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다. 나는 이 작가를 모른다. 또한 나는 산문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처음 몇 장을 읽고 울고 말았다. 이 작가가 어떤 작가든 상관없이, 이 책이 어떤 성격의 책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 작가가 먹을 밥이 없고 짐승들에게 나눠 줄 것이 없을 때 우리 엄마는 여름이면 쉰밥을 버리지 않고 물에 빨아 드셨다. 쉰밥을 물에 빤다는 것은 그 밥알을 물에 넣고 저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냄새가 진동하고 구정물 같은 색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았어도 쉰밥을 먹는다는 건 고역이다. 엄마는 구역질 한번하고 밥 한 숟갈 넘기고 다시 구역질하고를 반복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작가는 그런 시절을 보내 배가 부르면 답답하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배가 고프면 답답하다. 나는 그런 엄마 모습을 봐 그런가 싶고 엄마는 하도 굶고 못 먹을 거 먹어 그런 모양이다.

그 대목을 지나 망연자실 울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다시 책을 읽으니 작가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공염불인 것을 어쩌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밤길에 만나면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작가는 그래도 사람에게 희망을 걸지만 사람이 희망을 걸 만한 존재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언제나 사는 건 거짓말 같지. 참말 같으면 우리가 뭐 하러 살겠남. 사는 건 지겹고 거짓말 같아서 사는 거다. 혹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자신을 속이고, 두 번 자신을 속이고... 그렇게 살다 그냥 가는 거다. 산다는 게 별건가. 우리 같은 사람이나 사는 거를 따지지 언놈이 사는 걸 따지고 살간... 돈세기 바빠 그런 생각조차 않들 텐데. 우리만 신경 쓰는 거란 이 놈의 고질병... 죄수의 딜레마...

우리는 모두 죄수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은데 나와 너를 구분하고 서로를 믿지 못한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된다는 걸 우린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믿음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나를 누가 속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내가 속이자 하는 마음뿐이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자.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니... 모두가 죄수인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럼 어찌 살 것인가 묻는다면 그런 거 생각하고 살 일 있나...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하련다. 울 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의 연금이 죽은 뒤 장애인 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시니... 어쩌랴. 국가가 그래도 나를 죽이지는 않을 모양이니...

세상은 앞으로도 주욱 이 모양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 살던 어린 시절은 좋았다가도 나빴다가도 하며 기억 속을 맴돈다. 어쩌랴. 사람들이 사람 노릇 안하고 살겠다는데... 나는 그들을 못 막는다. 아무도 못 막는다. 지금도 우리가 뽑았다는 정부는 계속 문제만 터트리고 있다. 강남 땅값 잡겠다더니 그 잡는 인간이 땅 투기한 인간이었고 주미대사라는 사람의 문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도덕? 양심? 그거 없어진지 오래다. 말하자면 억장 무너지니 말하지 말자.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옛날 시집살이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면 끝났다던데 우리네 세상사는 택도 없는 일... 평생을 눈감고 귀 막고 입 틀어막고 살아도 가슴은 문드러진다. 그래도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해야 하는 나는 오늘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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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이 울면서 읽으셨다던 그 책이군요.. 글을 읽으니 저까지 눈물이 납니다..ㅠ.ㅠ

겨울 2005-04-2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어보고 싶은 산문집이네요. 펑펑 울고 싶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물만두 2005-04-2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장만 그래요. 그리고 제 사연이 오버랩된 거라서... 비숍님 글을 읽어보심이 좋을듯...

분홍달 2005-05-0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하네요...공선옥의 글은 그가 살아 낸 세월처럼 처절(?)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만두 2005-05-0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문집이라는 것이 살아온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이니까요...

진주 2005-05-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이 이 책을 손에 넣는 것부터 리뷰까지 적나라하게 보다보니 그만 나도 너무 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막상 읽으면 실망할까봐 미리 걱정이....

물만두 2005-05-0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야꼬... 언니...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에서 여행을 한다. 그것은 취향이기도 하고 또는 취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의 탐정이 다니던 거리를 다니는 여행을 할 것이다. 그가 갈 만한 식당, 그가 거닐만한 거리, 그가 들어감직한 교회...

