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한화 - 한국미술사 외사
진홍섭 지음 / 대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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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를 추적하는 기본 자료는 역시 정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삼국유사와 같은 야사나 외사가 역사에서의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음에도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다. 그 이유는 정사에 기록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 할것인데 정사에만 치우치다보면 그 뒷이야기를 모르고 넘어가며, 단지 정사에 담긴 내용만 머릿속에 남게 된다. 저자는 미술사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외사를 집대성하여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묵재한화(默齋閑話)라는 제목은 저자 진홍섭의 호인 수묵(樹默)의 서재속에서 저자가 관련하였던 학문인 미술사의 조금은 허허로운 뒷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으로 이해를 할 수 있다.

  저자 진홍섭은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다. 우리 미술사학계의 1.5세대 정도로 오랜동안 우리 문화재와 미술사학에 종사하며 후학 양성과 문화재 조사에 몸바쳐 왔던 분으로 그동안 접했던 많은 미술사학적 내용중에서 잘 다루지 않고 넘어갔던 외사 부분에 대하여 대학에서 강의하던 자료를 수정하여 엮은것인데 모두 26편의 제각기 다른 주제를 정사와 외사를 기초로 하여 새롭게 해석을 하고 있어 전공을 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되면서도 전공으로 삼지 않는 일반 독자라 할지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신라의 대찰이었던 영묘사에 관한 추적으로 그 영묘사라는 절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러가지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유추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어디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는것을 유보하며 '다만 영묘사에는 3층 목탑이 있었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구태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학설이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정사에 치우쳐 넘어갔던 바깥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물론 미술사학적 접근에 의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의 일화나 선묘와 의상과의 로멘스등 우리 역사속에 오르내렸던 인물에 대한 가십도 담고 있다. 뿐만아니라 건축물이나 왕실에 관한 이야기등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외사와 관련된 문헌자료를 제시하며 새롭게 인식하기를 저자는 바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평생 몸담았던 미술사학의 대상이 되는 문화재의 파손과 훼손에 대한  경위를  외사속에서 찾아내어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도리사 금동사리함'의 경우처럼 미술사학적 고찰을 거쳐 밝혔어야 함에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던 우리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고 있어 노학자이며 선배로서 자신이 다하지 못했던 일에 대하여 후학들이 무엇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방대하게 인용된 각종 문헌의 양에 놀라게 된다. 저자의 설명처럼 관련 자료를 집성하다보니 정사뿐만 아니라 외사나 야사의 내용도 접하게 되었을지 모르나 이러한 외사나 야사가 실증사료인 문화재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제목이야 '한담'이라고 하였으나 실은 미술사학의 뒷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한 내용으로 정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잇는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문화재를 분석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아무래도 학문적 자취를 바탕으로 하여서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쉽다고 할 수 없으나 문화재에 관하여 조금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특별히 어렵지는 않으리라고 보여진다. 딱딱하다고 여겨지는 미술사학에 관한 다양한 접근중 이렇게 외사나 야사를 통한 접근은 그 내용을 받아들임에 있어 훨씬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노학자의 말 처럼 이 책을 통하여 우리 선조의 고귀한 정신과 문화재의 소중함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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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서 다비까지
병진 지음 / 문이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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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하나 만드는것이 결코 쉽지 않다. 원고가 마련이 되어도 책의 구성을 논해야 하고, 차례와 순서를 정하는 일도 그리 만만한 일이 못된다. 그런데도 어느 스님의 지독한 열정으로 200여 페이지의 책이 단 보름만에 만들어져 출간이 되었으니, 어찌 인간의 하고자 하는 의지를 막을 수 있을소냐....

  이 책은 불교의 종단중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의 종정(宗正) 혜암(慧菴) 대종사의 급작스러운 열반 소식을 접하고 해인사로 달려간 한 스님이 열반이후부터 다비까지의 각종 장의진행 절차를 사진으로 담은 것으로 일반인들은 다비(茶毘)라는 장의 절차를 본다는것은 힘든 일이며, 불교에서도 위대한 스님이 아닌 보통 스님의 열반시에는 일반 절차에 따르지만 나름대로 소위 고승이라고 불리는 스님들의 열반시에는 대규모의 장례행사를 치루는데 혜암 큰스님도 불교계의 고승으로 대규모의 장례를 치루게 되었으며, 이런 대규모의 장의 행사를 '병진'스님이 사진으로 찍고 글을 써서 출간한 것으로 장례의 준비단계부터 사진이라는 기계로 다비까지의 7일간을 기록한 자료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다비'의식의 절차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열반이란 '생'과 '사'의 인연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혜암 큰스님은 2001년 마지막날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오전 10시 가야산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모습속에 열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장의 준비가 시작된다.  이 책에는 제 1장에서 생전의 혜암스님이 정진하던 거소를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는  제 2장은 혜암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해인총림으로 모여드는 스님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해인사는 불법인 대장경을 모신곳으로 法寶寺刹로 수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을 닦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기에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그늘을 찾듯 그들은 서둘러 거룩한 스승이 계시던 해인사를 찾는 것인데, 이런 제자들의 귀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상좌 스님들이 호주의 역할을 하고 제방의 스님들은 절간에 발을 들여 놓기가 무섭게 분향소를 찾아 예를 갖춘다.

