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현대와 삼성의 배구 맞대결 기사를 읽다가 손가락 가는 대로 끌려들어가 읽은 기사는 한겨레의 '재모아빠' 혹은 구본준 기자(http://wnetwork.hani.co.kr/bonbon/)가 쓴 '필진네트워크' 기사이다. 지면에 게재되는 기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교수의 '거대한 자료실' 탐방기사인데, 얼마간은 부러운 마음으로 죽 둘러보았다(나는 내달 '고아원'에 있는 책들을 근처 다른 '고아원'에다 옮겨놓아야 한다). 저술가가 되면 이런 자료실을 갖게 되는지, 아니면 자료실을 마련해야 저술가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한 가지 '모델'로 창고에 넣어둔다(하긴 이웃나라엔 '고양이 빌딩'을 갖고 있는 저술가도 있다고 하니 '저술가의 서재'가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07. 02. 16)[필진]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2년쯤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를 만났는데, 근황을 묻자 “서재를 구해 책들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새로 구한 서재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라고 했습니다. 임교수의 집이 직장인 이화여대 근처 아현동인 것을 알고있던 저는 왜 가까운 집 놔두고 그렇게 멀리 서재를 구했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습니다. 임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20평짜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지경”이란 겁니다. 게다가 자기는 공기 좋은 곳이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집까지 옮겨야 하느냐고 말이지요. 임 교수는 집안 전체가 자료로 가득찼다고만 빙긋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일, 임석재 교수의 광주 아파트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무려 28권의 책을 쓴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건축글쟁이, 그 글쟁이의 서재를 찾아가는 제 연재 기사 <한국의 글쟁이> (한겨레 출판섹션 ‘18도’섹션 참조) 열아홉번째 초대손님으로 임 교수를 모시게 된 것이 제가 임교수 댁을 찾아가게 된 경위입니다(*그러니까 다음주 연재가 '임석재 교수' 편이겠다).

임교수의 집은 광주 시내를 살짝 벗어난 언덕 위에 잡은 비교적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평수는 제법 넓었는데 방이 5개 짜리더군요. “서울에서 드는 비용으로 2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임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곳이 아닌 완전한 집필실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임교수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관에서 보이는 집안 모습은 이 곳이 ‘거대한 자료의 바다’임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마루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같은 공간부터 철제 책장이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IMG_2158(3232).jpg

집안 조금이라도 빈 공간에는 책장들이 열병하듯 서있었습니다. 마루는 그저 큰 방일뿐이었습니다. 마루 가운데에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모든 벽은 책장을 놓았습니다. 자, 마루 책상 앞에 선 임석재 교수입니다.

임 교수는 마침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임교수는 글쟁이이면서도 사진을 직접 해결합니다. 사진을 거의 전문적으로 찍는데, 내년도 이화여대 다이어리를 임교수가 찍은 우리나라 전통가옥들 사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2주별 그림으로 넣을 52개 전통가옥별로 좋은 사진을 고르던 차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슬라이드보관통과 사진을 살피는 도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5개의 방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서재였는데,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 자료를 넣어놓는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별 자료방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가, 미술가, 철학자 등 개인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또다른 방 2곳은 시대별 자료방입니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자료방, 그리고 19세기 이후 현대건축까지 자료방 등. 마루는 집필공간 겸 현대건축 자료들 공간입니다. 우선 근대건축 이전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카메라도 모두 이방에 놓았더군요.

조금의 빈 틈에도 책장을 넣을만큼 자료는 많았습니다.

각 자료들에는 찾기 쉽도록 종이로 항목을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임교수 자료실의 압권은 바로 슬라이드 사진을 모아놓은 방입니다. 물론 모두 임교수가 직접 찍은 필름들입니다. 부피가 나가는 책도 아니라 조그만 슬라이드 사진필름이 도대체 몇 개나 되기에 방까지 따로 만들었냐구요? 자그마치 20만개라고 합니다. 클리어파일처럼 생긴 두꺼운 파일철에 한 쪽당 20개씩 끼워 보관합니다. 자, 한번 보시죠.

보시면 낯익은 생활용품인 방습제 ‘물먹는 하마’가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습기흡수용품을 넣은 것은 슬라이드 필름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이 필름철 한쪽한쪽 사이에 넣기 위해 신문지를 크기를 맞춰 1만쪽을 잘라놓은 점입니다. 습기 빨아들이는데 신문지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임교수가 신문을 주워다 모은 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종이를 잘랐다고 합니다. 정말 자료 관리가 저술가에겐 생명과도 같구나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철에는 꼼꼼하게 필름 항목을 적어놓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이름이 보이네요. ‘English Baroque, Christoper Wren'.

