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906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게 된 동기는 알라디너 A 님의 스크랩 포스팅을 보고 내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점이 간단한 문장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알라디너 A님 서재에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보여주신 스크랩은 흥미롭네요. 저는 시대와 무관한 남자의 타고난 가학성(테스토스테론)이 문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의 주장은 수천년? 동안 여성들은 남성중심사회(~가부장제)에 의해 착취당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근대화 과정의 필수라고. 그러면서도 `원시적 축적`이라는 용어 ...
내가 ‘가부장제의 아버지는 자본주의고, 자본주의의 아버지는 문명이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 문장이 꼭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은 내 주장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은 과거에는 가부장제가 없었나’ 반문에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문명의 아버지는 가부장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명의 아버지 ‘가부장제’와 문명의 손자 ‘가부장제’는 똑같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p 여성에 대한 직접 폭력의 다양한 양상은 시대와 무관한 남성의 타고난 가학성 때문이 아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인류 역사상 여성이 남성과 가장 평등했던 시기, 지역은 무엇인가? 그 시기와 지역의 어떤 조건들이 역사상 가장 양성 평등의 시기를 이뤄나?
여성의 권익 신장으로 과거보다 현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한 양성평등은 아니더라도) 양성평등에 가까워졌는가, 아니면 형식상 양성평등은 이뤘지만, 내용상 남녀불평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는가.
이 궁금증의 일반화는 ‘인류 역사는 도덕적으로 발전( 또는 진보)했는가?’가 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의 샤르트르는 인류는 진보한다고 봤고 (최근의 학자로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스티븐 핑거를 들 수 있다.), 반면 ≪야생의 사고≫의 레비-스트로스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알라디너 S님은 ‘이를테면, ˝가부장 지수˝라는 게 있다고 하고, 여성을 노예나 도구로 여겼던 과거의 어느 시절의 가부장 지수를 100이라고 하면 현재는 얼마인지는 몰라도 100보다는 낮겠지요.’라고 하셔, 샤르트르의 입장을 취했지만, 나는 ‘형식적인 양성평등으로 개선에 내용적으로 불편인 남녀불평등’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참정권과 보편적 교육이라는 큰 양성평등의 조건에도 불편했다면, 그 효과를 상쇄할 역작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의 약자 혐오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과소비가 원인으로 생각한다. 뉴욕 시민이 사용하는 엔트로피는 동일 면적에 공급되는 태양 에너지 네겐트로피의 6배를 소비한다.
(괜찮은 6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이 책의 앞부분 초서 없이 책을 반납하게 되어 밑줄 긋기 일부만 함.)
뱀발 1 ; 여성분 중에 양성평등에 있어 과거보다 현재가 진보했다는 의견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까 했는데 (본심이든, 아니든) 명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뱀발 2 ; 우리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의 선출로 양성평등이 개선되어야함에도 대통령께서 역차별을 고려 남성 장관만을 임명, 양성평등지수가 악화되었는데, 이제 조윤선 장관을 임명하여 양성평등지수를 개선시켰다. 조윤선 장관 여성으로 입각하고 남편은 외조를 이 얼마나 페미니즘적인 가정인가 ; 라고 페미니즘에 비아냥거리는 글을 남기려다 알라디너 S님의 약속으로 메모만 남긴다.
* 밑줄 긋기
p157 따라서 목축유목민은 모든 지배적 관계들, 특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관계의 아버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착취적 관계가 농민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p168 아프리카의 노예습격과 대응하는 것이 마녀사냥이다.
p170 이런 자기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소품을 교회, 국가, 가족이 제공했다.
p174 노동분업, 특히 성별노동분업의 일반적인 역사적 전개는 생산력(주로 기술)과 전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따른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 신석기 혁명
p176 머천트 Carolyn Merchant가 설득력 있게 설명한 것처럼, 근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이제까지 살아있는 유기체로 여겨져 온 어머니 지구에 대한 폭력적 공격과 강간에 기초한 것이다.
p178 일부의 부는 다른 이들의 빈곤을 의미한다.
p179 남성의 해방이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것이라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획득할 수 없다. 여기에는 타인을 착취할 권리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 식민지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만약 식민지가 중심부의 이런 발전 모델을 따르고자 한다면, 이는 그 식민지가 다른 식민지를 착취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p192 마녀의 처형은 근대 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지, 통념대로, 비합리적인 ‘어두운’ 중세의 유물 때문은 아니었다.
p210 영국 국교회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노예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노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p214 카리브제도에 노예로 온 아프리카 여성은 그들이 식민주의자보다 ‘후진적’이거나 덜 ‘문명화’되었기 때문에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예제 자체와 그 식민주의자 때문에 ‘야만적’이게 되었다는 것이 서아프리카의 여성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현재 밝혀지고 있다.
p226 앞서 서술한 것처럼, 백인 식민주의자의 문제 중 하나는 주인인 백인종이 식민지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 대부분의 농장주는 ‘모험적인 독신남’ 부대원이었기 때문에, 여성을 식민지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p228 좀바르트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던 새로운 사치품에 대한 ‘욕구’를 창출한 이는 이 일군의 여성들었다.
p233 가족은, 통념과 다르게, 분명한 계급적 함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산이 있는 계급만이 ‘가족’을 감당할 수 있었다. ; ‘있었다.’ 과거형? 내가 보기에는 ‘있다’이다.
p254 왜 여성인가? ; 이 책의 내용이 전적으로 옳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행동 강령이 가능한가? 여성 호모소셜? 페미니스트 호모소셜?
p273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이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 이글을 풀어 쓰자면, 페미니즘의 실천 남자가 ‘축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정도의 여성이 ‘백화점’에 매료되어 소비를 감정의 해소의 방편이 된 상황을 역전시킨다면 보다 양성 평등 사회에 이뤄진다.
p346 남성은 타고난 강간자인가?/p349 이들 학자와 학파 중 가장 유명한 예로 다윈을 들 수 있다. ... 신다윈주의자와 사회적 다윈주의자, 그리고 미국 사회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행동과학학파 전체와 사회적 생물학자는 남성에 대한 그런 관념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사실판단 논쟁인가, 가치판단 논쟁인가?
p365 민족해방과 여성해방 ; 제목이 얼마 전 메갈리안의 안중근 테러리스트 비유를 연상하게 만든다.
p421 나는 저개발 국가에서건 과개발국가에서건, 페미니스트 중산층운동은 절대적이고 역사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수많은 스펙트럼을 갖는 페미니즘을 일반화하면 이렇게 언명하면 무의미하지 않나?
p431 그러나 이런 진보는 무엇보다 생활기반, 자연, 인간의 본성, 인간적 관계, 특히 여성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이는 정말 죽음의 생산이다. ; 과연 여성이, 또는 페미니스트들이 육식도 없고, 자동차와 비행기도 없고, TV와 컴퓨터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백화점도 존재하지 않는, (마치 Amish와 같은) 자연 친화 생활로 회귀할 힘을 가지고 있을까?
p441 부담으로서의 노동과 즐김으로서의 노동이 마찬가지로 결합된 경우는 아직 상품 생산과 시장압력 아래로 완전히 예속되지 않은 농부에게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