 제 3장은 '산자와 사자의 공양'으로 절간을 찾는 많은 스님들을 비롯한 조문객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의 상차림과 특별히 다를것이 없으나 산중 사찰에서의 식사는 그 절차나 분위기마저도 엄숙하다. '병진'스님은 이런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 4장은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는 장례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과 그 분주함 속에서의 정성스러움을 구석진 곳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록하고 있다. 명정과 만장을 써야하고 대나무로 만장의 깃대를 만들어 세워야 하며, 한편에서는 영결식장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직 극락으로 가는 배를 만들지 못했음에도 망자는 어찌 그리 편안하고 즐겁게 잠 만 자고 있는가? 꽃으로 장식된 상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 5장은 '연꽃으로 피어난 다비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다비단이란 열반한 스님의 사체를 불태우는 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비단의 제작은 지극정성을 들이기에 일반 공개를 하지 않는데 저자인 '병진'스님은 한마디로 스님이라는 직권을 남용하여 다비단의 제작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다비단의 제작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겉으로 보아서는 연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이용하는 장제장의 형태를 모두 갖추어 연꽃속에 숨겨야만 다비가 가능하기에 연꽃속에는 우선 장작이 차곡차곡 쌓인다. 다비중에 불붙은 나무가 흐트러지지 않게 굵은 철사로 영글게 묶으며, 그 나머지 공간은 나비장으로 틈새가 없게 만든다. 마른 나무는 안쪽에 숯과 같이 넣고 바깥쪽은 젖은 나무로 나무 광(壙)을 만들고 그 촘촘히 쌓인 나무 광 둘레에 이엉을 잇는다. 이엉을 이은 후에는 온통 흰 천으로 뒤덮어 하얀 남골당을 만들고 그 바깥쪽 아랫부분부터 수십만개에 이르는 연잎을 하나 하나 일일히 풀칠하고 붙여가며 하나의 커다란 연꽃이 만들어질 때 드디어 다비를 위한 연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제 6장은 '영결식'편으로 고인이 살아있는 사람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절차입니다. 평시에 혜암스님은 장례행렬에서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1사람의 산 사람을 따라가노라"고 하였는데 정말, 한 사람의 죽은 자를 위하여 누가 망자이고 누가 살아있는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영결식이 치뤄진다. 제 7장은 '누가 불타는 집에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다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은 항상 불타고 있으며 그 대들은 항상 암흑속에 있으면서 왜 빛을 구하려 하지 않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다비는 죽은자의 무덤을 불태우는 것으로 불길이 다으면 죽은자의 집은 화택(火宅)으로 변한다. 그 불길의 날름거림은 하늘로...하늘로 올라 텅빈 공간속으로 사라진다. 그러기에 스님들은 '無'를 말하며 평생을 '空'으로 사는가?

  달도 자고, 바람도 자고 밤이 깊어가면 이제는 하나 둘 산문을 찾았던 조문객들도 성긴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먼 길을 돌아간다. 신 새벽이 다가오면 다비단은 마지막 불길로 길게 용트림을 한다. 아침이 밝아오면 사그라진 다비단 속에서 스님이 남긴것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사리(舍利)다. 부처의 다비후 8만 4천개나 나왔다는 영롱한 사리는 살아 생전 스님이 불심을 마음속에 새기며 정진한 결실이라던가?  평소에 인간으로 태어나 사바세계에서 보여주던 혜암스님의 모습이 아닌 참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리라....