(#크리스토퍼 렌은 영국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갑니다. 원래는 자연과학자로, 뉴튼이 칭찬할 정도의 대단한 양반이었다는데, 옥스퍼드대 천문학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놔두고 건축가가 되었답니다. 참 재주도 많은 분이죠? 대표작은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입니다. 이만틈 설명하고서 사진도 안보여드릴 순 없으니 세인트폴 성당 사진 첨부합니다.)

학자들의 일상은 자료와의 전쟁이자 동고동락입니다. 스스로 분류한 자료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건축이란 분야 속성상 임교수의 도전은 다른 인문학자들보다 훨씬 돈이 듭니다. 왜냐구요? 건축책들은 비싸거든요. 사진들이 들어가면 책도 크구요. 보통 원서가 권당 10만원 가까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거대한 자료실 속에서 임교수는 읽고 쓰고 자료를 정리합니다. 그의 삶을 보면 글쓰는 팔자가 따로 있다 싶습니다. 아니, 글쓰는 기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본인도 씨익 웃습니다. “참 미련하게 살지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 결과 28권의 책이 독자들과 건축을 이어주었으니, 보람은 클 것입니다.

임 교수는 방학이면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외로 떠납니다. 취재와 자료수집을 위한 출장인데요, 그 중간중간 사서 모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머그잔’입니다. 나라별 특색있는 기념품으로 하나씩 모은 것이 부엌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에도 한줄로 머그잔이 서 있네요. 건축학자라서 그런지 건축물 그림이 들어있는 머그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술가들의 서재가 모두 임석재 교수의 서재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저술가들의 서재는 이렇게 자료실이 되고 맙니다. 얼마나 많은 자료에 투자하고 관리했느냐에 따라 저술의 양과 질이 바뀌기 때문에 오늘도 글쓰는 학자들은 모으고 또 모읍니다. 그게 저술가의 팔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에 모으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퀴즈! 책이 이 정도면 한 몇권이나 될까요?

임석재 교수에 대한 기사는 조만간 <18.0> 섹션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다음에는 다른 저술가의 서재를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절들 잘 보내세요.

참, 임교수 댁에 있는 책은, '1만권'입니다.

07. 02. 19.

P.S. 4-5년 뒤면 나도 1만권쯤의 장서를 갖게 될 터인데 이를 어이해야 할 것인지, 미리부터 걱정스럽다. '물먹는 하마' 정도는 미리미리 준비해둘 수 있겠건만...

P.S.2. 한편 아래는 지난 2000년 10월말 한겨레의 '인문학 데이트' 연재란에 실렸던 임석재 교수에 대한 소개이다. 저서가 그간에 훨씬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작년에 나온 책으론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2006)과 '임석재 서양건축사 3'에 해당하는 <하늘과 땅>(북하우스, 2006)이 있다.

임석재는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1980~1987년:서울대 건축학과 및 같은 대학원

△1989:미국 미시간대 건축학 석사.

△1992: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 박사

△1993년:원도시 근무

△1994년~현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저서:<추상과 감흥:비엔나 아르누보 건축>1·2(문예마당, 1995), <장식과 구조미학:불어권 아르누보 건축>1·2(발언, 1997), <형태주의 건축 운동:형태와 조형의지>(시공사, 1999), <생산성과 시지각:뉴 브루털리즘과 대중사회>(시공사, 2000), <한국 현대 건축 비평>(예경, 1998),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1999), <물질문명과 고전의 역할:임석재 교수의 현대 건축 이야기>(북하우스, 2000), <한국적 추상 논의>(북하우스, 2000) 등 다수.

임석재가 말하는 임석재

철들면서 시작된 사춘기 때 나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조형 환경은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시(詩)였다. 한국 현대시의 고전들을 암송하고 스스로 시작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관심이 합쳐져 나는 지금 건축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사춘기 때의 감성과 열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사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일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고 책 쓰는 데 보낸다. 건축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현실성은 골목길 탐방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얻고 있다. 요즘은 그 동안 공부해온 내용을 응용할 설계 작업도 시작하여 1~2년 후면 처녀작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연구는 20세기 서양 근현대 건축사, 한국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의 세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저서 시리즈를 기획하여 매일 열심히 공부하며 집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최종 목표는 나만의 건축 사상을 세우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금도 학생들 사이에 끼여 철학 강의를 듣는다.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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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 by 로미오

*  "줄리엣이나 철학이나 그게 그거 아니가." --- by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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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1-3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

2007-02-2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7-03-0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흐음...'이라고 댓글을 답니다^^ 글구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마립간님은 좌우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정의를 내리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출처 : 나귀님 > 정말 책이 비싸서 책을 못 읽는 걸까?

