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메디컬 사이언스 2
지나 콜라타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지구상 모든 병을 치료할 미래가 온다고 해도 단 하나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있으니 그것은 감기라고... 감시 바이러스는 너무 자주, 쉽게 변종이 생기기 때문에 인간이 백신을 개발했을 때는 이미 그 전 감기가 아닌 다른 감기라 그 백신의 효과가 없어진다고 한다.

1918년 그렇게 위대하다는 나라 미국에서 전염병이 돌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것은 독감!!! 마치 얼마 전 일어났던 사쓰처럼... 독감이 전 세계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1차 세계 대전 시기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이동은 잦았고, 병사들은 집단으로 모여 훈련을 받다 감염되어 쓰러져 죽고, 더러는 그 병을 고향으로 옮기고 다른 나라에도 옮겼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왜 그렇게 치사율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과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미래 인류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가지 감기만 빼고... 감기 바이러스는 해마다 변종을 일으켜 밝혀 낼만 하면 다른 것이 생기고 해서 과학자를 애 먹인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18년 스페인 독감에 대한 이야기지만 감기가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인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질병인가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얼마나 쉽게 간과되는 질병인가 하는 것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이 싸쓰가 발병했던 즈음 등장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팔리고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텐데 역자와 마찬가지고 나도 아쉽다. 

이 작품에는 또한 조류 독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독감의 발원지로 추측되는 곳이 중국 광둥성이라는 사실도 등장한다. 우리 나라와 얼마나 가까운 곳에 감기의 진원지가 있는 가를 깨달을 때, 그것이 추측일 뿐이라 해도 우리는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도 중국에서 날아오고, 황사도 중국에서 날아온다. 거기에 섞여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다고 믿는 것인지...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아닐까...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바이러스 손바닥 안에 있을 뿐이고 그 바이러스는 인류 전체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그러니 자연에 순응하고 얌전히 살다 가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자들의 암투와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수가 포함되어 있어 또 한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독감을 연구하고 치료하는데 왜 과학자들은 저들끼리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싸우고, 정치인들은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전략을 짜는 것이냔 말이다. 이러니 바이러스가 인간을 우습게 볼만하지 싶다. 다음 독감에 대비해서 마스크 사 뒀는데 그거나 잘 사용하고 깨끗하게만 힘써야겠다. 나머지는 과학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 책보니 예방 주사도 맞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 