  이렇게 7일간의 장의는 끝났다. 이 책의 뒤쪽에는 영결식 자료인 열반송과 추도사, 그리고 영결식 절차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이지 않다. 돌아가신 큰 스님의 장례절차와 이러이러한 추도사가 있었다는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만든 '병진'스님은 한 마디로 대단하다. 스님으로서 "장례의식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보기 드문 절집의 장례과정을 담은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동안 몇 분의 큰 스님들이 열반에 드셨음에도 이런 세세한 모습을 담은 자료집은 없었다. 이 책이 특별하게 잘 만들어졌다거나 일반인의 시각에서 관심을 끌만한 대목은 하나도 없으나 절집 식구들에게는 말로만 들어오던 큰 스님의 다비의식을 한권의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며, 겸하여 우리 문화의 오랜 영역을 차지하며 면면히 내려오는 불교의 다비의식을 기록으로 남겼다는데 그 가치와 의의를 찾는다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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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2004-11-0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진스님께서 여러면에서 대단한 스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군요. 다비식 사진도 수준급이시구, 내용도 볼만하더군요. 제가 가까이에서 자주 뵙기 때문에 저역시 병진스님의 화승으로서의 그릇을 알고 있답니다.

미술사나 미학에 대한 부분에 일반인학자(교수들)보다 넓은 식견을 가지고 계신분이시기도 하죠. 오늘도 아름다운(미)에 대한 토론에서 기염을 토하셨답니다.

동서미학과 미술사를 모두 섭렵하시고 승려로서 경에대학 지식까지 해박하시니 아름다움(미)의식에 대한 명쾌한 답을 쉽게 끌어내시더군요. 오늘의 한마디는 미술계를 이끌어나가는 선각자들의 존재경향적 관념(제행무상)에 의해 아름다움이 가꾸어 진다면서 우현 고유섭선생님도 미에대한 정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는 말로 결론을 대신했답니다.

수수께끼 2004-11-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제자 가섭에게 변을 가르키시며 '저것이 무엇인가?'를 물으셨고 제자의 모른다는 물은에 "꽃이로다"는 말로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병진스님의 미에 대한 결론은 단순한 선념적 사고에서의 판단으로 보여지며 각양각색의 주관속에서 미의 기준 또한 각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획일화 될 수 없는 것이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현선생은 섣불리 미에 대한 결론을 단정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미의 본질이 네가 주장하는 미의 본질과 다를것임에 섣불리 내가 미의 개념을 정념하는것은 너의 미적 개념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다"는 말에서 처럼 미란 선각자들이나 예술가의 관념적 접근과는 다른것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다만, 미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하므로써 개념의 혼란과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미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외재된 형태미를 통한 내재적 잠재미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답을 논할수는 없으나, 자칫 남의 미에 대한 관점과 관념속에 스스로의 미에 대한 개념이 와해되고 있지 않은가를 경계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수련 2004-11-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이 있을리 있겠습니까? 미 라는 한자어 자체가 추상적 이 잖아요~~미술을 그리고 미술을 가르쳐도 미는 동그라미예요.
 
영혼의 여정 - 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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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집을 찾으면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채를 제외한 모든 불당(佛堂)에는 불화가 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등장인물도 매우 다양하여 어지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알록달록한 그림이라 치부하고 지나쳐버리기 딱 알맞습니다.  더구나 신도가 아닌 관광객으로 사찰을 방문하는 이교도들의 눈에는 마치도 무당집으로만 비쳐질 것이다.

 이 책은 2003년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전시되었던 불화전의 도록이다. 양산 통도사와 김천 직지사의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이던 불화들과 남장사, 해국사의 불화,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중이던 불화중에서 조선시대의 불화를 전시하며 "영혼의 여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불화를 "영혼의 여정"이라고 이름붙인것은 불교적 교리의 '윤회'의 의미를 말하기도 하지만, 불화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세계를 한 마디로 정의한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죽음이란 또 다른 삶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그 광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 즉 저승사자에 의하여 이승에서 심판을 받으며 업보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불화에 담고 있으며 가장 성스러운 탄생인 연화생(蓮花生)의 모습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도록중 도판은  '지옥' , '극락을 향하여','수행과 염원'이라는 세 개의 소주제로 나누고 있으며 논고로는 김승희, 정명희, 문동수, 천주현 등의 불화에 대한 연구 논문과 보존처리 조사보고서가 첨부되어 있다. '지옥'편에서는 인간이 이승을 떠나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저승세계의 왕들에게 나가서 살아생전의 업보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 죄중에 따라 다양한 처벌을 받는다. 지옥에는 10명의 왕이 있어 이 왕들 앞에서 죄질에 따라 문초를 당하며 이승에서의 업보에 따르는 고초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절차를 묘사한 불화가 바로 시왕탱(十王幀)이다. 이 시왕탱화는 모두 10명의 왕이 벌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벌을 받는 인간의 모습은 제각각의 형벌대에서 고통과 낙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화는 현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나쁜 업보를 쌓으면 죽어서도 무서운 형벌을 받으니 착한 일을 하라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극락을 향하여'편에는 '지옥'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구제된 인간이 극락을 향하여 자력과 타력의 수행을 통하여 화엄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갖는 원융(圓融)의 상징적 체계로 나타나며 지옥과 극락이 분리된 세계가 아닌 하나의 여정임을 감로탱(甘露幀)을 통해서 알수 있다. 이 불화는 영혼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로탱에는 여래와 보살, 지장과 관세음보살등 구제와 관련이 있는 불보살들이  영혼을 맞이하며 영혼의 여정을 이끄는 불보살의 주변에는 긴 구름의 꼬리가 하늘로 뻗어 천상의 세계, 극락정토에서 하강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지옥과 지상, 천상은 하나의 유기적인 순환체라는 것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감로탱에서는 구제와 자비를 수행하는 불보살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감로,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르면 어떤 대상에 대한 구별이 없는 만인평등의 구제임을 나타내고 있다.

