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70106
≪에드먼트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지난 해 말일에 대학생인 친구 아들에게 화제를 던졌다. ‘사람의 자연의 일부인가 아니면 자연과 구분되는 독립성이 있는가?’ 내 입장은 ... 회색인이다. 친구 아들 역시 어느 하나의 의견을 선택하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딜레마’다.
나는 버크의 ‘우리는 그들 사이에 영원한 질서라는 거대한 사슬의 연결 고리로서 서 있다.’와 페인의 ‘모든 사회적·정치적 제도에 선행하는 상태’를 동시에 긍정함으로써 딜레마를 갖는다.
* 밑줄 긋기
p76 페인의 자연적 사회/p77 페인이 반복적으로 명확히 하듯 “끝까지 간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넘어 자연까지 생각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울러 페인에게 “자연”이라 함은 모든 사회적·정치적 제도에 선행하는 상태, 그리하여 사회적 혹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과 관련한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의 본성은 인류의 시초에 그랬듯 여전히 남아 있다.
p83 자연과 “인공” 혹은 의도적인 인간 행동 사이의 구분은 페인에게 중요하고 확고하다. 즉 자연이란 인간에 내재해 있는, 모든 노력과 의지가 부재한 것인 반면, 인공은 인간 노력의 산물이다. 자연은 이해받기 위해 거기에 존재하고, 자연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선택을 이끌어줄 일련의 규칙을 생산해 낸다. 스스로를 일반화 가능한 일련의 법칙으로 나타냄으로써 자연은 모든 면에서 추상적 개념이 된다.
따라서 자연이란 페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인간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것 전부를 기술하는 인간의 세계 모두에 관한 사실 및 공리의 집합이다. 자연은 질서 정연하고, 이성적이며,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
p87 1756년 발간한 그(버크)의 첫 대표작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은 과거의 모든 인습적 체제를 직시하지 않고 (추상적 규칙의 집합으로 협소하게 이해한) 자연만을 권위나 인간사에 관한 통찰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정치적·사회적 생활을 깊게 부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p87 근원을 파헤치는 것은 오판이며 불필요하고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기획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부는 자연에서 끌어온 올바른 원칙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얻지 않는다. 대신 정부는 국민의 필요와 행복에 기여하고, 따라서 이익이라는 어떤 자연스러운 생각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거치며 발전하다.
p87 사회 체제는 확실히 관습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회 체제는 “종종 심오한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장치다.” 하지만 그런 관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p91 “따뜻하고 속 깊은 인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 자신의 사회를 현재와 다른 방법으로 조직하기를 소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선한 애국자와 진정한 정치가라면 언제나 현존하는 국가의 재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활용할까 생각한다.”
p93 혁명가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성적 동물이므로 단순한 욕구(음식과 안전에 대한)를 충족하면 이성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페인을 비롯해 그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인간 본성에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크는 그들이 이성의 노력만으로 그런 다른 요소 -특히 열정과 감성-를 다스리는 걸 과신한다고 믿었다.
p118 버크의 관점에서 최상의 정치적 변화란 주어진 세계에서 최악의 것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인 것을 기반으로 삼으며 사회를 원래 상태로, 아니 더욱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것이 최상급 변화인 이유는 전통적 제도가 우리 정치의 기준을 규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월의 시험을 거쳐 살아남은 관습이 어느 정도 그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법칙은 우리의 관습 혹은 합의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반대로, 관습과 합의에 그것들이 가진 모든 영향력과 승인을 부여한다.”
p119 버크의 관전에서 ... 이런한 성공적 변화를 계획하고, 운영하고, 판단하고, 완수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그 사회의 역사·의식·규범·관례·전통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필요하며, 성공적인 정치는 - 신중 prudence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 이런 종류의 이해에 이끌린다.
p124 버크는 이렇게 쓴다. “모든 것을 인위적 평등의 상황으로 밀어 넣으려는 생각에는 언뜻 보기에 마음을 확 사로잡는 뭔가가 있다. ...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는 오판이요, 비현실적이다. ...”
