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도서관 -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요슈타인 가아더.클라우스 하게루프 지음, 이용숙 옮김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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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소년, 소녀인 사촌이 마법의 도서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추리 소설이라 생각하고 덥석 집은 나를 또 원망하는 날이다.

6,70년대 친구끼리 일기를 교환하던 일이 있었었다. 또 80년대에는 마니또라는 것이 있어 선물을 주고받고 했었다.

이 작품의 시작은 두 사촌이 서로 하나의 공책에 편지를 써서 주고 받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그때부터 그들은 이상한 여자를 만나고 이상한 남자에게 쫓기면서 그런 일들을 역으로 쫓아가며 탐정 놀이 하듯 마법의 도서관이라는 것을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어린이 탐정 소설이나 추리 소설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대한 지침서다.

글이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것을 써야 하는 지를 알려주며 책의 소중함을 함께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많은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종이에서부터 역사, 사람들, 듀이의 도서분류법까지 등장하면서 책, 그 자체를 소개하고 있다.

내게는 사실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이 또래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책이란 읽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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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4-08-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또래의 학생과 노닥거리는 어른이 읽어도 괜찮겠지요?

물만두 2004-08-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제 취향이 아닐뿐 다른 분들은 아주 좋아할 작품입니다. 특히 엄마와 아이,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읽으며 이야기하기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영혼의 기억
장 자크 로니에 지음, 임미경 옮김, 뫼비우스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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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나요?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에 많이 괴롭답니다. 운명을 믿나요? 나는 운명을 믿습니다. 내 운명이 나를 내 사랑으로 이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프답니다. 세상 어딘가에 내 반쪽이 있음을 알기에 그가 나를 찾아 헤매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가 내 영혼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한번의 헤어짐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사랑임을 기억하리라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내 마음을 안다면, 느낀다면 그도 나와 함께 안타까움을 공유하겠지요. 이것이 욕심이라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한 밤중 심령술사는 한 여인을 기다립니다. 자신의 운명의 사랑의 여인을. 그 여인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면서도 절대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하는 직업이 남의 운명을 알아내는 직업이겠죠. 하지만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참으로 슬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이 내세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얼마나 될까요? 혹여 만난다 할 지라도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 작품은 그런 영혼의 기억을 가진 남녀의 잠깐의 스침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그림이 곁 들여져서 더욱 멋있는 한 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볼강이 딱 한번 만나고, 딱 한번 사랑하고,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여인 로르는 슬퍼하지 말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별한 자만이 가질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영혼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만나자마자 이별을 예감하는 점술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것을 아는 동시에 그 여인의 죽음을 알게 되지만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더 슬픈 운명의 남자도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힘을 가지리라 생각해서 한 여인의 목숨마저 빼앗았는데 결국 그 여인의 영혼에 지배되어 자신이 증오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입니다. 그녀가 쇠약해질수록 그녀의 힘을 가지려는 남자는 힘이 더욱 세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여자는 모든 힘을 빼앗기고 죽어 갑니다. 악마의 영혼을 가진 남자는 이제 세상을 손아귀에 쥐려 하지만 자신이 여자의 영혼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영혼을 빼앗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어떤 것도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저 정해진 길을 갈 뿐. 그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뿐입니다. 사랑도, 권력도, 돈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화가 됨을 이 작품을 통해,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깨닫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추악한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니 복수도 필요 없고 살아서 누리는 부귀 영화, 사랑의 완성도 결국은 한낱 꿈일 뿐인 것이 아닐까요.  

단 한번의 만남, 단 한번의 사랑, 그리고 영원한 헤어짐이 볼강과 로르가 공유한 영원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도 충분했음을 기억합니다. 아름답군요. 사랑이란... 이별이란... 기억이란... 인간이 산다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울 때가 있어 우리가 오늘을 사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이 책은 가르쳐 주는군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떠나보낼 때의 고통으로 알게 되죠.
중요한 건 그들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지라도
그들과 함께 삶을 여행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에요.
이 희망을 이룬 사람들에게 영혼의 기억은
영원히 헤엄치면서 놀 수 있는 넓은 바다가 될 거예요.  