 '수행과 염원'에는 인간의 윤회를 마무리 짓는 극락정토에서의 안착을 위한 수행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수행의 길은 모든 업보를 참회하고 고집멸도(苦集滅道)를 깨달아가는 어렵고도 먼 길을 그리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죽은자의 여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으로의 인도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찰에 불화를 모셨다. 이렇게 하므로써 망자가 지옥으로부터 구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물로 불화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도록의 도판은 우선은 전체 사진을 싣고, 중요한 세부 사진은 확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도록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여건의 제한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불화를 감상함에 있어 그 세부 묘사에 대한 자세한 감상은 필수조건임에도 도록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만남이라는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세부묘사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지옥도는 인간의 형벌모습을 확대하여 담고 있다.

 券末부록에는 불화의 아랫쪽에  명기된 화기(畵記: 화기에는 누구를 위하여 누구의 발원에 의하여 초본은 누가 그리고 화공은 누구였으며, 언제 그렸다는것 등등이 담겨있다)를 싣고 있는데 이 화기는 불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작자를 알 수 있는것은 물론이고 왜 불화를 그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은 화승(畵僧)의 계보를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비록 전시회는 한 달 남짓으로 끝났고 불화는 원래 불화가 걸려있던 사찰에 가면 다시 볼 수 있게되었지만 불화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도록이지만 절간에 걸려있는 불화에 대한 대략적인 조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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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수원 용주사로 탱화기행을 갔어요. 원래는 브라이언 배리 선생님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만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문외한끼리 코끼리 다리 더듬느라 우스웠지요. 그러고보니 용주사 탱화가 김홍도 작이냐 아니냐에 대한 님의 의견도 듣고 싶네요.

수수께끼 2004-11-11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주사 후불탱화는 양분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탱화 기법은 일반적인 동양화와는 다소 다른데 용주사 탱화가 서양화와 같은 음영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 운운합니다. 탱화의 아랫부분에 보면 중앙에 붉게 경명주사로 마련된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화기(畵記)를 기록합니다. 화기는 그림을 완성하고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발미'라고도 합니다만, 이 탱화는 발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탱화의 기법은 소위 보카시기법(태서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얼굴 표현등을 입체감이 살도록 한 그림인데, 그림의 잘잘못이나 또는 교리상의 도상형식이 맞는가 보다는 주로 김홍도의 작품이 맞다...틀리다로 논쟁이 일지요... 참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화가는 어떤 그림에서 "평생 단 한번"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소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단 한편만 남을 수 있지만 그림은 유사한 여러 그림을 그려야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탱화는 저로서는 딱 잘라 김홍도의 그림이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양식이나 접근방법에서 전혀 김홍도의 작품세계를 접할 수 없음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일반 기록(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나타난 내용을 확대해석하여 김홍도의 그림으로 판단하는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김홍도를 용주사에 머물게 하였고, 또 "부모은중경"을 그리고 목판에 새긴것은 사실이나 김홍도의 감독하에 조성된 탱화가 반드시 김홍도가 그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 관해서는 1편의 논문도 있는데 잘 모르고 논문을 본 분들은 김홍도의 그림으로....그러나 탱화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들은 아닌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을 첨언합니다...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진것은 대웅전 바로 뒷편의 시방칠등각에 있는 3개의 탱화중 가운데 탱화도 있는데 화법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답니다......답변이 되었는지요?