p130 페인은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근본적으로 동등한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누구도 어떻게든 최고 권력을 장악할 자격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믿었다. “차이 없는 곳에 우월함은 없다” ; 페인의 생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p133 페인은 타고난 자유를 되찾기 위해 혁명 찬성론을 펴고, 버크는 세상의 자연적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혁명 반대론을 편다. ; 나는 (혁명 찬성-반대를 떠나) 혁명의 성공률은 극히 낮다고 생각한다.
p135 페인에게 ... 사회 형성은 그 자체가 자유로운 개개인의 선택이므로, 사람들이 사회에서 갖는 자연권은 강압 없이 개인이 선택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다./버크에게 인간의 본성은 사회 안에서, 따라서 모든 사람이 속한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p139 페인 선택 vs p142 버크 합의
p149 권리와 선택에 대한 이해가 페인 정치사상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처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력 있는 의무라는 이러한 비전이 에드먼트 버크의 도덕적·정치적 철학의 최고 핵심을 이룬다.
p159 무제한적으로 원하는 것과 열정을 따라갈 경우 인간은 사회에서 살 수 없다. 따라서 시민의 권리 중 하나는 그들의 열정을 어떤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는 부분적 자유와 부분적 구속을 보장한다. 이런 것이 평상시 정확히 얼마나 균형 잡혀 있느냐는 절대적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신중함의 문제다.
p165 1774년 버크는 유일하게 순수한 자유는 “질서와 연관된 자유다. 그것은 질서 및 미덕과 함께 존재할 뿐 아니라 그것들 없이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 ; 그러나 항상 균형점에 있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질서로 이행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p166 토머스 페인은 ...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기반을 역사가 아닌 자연에 둔다. ... 그 때문에 페인의 저술에는 애국심에 대한 호소와 조국에 대한 임무가 눈에 띄게 없다.
p167 버크는 ≪성찰≫에서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가 사랑스러워야 한다.”
p237 버크와 페인은 정치적 신념이 정치적 행동을 지향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p241 페인은 분명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건설하는 것이라고 믿었다./p242 그러나 바로 이 구절에서조차 페인은 자신의 세계관이 파괴와 구축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무심코 드러낸다.
p246 버크의 반혁명적 개혁/p249 그러나 몇몇 특정한 이익을 거론함으로써 혁명의 폭력성과 과격함을 변명하려면, 그런 이점을 덜 과격한 개혁을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할 테고, 버크의 주장에 의하면 이는 그야말로 거짓이었다. ; 내가 보기에는 버크 역시 덜 과격한 개혁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거짓으로 판단했다.
p250 “혁명은 사려 깊은 이들과 선한 이들이 가장 마지막에 선택하는 방책일 것이다.”
p256 프랑스혁명에 대한 격렬한 반대로 비추어볼 때, 오늘날 우리는 이런 주장을 지나치게 쉽사리 묵살하고 버크를 단순히 기존 질서 옹호자로 간주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의 경력 내내 드러난 실제 면면과 반혁명 논거의 본질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버크는 공직에 있던 30년 동안 의회에서 착수한 거의 모든 개혁 노력을 이끌었다.
p263 버크는 자기 시대의 논쟁은 1688년의 논쟁과 실제 전혀 유사성이 없으며, 휘그파이면 혁명에 찬성해야 하고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면 토리파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관념은 위기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p269 사회에서 세대들 간의 적절한 관계란 무엇인가? 우리 부모 세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뭔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관례를 제쳐두고 우리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가?
p273 왜 과거는 현재 혹은 미래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거나 더 나쁜 것일까? 그리고 페인은 진실로 진보를 믿기 때문에 영원한 정의의 원칙이라는 더 나은 이해를 지향하는 정치 생활의 움직임 속에서, 이런 진보가 습관이 아니라 진리가 대권을 장악하는 영원한 원칙의 정치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p281 버크는 ... “나는 물러나는 세대를 증언하고, 다가올 세대를 증언하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영원한 질서라는 거대한 사슬의 연결 고리로서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