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yrus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16090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cyrus 님의 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독후감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셨고, 답변이 댓글로 답하기에는 중요한 것을 담고 있기에 따로 페이퍼로 작성한다.

 

cyrus 님의 댓글 ; 페미니스트에 반대했던 두 번째 이유 같은 경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남성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이 반감을 가졌습니다.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가 남장하면서 사교계를 출입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상드가 남장하고 흡연하는 행동을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탈로 규정했습니다. 만약에 상드의 남장이 남자들이 인정했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남장한 상드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기여한 것입니다.

저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라는 표현이 마치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에 순응했다는 의미로 봤습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http://blog.aladin.co.kr/maripkahn/8740521

 

2.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도끼에 나무로 만든 자루가 있다.

 

(주의 ; 이야기의 진행에 앞서 전칭과 특칭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 4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페미니즘의 주장에는 여성들이 문명, 문화에 기여한 바를 남성들이 역사에서 지웠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지웠다’는 표현이 과도하지만 나는 그 의미에 동감한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한다. ≪수학을 빛낸 여성들≫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최근에는 여성이 전쟁에 기여했다는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나왔다. 이 책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책(가치판단)이나 여성이 전쟁에 참여했다(사실판단)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이 문명, 문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명-문화가 남성중심-가부장제 구조이니 가부장제에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여도가 너무 낮다고 판단한다. 각 분야의 언어가 남성 중심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기여도는 남성에게 있다.

 

2) 두 번째는 문명-문화의 소비자로서의 기여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남성중심-가부장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발적 가난’에 해당하는 것을 언급할 때는 남녀 구분이 없다.

 

p273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이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 이글을 풀어 쓰자면, (남자가 ‘축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정도의) 여성이 ‘백화점’에 매료되어 소비를 감정의 해소의 방편이 된 상황을 역전시킨다면 보다 양성 평등 사회에 이뤄진다.

 

나는 남성중심-가부장제 사회의 형성에 여성이 기여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유지에 여성이 기여했다고 했다. 만약 여성의 문명 소비가 남자의 강요와 이에 대한 순응이었다면 cyrus 님이 이야기한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에 순응했다는 의미’가 맞다. 하지만 나는 여성이 적극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오늘 날 여성의 공장식 축산의 육식, 자동차, 비행기를 이용한 해외여행, TV, 컴퓨터, 핸드폰, 에어컨, 백화점과 관련한 소비가 남자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적극적 자발적 소비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구조적 폭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사회 구조의 삶이 그렇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한국 일제 식민지하에 공무원으로 부역한 사람의 비판에 비슷한 반론을 한다. 나는 일제 부역을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3) 다음은 성선택에 관한 것이다. 수년마다 결혼정보회사 배우자에 대한 조건에 대한 선호도, 그리고 결혼이 성사된 사람의 조건을 발표한다. 여성의 조건은 나이, 몸매, 얼굴 등이 상위에 올라가고 남자의 경우, 직업, 수입, 재력 등이 상위에 올라간다. (그리고 직업과 수입, 얼굴과 몸매의 순위가 바뀌면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내 관점에서는 우습다. 남녀 공동으로 그 다음 순위에 학벌이 위치하고 7~8개 항목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성선택은 남자 생물학적 생존이나 사회적 생존이 자본주의에 적합한, 문명에 적합한, 그리고 가부장제 적합한 자연선택을 유발한다.

 

4) 마지막으로 ‘방조는 동조와 같다’는 관점의 평가다.

 

*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만약 알라딘 마을이 정말로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면, 이런 댓글이 있어야 했다.

; 저는 이제부터 제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늘부터 부엌일을 시키기로 했어요.

 

만약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 특히 아들들을 양성평등의 가치관을 만들어 주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4가지 판단은 관점에 따라 남성중심-가부장제 사회의 순응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무리로 다시 첫 전제 조건을 다시 언급하면 여성에게 일정 책임이 있다는 것(특칭)이 모든 책임은 여성에게 있고 (전칭), 남성에게 책임 없다거나 남성보다 여성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뱀발) ‘조르주 상드의 남장’ 에피소드는 ‘메갈리안’의 경우네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0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봤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어보고, 오늘 밝힌 마립간님의 주장을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마립간 2016-09-05 08:20   좋아요 0 | URL
cyrus 님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독후감을 기대해 보죠.