언젠가 <다빈치 코드>를 읽고 이 책 들고 여행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나와 저자와의 간격은 크다.

스페인의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에서 혼자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의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 그도 영화 <페드라>를 생각했지만 그보다 순수한 음악적 감동으로 눈물을 흘린 반면 나의 상상은 이런 남자를 여행 중 만난다면 “흠... 페드라와 같은 사연이 있나보군.”하고 생각할 거라는 거였다.

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여행이란 철저하게 개인의 경험이다. 그 경험을 독자와 나누기란 쉽지 않고 난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사색기행인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기 여행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여행, 이런 생각, 이런 것을 알았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듣는다.

여행담이라기보다는 르뽀나 취재일기에 가까운 이 책을 다 읽고 저자에게 지금 그는 지금의 일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듣고 싶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대학생 때는 반핵, 원폭피해를 알리기 위해 애썼고, 뉴욕에서는 그 도시의 취약함을 알렸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한 인식도 있다. 그럼 지금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생각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관점에서 생각하고 인식하는 동물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습득하고 불리한 것은 버리는 약은 동물이다. 어떤 것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너무 오래전 쓴 글들의 옮김이라서 아쉽다. 이미 지난 이야기들의 나열은 과거로의 여행도 아니고 지난 잡지를 보는 듯한 느낌만을 줄 뿐이다.

저자는 어떤 곳을 가던 포인트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지독한 사견이 있은 듯 한 느낌이 들어 어떤 곳은 가감 없는 공평한 비판과 칭찬을 하는 반면 어떤 곳은 칭찬 일색이고 어떤 것은 이것도 사색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장도 있다.

두께에 비해 너무 쉽게 읽을 수 있어 놀랐고 읽은 뒤 이 책이 왜 출판되었는지가 의문이라 의아했고 그러면서 저자가 ‘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는 어떠냐?’라고 묻는 것 같아 일일이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며 놀랐다.

저자의 진면목은 모르겠지만 참 뻔뻔하고 당당한 인간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누군가 이런 글을 출판한다면, 글쎄 출판하려는 사람이 있을까도 의문이지만, 비판받기 딱 좋은 책인데 저자 이름으로 독특한 기행문의 형식 파괴로 생각되게 하니 이것도 또한 작가 브랜드 효과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 글도 그가 말한 <센티멘틸 저니>식 리뷰라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그건 내 꿈이고 이렇게 그냥 끝내련다. 할 말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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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5-04-2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드무비 2005-04-2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만두님의 이 리뷰. 추천!^^

물만두 2005-04-2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터라겐 2005-04-2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올리셨네요...에고 전 이제 ⅓ 읽었어요...무지 속도가 빠르십니다....저두 첫 리뷰니 만큼 추천 꾸욱~

물만두 2005-04-2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물만두 2005-04-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에 관련된 책이라는 말만 들으면 도망가기 바쁘고 어렵게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이라던가, 양자 역학 같은 얘기가 등장하면 ‘아, 머리 아파...’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지레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첫 장부터 달랐다. 작가의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에 전기가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독자가 하게 만든다.

만약 전기가 없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도 들을 수 없고, 티비도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요즘 가장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인터넷도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전기 회사를 퇴직하셨다. 아버지는 지금은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원자력 발전소 문제라던가,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기 없이 살아보라고 해. 요즘 전기 없이 만들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구.” 이러셨다. 과자를 먹을 때도 “그거 전기 없으면 못 만든다.” 이러셨다.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많은 과학자들이 전기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재미난 일화들과 함께 전기는, 역시 과학은 인간에게 양날검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전기로 인해 전쟁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고,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해짐에 따라 방사능오염이라는 문제가 생겨났다.

전기는 인간의 뇌에까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며 전기 없이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아기들을 구할 수 없음을 생각했다.

이 책은 재미있다. 지식의 전달만이 목적이 아닌 재미있는 과학사, 과학의 야사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플사의 베어 먹은 듯한 사과모양의 로고는 튜링이 자살한 당시의 상황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또한 작가는 와트를 전기 요금 고지서의 수호성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재치만점의 작가다.

