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1103
≪무진기행≫
- 역사 力士
이 이야기는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하숙하는 집 가족의 이야기다. 둘 중의 하나를 해석하면 해석한 것의 여집합 餘集合은 다른 하나가 된다.
p91 ‘규칙적인 생활 제일주의’가 맨 먼저 나를 휘감은 이 집의 가풍이었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선생님의 학창시절, 친구 분 중에 공과 대학생이 있었는데, 공대생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취미로 하였다. 아마 공대의 각박함을 음악으로 달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이상하다. 공대에서 배우는 학문은 각박한데, 문학, 음악, 미술은 안 각박하다는 뜻인가. 문학,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각박한 내용의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를 취미로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요즘 여러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자연과학 물리학이나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학, 음악, 미술 분야에 못지않은 창의력과 예술성을 요한다.
이 집의 아들은 어느 대학의 물리학 강사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집에 둘째 아들이 있었다면 또는 둘째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아직 고등학생인 딸의 장차 배우자,) 사위는, 수학과 강사나 수학 선생님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감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듯, 공감이 문학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공학도는 기계와 공감하고 천체물리학자는 우주와 공감한다. 주인공은 어떤 가족에 대해 공감하지도, 너그럽게 생각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단정하는 것은 아닐까. 정작 자신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 역시 비현실적인 역사 力士를 등장시켜 몽환적인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하류층의 삶을 긍정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류층 삶의 긍정이 하류층 환경의 긍정으로 이행할 오류와 삶이 환경과 독립적이라는 판단의 오류를 보여줄 수 있다.
역사의 조상은 장수 將帥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하는데, 역사 서씨가 더 많은 보수를 거절함으로 현대 경제 논리의 종속을 거부했다면 그의 조상은 과거 (신분) 사회 논리의 종속에 순종한 것이 된다.
이제 이공계나 수학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지났다. (이 소설은 1963년 작품이므로 그러려니 하고 지난다.) 이 소설에서 정밀하게 묘사하지 못한 것인 ‘억압’과 ‘엄격함’이다. ‘관엄 寬嚴하다’라는 단어가 있다. ‘너그러우면서 엄격하다.’이다. 엄격함의 비슷한 말이 ‘비정함’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엄격함의 반대말로 ‘비정함’을 제시하기도 한다.) ≪손자병법≫에는 장수가 갖춰야 다섯 가지 덕목, 지 智, 신 信, 인 仁, 용 勇, 엄 嚴에 인과 엄이 함께 있다.
‘착하지도 친절하지고 않겠다’고 선언한 분들 선언의 내용이 ‘비정함’이나 ‘너그럽지 못함’이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백미러 속의 우주≫ p23 “페르시아의 양탄자는 완전하게 불완전하며, 정확하게 부정확하다.” -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통적인 페르시아 양탄자는 부분적으로 대칭이 깨져 있어서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완전하지 못한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불완전한 것, 그 자체로 아름답다’가 증명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