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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숨 가쁘게 책 한 권을 읽고 난 뒤의 허탈함이라니... 세상의 모든 역사가들과 작가들은 절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주관적이고 자신들이 알고 경험한 것에만 바탕을 두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 이 작품의 가상역사가 그때 진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 한번 장마다 따져보자.
제1장에서의 유전자 혁명으로 대부분의 병이 치료되어 불치병이니 난치병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상역사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쓰는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또한 복제 인간이라던가, 안락사에 대한 얘기도 지금 논의되어 가는 이야기니 역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일 뿐이다.
제2장에서 핵전쟁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리라고 적은 것은 아주 약은 자기 기만적인 방법이었다. 왜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핵협상 때문에 연일 오르내리는 북한에서의 핵위협은 거짓인가? 아님 건드리기 애매한 상황이라 피해가고 안전한 쪽에서의 핵전쟁을 가상으로라도 일으키자는 속셈인가... 물론 이 지역은 오랜 분쟁지역이고 이 두 나라가 핵을 보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러시아도 핵보유국이다. 그럼 이들이 그들보다 우매하단 얘기 아닌가. 참으로 편리한 작가의 생각에 분노할 뿐이다.
제3장의 대혼란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붕괴도 있을 수 있다.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지금의 미국이 계속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뒷장에서 미국은 여전히 천년만년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혼란도 다른 누군가의 문제일 뿐이고 1929년의 미국 대공황 때처럼 잘 살 인간은 계속 잘 살 거라는 얘기 아닌가.
중국이 새로운 강자가 되리라는 건 지금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지는 해라는 것도.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계속 일본, 일본, 일본이다. 일본이 망한다며? 하지만 작가는 모순에 빠져 자기가 앞에 쓴 내용을 잊고 뒤는 새로 붙인 것 같다. 이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제4장과 5장은 별로 할 말도 없다. 전혀 생생하지도 않고 지금의 이야기를 연도만 바꾼 것 뿐이다. 마치 잘 쓴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편협함과 읽은 내 편협이 상충해서 열만 날 뿐이다. 한국이 20세기 내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그 짧은 한 줄에서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의 편협함과 서구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일본에 노동력이 딸려 북한 사람이 일하러 간다고? 남북은 통일되었는데 잘 살게 된 중국 놔두고? 또 일본은 한국에 마저 추월당한다며?
그러니까 이 작가들은 아무 것도 객관적으로 모르는 상태다.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남의 나라 역사에 참견하고 미래까지 참견하는 것이라면 역사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작가들은 이 책을 도대체 왜 쓴 것일까...
SF 소설을 읽어도 이것보다 잘 쓰인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21세기의 초에 우리는 2099년의 일을 알기는 어렵다. 그때까지 살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의 판도로 예측은 할 수 있다. 누구나 말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사실은 사실에 기초해서 써야 한다. 사실이 아니면 쓰질 말던가. 반성 없는 역사의식과 미래 예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에 대해 어떤 반성도 안하고 망하는 듯 하는 제스쳐만 쓰다 살아나고 아프리카와 남아시아는 여전히 궁핍하다. 아, 내 서평도 자제심을 잃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니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결국은 그래도 미국과 서방 선진국은 변함없이 잘 살리라가 이 책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가상역사가 아니라 자기들의 바람일 뿐이다. 이 책에 어떤 유토피아도 없다. 있다면 그들만의 유토피아일 뿐 지금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세상이 유토피아인가... 남아시아 지진 때 각국의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서로 지원금을 많이 내겠다고 공언했다.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진짜 가상이며 작가만의, 미국식 유토피아일 뿐이다.
요즘 한 드라마를 본다. 스물아홉의 여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열여덟로 기억이 후퇴한 이야기다. 그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인터넷이 아닌 PC통신을 얘기한다. 휴대전화는 사용해본 적도 없어 마치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단지 11년의 변화일 뿐인데 말이다. 1960년대 일본인이 예측한 200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을 그는 맞췄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과학적 변화의 나열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말하기 쉽지만 한 나라를 꼬집어 그 나라가 어떻게 되리라 말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만행이 사라질 때의 일이지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그냥 슬며시 들어갈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를 만들어라. 어차피 유토피아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니. 하지만 남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