수련 2004-11-1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화작품은 어느것을 막론하고 한사람이 그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시 조선시대는 주로 궁실화가들이 왕실원찰의 탱화를 그렸습니다. 그 당시에 김홍도 역시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중의 높은 직책에 있었던 한사람으로서 용주사 후불도제작시 도편수로서 탱화의 일부를 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조선시대와 구할말의 모든탱화들이 화승들이나 도화서 화원들의 팀웍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제 의견으로는 김홍도가 용주사 후불탱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고 도편수로서 작품제작의 감독정도로 도화서의 합동작이였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불화제작에 임하는 사람들은 각기 재능에 따라 초를 잘내는 사람, 바름질을 잘하는 사람, 영락을 잘꾸미는는 사람 등 이 있었고 현재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수수깨끼님께서 말씀하신 딱잘라라는 말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군요.

하지만 화기가 없으니 모든 말들은 추측에 불과하겠죠.

수수께끼 2004-11-1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화 제작에 있어 말씀하셨듯이 화기의 연화질에 기록된것과 같이 많은 화승이나 화원이 그리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의외로 한분이 제작한 탱화가 많이 있습니다. 금호당 약효스님도 그랬고, 정연스님도 혼자서 제작하신 작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보응도 마찬가지입니다.이런 내용은 "한국의 불화" 전집의 뒷편에 있는 화기편을 자세히 읽어보신다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또 1800년대에 활동하셨던 홍안스님은 대부분의 작품을 혼자 그리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라기보다는 탱화를 작업하시는분들의 성향도 불화를 제작함에 있어 많이 좌우된듯 보이며, 저같은 경우라도 혼자 제작을 할 것입니다.왜냐하면 단순히 그리기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교리적 내용을 녹아들게 하려면 자신이 불화 제작의 기능을 가졌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구태어 빌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김홍도는 용주사의 탱화제작에서 총책임을 맡았는데(이럴때는 도편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편수는 영화 감독 같은 것이고 용주사에서의 김홍도의 역할은 제작자...정도입니다) 다만 책임을 맡았을 뿐이며 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실 화원의 특성상 "단원"이라는 낙관이 들어가는것은 필수임에도 화기조차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이 김홍도의 작품이라는데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서양의 기법 운운하지만 실제 그 당시에 바름질이라는 태서법이 들어왔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인하여 현재 용주사 탱화의 제작시기마저도 모호한 입장이며 일부에서는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시대에 변화나 발전의 과정을 보이지 않으며 유일하게 나타나는 형태나 양식을 그 시대의 작품으로 평가한다는것은 상당한 위험을 가져오기에 용주사의 후불탱화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어 그냥 김홍도가 그렸다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은중경'은 분명히 왕의 분부를 받들어 그렸고, 목판에는 다른 목공장이 각인을 하였기에 김홍도의 작품과 다를바가 없다 할것이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김홍도는 밑그림을 그린 것이며, 판각은 목조각장이 한것으로 구분을 해야 할것입니다.

balmas 2004-11-1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주문하려고 봤더니 품절이네요.

다른 데서 주문해야지 ...

수수께끼 2004-11-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발마스님...제가 말씀드린대로 제가 읽는 책은 그리 많이 팔리지를 않나봅니다. 몇 권 가져다 놓았다가 팔리면 그만이고 그런 책들인지 번번히 발마스님이 찾으시는 책은 없군요...제가 그 빌미를 제공했으니 구해서라도 드려야 하는데...거참...문제네요...

조선인 2004-11-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와봤더니 이처럼 자세한 이야기가 논해지고 있군요. 김홍도작이냐 아니냐라는 지엽적인 궁금증을 가진게 무색해집니다. 사실 용주사 기행은 여러 모로 속상한 경험이었습니다. 회사일로 차일피일 미룬게 벌써 1달이 다 되어가네요. 후기 올리면 꼭 한말씀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

참, 발마스님, 지난달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팔고 있는 걸 본 적 있어요. 알라딘이나 웬만한 서점에서 다 품절로 나오는 도록도 박물관에서는 꽤 찾아볼 수 있더군요.

