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914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p133 환경 자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 환경 자체도 변한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변한다. 그러나 빅뱅 big bang부터 빅크런치 big crunch까지 다중우주를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미래를 포함하여) 시공간을 가정하면 (holistic) 환경은 고정되지 않을까?

 

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리는 기차 위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 은하의 회전으로 고려할 때 중립일 수 도 있다. (또는 기차의 방향과는 반대인 뒤(, 진보적으)로 달린다는 것의 의미가 희박하여 별 의미가 없을 수도있다.)

 

p350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이 혼자서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네이버 두산 백과]

 

내가 아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의 하나는 메타분석에 대한 초월적(? 우월적) 의미를 두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나는 미래의 불확정된 것(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에 이르는 측정 불가능한 공간)을 가치관에 포함시켰다는 비판을 받겠지만, 이것이 내게 최선이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행동의 결정의 가치판단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로서 불확실하며) 사후 事後적으로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을 넘을 객관적 지표는 없지만, 나름) 효용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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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60913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p89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 자살. 유서가 되어 버린 그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배고파 못 살았고라는 문장이 있었다. ... 처음에는 생리적으로 느끼는 배고픔인지 정서적 고통에 대한 상징적 의미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차마위장에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은, 배고픔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TV 뉴스는 1980년 중반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굶어 죽었다. 300만원(으로 기억되는) 빚이 있었다. 그러나 빚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남긴 유산은 리어카와 그에 딸린 물건, 옷 몇 가지였다. 뉴스는 아주 짧게 방영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 이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당시에 1960년의 절대 빈곤에서 1970년의 그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더불어 1980년 대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국가에서 자평하던 시기였다. 지금의 GDP (또는 GNP)는 그 당시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에티오피아 Ethiopia에서의 이야기였다면, 우리나라의 한국동란 때의 이야기였다면,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누가복음 12: 26~30)

 

그 당시에 나의 판단은 198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좀 더 부유한 나라가 되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것이라는 것과 성경 독해를 굳이 교회나 목사님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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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60913

 

신데렐라의 진실 -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5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이 책의 주제와 결론은 나의 직관과 논리에 의하면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어떤 진실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명목 하에 무시된다. 이런 주제가 이것, 단 하나만은 아니다.

 

p99 의붓가족에 관해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실천가이다. 이들은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갖고 있는 방심할 수 없는 효과를 두려워한다./우리는 이러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책임윤리보다 신념윤리를 중요시 여기나 이것은 나의 선호다. 책임윤리를 신념윤리보다 앞세우는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책임윤리를 앞세워 사실을 덮는 것이 결과적으로 유익했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공산주의자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 밑줄 긋기

p9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도처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p14 그렇다면 의붓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을까? 민간의 지혜는 이들도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p20 어린이가 유전학적 부모 중 한쪽, 그리고 의붓부모 중 한쪽과 살게 되면 아주 심각한 형태의 아동학대에 직면하게 되는 비율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심각한 아동학대의 가장 강력한 역학 疫學적 위험요인은 바로 의붓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p31 옥스퍼드의 조류학자 데이비드 랙 David Lack은 독창적인 현장연구와 자료 분석을 통해서 대승적 이익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p31 ‘포괄적 적응도 inclusive fitness’

p32 부모가 새끼를 돌보는 것도 부모의 관점에서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지고 있는 제한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해보려는 새끼들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p33 그렇다면 이런 행동들은 누구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는 타협일 것이다.

p35 트리버스는 양육투자 parental investment’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양육 투자는 부모가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자식에게서 기대되는 적응성을 증가시키려는 행위이다.

p36 하나의 분명한 가설은 투자는 자식이 정말로 부모 자신의 자식인지를 나타내는 단서를 고려해서 차별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다.

