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
필립 쿤 지음, 이영옥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당연히 엽기적인 사건이거나, 아니면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이 작품은 정치가 어떻게 민심에 파고들어 책략을 획책하고 군주 주의, 나아가서는 독재주의가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무능한 관리가 사회의 약자들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는 지를 상시시켜 주는 작품이다.
청나라의 태평성대라 불리던 건륭제 시대에 일어난 영혼을 훔치는 사건을 통해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그 사건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과 피해를 본 사람들, 그리고 그 사건이 얼마나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건인가를 알려준다. 즉, 태평성대라 해도 잘 사는 사람들만의 태평성대이며 보이는 것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은 깊다고 했다. 이것을 현대에 접목시키면 빌딩이 놓으면 그늘은 길어지고 그 그늘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약자들, 하층민들은 많아진다는 뜻이다. 또한 한 나라의 황제가, 또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관리와 백성을 이용하려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나의 작은 틈으로 작은 소문만을 퍼트리면 그만인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어찌나 작가의 서문처럼 우리 그리도 똑같은지... 이것은 독재를 겪어 본 사람들만이 공감할 일이다. 하지만 그 독재의 잔재는 너무 뿌리가 깊다. 지금도 일단 소문을 퍼트리고 나서 국민이 믿으면 성공한 거고 안 믿으면 말구 하는 식의 전근대적인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이것은 단지 한 나라, 우리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나라도 정치인이 있고 그 정치인이 자신의 힘을 강제로 휘두르려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이 책을 왜...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읽어 나가면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여야 한다. 고등학교 사회나 정치 과목 시간에 교과서로 채택하거나 적어도 한번쯤 읽어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책만큼 국가 권력과 관료주의 독재에 대한, 그리고 서민의 무지와 야합, 그들이 국가를 신뢰할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를 잘 말해 주는 책은 없을 듯 싶으니 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뜻밖에 좋은 책을 읽었다. 역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힘이다. 이 책을 통해 지혜로운 힘을 많이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박사 2004-12-1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만두님이 잘 안 읽으시는 장르여서... ^^

방긋 2004-12-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고 싶어욧!

물만두 2004-12-15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박사님 민망하옵니다^^

방긋님 읽으세요^^

BRINY 2004-1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그렇군요. 중학교 사회책에는 청나라 역사가 2페이지로 끝나버려서 제 지식도 딱 그 수준에 고정되어버렸는데, 이런 책도 한번 읽어볼까요.

물만두 2004-12-1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세요^^

물만두 2004-12-16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역시 우리는 쌍둥이^^

내가없는 이 안 2004-12-1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대단한 칭찬을 하셨네요. 그렇담 또 호기심이 생기네~ ^^

물만두 2004-12-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12-21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4-12-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사실 제가 글은 별로잖아요.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당선되고도 어리둥정하다구요^^

날개 2004-12-2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축하드려요~ ^^*

icaru 2004-12-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축하드려요 만두님~~!! 잘 읽고 갑니다..올해가 가기 전에 읽은 뜻밖의 좋은 책이라하시니...저도 책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반딧불,, 2004-12-2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실수로 산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을 읽고 행복했었지요^^*

어쨌든 도저히 리뷰를 멋지구리하게 못 적겠다 했는데 님이 멋지구리 하게

적으셔서 저도 기억한답니다..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책읽는나무 2004-12-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축하 빰빰빰~~^^

올해가 가기전에 멋진책을 읽어버렸고...또 올해가 가지전에 리뷰에도 당선되어 버렸네요..^^

축하해요...^^

세실 2004-12-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역시 솔직한 글이 좋은글~

거닐기 2004-12-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바로 장바구니로 들어갑니다

stella.K 2004-12-2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축하혀요. 물만두님 좋으시것네.^^

물만두 2004-12-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고 참 민망합니다^^

IshaGreen 2004-12-2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헤헤^^ 글 좋아요^^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힘에 대한 마지막 문장이 정말 인상깊습니다^^ 저도 이제 방학했으니 책좀 읽어야 할텐데...;;;

설박사 2004-12-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 댓글을 남겨서 당선되신겁니다. ^^

축하드립니다.

