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절판


만약 판도라가 겁에 질려 상자를 닫아버리지 않았다면 그 상자의 마지막 메세지인 희망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상자에서 쏟아져 나오는 추한 것들을 끈기 있게 지켜보면서 빛과 그림자를 통합해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32쪽

우리 내면의 빛과 그림자를 인정하듯 발설의 욕구뿐만 아니라 침묵의 요구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34쪽

말함으로써 내면이 강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면이 많이 강해졌기 때문에 발설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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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5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6

 드팀전님께서 지적하신 ‘
마립간님이 일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정리된 공통개념들을 자의적으로 쓰시면서 그것을 논리적이라고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제가 먼저 자의적 용어이기 때문에 미리 선언을 하였고 제 스스로는 논리적 추론을 좇아가지만 이것을 객관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미 자의적인 용어를 정의하고 출발하는데 드팀전님이 감정적 자극을 받으셨다는 말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예술적으로도 진보적인가요?/진보라는 단어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에 대한 것도 이미 예전에 언급했던 것입니다. 언제가 바람구두님이 보수와 진보 성향을 분석하는 설문하셨는데, 보수와 진보를 정치 경제 2차원 평면을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의 댓글이 왜 평면만 가능하느냐, 여성주의에 견해에 따라 3차원도 가능하고 예술적 측면을 고려하면 4차원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가신 알라디너 #####님이 여성주의와 진보를 동일시 하는 글을 보고 진보의 측면에 위와 같은 다면적 측면이 있다고 한적도 있습니다.

 그럼 저는 왜 두가지만 보느냐. (결론적으로는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한 남자가 배우자 여자를 고릅니다. 어느 면을 보냐. 마음씨도 봅니다. 학벌, 가정환경, 외모(외도도 키 얼굴, 몸매 등), 성격, 취미 생활 등을 파악하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파악하려면 얼마 동안의 연애기간이 필요할까요? 충분한 연애기간과 수많은 여자의 소개를 통해 자신에 꼭 맞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100%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우는 성격, 가정환경 등 몇 가지가 저의 기준에 맞는 배우자를 택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판단도 여러 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지만 자유와 관용이 배우자의 인품이나 성격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민족 문제 역시 다면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단선적으로 파악하여도 이분적으로 보수, 진보가 양분되는 것이고 극단의 보수에서부터 극단의 진보까지 연속되는 스펙트럼을 갖습니다. (대개는 넷으로 나누지요. 그리고 또 모르지요 알리디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마립간, 너 일제 청산을 원하니, 바보야, 그럼 너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야’라고.)

 ‘
자유와 평등 간의 (중략) 민족 문제 역시 마찬가집니다. (중략) 역사적 실재로서의 과정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의 드팀전님 글에 특별한 반론도 없습니다. 광우병과 관련 한국의 축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는 축산업자도 유통업자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파란여우’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드팀전님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수, 진보, 자유, 민족이 용어가 그렇다고 하시면 역시 저는 ‘그대로 믿습니다.’ 드팀전님은 저의 글이 보수주의와 PD가 함께 있느냐에 답변을 전제로 글을 썼다고 보시는데, 저는 ‘같이 갈 수 있다.’, ‘같이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물으시면 ‘모르겠습니다.’ 저의 글은 제 스스로를 보수로 생각하게 된 경위와 PD를 답변(PD를 선호함.)하게 된 에피소드에 관해 경위를 설명했을 뿐입니다. 진보(PD)였다가 뉴라이트가 되는 식은 아니라는 것을. 글샘님이 지적하시 것과 같이 다른 것들 사이의 공통점을 눈여겨 본 것도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반론이나 해명은 드팀전님이 지적하신 ‘소아적 자유’와 ‘발화자’, ‘저의 초월적 지향’인데, 우선 생각 좀 정리하고요.