수수께끼 2004-11-1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중앙박물관이 폐관을 했기에 차라리 국립민속박물관에 가시면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김홍도는 당시 화원의 수장으로 '화성능행도'등을 제작하기 위하여 정조를 따라 융건릉에 자주 갔었습니다. 역대 조선의 임금중 가장 많이 화원들을 활용하여 그림을 남긴 임금이 정조임금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한달에 일곱차례나 화성에 행차를 했던적이 있었다 하니 그 수 차례의 능행을 보고 그림을 그린 왕궁 화원의 노력으로 "화성능행도"가 만들어진것입니다. 김홍도作이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단지 화원이라고 해서 불화를 그리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겠으나 한편으로는 화원이기에 불화를 그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것은 왕의 발원에 의하여 그린 불화에는 발미(화기)가 반드시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그 내용중에는 왕의 발원에 의하여 그렸다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불화중에는 임금, 또는 왕비나 대왕대비의 발원에 의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모은중경"의 판본에도 누가 그리고 누가 판각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어 김홍도가 그렸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새겨진 글씨의 서체로 보아서는 김홍도의 필체로 판단이 되기에 김홍도가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이런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대웅보전의 후불탱화가 수차례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되지 못하였으며 "부모은중경판" 또한 국가지정문화재에 등재되지 못하고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선인 2004-1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 그건 좀 이상하네요. 김홍도작이어야만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화원의 그림이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예술적 완성도 이외에도 그런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니 몰랐습니다.

수수께끼 2004-11-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오해의 소지를 남긴것 같군요.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 2조의 정의에는 "자연적,인위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큰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회화는 제1항에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큰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로 유형문화재로 명시되어 있습니다.또한 국보로 지정되기 위한 위원회의 규정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문화재위원회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의 등재여부를 결정합니다. 물론, 결정전에는 문화재 조사위원의 선행조사와 문화재전문위원의 학술적 조사를 거치게 됩니다.

용주사의 후불탱화는 기법상에 있어서는 다른 불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색은 갖추고 있으나 제작시기나 제작자 등등 제반 요건을 갗추지 못했기에 지정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안성의 '쌍미륵사'라는 사찰에 고려초에 제작된것으로 여겨지는 미륵불 2개가 있는데 보물 지정을 위한 여러차례의 위원회가 개최되었었으나 계속 보류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명확한 문헌자료가 없어 소홀히 그 형태나 양식만으로는 지정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그 사찰에도 다녀왔습니다만, 이 사찰은 미륵불을 주불로 하는 '법상종'의 본사인만큼 미륵불에 대한 가치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두 개의 미륵불에 대한 조사를 제가 했었기에 저도 지정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김홍도가 그려야만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것은 아니며 국가지정문화재의 요건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예전의 '별황자총통'의 경우처럼 잘못 지정하여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조선인 2004-11-1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 설명 잘 들었습니다.

balmas 2004-11-1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수수께끼님, 조선인님, 이 책을 다른 서점에서 구입했답니다.

그런데, ㅋㅋㅋ 책 맨 앞에 나온 저승사자 그림을 보고 너무 웃었어요. 저승사자 콧구멍에 삐져나온 코털들을 봤기 때문이죠. 다른 그림들에는 없는데, 유난히 저승사자 그림에만 코털들이 그려져 있네요. 저승사자가 너무 바빠서 코털 소제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다른 심오한(??) 뜻이 있는 건가요?^^

정말 지엽적인 질문이라, 좀 쑥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수수께끼 2004-11-1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지옥도에서 인간을 붙잡아 10대왕 앞에 꿇어 앉히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가 다소 무섭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10왕탱을 보다보면 여러가지 형벌의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육시를 하는 장면과 뜨거운 기름솥에 들어가서 고초를 당하는 장면, 침이 돋아난 벌판에서 뱀에게 쫒기는 장면 등등 인간이 이승에서 저지를 죗가를 받는 장면은 매우 다양합니다. 말씀하신 저승사자의 콧털은 저 자신도 별도로 연구를 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다소 당황을 하게 되는데 제 생각에는 콧털의 의미는 다소 과격하고 무식한 이미지의 상징이 아닌가 합니다. 적어도 저승사자라면 이승에서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선비처럼 얌전한 모습이라면 어울리지 않을것 같습니다. 각종 흉악범도 있을것인즉 그들을 저승으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위엄이 있어야 하고 조금은 무서운 표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책자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시면 10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끌려 온 사람들을 관장하고 있는 저승사자의 얼굴 표정이 무조건 위압적이지는 않습니다. 죗가가 적은 사람들을 끌고 온 저승사자는 그나마 덜 무서워 보일겁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렇게 세부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것 같습니다.

balmas 2004-11-2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수수께끼님,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에 이렇게 길게 답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한번 더