책의 "가격" 때문에 독서를 마음껏 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책의 "무게" 때문에 아무데서나 펼쳐들고 읽지 못한다는 핑계보다도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만 따져보면 분명한 오류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재미있는", 또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구매하는 데에는 1만 원, 2만 원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없는", 또는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을 구매하는 데에는 1백 원, 2백 원을 아깝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책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물건이나 서비스가 마찬가지다. 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1만 원짜리가 아니라 10만 원짜리라도 군소리 않고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사기 싫은 데 꼭 사야 하는 것, 또는 영영 사지 않으리라 작정하는 것은 1천 원, 아니 1백 원짜리라도 사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술값은 탕진해도 책값은 아끼게 마련이고, 또 어떤 사람은 차(車)값은 아깝지 않아도 술값은 아끼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책값은 아깝지 않아도 차값은 아까울 수 있다. 결국 만족감이란 상대적인 것이므로, 단순히 액면가만 놓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비해 "비싸다" 혹은 "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아무리 책값이 비싸다 한들, 한 달 교통비보다 비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한 달 휴대전화 요금만큼 비싸겠는가. 문제는 "책값은 비싸다"는 통념, 바꿔 말하자면 "책값은 당연히 싸야 한다"는 오해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책값에 대한 불평은 단지 오늘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 영국 작가 조지 오웰도 "책값 대 담뱃값"이란 에세이(오웰의 에세이집인 <코끼리를 쏘다>(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 2003)에 수록되어 있다)에서 책값에 대한 일반의 잘못된 인식을 따끔하게 꼬집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의 서두에서 조지 오웰은 신문사 편집인인 자기 친구가 어느 공장 노동자들로부터 "당신네 신문은 1실링 6펜스씩이나 되는 그런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책 한 권에 그만한 돈을 쓸 수가 없어요!"라는 불평을 들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 책을 사거나 읽는 것은 값비싼 취미로, 일반 사람들의 경제 수준에 큰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어, 이에 대해 한 번 상세히 밝혀볼 필요가 있겠다. 독서비가 시간당 펜스 단위로 정확히 얼마가 되는지를 산출하기란 어렵지만, 내 책을 모두 세어 책값을 더해보겠다. 내가 지출했던 다른 다양한 비용을 감안해 보면, 나는 지난 15년 동안의 내 지출을 비교적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을 것 같다. (251-252쪽)

그렇게 해서 오웰은 자신이 구입한 책, 얻었거나 도서권으로 구입한 책, 서평용 도서 및 증정본, 빌려서 아직 안 돌려준 책, 대출한 책 등의 숫자를 센 다음, 그 가격을 모조리(구입한 책은 정가로, 서평용과 증정본 도서는 반값으로 등등) 환산한 다음, 그것 외에도 일간지 두 개, 석간지 한 개, 일요신문 두 개, 주간서평지 하나, 월간지 한두 개 등의 다른 비용까지도 모조리 환산해서 더해 본다. 결국 "15년 동안에 걸쳐, 1년에 약 25파운드"의 비용이 독서비로 지출된 셈이다. 그런데 오웰은 현재 영국의 성인 남성이 피우고 마시는 담뱃값과 술값만 쳐도 대략 1년에 40파운드는 족히 든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술, 담배나 영화 관람 같은 다른 오락에 비해 독서야말로 시간당 비용이 가장 값싼 오락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오웰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 나는 독서란 값싼 오락 중 하나라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어쩌면 가장 값싼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 대중이 책에 지출하는 실질적인 돈의 액수는 얼마일까? 분명히 어디엔가 있을 테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그 수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전쟁 전 우리나라가 연간 약 1만 5천 권의 책을 발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권당 1만 부가 팔린다면, 국민 1인단 직, 간접적으로 연간 약 세 권만을 사는 셈이 된다. 이 세 권의 가격을 다 합해도 1파운드, 혹은 그 미만일 것이다. 이 수치는 내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며, 만약 틀렸다면 정정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의 계산이 어느 정도 옳다면 식자율 1백 퍼센트이며, 성인 남성 한 명의 평생 담뱃값이 인도 농부 한 사람의 평생 생계비보다 더 많은 이 나라에서, 이 수치는 결코 자랑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책 소비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떨어진다면, 그것은 책을 사든지 빌리든지 간에 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독서가 개싸움 구경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술집에 가는 것보다는 더 재미있는 오락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257쪽)