 그전에 몇 가지 단편적이 이야기를 하면 군대에 관해 저의 의견은 남성 여성 모두의 징병제를 통한 군입대 다음에는, 남성 징병제, 모병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군해체를 통한 예비군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반복되는 편지를 읽으신 분은 자연스럽게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언급하게 될 ‘강요된 선과 선택된 악’에 대한 주제를 포함하여 바칼로레아를 걸고  넘어진 주제들은 제가 바칼로레아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궁금했던 주제들에 불과합니다. 바칼로레아 관련되어 읽은 책은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한권입니다. 따라서 제가 제시한 주제들이 바칼로레아 있는지 없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런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들을 모아 이벤트를 하였고 저의 서재 카테로리 <2006년 여름 이벤트>와 <좋은 책을 추천 받고자> 카테고리 안에 글이 있습니다.

 관용에 대한 생각은 드팀전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혹시 본인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과학자 헌장'에 대한 의견을 첨부하자니 안락사 논쟁까지 주제가 확대될 것 같습니다. (내용을 아시는 분은 이 문장으로도 저의 의미를 아실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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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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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관한 개인적 느낌을 포함하여

[맛살라 인디아]의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인도에 총괄적 지식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 질문에 꼭 맞는 것은 없음. 굳이 권한하다면 <우파니샤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인도에 방문하여 한 동안 거주할 사람들 (유학생, 공관 주재원, 인도와 사업을 하신 분 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p62 인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개혁의 상관관계 속에서 인도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과, 장기적으로는 인도의 민주적인 시장경제가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능가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p69 우선 인도인들의 풍부한 상상력, 암기력, 수학적 전통 등을 들 수 있다.
p277 Incredible India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인도에 한 동안 거주할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서평을 쓰려하니 앞 문장 이외에 뭐를 써야할지 모르겠군요. 우선 설문으로 채우고 서평은 저의 개인적인 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인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교에 근원이 힌두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때입니다. (p225 인도인 믿음 속에 살아 있는 불교, 저의 페이퍼 4대 종교 http://blog.aladin.co.kr/maripkahn/16216) 그 전에 단편적으로 만남은 영화 신상(神象 Haathi Mere Saathi)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평생 극장에서 보신 영화가 손을 꼽을 만한데,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모님 보자고 해서 본 유일무이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지식적으로 인도에 알게 된 것은 이거룡 선생님의 인도 문화에 강의를 들은 후입니다. 카스트Caste 제도에 자티Jati라는 하위 그룹이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p139 카스트, 그 모진 인습의 굴레) 비슈누, 시바신에 대한 이야기도 그 때 듣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기독교에서 아마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님이 인도인들에게 인류의 원죄, 예수님의 속죄함, 구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면 죄고백 전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태권도의 격파로 나무나 돌은 깰 수 있지만 물은 깰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도인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사람이나 실리콘 밸리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듣게 됩니다. (p41 인도 IT, BT 산업, 그 무궁한 잠재력) 왜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인도는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한데,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공부를 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책의 내용 대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빈부격차, 카스트 신분제도 하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지각 이동설에서부터 ‘독특한 나라’라고 밖에. Incredible India! 결론적으로 인도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유적지, 한국과의 관계까지, 인도에 대한 지식은 그의 나라에 이해를 통해 불필요한 오해, 갈등을 줄여줄 것입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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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3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5

* ‘마립간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2,3’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 보수와 PD사이의 회색인

 앞 편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자유에 대한 생각은 꾸준히 독서를 통해 보충하고 있지만 PD를 포함한 NL, CA 등은 아는 정도가 인터넷상에 떠있는 A4용지 한 장 분량도 안 될 만큼의 지식이라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연치 않게 ‘드팀전’님과 대화에서 공개하게 되었으니 해명내지 변명을 해야겠습니다.

 우선 어렸을 때 생각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남이 저에게 뭐라고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의 통제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집권세력적인 심정이 들었지요. (반국가나 반체제가 아님.) 저는 제가 좌파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회제도의 불합리에 일본 식민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친일청산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을 갖게 되었고, 자유의 극단에 무정부주의Anarchism을 동경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좌파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서량이 늘면서 이런 저의 성향이 우파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보수(우파), 진보(좌파) 등의 용어가 저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사용됩니다. 저는 자유민주연합을 지지한다고 해서 보수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NL과 PD도 말로써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를 나누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 중에서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 엄격과 관용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 딱 두가지입니다. (관용寬容은 손자가 말한 인仁이고 엄격嚴格은 손자가 말한 엄嚴에 해당합니다.)