좋은 점은 각주를 일일이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그 각주가 페이지마다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맨 뒷 페이지에 모여 있어 찾아보기 불편하게 되어 있어 불만스러웠다. 원래 책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두꺼운 책을 읽는데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앞으로 각주는 그 페이지마다 독자가 손쉽게 볼 수 있게 달아주었으면 한다.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가정이고 추측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지만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에서 2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금 남한 인구의 절반에 해당된다. 우리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 독감인 것이다. 이 책을 부디 보건 당국이 읽고, 학교에서 교재로라도 채택해서 예방책을, 최소한의 것이라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번째 아이
레슬리 글레이스터 지음, 조미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Honour Thy Father... 이것이 이 작품의 원제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네번째 아이>로 둔갑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네 번째 아이는 조지를 말하는 것인가... 조지가 이 작품의 모든 불행, 화자인 밀리의 불행의 원인이라는 뜻인가... 사생아, 근친상간, 살인, 기형아 같은 고딕 소설의 요소들이라... 세 가지는 맞는데 한가지는 아니다. 근친상간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아버지에 의해 끝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이미 결혼할 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아내를 학대하여 자살하게 만든다. 그 후 그는 아이들 네 명을 집에만 가둬 두고 사회와 단절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아니며 아내를 닮은 큰딸을 강간해서 사생아이자 기형아를 낳는다. 둘째 딸이자 화자인 밀리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전쟁터로 데려가 죽게 만든다. 쌍둥이 막내인 엘렌과 에스터, 그들은 엘레네스터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틀 속에 사는 아이들이다. 기묘한 네 명의 딸들이 이제 다 늙어 죽기만을 바라지만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집이 붕괴되어 그들의 머리 위를 덮치는 것뿐... 그들은 그 때를 조용히 맞이한다.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 'The Others'를 생각했다. 이들이 혹시 유령 아닐까... 아니라면 왜 한 곳에서 이렇게 살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제목처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고딕적이라는 것은 사생아, 근친상간, 살인, 기형아 때문이 아니다. 죽어서도 그들 위에 군림하는 그들의 아버지 때문이다.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그래서 고딕적인 딱딱하고 음침하며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다. 독재라는 악마가 살아 숨쉬는 집에서 네 명의 여자가 다시 한 명의 아이를 지하실에 가둔 채 살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은 옛날을 회상하지만 그 옛날도, 그 기억도 어두울 뿐이다. 탈출구가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희망 없는 삶에 대한 한 노파의 회상을 담은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우 메피스토(Mephisto) 4
카렌 두베 지음, 박민수 옮김 / 책세상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자신이 자칭 시인이라 생각하는 한 남자와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아 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건달 친구를 통해 폭력배 두목의 자서전을 쓰기로 하고 구동독의 한적한 곳에 집을 마련해 이사를 한다. 이사하는 날부터 비는 내리고 남자는 글을 쓰기 위해 애를 쓰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끝없이 몰려드는 달팽이와 전쟁을 벌여야 하고 이웃에 사는 자매와도 미묘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내 죄를 씻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책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그 비 때문에 집은 무너지려 한다. 이것은 파괴와 파멸의 전조다. 그 집의 이웃에는 두 자매가 산다. 언니는 변태성욕의 뚱보고 동생은 레즈비언이다. 그리고 그 마을의 가게 주인은 꿈을 꾼다. 구 서독처럼 자신들의 마을이 나아질 거라는. 서로 각자의 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절망이 비가 되어 내리고 그리하여 서로에게 단절만을 남긴다. 글을 쓰지 못하게 된 남자는 보복을 받게 되고 여자는 남자 대신 받는 보복을 자신의 죄 값이라 여기며 남자를 떠나 집으로 간다. 남자는 늪에 빠져 안식을 찾게 되고 허물어진 집과 또 다시 둘만 남은 자매는 여전히 그곳에 산다. 삶이란 이렇게 지겨운 것이다. 쌓았다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매일이 그렇게 쌓이고 허물어지고 반복하다 땅 밑에 묻혀서야 비로소 평화로울 수 있는. 그래서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선 한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리라.

비는 모든 것을 씻어 가길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다. 씻어 갈 수 없는 것, 버려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부질없는 바람이다. 외딴 집은 고립과 단절을 상징한다. 남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고립된 마을에서 펼칠 수 있으리라 꿈꾸고 여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용서받기 위해, 그리고 증명하기 위한 비상을 꿈꾸고, 마을에서 고립되어 사는 자매는 자신의 동성애의 반려자를 꿈꾸고 구 동독 가게 주인은 부자와 자기 만족을 꿈꾼다. 그것이 한낱 꿈일 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자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남자는 깊은 늪 속에 가라앉고 만다.  

이 작품에는 모든 폭력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 폭력이 난무하는 늪지의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마을에 구원의 손길이 뻗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개의 이름을 노아라고 붙였다. 하지만 성서에서 그랬듯이 노아만이 구원을 받는다. 아니 노아가 구원을 받은 것일까. 폭력은 또한 단절과 고립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비와 안개라는 자연의 폭력, 포주와 그의 부하의 폭력, 남자라는 남성성이 가지는 희한한 폭력과 그 폭력에 무너지는 허무한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 그리고 여자들의 우정과 결별,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폭력, 그리고 너무나 무기력한 우리들.

모든 것이 폭우에 쓸려 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리게 만들지만 그 정도로 쓸려 나갈 인간의 잔인함이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늪과 달팽이와 비가 언제나 존재하는 것처럼 폭력이라는 인간의 근원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노아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보다 힘이 세다 판단되면 복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용하고, 그리고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떠난다. 붕괴되어 매몰되기 전에.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나은 길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산다는 건 자꾸만 헛디디며 안개 속을 헤매다가 결국 늪에 빠져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까. 그러니 꿈꾸지 말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고.

버려도, 버려도 다시 몰려오는 달팽이 군단은 그들의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허기와 같고 인간의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폭우가 쏟아져 결국 집은 무너지지만 진정 무너진 것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그들의 꿈과 욕망뿐이다. 비가 온다. 책 한 권을 쥐어 짜면 과연 얼마만큼의 비가 쏟아질까. 아마 끝도 없으리라. 이 책 자체가 비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치지 않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어떤 작품은 사서 읽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 읽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괜히 샀다 싶어 미루고 미뤘다가 읽게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후자의 경우였다.

