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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손바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나희덕의 시는 삶과 죽음 가운데 흐르는 강을 둘러 징검다리를 놓고 슬픔과, 후회, 소멸의 돌멩이들을 하나씩 밟아 건너는 느낌을 준다.
시인이란, 시인의 인생이란 슬픔 가득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도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일 뿐일텐데 어찌 그의 인생만이 슬픈 듯 시가 가슴을 베어 드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그의 시를 따뜻하다고 했는지...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따듯함이 아니라 회환 어린 눈물만을 보았다. 그렁그렁 금방 떨어져 뒹굴 것 같은 낱말들이 내 가슴속을 파고드는데 그래서 내 가슴이 젖어 스멀스멀 내 눈가를 적시려 하는데 어찌 그의 시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랴...
며칠 전 <는개>라는 말을 알았다. 안개보다 좀 짙다고 했다. <만년설 아래>라는 시 안에 그 단어가 들어 있었다.
산맥을 넘는 벌떼 같기도 하고
대륙을 건너는 모래바람 같기도 하고
저녁 마을에 내려앉는 는개 같기도 하다.
그 말이 시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의 기쁨을 빼면 마치 시인이 저 멀리서 "나는 슬프다, 나는 슬프다."하고 외치는 것 같아 귀를 막고 싶었다. 당신만 슬프면 되지 왜 나까지 슬프게 하냐고 순간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산다는 건 다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고, 슬프고 슬퍼져서 그 슬픔이 무뎌지고 그 슬픔이 참아지고 더 이상 쥐어짤 눈물이 사라지고 그런 뒤 그래도 슬퍼져 돌아보면 내 껍데기만이 남아 "너만 슬프냐, 나도 슬프다."하고 말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것을 보면서 누가 말하는 지도 모르고 내가 슬퍼 우는지, 네가 슬퍼 우는 지도 모른 체 떠날 날이 다가와도 다가온 줄 모르고 떠나 버려 또 한번 슬픔을 뿌리는 것이라고...
내가 시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 마는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 비슷한 느낌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누군들 안 슬펐겠냐고... 그러니 이제는 슬픔도 묻어 두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내뱉는 법을 알려줬으면 삼키는 법도 알려줘야지 하지 않겠나, 시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