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하늘은 드높고 쾌청한 날씨속의 어느 일요일....
남들처럼 여유로운 주말을 만끽해야 할 작게작게씨는 벌써 3시간째
전화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그러니까 작게작게씨는
오전 11시부터 그냥 전화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였다.
중요한 전화를 기다린다면 모를까 작게작게씨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위해 지금 이렇게 3시간째 갈등 중인 것이였다.
"그냥 간단하게 짜장면을 먹고 말까"
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작게작게씨...
그렇다 그녀는 여유로운 일요일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배달음식을 섭취하기로 작정하고 배달전화를 걸려고 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속의
또다른 인격체 크게크게박사가 문제였었다.
"쪼잔하게 짜장면이 뭐니...곱배기는 되야..거기다 요리 한 두개 시켜야 먹었다~ 라는 기분이 들잖어..!!"
소심하고 조용한 작게작게씨와는 다르게 마음속의 또다른 인격체 크게크게 박사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반년전 우연히 백화점이 들렸다가 예고도 없이 크게크게 박사가
표면으로 튀어나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은 기억이 떠올랐다. 작게작게씨의 인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녀는 백화점 밖을 나왔었고 양손엔 가득 쇼핑백이 들려 있었으며
지갑안에는 카드 명세서만해도 묶어서 5미리 정도의 두께를 유지하면서 지갑 밖으로
삐져 나와 있었었다. 그 후 환불소동을 겪었고 차마 환불을 못하던 물품들 (백화점 지하
마트에서 산 생닭은 이빨자국이 선명한채로 다리하나가 사라져 있었음)은 울며 겨자먹기
로 할부로 돌려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는 상황이였다.
"아니야! 난 그냥 짜장면 보통이면 된다고 난 그렇게 위장이 크지 않아...!!"
절규하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작게작게씨...그렇다 벌써 몇번이나 크게크게 박사의 인격이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는 언제나 다음날 지독한 숙취와 더부룩한 배...거기다가 부어버린
얼굴로 고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었다.
"흥 그래도 내면에 너와는 정반대의 내가 있다는 건 그만큼 크게크게 대범하게 살고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봐 작게작게..이제 그만 내면의 나를 인정하시지..후후"
또다시 울리는 내면의 크게크게박사의 대꾸에 작게작게는 입을 악물었다.
"이젠 더이상 너에게 휘둘리지 않을꺼야..난 작게작게야...소심하고 조용해도 그게 나라고..
대범하고 터프한 크게크게박사....너하고는 이제 결별이야...난 나의 소신대로 이렇게 살아
가겠어..!!!"
용기를 내어 내면의 크게크게 박사에게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한 작게작게씨는 그 자의를
행동에 옮기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 두고봐..난 짜장 보통을 배달시키고 말겠어..!!!"
그녀의 기세에 눌렸는지 내면의 크게크게 박사는 더이상 어떠한 대꾸도 없었다..
작게작게씨는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숫자하나하나 단골 중국집 "드루이드반점"에 주문
전화를 넣었다.. 신호가 가고 있었다...이제 수화기 저너머 아마도 카운터에 앉아있을 왼쪽
뺨 한가운데에 툭 튀어나온 검은 점을 가지고 있는 주인장의 목소리만 들리면 그녀의 의지가
관철되는 순간이였다...그 순간...
"죄송하다해...오늘 전기가 끊어져 임시휴업했다해~~ 내일부터 정상영업이다해~~
정말로 미안하다해~~~"
낭낭히 들리는 자동응답 목소리.... 자신의 내면에 정반대의 인격 크게크게 박사에 항거에 처음으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을 했던 작게작게씨의 저항은 이렇게 쓸쓸하게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다음날...작게작게씨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전사무실에 테러로 추정되는 대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작게작게씨의 소행일까..아님 크게크게박사의 소행일까...아마도 그건 전기가 끊겨 평안한 일요일
오후식사를 날려버린 삽질의 보복으로 두 인격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합하여 일으킨 테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