 일제 청산을 원하면 사회적으로는 진보에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제 기준에 의하면 보수입니다. 유신독재에 관련하여 그 대상자들이 댓가를 치러야 된다고 생각하면 역시 보수에 해당합니다. 북한 정권 역시 그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보수인데, 이것은 사회적 통념과 일치합니다.

 (이글을 읽게 되면 당사자 알라디너는 본인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것이고 마음의 상처를 줄까 조심스럽지만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알라디너 ###님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합니다. 일제 청산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을 진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확인한 것이 사형제도에 의한 의견입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가 ‘생명이 고귀하고 범죄자라고 하여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생명이 빼기는 것이 가슴 아파서’라고 이야기 하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라디너 ###님은 본인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고 사형을 통해 징벌이 종료되므로 사형을 반대한고 하셨습니다. 같은 사형제도의 반대이지만 저의 판단은 반대입니다.

 이론적으로 진보의 관용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모순의 명제를 남깁니다. ‘관용은 불관용까지 관용하는가?’ (이것도 아마 바칼로레아에 있는 명제일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도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정치와 과학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러나 선택은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두기둥’ 페이퍼 http://blog.aladin.co.kr/maripkahn/909955)

 자유에 대한 선택은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형성하는데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NL이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민족주의(보수)라는 변형이라는 생각입니다. (앞 문장은 NL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지적에 저에게 항변할 지식은 없습니다.) 국가이든 민족이든 개인의 자유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를 제외한 그 외의 생명은 동등합니다. 민족을 떠나서 인종을 떠나서. 심지어는 동식물을 포함한 생명이 있는 것을 포용하려 합니다. 북한을 왜 돕느냐고 물으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돕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굶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아마 드팀전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을 돕는다는 것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돕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분법적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선택은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만원을 기부하려 하는데, 북한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아프리카를 도울 것인가. 똑 같은 논쟁이 초등학교 한자 교육에서 있었습니다.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은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국어(한글)를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은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합니다.

 PD는 비자산가와 자산가라는 이분법을 택하지만 현실적인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인식의 확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범위를 넘은 인식으로 아테네에 한정된 인식을 갖은 귀족과 논쟁을 벌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민족의 해체’ 페이퍼 http://blog.aladin.co.kr/maripkahn/911579)
(‘혈연사자’ 페이퍼 중 ‘혈연’ http://blog.aladin.co.kr/maripkahn/790086)

 결론적으로 저는 평등 보다는 자유를 중하게 생각했다는 데서, 관용보다는 엄격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보수’이며, 저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전 세계적 평등으로 보면, NL보다는 PD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PD를 지지합니다. (이글은 논리적 비약 있거나 용어의 엄밀성이 없으므로 글 보충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 주시면 기꺼이 읽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50:50으로 선택을 하지 못한 주제는 낙태입니다.

 cf 의사와 독재자 환자 ; 참조 페이퍼 ‘변호사’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7040)