그러면서 뒤에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해 따로 장을 마련해서 언급한 사람들의 말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전기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이 그 장을 배우기 전에 읽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재미있게 과학자들에 대해, 그들의 야사를 먼저 읽은 다음 호기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배우면 전혀 지루해하지 않을 듯싶다.

나는 패러데이가 등장하는 장에서 즉시 패러데이의 법칙을 생각해 냈다. 물론 이건 우리 시대 주입식 교육의 성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법칙이 뭔지 기억할 수는 없었다. 플레밍의 왼손법칙과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책과 함께 배운다면 과학이 가장 싫어하는 분야가 아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쉽다면 이런 책이 우리나라 작가에 의해 쓰여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재미있는 책을 출판해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남의 나라 작가의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 해도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디 다음번에는 우리 작가가 쓴 재미있는 과학 서적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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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4-0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벌써 다읽으셨어요..
전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물만두 2005-04-0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는 빨리 읽고 리뷰는 엉망입니다 ㅠ.ㅠ

비연 2005-04-0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빨랑 읽기 시작(흑) 해야죠..

물만두 2005-04-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창피스러라 ㅠ.ㅠ

바람구두 2005-04-1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팍팍 느끼게 해주시네요. 추천해요. 지존...

물만두 2005-04-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
 
평범에 바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31
이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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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이다. 시인은 평범에 바친다했다. 무엇을.... 그녀의 후회와 욕망과 허무와 잡다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그런 평범한 시어들의 나열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평범이 결코 만만한 평범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말한다. 배설과 늙음과 죽음과 일상의 지겨움에 대해... 그것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냉장고는 냉장고일 뿐이고 오징어는 오물거리이고 사과는 사각거리는 존재일 뿐이다. 그 안에서 나는 다정한 일상의 오붓함을 본다. 시가 언제나 고통일 필요는 없다. 시인은 고통스럽겠지만 독자마저 고통을 당하고 오물을 뒤집어쓸 이유가 무엇인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우리가 매일 겪는 일들이 시인에게는 시가 되고 우리에게는 일상이 된다. 반복되는 어제속의 오늘과 나무늘보 같은 생을 마감하게 될 우리에게 시인은 참 다정하다. 아니 적나라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주먹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시인은 마치 거창한 무엇인가를 품은 냥 주먹을 꽉 쥔 채 결코 그 주먹을 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알려주지 않고 독자를 애 닳게 한다. 때론 화나게도 한다. 하지만 이 시인은 솔직하게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없음이 결코 없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일상이 그저 일상이지 않다는 것이 시인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누군가는 삶은 그저 평범의 연속이라고 말하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 모든 색은 자신이 거부하는 색을 띤다. - 그렇다면 평범은 비범을 띤 색이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한 나날들인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해준 간단명료한 시인의 시들... 맘에 든다.

마지막으로 자식의 커감이 애틋한 시인이여... 부디 스물일곱 평의 집에 살더라도 오래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한 독자가 당신에게 바치는 평범한 부탁을 부디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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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숨 가쁘게 책 한 권을 읽고 난 뒤의 허탈함이라니... 세상의 모든 역사가들과 작가들은 절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주관적이고 자신들이 알고 경험한 것에만 바탕을 두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 이 작품의 가상역사가 그때 진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 한번 장마다 따져보자.

제1장에서의 유전자 혁명으로 대부분의 병이 치료되어 불치병이니 난치병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상역사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쓰는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또한 복제 인간이라던가, 안락사에 대한 얘기도 지금 논의되어 가는 이야기니 역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일 뿐이다.

제2장에서 핵전쟁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리라고 적은 것은 아주 약은 자기 기만적인 방법이었다. 왜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핵협상 때문에 연일 오르내리는 북한에서의 핵위협은 거짓인가? 아님 건드리기 애매한 상황이라 피해가고 안전한 쪽에서의 핵전쟁을 가상으로라도 일으키자는 속셈인가... 물론 이 지역은 오랜 분쟁지역이고 이 두 나라가 핵을 보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러시아도 핵보유국이다. 그럼 이들이 그들보다 우매하단 얘기 아닌가. 참으로 편리한 작가의 생각에 분노할 뿐이다.