물만두 2004-12-2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설박사님이 그때 웃으셨었는데 흠... 워쨌든 감사합니다^^ 올해가 설박사님 책복 터진 해니 제가 그 덕을 좀 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요^^ 그러니 벤트에 참가하시지요^^

우르바시님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마지막 문장에 뭐라 썼대요???
 
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살인 사건이라는 말만 가지고 책을 사지 말자고 맹세하게 된 작품이다. 물론 그 맹세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 작품에 대한 평이 무척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 원래 그러면 더 안 읽게 되는데 - 한국 추리 소설을 의무적으로라도 읽겠다고 다짐한 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샀다. 그리고 읽었다. 이제야 서평을 쓴다. 왜냐하면 정말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난 제발 작가들이 아무 작품에나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 좀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리 소설이 작가들,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 눈에는 하위 장르의 하찮은 작품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함부로 대하며 독자를 우롱할 권리는 없다.
언젠가 작가를 가두고 글을 쓰라고 하고 싶은 작가를 조사했었다. 그때 나는 이 작가가 생각났다. 가두고 글 못 쓰게 하고 싶은 작가로... 이 작가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작품의 결점은 작가의 노골적인 정치 색이다. 비판은 은근하고 은유적이어야 더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시원했을 지는 몰라도 소설로서 적어도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라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소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차라리 공개 비판의 글을 쓸 것이지 뭐 하러 소설을 쓴 단 말인가. 그것도 장르를 알 수 없는 SF도 아니고 추리 소설도 아닌 형식을 취하면서 말이다.
이런 작가들이 있어 우리 나라 장르 소설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다.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쓴 작가의 단편을 소개한다. 일본 SF 작가인 츠츠이 야스다키의 <인간 동물원> 중에 있는 <원시 공산제>다. 같은 파시즘에 대한 비판이지만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본 에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쿠사나기 모토코까지 등장시킨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가 작가의 한계이다.
작가는 비판적이어야 하지만 그 비판을 작품에서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녹여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미 중심을 잃은 작가가 쓴 글은 결코 잘 설 수가 없다. 작가가 이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소설을 화풀이 대상이 아닌 글쓰기 대상으로 삼기를.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야를 넓히기를. 작가가 우물 안에서 울기만 하는 개구리가 될 것인지 그 우물에서 벗어나 넓은 호수를 찾을 것인지 지켜보겠다. 하지만 당분간 당신의 책을 읽을 생각은 없구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시리스 살인 사건>이 훨씬 잘 쓰여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더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많이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된 것인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4-11-2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입니다.

물만두 2004-11-2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에레혼 2004-11-2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두고 글 못 쓰게 하고 싶은 작가... ㅋㅋㅋ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그런 주제로 설문 조사해 봐도 아주 흥미로울 것 같은데 말이지요....

뭐, 이 소설에 관해서는 애초부터 별 흥미가 없었지만, 님의 리뷰로 아예 원천 봉쇄합니다!^^

물만두 2004-11-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에게 좀 미안하네요^^

눈보라콘 2004-1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판매가 부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목에 비해서 판매량이 낮길래 고민하다가 그냥 제목에 이끌려 읽고 리뷰 쓴 적 있는데 혹시나 햇는데 역시나 재미없더군요. 제목이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간초기에 올라온 긍정적 리뷰들은 아마도 알바리뷰가 아닌가 생각이 듦니다.

마태우스 2005-02-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리뷰에 전적으로 동감하옵니다. 그리고 cjwook님의 댓글에도 동감해요.

당면사리 2006-01-1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사전 정보없이 도서관에서 이 책이랑 '오시리스 살인사건' 이랑 빌렸는데, 저 이거 읽다 너무 화가 나서 집어쳤습니다!! 대체 뭐하자는 거야~~ 게다가 쥔공이 남자인줄은 한참 가다 알았지요.. 너무나 작위적인 냄새가 확확 풍기는 이런 소설.. 정말 실망예요.. 만두님 말처럼 제목에다 함부로 살인사건 이라 하지 말았음 좋겠어요... 이 책 버리고 읽은 "오시리스 살인사건", 재밌더라구요! 회사 오고 가다 이틀새 다 봤네요!