개인적으로는 유태인이 싫을 이유도 없고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지만 유태인이 등장하고 아우슈비츠 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을 대하게 되면 가슴속으로 무언가 치밀어 오름을 가눌 수 없게 된다. 아픔은 겪어 본 자만이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유태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을 점거하고 자신들의 이스라엘 깃발을 꽂고 그들을 마치 자신들이 그 옛날 누군가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라 브루더... 안네 프랑크와 같은 소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 속에 묻힌 가여운 소녀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그녀의 자취를 찾아 헤맨다. 왜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유태인이 당한 일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떤 이가 또 다른 도라 브루더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그녀는 팔레스타인 소녀이며, 도라 브루더 만한 나이에 이스라엘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영문도 모른 채 도라 브루더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사라졌듯이 어딘 가에서 사라져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찾는 광고를 신문에 낼 것이고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한 팔레스타인 작가가 그녀를 찾아 세상 어딘가 이스라엘 땅을 헤매고 다닐 것이라고...

왜 당신은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하는 작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인가 작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1943년 실종된 유태인 소녀는 찾아 헤매면서 그 소녀와 같이 죽어 가는 다른 소녀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냐고...

이것이 당신이 헤매는 이유인가... 역사란 어차피 승자의 편에서 쓰여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너무 많은 눈들이 있는 시점에서 승자의 편에서 쓰여질 역사란 존재를 잃었다. 패자도 역사를 쓴다. 이 사실도 잊지 말기를...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당시 유태인보다 더 많이 인종 청소를 당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시다. 당시 유럽의 집시들 중 80%가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란 제 상처만 아파하고 핥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존재인 것을 무엇을 찾아 헤맨들 그것이 자신이 찾는 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온 생애를 헤매어 자신이 찾는 것은 찾았다 한들 무엇할 것인가...

파트릭 모디아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가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다시는 중남미 환상 문학에는 손도 대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이 무슨... 이 작품을 호러적 성격을 띤 미스터리 작품으로 생각했다면 미쳤었다고 할밖에... 작가 이름이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라는 점에 조금만 신경을 쎴더라면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아마 이 작품을 살 때 다른 작품과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읽고 뒤의 해설을 보고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이 작가가 탐정 소설도 썼다는데 왜 하필 이 작품이 출판되었단 말인가...

이 작품은 단편집이다. 그래서 조금 읽기 수월했다.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호르헤스의 <픽션들>보다는 더 간결하다. 마르께스의 작품은 단어 하나 하나에, 장면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며 읽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게 하고 호르헤스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이에서 한없이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까사레스의 작품은 그런 무거운 환상 소설에서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현실적 환상 소설을 짧게 보여준다.  

[러시아 인형]은 환상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사나이의 살아온 경험담을 통해 인생의 달콤 쌉싸름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마르가리따 또는 철분 플러스의 힘]는 다분히 환상적인 진짜 환상 작품에 속하는 작품이다.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 연어가 되는 사람, 철분의 힘으로 엽기적으로 돌변하는 아이가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의 진짜 환상 작품은 이들을 읽을 때 느껴질 것이다.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호러적 분위기가 있어 좋았다. 이 중에서 [물아래서]는  연어로 변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다소 황당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의 깊이와 사랑에 대한 통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카토]에서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처해진 상황과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애를 한 연극 배우의 죽음을 통해 공감하게 한다. [어떤 냄새]는 다소 상징적이다. 환상적이라기보다는 몽환적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 가브리엘 마르께스, 보르헤스와 비교해 보면 가장 읽기 편한 환상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패배한 사랑]은 현실적인 가벼운 환상 작품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환상 작품이라기보다 그저 일상적인 단상에 대한 이야기거나 지극히 생활적, 인간적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환상 소설이, 유독 현실적 환상 소설이라는 장르가 보편적인 이유는 그 나라의 역사와 시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백여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 이런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현실 도피이기도 하고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고 어쩌면 비유나 작품을 통한 외침이었을 지 모른다. 다음 번에 작가의 작품을 출판할 때는 <가장 훌륭한 단편 탐정 소설>이나 <사랑하는 자, 증오하는 자>, <하늘의 음모>를 출판해 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