 그래도 보수와 PD가 연결되지 않는 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념 보수주의'가 더 싫습니까 아니면 '시장 보수주의'가 더 싫습니까. 아니면 둘다 너무 싫어 기권을 통한 '탈정치화'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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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6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12-23 09:54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6 드팀전님께서 지적하신 ‘마립간님이 일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정리된 공통개념들을 자의적으로 쓰시면서 그것을 논리적이라고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제가 먼저 자의적 용어이기 때문에 미리 선언을 하였고 제 스스로는 논리적 추론을 좇아가지만 이것을 객관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미 자의적인 용어를 정의하고 출발하는데 드팀전님이 감정적 자극을 받으셨다는 말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글샘 2008-12-2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립간님과 드팀전님의 대화가 불이 붙었네요. ^^
저는 요즘 아이들 대학입시 상담하느라 정신이 좀 나가있다보니... 이런 글들을 이제서야 보는군요.
서로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네 직능별 모임이 아니고서는 한 마디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잔 마셔도 같은 직능에서 마셔야 편한 뭣이 있겠죠.
그 외에 엔엘이니 피디니 하는 이야기까지야 저도 깊이는 모르지만, 맨정신으로 하기 어려운 깊이가 아닌가 합니다.
저에게 이념 보수가 싫습니까, 시장 보수가 싫습니까, 기권하겠습니까, 물으신다면. 저는 ... 저는 보수입니다. 그렇지만, 이념은 진보구요, 시장은 보수가 싫구요. 기권은 안 합니다.
우리, 지 맘대로 나누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면을 이야기하더라도, 같은 면은 나눌 수 있는 나눔이 저는 생산적이라 생각해요.
서로 나눠서 나눌 것이 없어지면... 슬프지 않나요?
.... 제가 오늘 한 잔 했습니다. ㅠㅜ

마립간 2008-12-21 17:4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서 '둘 다 싫지 않고 좋은데'라고 하면... 이런 생각이 있었으나 '글샘'님이 '저는 보수입니다.'라고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주시면 됩니다.
과학은 대개 정의와 분류부터 시작합니다. 나눌 때 나누더라고 공통점을 또한 찾으려 보수와 PD를 이야기한 것이니, '글샘'님이 지적하신 말씀에 동감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2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말씀처럼 가끔 저는 수만가지 파도 만들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휘모리는 휘모리식 미래를 꿈꾸는 휘모리파 ^^;; 그가 바라는 미래가 무엇이든 이 세찬 경제파국앞에 우리가 함께 할 일은 크게 다르진 않겠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마립간 2008-12-21 17: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FTA반대휘모리'님.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저의 닉네임이 '마립간'인 이유가 '남이 나를 이해해 주시 않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왜냐하면 나는 내 가치관에서 있어서의 왕이다.'이기 때문입니다.
http://blog.aladdin.co.kr/maripkahn/5026

드팀전 2008-12-2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정 하지요. 제가 슬슬 감정적으로 자극받고 있습니다.
점점 제가 공격적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겁니다. 한 해를 심란하게 보내고 있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시점에 결국 이런 '현시적' 논쟁에 끼어들고 말았으니...
첫째 제 부덕함이 크겠지요.그러나 한가지짚고 넘아가고 싶은 점은 있습니다. 첫번재 댓글 정도에서 마감될 수 있었지만 절 계속 불편하게 하는 것은.. 마립간님이 일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정리된 공통개념들을 자의적으로 쓰시면서 그것을 논리적이라고 믿고 계시기때문입니다.

제가 '보수주의'와 'PD'가 같은 지평에서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는데..그것은 당연히 '정치'라는 개념틀에서 입니다. 우리는 앞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때문이지요. 복기를 하자면 마립간님이 그게 어떤 과학이든 과학에 대한 이야기햇고 저는 정치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맥락에서 글이 이어지고 있다면 그 맥락에서 '보수'와 'PD'를 이해해야 하는게 정석이겠지요.

정치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PD는 함께 일 수가 없습니다. 마립간님은 PD를 그저 평등에 대한 강조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즉 사구체 논쟁 같은 한국사회의 모순분석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작업을 자유니 평등이나 하는 한 단어로 환원시킨 버립니다.

자유와 평등 간의 논쟁을 주제로 하자면 현재적의미의 자유민주주의적 틀안에서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마립간님의 외연적 틀은 그 선상에 있습니다.저는 차라리 마립간님이 공동체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옹호를 이야기했다면 쉽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런데 마립간님은 '자유/평등'을 'NL/PD'로 서술합니다.언론에서 이 두 파를 '자주/평등파'로 불러서 그런 건가요? 마립간님의 '자유/평등' 논리로 따지면 '자유주의'='개인자유존중'=NL이 됩니다. 그리고'평등'='공동체주의'=PD 가 됩니다. 롤스같은 이들은 'NL'이 되고 매킨타이어 같은 인물은 'PD'가 됩니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맑스-레닌주의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거고 NLPD론은 기본적으로 맑스레닌적 사유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자유/평등을 그들에게 적용시키면 '자유'를 주장하면 다 NL이 되는식인거지요. 말도 안되지요.