p52 의붓부모의 한쪽과 함께 사는 3세 이하의 아동은 친부모와 같이 거주하는 아동보다 미국인도주의협회 기록에서 입증된 아동학대 사례가 될 가능성이 약 세 배 가량 많았다./p53 아동학대 사례라고 입증된 87,889개 보고서 중에서 우리가 279개의 치명적인 아동학대 사례만 뽑아 그 편견의 가능성을 배제했을 때, 한쪽이 의붓부모 그리고 한쪽이 친부모로 구성된 가족의 사례가 양쪽 모두 친부모인 가족의 사례보다 약 100배나 많았다./p61 그렇다면, 이 경우에 치명적인 구타를 한 의붓아버지와 치명적 구타를 한 친아버지의 비율은 약 1501에 달한다.

p63 1996... 의붓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녀들 중 3.7%가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친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녀들의 경우 0.2%만이 같은 답을 했다. ; 이 통계적 사실에 악어 프로젝트의 개념을 적용시키면 어떤 행동이 나와야 하나?

p73 우리는 부모의 심리가 종의 조상이 지닌 진화적 적응환경, 즉 상응하는 자연선택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환경에서 보모의 적응도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부모의 노력을 분배하도록 고안되어 있다고 말해야 한다./p77 이것은 부모가 진화적 적응환경에서 그러한 차별을 하도록 하는 특정한 신호에 주의하고 반응하는 진화된 경향에 의존하며 진화적으로 새로운 환경 조작은 그것을 억제할 수 있다.

p83 왜 신데렐라의 진실을 묻어두려 하는가?/p89 우리는 의붓가족 내에 과다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의문에 부터여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p85 내연관계에 있는 여성들은 법적으로 결혼한 여성들보다 살해당할 확률이 더 높다. 이 위험률은 결혼 기간에 따라, 그리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독립적으로 아내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감소한다.

p96 이러한 현황은 일관적이고 놀랄 것이 못 된다. 누구라도 이러한 일들을 추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해온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의붓가족이 아이를 부양하고 결혼생활을 축복을 찾는데 열등하다는 식의 함의가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완전히 거부하려고 한다. ... 그들이 충분히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 나는 페미니즘에 일반인의 반응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스럽다./p97 그런 속임수가 만연해 있는 것은 대부분 의붓가족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노력의 결과이다.

p99 의붓가족에 관해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실천가이다. 이들은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갖고 있는 방심할 수 없는 효과를 두려워한다./우리는 이러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p110 의붓가족에 대한 다윈주의의 분석은 추악한가?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의붓자식이 유전적 자식같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6장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자료의 진실을 덮으려는 기묘한 시도들에 동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런 혐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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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의 비밀 -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4
킹즐리 브라운 지음, 강호정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 과학이 남성의 음모라고 생각지 않은 분이 있다면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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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60912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고등학생 시절 특히 고등학생 시절 영어 공부하기 싫었던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을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불경 또는 금기시 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대한 방증으로 영어를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고 영어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p8 ‘만국 공용어라는 영어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이미 태생부터 커다란 기회의 불평등이 있다. 지식은 주류 언어를 중심으로 수집·배치되고 있으며, 비주류에 가까울수록 주류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영어 사용자 중에서도 억양에 따라 그의 정체성을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식별 수단이며 권력이다.

 

나는 윗글에 동의한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어느 여성의 알라디너의 부탁으로 남성 알라디너에게 여성을 강간하거나 살해하지 말라(글로써) 외친 적이 있다. 이 영어 권력에 관해서는 뭐라고 외쳐야 될지 조차 모르겠다. 내가 아이와 영어 공부하는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반성의 글을 올리고, 알라디너 부모님에게는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지 말라고 외쳐야 할까?

 

만약 영어 권력에 대해서 할 것이 없지만, 이 책의 나머지 글에 대한 주제는 어떤 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로 진행하는가. 그렇다면 책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머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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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한 문장을 읽다가 생각나는 소설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입니다.

마립간 2016-09-12 14:51   좋아요 0 | URL
책 추천 감사합니다. 조지 버나드 쇼 작 ≪피그말리온≫이겠죠. 추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