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지인 A군은 권위적이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존재한다. 오랜 기간 공직에 머물러 계셨고 지금은 연세가 들으셔서 퇴직을 하셨다지만 여전히 그 기세만큼은 누그러지지 않으셨다고 하니, 머리가 제법 커진 A군은 사사건건 아버지와의 충돌을 불을 보듯 뻔 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난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는 술김에 분노에 차있으면서도 어딘가 측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저 뼈가 심하게 들어있는 주정을 내게 했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그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단편적으로 조금씩 내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통해 투영되고 보여지고 있나 봐...내가 봐도 좀 끔찍하긴 하지만..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다 보니 조금은 내 아버지가 이해가 되더라고...아마 아버지세대와 우리세대의 차이는 별로 없을지도 몰라..단지 표현의 차이와 강도가 다를 뿐일지도...”
심드렁하게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A군은 비록 그 푸릇푸릇한 젊은 날에 비해 주름도 많이 늘었고 세파에 찌든 흔적이 농후했지만 이상하게시리 두 어깨만큼은 듬직해 보였었다.
-메피스토가 친하게 지내는 지인 A의 20%는 픽션인 이야기-
일요일 EBS 채널에서 한국에서 열심히 땅을 파면 나온다는 나라 아르헨티나의 생소한 영화 “아버지와 아들(원제:Derecho De Familia)”을 보게 되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저 나라에도 지인 A의 이야기와 비슷한 영화가 존재하다니 아무래도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가 보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남자가 주인공 아들. 바르게 웃고 있는 여자가 그의 아내..아내는 필라테스 강사.
밑에 조그마하게 있는 아이는 두 사람의 아들..영화에서 제법 귀엽고 깜찍하게 나온다.
주인공은 변호사 집안의 아들. 아버지와 달리 관선 변호사가 주업이면서 법의 판례와 승소보다는 법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의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 하루에 두 차례 교육기관을 통해 법 관련 강의를 할 때도 이런 유토피아적인 법의 모습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아버지는 민선변호사로써 여러 계층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나름대로의 입지와 위치를 유지하는 변호사이다. 머리 큰 아들이 독립체계가 되면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아닌 설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비록 영화 속의 아버지는 지인 A의 아버지처럼 권위적 혹은 가부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A와 A아버지와의 관계와 차이점을 없어 보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들은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것까지 똑같이 전개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의 아버지는 갑작스런 임종으로 만나고 싶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다는 정도.
평이하게 관선 변호사인 주인공의 가족사와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뭉클했던 장면이 몇몇 존재한다. 인생의 종점이 다가옴을 느낀 아버지는 자신의 일과 고객을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법원과 의뢰인들을 하루 동안 동행하면서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같은 직종 다른 길을 가고 있으며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계단을 내려갈 때, 혹은 음식물을 먹을 때 등등의 사소한 행동에서 아버지와 판박이 같은 행동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절한 감상을 갖게 해준다.
구절구절 장황하게 읽어대는 대사가 아닌 배우들의 사소한 행동과 표정만으로도 아버지와 아들의 끈끈한 관계를 묘사했던 진정한 명화였다.
뱀꼬리 : 하긴 나조차도 사소한 행동 하나가 어머니에게 “어쩜 니 아빠랑 똑같냐!”란 소리를 종종 듣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