그러나 제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링크했지만, cyrus 님의 질문과 저의 답변은 이 책과 직접 관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syo 2016-09-04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한테 말씀하신 깊이 있는 독서가 어떤건지 직접 보여주고 계세요.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제가 제기한 질문도 아니고, 정확하게 파악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어서 한번 여쭤봅니다.

첫 번째 말씀하신 이유에서, 여성이 문명, 문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명-문화가 남성중심-가부장제 구조이니 가부장제에 기여한 것이다.
는 말씀은 전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이를테면, ˝가부장 지수˝라는 게 있다고 하고, 여성을 노예나 도구로 여겼던 과거의 어느 시절의 가부장 지수를 100이라고 하면 현재는 얼마인지는 몰라도 100보다는 낮겠지요. 가부장 제도와 맞서고 가부장 지수를 낮추는 데 여성들이 노력해 왔지만, 아직까지 가부장 지수가 50보다 큰 상태라, 문명-문화가 여전히 가부장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기여했다고 할 수는 없는게 아닐까요?

방조는 동조와 같다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방조로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씀하신 전칭-특칭 이야기는 약간 치트키 같은 느낌이네요. 자명하고 너무 자명해서 특별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 문장 같달까요? 모든 여성 중 최소한 1명이라도 가부장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면 참이 되는 문장이니까요. 그런 사례를 발견했든 못했든 경험칙 상 아무도 부인하기 힘든 문장인데, 그게 결론이라면 그런 자명한 결론을 얻기 위해 정교한 논증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음, 특칭과 전칭의 의미를 바로 전달하시려면 바로 ˝`일부`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고˝ 와 같은 문장을 쓰셨으면 됐을텐데, 추후에 이렇게 괄호를 동원하시면서 보충하시더라도 처음에는 아무 한정사가 붙이지 않고 그냥 ˝여성˝이라는 단어로 표기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마립간 2016-09-05 11:17   좋아요 1 | URL
syo 님, 댓글과 질문 감사합니다. 소중한 댓글이네요.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답변이 궁합니다. 저는 제 생각을 점검받기 위해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제 글이 대중적이지도 않고,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방문하시는 분만 방문하게 되는데, 제 글에 익숙해져 제 오류를 지적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페미니즘 논쟁이 처음에 2003년에 저와 어느 알라디너와 있었고, 그 분은 지금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2015년에 다른 알라디너의 제기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논쟁에 또 다른 한 분이 참여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반복적인 글들이 오고 가면서 언급되었던 책과 책의 인용구, 그 글에 대한 가치판단이 뒤엉켜 있고, 제가 쓰는 글은 가급적이면 독립적인 글이 되도록 쓰려하지만 능력이 모자라 오타, 비문 등이 섞여 있습니다.

syo 님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는데 지적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필력의 부족으로 발생한 내용의 오해만 해명하는 쪽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여성이 문명에 기여한 것. ; 페미니즘에서 1) 문명-자본주의는 남성중심-가부장제다. 2) 이런 사회구조는 전적으로 남성이 만들었고 남성의 책임이며, 여성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할 일이 별로 없다. 페미니즘의 베스트셀러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3) 남성은 여성이 사회에 기여한 것을 평가 절하한다. 이 세 가지 주장을 동시에 합니다. 저는 세 가지 주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을 글에 포함시키려 하다가 문맥이 엉켰습니다.

제 의견은 여성이 당연히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마사 스튜어트는 자본주의에 기여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라면 ‘마사 스튜어트’는 가부장제에 기여했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문명-자본주의에 여성이 소비자로서 뿐만 아니라 생산자로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2) 방조와 동조 ; 저는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조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방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동조도 아닙니다. 제가 쓴 ‘방조’의 의미는 여성이 양성평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 방조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킴으로써 양성평등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방조라고 명명하든, 방조가 적절하지 않은 용어이든 이 역시 가부장제 기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전칭, 특칭 ; 남녀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개별화된 반례를 통해 일반화를 거부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를 비꼬기 위한 ‘약간 치트’ 끼를 담은 것이 맞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 반성을 합니다. 제 안해도 빈정거림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글쓰기를 하면서 나쁜 습관이 붙었습니다. 당장 고치도록 하죠.) 한정사를 쓰지 않은 이유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두 문장의 의미가 다릅니다. (1)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크다. (2) 일부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크다.

