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그릇을 돈을 주고 사먹더라도 수저를 던지고 싶을 정도의 모욕감이 느껴지는 장소가 있는 반면 깨끗히 싹싹 비우고 나가면서 잘먹고 갑니다 라는 우렁찬 감사표현을 하는 장소도 존재한다.
전자는 내가 밥값이라고 낸 돈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며 다시는 두번째 발걸음이 만들어지지 않는 곳이 될 것이고 후자는 생각날때마다 입에 군침이 고이는 일종의 파플로의 개 꼴이 되기 쉽상이다.
돈을 주고 사먹는 밥이 아닌 어느 친한 지인의 집에 초대되어 맛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가 제일 난감하다. 분명 열심히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짐작이 되고도 남을 벌겋게 상기된 얼굴과 이마의 몇마디 땀방울 때문이라도 차마 표정이 이그러지거나 입에서 겉도는 체류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며 식도로 전이시키는 과정 후 비교적 티안나게 "맛있네요"라는 접대성 발언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와 반대로 탁월한 음식 솜씨로 인해 초대된 손님의 입장을 망각하고 주방에 달려가 레시피를 구걸 하는 파렴치를 저지를 정도의 행동을 보였던 적도 종종 있었다. 대나무향이 그윽한 이빨사이에도 끼지 않는 부드러운 갈비찜, 무슨 향신료를 넣었길래 독특한 향이 시각의 소박함을 후각의 사치스러움으로 완벽하게 완골탈퇴한 김치볶음밥,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전혀 질리지 않은 단맛이 가득 퍼지는 수제 찐빵 등등..
문제는 꼼꼼히 적은 레시피대로 만든다 손 치더라도 절대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에 한계를 느끼지만서도...


색색의 고명이 얹혀진 맑은 자라스프 + 아몬틸라도


블리스 데미토프 + 1860년산 뷰브 클리콰트 샴페인


카시 엉 사코파즈 + 1845년산 클로스 드 보가트
맛볼 수 없는 그림의 떡 같은 만찬메뉴겠지만, 현실이라면 아마도 주방으로 달려가 바베트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할 엄두도 나지 않았을 듯 싶다.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Babettes Gaestebud, 1987)
뱀꼬리 : 이정도면 음식도 예술이다. 침 고이면서 봤던 몇 안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