바칼로레아 수준만큼 높지는 않지만 한국대학의 1학년 세미나 수준의 질문은 될 걸로 생각하는데요.제 느낌에..이런 질문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예술적으로도 진보적인가요?" 그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에서 말하는 '진보'와 예술에서 말하는 '진보'가 다른개념입니다. 철학에서는 개념에 대한 '지평'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80년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중미술은-당대 정치면에서- 진보적일 수 있었지만, 추상과 해체라는 개념의 예술의 '진보'개념에서 보면 '구상'에 대한 옹호이고,'메시지'에 대한 강박이며 '보수적'인 셈입니다.

세기의 첼리스트 카잘스는 '음악가 이전에 노동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스페인 프랑코 정권에 끝없이 대항했지요.(그 역시 미국에 대해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민족적 음악을 다루기는 했지만 그다지 현대음악에 열광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즉 그의 레퍼토리는 '보수적'이었지요. 이 사람에게 '정치적 진보'와 '음악적 보수'라는 말이 어색한가요? 그런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시리라 생각되는군요.

진보라는 단어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 만 가지 조합이 가능합니다. 제가 보기엔 '진보'의 개념 역시 마립간님은 자의적 해석방식으로 '자기본위적'으로 구획하고 계십니다. 대단히 일원론적인 방식입니다.

민족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탈근대적 민족관과 민족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이러면 제가 NL인 듯 보이지요.^^ 틀렸습니다. 진중권만큼은 아니지만 전 NL에 부정적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에 대한 몰입이 탈민족까지 왔다면,다시 민족의 재의미를 살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관념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실재로서의 과정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관용은 관용을 파괴하는 비관용에 대해 관용하지 않을 때 진정 의미를 갖습니다. 똘레랑스와 앙똘레랑스는 병행되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내 가치관에서 내가 왕이라면 그 왕은 어떤 조건에서구성되어 있고, 어떤 지점에서 말하는 자인가 를 고민해야겠요. 마립간님의 자유에 대한 의견은 존중합니다만...전 그런 자유를 소아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와 조직이라는 것 사이에서 존재합니다.(이 말이 마립간님께는 '그럼 개인의 자유란 없다는 거냐?'로 이해되시겠지만..제가 감정적이 된다면 마립간님의 그런 방식임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사회는 존재의 필수조건인데 자유를 거기서 분리시켜서 '나 홀로 자유롭다'를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종교적 접근입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 하시구요...

마립간 2008-12-22 11:46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이 이전 페이퍼보다 더 흥분하시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페이퍼 서두에 자의적인 해석이라서 이미 밝혔습니다. 그렇게 자의적 해석에는 그 만한 개인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또한 우연치 않게 언급된 저의 보수와 PD의 생각을 설명하려 했을 뿐입니다. 만약 내 이론이 맞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 했다면 '글샘'님께 택일을 하시라고 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나, '가을산'님과 대화할 때는 사회 통용적인 의미, 자의적 해석의 용어의 정의 구별해서 사용했습니다. 또한 조중동과 저의 차이점은 저의 영향력이 조중동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말씀드렸듯이 저의 정치적 움직임은 투표가 전부이고 타자가 정치적 의견을 물어왔을 때만 대답을 하지 제가 저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지 않습니다. 저의 친척(형님)께서 무슨 이유로 NL과 PD를 물으셨는지 모르겠으나 그 분이 저를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개인적인 호 & 불호를 물으셨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감정적인 상처는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니 드팀전님께서 진실로 상처를 받으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립니다.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초월적'이라는 것에 대한 저의 의견 페이퍼를 쓰면 드팀전님 지적하지 것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드팀전 2008-12-2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약간 수정하고 있는 사이에 댓글을 쓰셨군요...제가 최근에 초월적인 책을 좀 보고 있어서... 흥분까지는 안갔으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제가 우연히 예전에 봤던 책을 넘겼는데...1948년인가 세계과학자연맹인가(그런 단체는 뭔지?)에서 그런 류의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과학이 선용되는가 악용되는가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는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이라는 직업에는 시민이 보통의 의무에 대해 지는 책임 외에 특수한 책임이 따른다.특히 과학자는 대중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지식을 갖고 있든가 또는 그것을 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선용되도록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책임은과학자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아시는 내용이겠지요? 전문을 옮겨야겠군요. 마립간님과의 덕에 다시 보게된 내용이니...