제가 남성은 여성보다 키가 크다고 하니, 어떤 분이 ‘우리 엄마는 여자인데, 남자인 우리 오빠보다 키가 큰데요.’라는 식의 반론을 받았습니다.

이 글로 설명이 부족하시다면, 다시 페이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립간 2016-09-05 08:24   좋아요 0 | URL
가부장지수에 관해서는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제가 쓰고 있는 글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글에 포함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syo 2016-09-05 09:16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수정할 수 있었어요.

하나 더 여쭙고 싶은건 아들을 설거지 시키는 일인데요.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일이 양성평등을 진작시키는 일이라 하셨는데 어째서 그런가요? 만약 가사일이 바깥일과 비교해 중요도가 떨어지지 않으므로 여성이 가정에 기여하는 바가 남성에 못지 않음을 인식시켜주려 하는 뜻이라면, 그 전제로 이미 설거지 같은 가사일이 여성의 일이라는 명제가 깔려있는 건 아닐까요? 장애인 되어보기 체험 같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을 기를 수는 있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람임을 일깨우는데는 그다지 효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들을 설거지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아들이 보게 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것은 설거지가 여자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이 가정에서 내가 맡은 일이라서 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데 노력하는 쪽이 더 합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데 마립간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다음 올려주실 포스팅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댓글저장
 
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이클 샌델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 주의`가 귀환했다면 김현경에 의해 `칸트 주의`가 귀환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나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2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으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면 그 의견의 어떠한 것들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 이유는 내가 페미니즘 도서라고 분류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큰 줄기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 나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에게

http://blog.aladin.co.kr/maripkahn/7533551

 

위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의견과 감정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의견이 페미니즘에 속하는 것인지 내 서재를 방문하는 알라디너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반대했던 이유는

 

1. (과학적) 사실 판단을 가치 판단으로 미루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력과 성은 대칭의 깨짐으로 발생한 대척점이다.

2.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도끼에 나무로 만든 자루가 있다.

3. 남녀차별이 인종차별이나 그 밖 다른 차별과 달리 독특한 위치를 차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증오하는 입≫이 민족차별, 국민차별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이 남녀차별과 함께 언급된 것은 남녀차별이 차별의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도 남녀의 성적 지위, 역할, 결과의 비대칭성에 대한 알라디너의 글을 읽었는데, 그 글에서 경제력의 비대칭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 여성의 성의 대척점은 남자의 성이 아니다. 남자의 경제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내 의견을 지지하는 책이다.

 

남성중심 사회 즉 가부장제 사회를 남성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남녀가 합심해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하는데, 여성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이 글쓴이의 주장은 ‘남성중심 사회 - 가부장제 사회’와 ‘자본주의 (-넓게는 문명)’이 동일 구조로 이뤄져 있음을 설명한다. 따라서 ‘남성중심 사회 - 가부장제 사회’의 혁파는 ‘자본주의 (-넓게는 문명)’의 혁파다.

 

p273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이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 이글을 풀어 쓰자면, (남자가 ‘축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정도의) 여성이 ‘백화점’에 매료되어 소비를 감정의 해소의 방편이 된 상황을 역전시킨다면 보다 양성 평등 사회에 이뤄진다.

 

p431 그러나 이런 진보는 무엇보다 생활기반, 자연, 인간의 본성, 인간적 관계, 특히 여성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이는 정말 죽음의 생산이다. ; 과연 여성이, 또는 페미니스트들이 육식도 없고, 자동차와 비행기도 없고, TV와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백화점도 존재하지 않는, (마치 Amish와 같은) 자연 친화 생활로 회귀할 힘을 가지고 있을까?

 

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은 2014년 1월에 출간된 책임에도 알라딘에 한편의 마이리뷰도 없다.

 

페미니즘의 책을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같이 잘 팔리는 책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행복한 페미니즘≫, ≪잘못된 길≫, ≪여성의 남성성≫과 같이 잘 팔리지 않는 책이다.

