즌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 네티즌의 한 사람으로 기분이 좋았다.

나도 가끔 질문을 할 때도 있고 답변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인터넷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이 팔렸다는 생각이다. 이런 정열을 다른 조금 심각한 책에도 좀 쏟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이 어느 한 분야에 편중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보며 걱정이 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책방
매트 코헨 / 삼문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김상용 시인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오>라는 시가 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오. / 밭이 한참갈이 / 괭이로 파고 / 호미로 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 웃지요.

이 시를 읽으면 자연에 대한 편안함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포기와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 일까...

플로베르의 작품처럼 등이 필연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고 그것을 막으려고 해보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주인공의 심정이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까... 모든 것에 대한 포기와 어떤 것도 욕심 내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리라. 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고 나도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모두 비슷비슷한 인간들이고 세상은 헌책방 안이나 그 밖이나 마찬가지로 돌아간다. 도망을 가더라도 지구 끝까지 도망을 가더라도 길은 한 길이라 같은 곳으로 오게 마련이고 같은 일을 하게 마련이고 같은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같은 절망에 빠지게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도,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인간이 있는 한 우리는 미래가 아닌 과거 안에서 깊이 침전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서지의 고양이
미야모토 테루 / 삼문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욕망과 탐욕과 무관심이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다. 여름만 되면 와서 피서를 즐기고 가는 부유한 가족과 별장에서 별장지기로 있는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음모와 협박, 그리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들...

카루이자와의 후세 별장에서 17년 동안 일어난 일이 소년 슈헤이에게 들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만다. 슈헤이의 아버지는 무능하고 한쪽 다리를 못쓰는 남자고 어머니는 젊고 미인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후세 긴지로는 애인 사이다. 또 슈헤이의 누나 미호는 단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긴지로를 유혹하고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무관심한 척 산다. 어느 날, 자신들을 못살게 굴던 긴지로의 아내를 슈헤이가 의도적으로 살해하면서 모든 일은 수면 위로 떠올라서 감출 수 없게 된다.

인간이란 이렇게 서로 잡아먹으려고 덤벼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일까. 서로의 속셈을 숨기고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파멸로 함께 몸을 던지는 존재들... 하나의 악의 씨앗이 싹트면 그 악으로 말미암아 악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누가 먼저인가 라는 물음을 부질없게 만든다. 원인을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소용없다. 모든 것은 이미 소멸하고 난 후니까. 악도, 선도, 인간도... 인간의 탐욕이 여름과 안개 속에 어떤 결과를 낳는 지 너무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지 않고 타인의 허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면 이 여름, 인간은 스콜과도 같은 탐욕과 함께 떠내려갈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