마지막 장의 영혼의 기억에 대한 말입니다. 때론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제 사랑을 사랑했음을 느낄 때가 있죠.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 생각할 때도 있죠.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상처를 다시 핥아 주기도 하죠. 영혼의 기억은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것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가 그래도 한 세상 잘 살았다고 느낄 때의 그 느낌은 사랑뿐입니다. 그 사랑이 옆에 존재하는 사랑이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든,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사랑이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래도 우린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했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절대 지배받을 수도,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나의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원하신다면 이 책을 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 책 안에서 심령술사의 손을 통해 퍼져 나갈 겁니다. 가느다란 끈에 매달린 추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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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7-0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때로는 집착하고 그렇게 서로를 힘들게 하고 그러는 걸까요?
영혼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습니다.
정말로 이런 기억을 간직하면서 살면.... 한 세상 잘 살았다고 하겠지요?

물만두 2004-07-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럼요... 이리 될 수 없어 안타까울뿐이죠...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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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나이가 들면 이런 시는 버겁다. 이십대 때는 사랑 타령의 진부한 시가 싫더니만 삼십을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은 오히려 이런 시가 불편하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의 제목으로 차용됐다는 얘기만으로 덜컥 사버렸는데 후회한다. 이십대때 이 시집을 읽었다면 좀 더 진지하게 찬찬히 읽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 사람이 산다는 건 그리 심각하지도 그리 장황하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음을 알게 되어 시가 헛되고 헛된 젊은이의 울부짖음으로 다가온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읽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벽에 대고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 그래도 외치는 자들이 있겠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이고 아픔은 아픔일 뿐 이것은 또한 높이 날려다 세게 추락의 고통을 맛 보기 위한 시도라는 생각만이 들어 안따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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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8-0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데 어떤 책, 어떤 감상, 어떤 감흥은 그렇게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형도에게 별 셋이라니... 흑흑.... 이건 제 청춘에 대한 모욕이라고요. 하하.

물만두 2004-08-02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님 취향을 저에게 강요하셔도 할 수 없네요... 넘 시가 비슷하고 지루해서리... 죄송합니다. 근데 싫어하는 분들은 굉장히 싫어하시더라구요. 편차가 심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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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의 단편 작가하면 보통 안톤 체홉이나 톨스토이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마르셀 에메라는 작가는 듣는 이 처음이었다. 읽고 나니 이 작가의 작품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고 학창 시절 안톤 체홉과 같은 정도의 중요도를 가지고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르셀 에메의 작품은 다분히 동화적이면서 미스터리적이고 SF적이다. 작가도 자신의 능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프랑스에서는 체홉보다도 높게 평가되는 단편의 귀재라는데 처음 접하게 되니 민망할 따름이다. 제목이 미스터리적이라 산 책이다. 이렇게 좋은 책인 줄은 몰랐다. 역자가 구구절절 성의 있게 후기를 썼는데 그게 단편 하나 분량이다. 작품성을 떠나 역자와 출판사의 성의가 보여 좋았던 작품이다. 처음 만난 작가고 처음 읽는 작품이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독특한 독서 체험이었고 보석 같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가루가루를 좀 더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뤼팽에 필적할 인물의 시리즈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한 편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캐릭터다. 하긴 그래서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가 시리즈인 건 아니니까.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자신이 언제가 벽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평범한 소시민.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폭발해서 자신의 능력을 범죄에 사용하다 마지막에 사랑에 사용하다 힘이 빠져 벽안에 갇히는 최후를 맞게 된다. 지금도 이 책 속의 동네에 가면 그가 벽 사이에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고 한다.

5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아쉽게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아니라 <생존 시간 카드>와 <천국에 간 집달리>다. 이 두 작품은 그 다지 동화적이지 않으면서 SF적 느낌과 그래도 내게 익숙한 보르헤스의 현실적 환상 문학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 간 집달리>와 같은 작품은 미스터리 작가나 SF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재의 환타지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가장 작가의 유머러스한 점을 강조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익숙한 작품이 눈에 더 들게 마련인 모양이다.  