 

전자의 책들은 억압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여성들의 감성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책이다. 후자의 책들은 남녀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의 실천을 언급하는데, 그 실천은 여성들에게 부담이 된다. 이제껏 억압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부담까지 떠안으라고 ... 이런 감정적 상황은 책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가사 家事 노동의 저평가에 따른 여성 착취를 언급한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대중이 믿게 된 것은 그 설명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천동설을 믿던 윗세대가 사망하고 지동설을 믿는 후세대가 등장하면서 세대교체가 된 것이다. 이 논리를 양성 평등과 가사 노동에 적용하자면, ; 우리 세대는 남녀 불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식 세대에서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정당 평가를 하는 아들, 딸들의 세대를 키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지인의 이야기는 양성평등을 위한 실천 강령이 될 수 있다. 이 지인은 자신의 아들에게 영어,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풀어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서 하찮은 부엌일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들들에게 가사를 나눠한다는 이야기다.

 

만약 알라딘 마을이 정말로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면, 이런 댓글이 있어야 했다.

; 저는 이제부터 제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늘부터 부엌일을 시키기로 했어요. (보다 긍정적인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만약 양성 평등이고 뭐고 성적과 진학이 우선이고 취직이 먼저이다. 아들에게 가사 나눔, 무슨 개소리. 우리의 아들들이 이런 환경에서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단톡방에서 여자사람동료 성희롱 하면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몰카 찍지 말고, 소라넷따위 하지 말고, 여자니까 조심해야하고 남자니까 그래도 괜찮고 하는 습관적인 말과 행동들 하지 말고, 가사노동 도와주는게 아니라 각각 분담해서 하는게 당연한거니까 나부터 하고. 3차로 여자 있는 좋은데 가자고 하는 짓도 그만 두고. 회식때 꼭 젊은 여직원이랑 부르스 추려고 하거나 추라고 강요하는거 그만 두고, 커피랑 술은 여자가 만들고 따라야 맛있다는 개소리도 그만하고, ; 라고 바란다면 그것은 판타지다

 

나는 알라딘 마을이 이상적인 사회가 아님을 안다. 또한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일부 내용은 다른 알라디너 글에 가져왔기 때문에 글체를 다르게 표시함.)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6-09-0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출판사의 사장이라면 나의 선호와 관계 없이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출판하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행복한 페미니즘≫, ≪잘못된 길≫, ≪여성의 남성성≫와 같은 책은 출판하지 말아야 한다.

페크pek0501 2016-09-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글입니다. 여성의 경제력 획득이 어떻게 결혼 생활을 바꿔 나가게 될지 궁금해요.
제 큰딸이 취직했으니 앞으로 결혼하면 맞벌이 부부가 될 것 같은데(직장생활을 아주 즐거워함.)
딸 부부는 지금의 우리 부부와 많이 다른 결혼생활을 할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같이 퇴근할 날도 아내가 주체적으로
저녁 준비를 하고 남편은 일하지 않든지 보조 역할로 돕는 정도인데, 딸 세대는 다를 것 같거든요. 동등하게 일을 나눠서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 어머니들은 부잣집으로 딸이 시집가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저만 해도 딸이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기죽어 사는 걸 보기 싫거든요. ㅋ 딸아이가 경제력이 있으니 굳이 고단하게 살 것 같은 부잣집은 싫고 중간이면 좋겠다, 그런 생각 들어요. 이왕이면 능력 있는 며느리로 대접해 주는 시댁이면 좋겠고요.
이런 것도 시대의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마립간 2016-09-03 10:31   좋아요 0 | URL
저는 남녀불평등에 관해 형식적 평등과 내용적 불평등이 지속될테지만, 비교적 양성 평등인 사회와 보다더 남녀불평등인 사회는 있다고 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요.

가장 양성 평등에 가까운 (가정을 포함한) 사회는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이상적일 때, 개량주의에 입각한 선택은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ek0501 님께서 딸이 부잣집을 시집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은 것, 따님이 직장생활을 아주 즐겁게 생각하는 것은 남녀의 비대칭을 일정 부문 해소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예상되는 따님의 가정 생활은 보다 양성 평등에 가까울 것을 예상됩니다.

그러나 (많은?) 여성의 경우, pek0501 님과 pek0501 님의 따님처럼 생각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cyrus 2016-09-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에 반대했던 두 번째 이유 같은 경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남성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이 반감을 가졌습니다.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가 남장하면서 사교계를 출입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상드가 남장하고 흡연하는 행동을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탈로 규정했습니다. 만약에 상드의 남장이 남자들이 인정했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남장한 상드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기여한 것입니다.