제3장의 대혼란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붕괴도 있을 수 있다.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지금의 미국이 계속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뒷장에서 미국은 여전히 천년만년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혼란도 다른 누군가의 문제일 뿐이고 1929년의 미국 대공황 때처럼 잘 살 인간은 계속 잘 살 거라는 얘기 아닌가.

중국이 새로운 강자가 되리라는 건 지금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지는 해라는 것도.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계속 일본, 일본, 일본이다. 일본이 망한다며? 하지만 작가는 모순에 빠져 자기가 앞에 쓴 내용을 잊고 뒤는 새로 붙인 것 같다. 이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제4장과 5장은 별로 할 말도 없다. 전혀 생생하지도 않고 지금의 이야기를 연도만 바꾼 것  뿐이다. 마치 잘 쓴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편협함과 읽은 내 편협이 상충해서 열만 날 뿐이다. 한국이 20세기 내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그 짧은 한 줄에서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의 편협함과 서구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일본에 노동력이 딸려 북한 사람이 일하러 간다고? 남북은 통일되었는데 잘 살게 된 중국 놔두고? 또 일본은 한국에 마저 추월당한다며?

그러니까 이 작가들은 아무 것도 객관적으로 모르는 상태다.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남의 나라 역사에 참견하고 미래까지 참견하는 것이라면 역사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작가들은 이 책을 도대체 왜 쓴 것일까...

SF 소설을 읽어도 이것보다 잘 쓰인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21세기의 초에 우리는 2099년의 일을 알기는 어렵다. 그때까지 살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의 판도로 예측은 할 수 있다. 누구나 말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사실은 사실에 기초해서 써야 한다. 사실이 아니면 쓰질 말던가. 반성 없는 역사의식과 미래 예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에 대해 어떤 반성도 안하고 망하는 듯 하는 제스쳐만 쓰다 살아나고 아프리카와 남아시아는 여전히 궁핍하다. 아, 내 서평도 자제심을 잃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니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결국은 그래도 미국과 서방 선진국은 변함없이 잘 살리라가 이 책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가상역사가 아니라 자기들의 바람일 뿐이다. 이 책에 어떤 유토피아도 없다. 있다면 그들만의 유토피아일 뿐 지금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세상이 유토피아인가... 남아시아 지진 때 각국의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서로 지원금을 많이 내겠다고 공언했다.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진짜 가상이며 작가만의, 미국식 유토피아일 뿐이다.

요즘 한 드라마를 본다. 스물아홉의 여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열여덟로 기억이 후퇴한 이야기다. 그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인터넷이 아닌 PC통신을 얘기한다. 휴대전화는 사용해본 적도 없어 마치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단지 11년의 변화일 뿐인데 말이다. 1960년대 일본인이 예측한 200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을 그는 맞췄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과학적 변화의 나열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말하기 쉽지만 한 나라를 꼬집어 그 나라가 어떻게 되리라 말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만행이 사라질 때의 일이지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그냥 슬며시 들어갈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를 만들어라. 어차피 유토피아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니. 하지만 남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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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3-3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이거 읽고 리뷰 써야 하는데...책만 받아 놓고 까먹고 있었네요...하아 - -;;;

물만두 2005-03-3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읽다 화나 죽을뻔 했습니다 ㅠ.ㅠ 괜히 돈에 눈이 멀어 안보던 책 봐서 그런가봐요. 다신 그러지 말리라 다짐합니다...

마냐 2005-04-0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물만두님, 화 풀리셨나요? 쩝.

물만두 2005-04-0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그런데 또 다른책을 신청했습니다 ㅠ.ㅠ 아무래도 책만 보면이상해지는것 같아요. 그리고 이 서평도 맘에 안들어요. 다시 쓰기 구찮아 내비두는데 너무 사견이 들어간 것 같아요 ㅠ.ㅠ

인지 2005-04-0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사 볼까 했었는데.. 물만두님 리뷰 안 읽었으면 큰일날뻔 했네용~ 감사!^^;사진 말고 어디서 빌려 봐야겠어요. 어디까지 엄청나게 이상할지 기대됩니다..

물만두 2005-04-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다른 분 리뷰도 보세요. 재미있다는 분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