마립간 2008-12-22 11:48   좋아요 0 | URL
저도 수정 중입니다.^^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3

*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4

* “마립간 ‘드팀전님께 드리는 답신2,3’에 대한 드팀전님의 댓글에 답변 편지

 우선 ‘드팀전’님께 감정적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은 저에도 다행입니다. 이성적인 상처?(견해 차이가 더 적절한 단어 같군요.)가 한 두 번의 의견 교환으로 해소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드팀전을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드팀전님을 비롯한 다른 알라디너가 저의 잘못을 지적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지적 유희입니다. 저의 가친관은 보다 상위의 것으로 보다 완벽에 가깝기를 바랍니다. 이미 저의 취향이란 것도 있더 독서도 편식을 합니다. 저의 사고의 오류와 허점을 교정하고 채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긴 대화를 마치겠다는 뜻이 ‘이 정도로 의견 교환이 충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 편지에 대해서 드팀전은 답글을 안 주셔도 됩니다. 그러나 저의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이 드팀전만은 아니니, 보수와 PD 사이의 회색인의 입장에 선 저의 입장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답글을 하던 중에 나머지에 관하여 간단하게 답을 하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 합니다. 1년에 한 두 편을 보고, 그것도 결혼 전 여자와 선본 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영화는 1970년대 TV의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 방영했던 것을 좋아합니다. 몇 편의 영화는 찾아서 봅니다. ‘아이다호’ 같은 영화는 10년 넘게 벼르다가 보았고, 이미숙의 ‘뽕’도 그랬습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꼭 보고 말 것입니다. 어쩌다 보는 영화이지만 인상 깊게 남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소피의 선택 Sophie's Choice’, ‘크루서블 Crucible’, ‘내겐 너무나 이쁜 당신 trop belle pour toi’, ‘The penalty phase’, ‘케이프 피어 Cape fear’ 등이 해당합니다. (몇편의 영화가 더 있습니다.) ‘둠스데이’ 결혼 후 아내와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준의 영화이지만 도입부의 여의사 인터뷰는 윤리적 주제이므로 인상에 남았습니다. 드팀전님이 몇 영화를 추천해 주시니 볼 영화가 늘었습니다. TV 없이 산지 20년에, 아직도 TV가 없어 볼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영화가 실제고 가능하냐는 저의 관심사가 아니고 오히려 주제에 관해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에서는 예술의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의 논쟁이 있는데, 영화 내용에 따라 입장차가 서로 바뀌더군요. (참조 왜곡된 사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1759) ‘슬라보예 지젝’의 책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같은 책도 읽었지만 새로운 분야는 한번 읽어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라딘에 남아 있는 이유가 처음 올 때의 마음, 모르는 분야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책의 안내입니다. 추천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연과학의 용어보다는 인문, 사회과학에 대한 용어의 엄밀성일 떨어집니다. 아는 것, 그 방면의 독서의 부족 때문입니다. 저의 보수와 PD의 회색인 입장에 대해 설명하는 페이퍼를 올리고 싶었지만 PD에 관해 파편적인 지식을 갖고 언급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군대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집단 정신의 진화>라는 책을 읽은 뒤입니다. 모병제를 하면 비폭력 성향의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고 폭력적, 권위적인 사람만 군대에 가며. 이는 군대의 부정적인 면을 강화시킨다고 합니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군대가 썩지 않게 소금 역할을 합니다. 여성의 군 징집은 그 소금의 역할이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실제는 모르겠고 이 책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 이것도 진화의 압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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