저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라는 표현이 마치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에 순응했다는 의미로 봤습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마립간 2016-09-04 15:30   좋아요 0 | URL
cyrus 님의 질문 댓글이 ... ^^ 이 답변은 중요한 (제 주관적 판단입니다.) 내용을 담고 있으니, 따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 좋겠네요. 저는 제 답변글에 대한 cyrus 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댓글저장
 

 

* 讀書記錄 160902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모토는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 만큼 분배 받는다이다. 이에 다윈주의 좌파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로 비판했는데, 나는 아랫글에 동감한다.

 

다윈주의 좌파p69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 혹은 이들은 추종하는 사회개혁가들은 너무 쉽게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어내는 반면, 정작 그렇게 만들어질 이상 사회에서 일하고 살아나가며, 또 그 이상 사회를 향한 계획을 추진해나갈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자본론에 상품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말이 나온다. 가사 노동은 상품가치는 높으나 교환가치는 낮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 노동이 저평가되는 이유다. 페미니즘이 처음 제기한 문제가 아니나, 페미니스트들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에 대안이라고 할만 것은 없다.

 

교환가치 중심의 사회에서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작동한다. 영국 수상 처칠 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에게 세계 2차 대전을 해결하는 것이 가사 家事를 하는 것보다 비교 우위가 있었다. 그런 전략적 선택이 가사 노동 폄하인지 모르겠다.

 

진입 장벽의 높이 차이로 인해 진입에 관해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있고, 진입 후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있다. 가사 노동은 진입 장벽이 낮다. 가사 노동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그 교환가치는 낮게 평가된다.

 

뱀발 ; p431 그러나 이런 진보는 무엇보다 생활기반, 자연, 인간의 본성, 인간적 관계, 특히 여성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이는 정말 죽음의 생산이다. ; 과연 여성이, 또는 페미니스트들이 육식도 없고, 자동차와 비행기도 없고, TV와 컴퓨터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백화점도 존재하지 않는, (마치 Amish와 같은) 자연 친화 생활로 회귀할 힘을 가지고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6-09-02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현 불가능한 결론인듯 하여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야 할지 고민중 입니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책들만 골라 읽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자연 친화 생활로 회귀라니.....
그리고 어찌보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가부장제를 필요치 않아 보이기도 하구요.



마립간 2016-09-02 14:29   좋아요 0 | URL
제가 아무개 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나 어찌 하여든 독서하시는 것을 격려합니다.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거의 모든) 철학적 논쟁이 페미니즘 논쟁에 사상되고 그 역도 성립합니다. 제가 일부 페미니스트에 반론을 펴는 근거는 페미니즘 도서가 아니고 일반 도서입니다. 그 중에는 수학책도 있습니다.

제가 여성 알라디너와 논쟁을 하면서 아무개 님께 긍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남녀차별로부터 양성 평등으로의 희망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죠.) 저는 성악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 현실적 목표 들에 부정적입니다만, 장차 제 딸이 커서 제 논리를 분쇄하는 것을 꿈꾸기도 합니다.

아무개 님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책들만 골라 읽`고 그 내용을 알라딘에 올리셔도 제게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노동한 만큼 가져가는 것은 사회주의고,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게 공산주의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환경공학 엔지니어로써 일을 할 때 공공사업이나 인프라사업 관련 인허가 업무를 합니다. 예를 들어 도로, 항만, 공항, 상하수도시설, 공원 등에 대한 인허가 관련되어 대관협의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죠. 공공사업의 인프라는 것은 공공성 즉 국민에게 열린 시설이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요하죠?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자유지만, 자신을 파괴하지 않은 자들은 계속 이런 인프라를 만들게 하는 소요제원과 노동력, 소비자로 나오죠. 만일 어느 개인 자신들이 앞으로도 저런 시설을 이용하고 싶은데, 저것들은 자기를 파괴하지 않은 분과 결혼한 분의 결합에 의한 재생산으로 이루어진 점이죠. 적어도 자신을 파괴하되 남보고 파괴하란 권유하고, 자신은 앞으로 도시의 문명을 즐기겠다고 하면 모순이겠죠. 대신 세금을 아주 많이 내면 문제 없지만요.