가장 동화적인 작품은 역시 <칠 십리 장화>였다. 제목이 사를 페로의 <엄지 동자>에 등장한 칠 십리 장화를 그대로 따와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지 마지막의 장면이 동화적이라 그런지 가장 동화다우면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속담>은 가족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며 군림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가족이란 상호 이해, 서로간의 존중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위고 자식은 아래라는 식의 상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인 수평 관계여야 함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다른 단편들. 모두 동화 같으며 상징적이고 대단하다. 아름답고 간결하며 재미있고 따뜻하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느끼던 환상적 아름다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어떤 평론도 하지 말고 그냥 독자의 느낌에 맡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평론을 하기에도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또한 이 작품 말고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어 있으니 그 작품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작가를 만나 기쁘다. 다섯 단편이 모두 나름대로 특색 있고 재미있고 우아하다. 일상에서 한 박자 쉬어 가는 여유를 주는 편안한 진짜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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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3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특이하고 재밌죠...님도 즐독하셨군요..ㅎㅎ

물만두 2004-04-3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 작가 책을 모두 읽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님 읽으셨으면 가르쳐 주세요. 재미있는지...

방긋 2004-07-10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읽어본 거 있어요!
'착한 고양이 알퐁소'
이건 정말 우화랍니다. 이솝우화나 라퐁텐우화같은...
그러나 천연덕스런 말솜씨에 홀딱 넘어갑니다. ^^
마르셀 에메만의 독특함을 느끼실 거에요.

물만두 2004-07-1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 작가 책을 모두 읽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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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왠일로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느냐 싶겠지만 살인이 등장하기에 읽게 되었다. 도대체 에밀 졸라같은 작가들은 살인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는 가가 궁금했다. 작가는 인간의 광기와 공포를 살인이라는 방법과 살인과 간통을 저지르는 인간이 아닌 짐승 같은 남녀를 통해 해부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내 눈에 테레즈와 로랑은 짐승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짐승 같아 보이고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것은 작가가 인간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래 인간은 이런 존재다.  

그렇다면 테레즈와 로랑만이 해부의 대상인 짐승 같은 인간인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또 다른 테레즈와 로랑일 뿐이다. 자신의 병약한 아들만을 위해 어린 여자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래캥 부인의 모습은 짐승 같지 않은가. 그 아이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과 안락한 노후를 위해 병약한 아들과 결혼시킨 행위는 어떠한가. 테레즈의 사촌이자 남편이고 살해당하는 카미유는 어떠한가. 그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남자, 아니 아이다. 그들이 테레즈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데 사회적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짐승 같은 행위일까. 그들이 진짜 짐승 같은 모습을 보일 때는 자신의 죄를 병든 시어머니 래캥 부인에게 고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래캥 부인은 아무 것도 몰랐지만 테레즈와 아들의 친구인 로랑을 결혼시켰다. 자신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서였지 테레즈나 로랑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테레즈와 로랑, 그리고 라캥 부인, 카미유를 해부해 보시길. 이들은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단지 살인을 했다고 로랑이 더 추악한 인간이고 살해를 당했다고 카미유가 도덕적 인간은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내겐 테레즈가 로랑이고, 카미유고 라캥 부인이다. 그들은 같다. 인간이 결코 다르지 않듯이,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듯이. 이 작품은 살인에 대한 성찰이 아닌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사악한 존재라고 에밀 졸라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다. 그는 테레즈와 로랑이 동물, 짐승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기 짐승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 인간이란 바로 이런 존재인 것이다. 

오히려 불쌍한 것은 테레즈다. 테레즈에게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한번도 없었다. 단 한번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는 불운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테레즈를 이용한다. 라캥 부인도 그렇고 살해당하는 테레즈의 남편도 그렇고 그를 살해하는 테레즈의 정부도 그렇고. 오직 테레즈만이 희생을 강요당하다 단 한번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것이 비극이라면 어떤 사람은 평생 이용만 당하라는 운명으로 태어났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다. 왜 아무도 테레즈에게 물어 보지 않는가. 그 시대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테레즈를 통해 본다. 그래서 테레즈처럼 살 수 없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작은 방, 자신 소유의 작은 방 한 칸뿐이었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아무도 테레즈를 손가락질 할 수 없으리라.

이 작품을 보고 있으니 자연주의 문학이라는 것의 창시자인 에밀 졸라라는 작가가 진짜 인간에 대해 알았던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난 에밀 졸라를 모른다. 또한 19세기라는 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작품이 등장한 시기에 읽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에밀 졸라가 테레즈와 로랑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좀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겠지만 내 느낌은 이렇다. 그냥 '나도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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