하여간 문제는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들이려니까 생기는 것이다. 자꾸 옆에서 "읽어라, 읽어라" 하니까 책값이 비싸네 책이 무겁네 하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닥달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 부추기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사는 사람에게는 책값이 싸거나 책이 무겁거나 하는 불평이 나올 리 없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뻑하면 " OECD 국가에서 최저 수준의 독서율" 어쩌구 하는 요상한 잣대를 갖다대고 비교하면 무지막지 엄청난 "독서율 하락"처럼 보이겠지만, 다만 TV며 영화며 인터넷 같은 새로운 매체가 출현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니, 단순히 책 안 읽는 사회를 타박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책 읽는 사람이 많았을까? 단적으로 30년 전에는 출판사 수도 적었고 출간 종수도 적었던 반면, 지금처럼 "밀리언셀러"라는 폭발적인 판매고는 없었음을 고려해 볼 때, 단순히 지금이 옛날보다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무슨 "국민개병의 원칙"도 아니고, "4대 노선"도 아닌 와중에야, 자칭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책 읽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책 깨나 읽는다는 나로서는 오히려 지금이 좋다. 생산량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종수 하나만큼은 확실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벼라별 책이 다 나오는 요즘 같으면 솔직히 책 읽을 맛이 난다. 물론 옥석이 뒤섞여 있긴 하지만, 석이 많아지는 것만큼 옥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무슨 뜻이냐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책을 읽는" 사람은 불평할 틈도 없이 읽고 또 읽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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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ve in Seoul ; 2007년 1월 23일 오후 8시 ; 올림픽 체조 경기장

* 나이로 보아 마지막 공연일 듯.

* 만명이 넘는 관중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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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01-24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번개처럼 왔다가 사라지셨네요.
 

출처:http://blog.naver.com/th3030/120003995291

- 역사상 최고소설, <돈키호테> -

중세 말 17세기 기사계급의 몰락을 풍자적으로 그린 <돈키호테>가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뽑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2002년 5월 7일 보도했다. 노르웨이의 노벨 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개국 출신 100명의 유명작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페인 출신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50%가 넘는 득표율로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세르반테스는 문학에 맞는 문체를 완성했으며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의 첫번째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인도)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거장들이다. 노벨 연구소 등은 이들 작가에게 세계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소설 10편씩을 꼽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고작품 및 100대 작품을 선정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은 4편의 작품이 올랐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와 프란츠 카프카(체코), 톨스토이(러시아)가 3편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구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호머(고대 그리스), 토마스 만(독일), 버지니아 울프(영국) 등도 2편씩 포함됐다.

아래는 노벨연구소가 세계적인 작가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100대 작품목록이다.

- 그리스 -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디세이>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이탈리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드>
단테, <신곡>
보카치오, <데카메론>
지아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집'
이탈로 스베보, <제노의 고백>
엘자 모란테, <이야기>


 

 

 

 

- 프랑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몽테뉴, <수상록>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
스탕달, <적과 흑>
발자크,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여행을>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무엘 베케트, <삼부작 : ­몰로이 · 말론 죽다 · 이름붙일 수 없는 것>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 영국 -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의견>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조지 엘리어트, <미들마치>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찰스 디킨즈, <위대한 유산>
로렌스, <아들과 연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조셉 콘라드, <노스트로모>
조지 오웰, <1984>
도리스 레싱, <황금 노트>
살만 루시디, <한밤의 아이들>

 

 

 

 

 

 

 

- 아일랜드 -

<니알의 사가(saga)>
할도어 렉스네스, <해방된 민중>

- 독일 -

괴테, <파우스트>
토마스 만, <붓덴부르크 일가> <마의 산>
카프카, '단편', <심판> <성>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파울 첼란의 '시집'
귄터 그라스, <양철북>



 

 

 

 

- 러시아 -

고골리, <죽은 혼>
레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안톤 체호프, <단편선>

 

 

 

 

 

 

 

- 포르투갈 -

페르난도 페소아, <근심의 書>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스페인 -

로르카, <집시의 노래>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 미국 -

허만 멜빌, <모비딕>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가 앨런 포, <단편전집>
월트 휘트먼, <풀잎>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랄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토니 모리슨, <당신>

 

 

 

 

 

-북유럽 -

안데르센, <동화집>(덴마크)
입센, <인형의 집>(노르웨이)
크누트 함순, <굶주림>(노르웨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피피>(스웨덴)

 

 

 

 

- 아시아 -

루쉰, '소설집'(중국)
<마하브하라타>(인도)
발미키, <라마야나>(인도)
칼리다사, <사쿤탈라>(인도)
시키부 무라사키, <겐지 이야기>(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일본)


 

 

 

 

- 아프리카 -

타예브 살리흐, <북쪽으로 가는 계절>(수단)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은 무너진다>(나이지리아)

 

 



 

 

 

- 라틴아메리카 -

후안 룰포, <페드로 마라모>(멕시코)
보르헤스, <단편집>(아르헨티나)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콜롬비아)
호아오 귀마레스 로사, <오지에서의 곤경>(브라질)


 

 

 

 

- 아랍권 -

<길가메쉬 서사시>(메소포타미아)
<천야일야>(페르시아)
<욥기>(이스라엘)
자랄 앗-딘 루미, <마트흐나위>(이란)
세이크 무스하리프 웃-딘 사디, <과수원>(이란)
나지브 마흐푸즈, <우리 동네 아이들>(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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