마립간 2016-09-03 09:44   좋아요 0 | URL
인생 자체가 일정 부분 모순이죠.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 북유럽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제도가 관심을 끌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이상에 가깝네요.
댓글저장
 

 

* 讀書記錄 160901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내가 집안 청소를 시작했던 시기는 초등학생 때부터이다. 당시 아이들 방이란 정말 부유한 집에 있었다. 내가 청소한 집안이란, 안방, 건넛방, 마루였다. 그리고 중학교 진학하면서 부엌과 설거지가 포함되었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밥을 짓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시작한 가사 家事가 빨래다. 대학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빨래를 시작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 초벌 빨래와 재벌 빨래다.

 

* 까마귀-고슴도치 입말 사전

초벌 빨래 ; 초벌 빨래는 양말이나 와이셔츠의 목 부위 손목 부위를 빨래 비누로 손빨래하는 것이다.

재벌 빨래 ; 재벌 빨래는 초벌 빨래한 세탁물을 세탁기를 이용해 다시 한 번 빨래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빨래를 초벌-재발 나눠서 하지 않는다. 한번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끝내는 것도 많다.

 

결혼 전까지 양말을 기워 신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바느질도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그리고 여동생 중학생 시절, 서양 자수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여동생도 자수를 한 적이 없으니, 내 경험이나 여동생 경험이나.

 

중학교 때 어머니가 형광등을 고쳐보지 않겠냐고 하셨고, 그리고 고쳐서 사용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빌려서 사는 집인데, 며칠 전 주인이 조명기기를 교체하기 전까지 내가 플라스틱을 자르고 종이를 끼우고 해서 대충 수선해서 살았다.

 

대학교 입학 후부터 결혼 전까지 1인 1가구 생활을 20년 정도 한 것 같다. 그 기간 중 1년 동안은 매일 (도기 그릇에) 밥을 해 먹고 다녔다. (반찬 이야기는 앞 선 글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내가 한 반찬은 나만 먹을 수 있다.) 결혼 전에도 어머니나 여동생에게 집안 정리가 안 되었다고 지적질한 적이 없고, 결혼 후 안해에게도 집안 청소나 끼니 준비 안 했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아쉬운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시는 여성이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집에서 아직 딸아이만 이에 적응하지 못했으나 점차 적응하고 있다.

 

내게 가사 노동의 폄하란 무슨 의미일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6-09-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인 1가구가 늘고 있는데, 양성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측면의 하나인가?

cyrus 2016-09-01 13:56   좋아요 0 | URL
글쎄요, 1인 1가구 대부분은 미혼자, 사별 및 이혼한 기혼자들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가 부엌일을 하는 것은 양성 평등으로 보기 어려워요.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전처와 함께 살았을 때, 가사 일을 했으면 양성 평등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가사 일을 하지 않다가 이혼 후에 혼자 살게 돼서 어쩔 수 없이 가사 일을 하게 됐어요. 이런 삶의 변화가 양성 평등의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없습니다.

마립간 2016-09-01 14:13   좋아요 0 | URL
남녀 대부분은 가사를 싫어하죠.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등의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죠.

혼자 사는 남자가 전처와 함께 살았을 때, 가사 일을 ; 절반했으면 여성도 경제력을 갖춰야, 양성 평등으로 볼 수 있겠죠.

1인 1가구가 늘고 있는데, 양성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측면의 하나인가? ; 이 댓글은 삶의 변화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뜻의 반문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9-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노동도 돈벌이와 마찬가지로 봅니다. 남자만 버는 경우 여자가 집안일을 맡는 건 적절한 분담이라고 봅니다만, 저 같은 경우 설겆이와 집안 청소, 그리고 간간히 요리를 하는 정도로 좀더 부담하고 있지요. 빨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직접 했구요. 다만 권리와 의무는 동등하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일부지만 능력있고, 잘 생기고, sweet하고 다른 건 다 제끼고 자기만 바라볼 남편을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거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ㅎ

마립간 2016-09-01 14:18   좋아요 0 | URL
저는 맞벌이든, 외벌이든 남자가 가사를 얼마나 분담하든, 핵심은 사랑, 믿음 뭐 이런 심리가 바탕되고 이런 것이 바탕이라면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공평하게, 평등하게 그 지향점에 따라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능력있고, 잘 생기고, sweet하고 다른 건 다 제끼고 자기만 바라보`기를 원하는 여자가 그 요구를 충족할 남자가 결혼한다면 천생연분이겠죠.

저는 그럴 능력이 안 되지만, 배우자와 대화와 조율은 가능한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