물만두 2006-01-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면사리님 그래서 말씀드렸건만요~ 그나마 오시리스 살인사건은 재미있어서 다행이지요^^
 
혜성 독일현대희곡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프레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희곡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고 본 희곡이라고는, 아니 시나리오였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전부인 내가 이 작품을 이해하기란 힘든 문제다.
노벨 문학상을 탄 노 작가가 죽었다는 라디오 방송이 나오는 화실에 죽었다던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면 임종을 그곳에서 맞이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목사도 그보다 먼저 죽고, 그가 바람을 피웠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집주인은 살인자가 되고 아들은 아버지가 물려줄 전 재산이 불에 태워졌다는 사실, 받을 인세가 없다는 사실에 쓰러진다. 화가의 아내는 화가를 떠나고 화가는 떠밀려 살해당하고 하지만 정작 죽고 싶은 작가는 죽지 않고 그의 젊은 아내마저 자살을 한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이야기일까...
인간의 존재 가치는 삶과 죽음, 그의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뿐이라는 것... 그것인가... 우리는 모두 허구 속에 살고 있지만 허구는 단지 허구일 뿐 그것은 죽음 속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란 말인지... 그래서 이제 현실을 직시하려는 작가만이 죽지 않고 삶이 허구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지... 죽지 않은 이는 화가 부인인데 그녀는 화가의 허구에서 빠져 나와서 떠나기 때문에 죽지 않은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읽기는 했지만 참 내가 이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을 작가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난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할 뿐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11-1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마음에 드는 리뷰입니다. 추천이오!

(그런데 물만두님 파트릭 쥐스킨트의 시나리오가 다 있어요?

제목이 확 끌리네요.)

물만두 2004-11-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 입니다...

로드무비 2004-11-1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보관함에 일단 집어넣었습니다.

고마워요, 물만두님.

물만두 2004-11-1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신 말씀을^^

BRINY 2004-11-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이해 못했다고 하시면서, 한권의 책에 대해 이 정도 글을 쓰실 수 있으시다니요.

물만두 2004-11-1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줄거리 좀 쓰고... 내가 생각한거랑 뒤에 쓰여 있는 해설이랑 짬뽕한겁니다... 연극을 알아야지요^^

놀자 2004-11-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 맘에 드네요~ㅎ

perky 2004-11-1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렌마트 소설책 한편과 희곡 두편을 읽어봤었는데요. 이 작가랑 저랑은 코드가 안맞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렌마트가 쓴 책들은 다 읽어보고 싶으니, 묘한 매력을 주는 작가이긴 한가 봅니다.^^;

물만두 2004-11-1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 좋죠 놀자님...

새벽별님 도전해 보세요^^

페키님(이렇게 부르는게 맞나요?) 뒤렌마트는 중독성이 강한 작갑니다. 제가 희곡까지 손을 댔으니... 다른 책 읽어보세요. 전 좋아하는 작갑니다^^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내가 제일 처음 아멜리 노통이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에 반해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완전히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을 읽을 당시 나는 <마스카라>라는 작품도 연이어 읽었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가면을 뜻한다는 데 있다. 물론 두 작품은 그 외의 공통점은 없다. 하지만 <마스카라>의 영향으로 난 이 작품을 좋게 볼 수 있었고 작가의 언어적 유희를 즐길 수 있었다.

제롬 앙귀스트가 테오도르 텍셀을 공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그것을 끝나는 간단한 작품이지만 이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살인과 살인자에 대한 추적이 있다. 그 추적이 내면에 쌓인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자신을 괴롭히지만 말이다. 누가 악마인가... 이 작품은 묻고 있다. 이 작품에서 누가 적인가... 누가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인가... 아멜리 노통은 여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도플갱어처럼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그것이 양심이라는 놈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적은 제롬인가, 테오도르인가...

위선과 거짓과 허영과 인간의 욕망을 인해 창출되는 어떤 변장술... 이것을 파두라는 <마스카라>라는 가면을 의미하는 직접적인 표현을 썼고 아멜리 노톨은 조금 더 은유적으로 화장법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 화장법과 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 근원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날 한 인간이 자신의 가식을 벗어버릴 때 만나게 되는 그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껍데기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이 작품은 아주 간단하고 짧으면서 심오하다. 철학적이면서 사실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작가가 그런 말장난을 하면서 주는 정확한 메시지와 그 놀라운 전달력은 작가의 필력이 대단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이제서 읽게 되었다는 약오름과 이제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작품이 이 작품만큼 재미있었다면 이 작가를 무척 좋아했겠지만 말장난도 한번이면 충분하고 감동도 한번이면 그만이다. 아멜리 노통의 글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래도 내가 다시 아멜리 노통을 찾을 리는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멜리 노통이 추리 소설을 쓰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리노 나츠오처럼 추리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좋은 추리 소설을 탄생시켰듯이 그녀 또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ldhand 2004-11-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의 건강법>이 나쁘지 않았던 저로서는, <적의 화장법>이 무척이나 관심가는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쌓여있는 추리 소설들로 인해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요.