감사드려요. 추천이 한 번뿐인 게 좀 아쉽네요.^^

수수께끼 2004-11-2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발마스님...질문이 아무리 하찮다해도 궁금증에 대한 풀이 욕구가 바로 지적욕구 아니겠어요? 하하하...그나저나 제 서평이 직접 책을 보셨을 때 '엉터리 서평이로군!'이라고 하실까봐 겁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언뜻 보니 리뷰에 대한 리뷰도 쓸 수 있었던것 같은데...혹여 비전문가실지라도 리뷰를 한번 써 주신다면 좋은 참고가 될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식사는 사무실 사람들과 어울려 주변의 식당을 찾았습니다. 주메뉴야 닭도리탕인데 평시에는 보지 못했던 반찬 한가지가 더 올라와 있었습니다. 하얀 보숭이에 담긴 메뚜기였습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설탕과 간장에 조려져 있었고 예전에 먹던 메뚜기맛을 생각하고 입안에 넣으니 바삭거림은 여전한데도 맛은 옛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메뚜기가 반찬으로 나오니 무척 신기하였는데, 주인장에게 식당에서 튀긴것이냐고 물으니 농수산시장에서 구입해 왔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나는것이 있어 포장을 좀 보자고 가져와 달라고 해서 포장을 보니 원산지가 중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원가가 비싼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면봉지 두 배 정도되는 메뚜기의 가격이 제법 되더군요.  아마 수입상은 분명 싼 가격에 수입을 했겠지만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부풀려 진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서 생활하던곳은 돈암동이었습니다. 이맘쯤이면 동네 아이들과 작당을 하여 미아리 고개를 넘어 길음천 부근에 다다르면 바로 논가에 다다랐었죠. 논의 이곳 저곳에는 벌써 벼베기가 끝나서 낱가리를 쌓아둔 논과 주인이 게을러서인지 익을대로 익은 벼가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 있음에도 베지 않고 있는 논이 있었는데, 이 논에는 가마귀와 참새가 알방구리 드나들듯 마음껏 배를 채우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길섶에 키만큼 자란 강아지풀 몇 개를 쑤욱 뽑아들고는 논으로 갑니다.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이리 푸드득 저리 푸드득거리는 벼메뚜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어떤때는 커다란 녀석을 발견이라도 하게되면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쫒아가서 결국은 어린 손바닥에 가득차는 그 녀석을 붙잡고는 좋아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잡은 메뚜기는 목 뒤로 강아지풀의 끄트머리를 밀어넣어 아래로 내리면 꼼짝을 못하며 버둥대기 시작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손에는 너 댓개의 강아지풀에 잔뜩 꿰여있는 메뚜기를 들고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뒷덜미가 강아지풀에 꿰인 메뚜기들은 긴 다리를 서로 차기도 하면서 몸부림을 치지만 한번 꿰인 메뚜기는 목이 달아나기 전 까지는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네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먹을 시간이 안된 경우에는 동네 골목에서 잔불을 피워놓고는 강아지풀의 끄트머리를 손에 잡고 메뚜기를 불 속에 집어 넣어 굽게 되는데, 불 속에서 바등거리던 메뚜기들은 잠시 후에는 빨갛게 익었다가는 금방 새까만 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잘 구워진 메뚜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입속에 넣고 씹어 먹노라면 그 맛은 어느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꿀맛이랍니다. 그래도 몇 가닥의 강아지풀에 남은것이 있으면 집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그런 생물을 왜 잡아왔느냐고 겉나무라시지만 동생과 같이 구멍마다 뱀의 혀 처럼 날름거리는 연탄아궁이의 불위에 살짝만 올려 놓아도 아주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훌륭한 고단백의 간식거리가 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때도 메뚜기를 잡아먹어 보았지만, 벌써 그 때도 농약 오염이니 뭐니 해서 메뚜기를 먹는것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철에 농촌에 갈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기회만 닿았다면 아마도 많은 메뚜기를 더 잡아먹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은 농촌에 가서도 잘 보이지 않고 메뚜기가 보이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어렸을 때 처럼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는 논의 이곳 저곳을 비상하던 메뚜기떼는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지방에 자료조사차 내려갔다가 메뚜기 양식을 한다는 분이 계셔서 그 양식장에 가 본적이 있었습니다. 양식장이라고 해서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양식장이라는 곳에는 나무 기둥이 박혀있고 너 댓개의 모기장이 쳐저 있었는데 양식장에서 비교적 먼 거리임에도 무엇인지 스왁~스왁~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는 모기장에 가서야 알 수 있었는데 그 모기장이 바로 양식장이며 모기장 속에는 수많은 메뚜기가 자라고 있었고, 아까의 그 소리는 메뚜기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는 옥수수잎을 갉아먹는 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순식간에 해 치우던지...그 모습을 보니 아프리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메뚜기떼의 대 공습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수억만 마리의 메뚜기떼가 한꺼번에 돌아다니면서 곡식을 갉아 먹는다면 남아날 것이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때는 화염방사기를 발사해서 날라다니는 메뚜기를 아예 구이로 만들어 적당한 가미를 하고 포장을 하여 우리나라 같은 메뚜기를 술안주로 삼는 나라에 수출을 하면 될텐데...아직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그런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어제의 메뚜기는 고소한 맛 보다는 설탕과 간장에 조리는 바람에 오히려 약간은 달착지근한 맛이 강해서 예전의 그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 고단백의 식품에는 관심이 없을까요? 워낙 먹거리가 풍부해서인지...아니라면 논에 가도 메뚜기가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그도 아니라면 방과후 피아노다 태권도다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인지 말입니다. 제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몇 군데의 유기농 논에는 우렁이와 메뚜기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주말에는 아이들과 그곳이라도 찾는다면 보기 힘든 메뚜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기회가 된다면 잡아서 구워 먹어도 보고요....