물만두 2004-11-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럼 제가 또 스포일러성 글을 썼나요? 문제되면 지적해주세요. 이 책 좋습니다...

진/우맘 2004-11-0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의 화장법과 앙테크리스타만 읽으면 노통은 끝...!!!

물만두 2004-11-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노통 좋아하시는군요. 흠...

IshaGreen 2004-11-10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거 같던데요...

물만두 2004-11-10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요? 보고싶네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의 극단적 처방으로 삶에 대한 애착을 불러일으키려는 한 의사의 몰모트가 된 베로니카. 자살 미수로 정신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거기에서 만난 미친 사람들, 말없이 베로니카의 피아노 소리만 듣는 에뒤아르, 정신병 치료를 받다 유체 이탈을 경험한 재드카, 변호사였다가 패닉 신드롬으로 입원하게 된 마리아. 그들은 얼마 살지 못한다는 베로니카라는 젊은 여성을 보고 자신들의 삶의 여정을 새로 시작하려 한다. 그런데 왜 젊은 여자의 죽음은 안타까운가. 나이 든 여자의 죽은 당연한가.

인간의 머리 속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그 고정관념이라는 것, 편견이라는 것,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들 모두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미쳤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미쳤으니 모두가 정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가운데서도 더 미쳐 보이는 자는 왕따를 시키는 인간의 잔인함, 흉폭함은 이 작품을 읽으며 삶은 그래도 살만 한 것이다 라는 생각보다는 그래서 인간은 미친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이 재미있나? 재미없다. 이 책이 마음에 드나? 마음에 안 든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를 하도 떠들기에 한번 봤더니 왜 이 작가에게 열광하는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소수인 나는 미친 걸까...

정상이란 무엇인가. 내 삶은 무료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다. 그럼 됐지 정상일 필요는 없다. 모두 제 만족을 위해 사는 삶인데 그리 못사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 그런 사람들은 나를 안타깝게 여기리라. 이런 안타까움과 연민, 동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죽을 자는 죽고 살 자는 살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천지라는 것, 그 돌이 누군가가 아닌 내가 던지는 돌이 아닌 삶을 살았으면 한다. 베로니카야 죽던 말던... 돌 던지지 않는 인생을 삽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4-10-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 코엘료.. 저도 정말 이 작가의 인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연금술사'를 읽어봤을 때의 허무함이란...

물만두 2004-10-2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전 이 작품이 시리즈라 2권 더 샀답니다. 에휴...

하이드 2004-10-2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가 책 좋아하긴 하지만,
열광은 글쎄요. 마케팅의 승리지요.
하긴, 코엘료는 그나마 얇기라도 하지, 예전에 ' 남자'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을때도, 허무하긴 했지요. 그 책, 막 머리에 쥐나는 사회학 책이였거든요. 것도 독일인이 쓴;;

내가없는 이 안 2004-10-30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한 게요, 코에료는 분명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많은 알라디너들이 열광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 어디서 그렇게 그 사람 책을 사는 걸까요?
알라딘을 제외한 사람들? 클클. 새벽별님 너무 웃겼어요. ^^

물만두 2004-10-30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저 세 권 다 샀다니까요. 흑... 울고 싶어라...

무한대 2004-11-0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의 인기를 이해할수 없습니다. 베로니카를 보고는 어찌나 재미없고 실망했는지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코엘류... 인기 믿지 않는다니까요. 하여간 전 별로였어요.

물만두 2004-11-0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별로인 책을 시리즈라고 세 권이나 샀다구요. 피에트로 어쩌구하고 미스 프랭어쩌구하고요. ㅠ.ㅠ...

IshaGreen 2004-11-10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11분은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물만두 2004-11-10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유혹허지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