 * 메뚜기는 보호색을 띈다고 합니다. 흔히 벼메뚜기는 논에 심겨진 벼와 함께 살기에 녹색을 띄며, 가을에 마른 풀섶에 사는 메뚜기는 갈색을 띄고 있어 '송장메뚜기'라고 하여 논에서 자라는 메뚜기와 구별을 하는것 같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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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먹어봤는데 메뚜기만 못먹어봤습니다. 으메 아까운거... 지금은 줘도 못먹게 되어 정말 안타깝습니다...

수수께끼 2004-11-0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제가 조그만 트럭으로 한 차 보내드렸는데..어찌 줘도 못드시나요? 그 맛있는것을...(꾸울꺽~~) 못들어 보신분은 아마 그 고소한 맛을 모르실겁니다....아...생각만 해도...

수련 2004-11-0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뚜기는 발톱이 까실까실해서 먹기가 나쁠텐데...어떻게 먹나요?

곤충이라는 생각때문에 도저히 입에 넣어지질 않을것 같네요
메뚜기 요리가 고급요리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저는 메뚜기는 도저히 목먹을것 같습니다. 무인도에 혼자 갇혀 아무것도 먹을것이 없다면 모를까~~
.

그런데~~~수수께끼님 !!메뚜기 그만 드시고...강의준비 잘해주세용!!~(은근한 스트레스주기)

수수께끼 2004-11-0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뚜기는 발톱이 없고 다리 뒷쪽에 톱날같은 돌기가 있지요....이 돌기는 불에 약해서 굽는 순간 다 없어진답니다. 메뚜기에 대한 식용성을 이야기하자니 침이 넘어갑니다만, 제법 큰 벼메뚜기의 오동통한 뒷다리의 맛은 일품 그 자체랍니다. 그리고 강의 일정에 대해서는 별도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련 2004-11-0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시간에 졸았나 봐요? 곤충을 좀 무서워 하는 습관이라서 잠자리도 잘 못잡거든요

생각해보니 메뚜기를 잡아서 자세히 본 기억은 전혀 나질 않는군요. 주작이나 닭의 며느리 발톱같은 것을 말하나 보군요. 자연공부 잘하고 갑니다~~다음에 메뚜기 잡으면 뒷다리부터...잡아먹어야 겠군요. 그래야 확실히 톱날인지 발톱인지 알테니 말이예요.
 

  알라딘의 접속은 그나마 상당히 나아진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에 글을 써서 올리려면 서버오류라고도 가끔 나오지만 처음 개선작업 후보다는 상당히 접속도 용이해진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님들의 서재를 돌아다니면서 님들이 올리신 글들이 03:24 등등 새벽에 올리신 글들이 많아서 늦은 시간에도 알라딘의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다른님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고 퇴근하여 재접속을 하고 보니 오후 3시경에 올린글이 오늘 03시경에 올린글로 나타나더군요. 그러다보니 나중에 글을 올리신분들도 먼저 올리신 분들보다 시간상으로는 늦게 올린 모양새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루를 24시간 개념으로 하지 않고 오전 오후의 개념으로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오전 오후에 관한 표시도 am 또는 pm으로 표시를 해 줘야함에도 그런 작업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정오 이후에 글을 올리신분들의 작업 시간은 모두 새벽에 글을 올리신 것으로 착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엄청난 알라디너가 남들이 다 잠드는 시간에도 알라디너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하는것으로 착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 문제도 알라딘 측에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어차피 아직도 시스템이 안정화가 되지 않은 상태이니 이런 내용은 알라딘측에서 인지하고 있으리라 판단되지만, 게시 시간에 대한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상황이 전도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니 여러님들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셔서 페이퍼나 리뷰...그리고 댓글의 작성싯점을 판단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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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 2004-11-06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오니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 많이 바뀐 모양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아직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