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거꾸로, 희망이다>를 읽기 시작하면서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에 누군가가 노무현 대통령님을 정조에 비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라딘 블로그에 의견을 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에) 정조 보다 조광조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는 더욱더 조광조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2007년에 청계천에 처음 가 봤는데, 가서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진** 교수님이 이야기 했던 시멘트로 만든 어항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이 말하기를 ‘한반도 대운하나 4대강 정비 사업은 *** 대통령님의 후보 시절에 선거 자금을 건설회사에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어떤 명목으로든지 토목사업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cf 그냥 개인의 의견입니다. 혹시 ‘미네르바’처럼 잡혀가야 될 내용이라면 블로그에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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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을 리뷰해주세요.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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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

- 부제 ; <불멸의 신성 가족 대한민국의 의사 족속이 사는 법>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서양 중세 시대 ; 장원을 지배하는 영주 및 가족이 있고 기사, 농노 등 있습니다. 농노는 영주의 땅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을 합니다. 추수한 곡식은 영주가 대부분 가져가고 남은 것으로 농노 및 농노 가족의 생계를 이어 갑니다. 간혹 흉년이 들면 영주가 가져가는 곡식의 양은 줄지 않아 농노는 굶주리게 됩니다. 너무 배고파 항의를 합니다. 영주는 이를 반란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때 정의의 기사knight가 나타납니다. 창과 칼로 위협하면서 ‘까불면 죽어.’ 무력 앞에서 농노는 무기력하게 수그러듭니다. 농노는 속으로 ‘세상 살기 싫다.’ 이 순간에 종교인 수사들이 농노를 방문합니다.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는 이 세상의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라.’

 영주에 빌붙어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의사와 요리사입니다 <불멸의 신성 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을 읽으니 영주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네요. 집사執事( 또는 책사, 모사)라고 불리는 사람.

 ‘노예’라는 단어를 보고 무엇이 연상되나요? 고대 이집트 왕국의 노예, 아니면 그리스 시대의 노예. 미국의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이 1865년, 불과 150여년 전입니다.

 법률이 언제부터 사람people를 보호했을까? 법조계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권력, 재력 등의 힘보다 대중 사람에게 가까워진 때가 언제 부터였나요?

 마치 내부자 고발과 같은 형식을 갖추었으나 그 내용 자체가 새롭지는 않습니다. 법조계 사람을 뽑을 때, 도덕성 평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도 없고, 정확한 도덕성 평가 방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그 당사자(사과)가 나쁘다고 할 것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그 풍토(사과 상자)가 나쁘다고 할 것이고.

 책의 앞부분에 양적연구와 질적 연구를 언급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양적연구를 통해 질적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점點이 모인다고 해서 선線이 되지 않고 면面이 모여 부피를 이루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종이는 면으로 치부되는 모이면 책과 같은 부피를 같습니다.

 오히려 법조계의 수입은 어떻고 세금 신고는 어떻고 실비 제공, 향응, 뇌물의 규모는 어떻고. 인맥의 형성은 어떻고 학벌은 어떻다는 것이 훨씬 실감나는 고발이라고 봅니다. 이 책은 오히려 단편적인 증례 보고라고 해야 할까? 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평가는 가능합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고발적 글을 쓰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책을 출간한 점, 개혁은 시작도 ‘한걸음부터라’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cf 전반적으로 (최근의 방송 보도도 그렇고) 법조계가 의료계보다 조금 센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이 계량이 가능하다면 전지구적인 도덕의 총량은 일정할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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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07-0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의 리뷰 ; 혹자는 뻔한 이야기와 대안 없는 현상만을 말하는... ; 제가 바로 그 혹자입니다.
마냐님의 리뷰 ;이 메커니즘은 법조계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 사회 전체의 고질병이다/그 훌륭한 분들조자, 검찰이나 법원이라는 자기네 회사에선 찍소리 않고 있다는 점이다./언론이라는 신성가족도 패키지로
* 검찰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가능할까?/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세비를 줄이는 국회의원은 얼마나 될까?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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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구름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꼭 내가 쓴 글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 문장은 <후불제 민주주의>의 서평에도 언급했던 이야기입니다. 저의 정치적 가치관 및 지식이 <후불제 민주주의>에 요약되어 있다면 저의 철학적 지식 및 가치판단이 잘 정리된 책이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잘 모르는 ‘데리다’나 ‘들뢰즈’를 언급한 책이었다면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라고 꽤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주장하는 모든 것에 동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반부 정치적 가치판단에서 있어 동감을 하지만 추가되는 의문을 황상윤 교수님께 던지 싶은 구절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철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철학은 현실과 무관하다.’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철학교수인 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겠지만 대부분 일반인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철학은 당연히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입 밖에 소리를 내지 않지만 오히려 수학의 경우는 ‘수학은 현실과 무관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산수 정도면 충분하다. 단지 입시를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직업적 작가나 기자가 아닌 다음에야 문학은 뭐에 필요하겠습니까? 화가나 직업적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에게 미술 공부는 무슨 소용이 있나요?

 새로운 개념 몇 가지를 이 책에서 건집니다. ‘철학이란 정답은 No!, 질문은Yes!’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장에 동의를 하지 않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구분입니다. (저의 대학생 새내기 시절 대학 입학 후 거의 대부분이 읽는 책인) <철학의 기초이론>에 보편성과 특수성이라 단락이 있었는데, 도덕-윤리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저의 성향은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윤리를 총괄하는 도덕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나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추론과 (사고) 실험을 추구합니다. 역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이때의 형상이란 지정의知情意를 말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를 봅시다. 개에게 지식이 없는가? 냉장고 문을 열면 그 속에서 음식을 꺼내는 것을 안다. 사람이 야단치면 서글퍼한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다. 개에게도 지정의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다른 동물과 불연속적으로 구분되는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을 구분 짓는 비교적인 잣대는 '메타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관용에 대한 관용이냐 불관용이냐는 또 다시 선善이 무엇이냐, 윤리에 적용 받을 것인가 도덕에 적용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강요된 선과 방임된 악 중에서 어느 것이 좋은가?’

 타인에 대한 삶의 인정 ; 강남에 사는 부자인데,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한다. 부자세가 신설되면 세금을 낼 것이고 지금은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법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돈을 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어울려 살기 싫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를 내버려도 둬!’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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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를 리뷰해주세요.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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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값을 못한.

 제목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좋아하는 단어 지혜, 숲, 고전, 그리도 ‘만나다’라는 동사까지. 얼마 전에 <난세에 답하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기대가 너무 높았을까?

 고전의 빼어난 글을 발췌한 것까지 좋았는데, 책 전체에 밋밋한 글의 전개에 답답한 느낌까지 줍니다. 좋은 글(문장, 단문)을 보여 주고 싶었다면 <내 마음의 샘터>와 같은 금언-명언집을 읽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사회현상, 비록 개인 인생이라고 하더라고 구체적인 적용을 기대했습니다. 아니면 글을 읽으면서 깨닫지 못했던 해석, 즉 저보다 높은 통찰력을 기대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청소년 시절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당시 자신을 수양하고 가족을 잘 이끌어야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배웠고 저도 그에 동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완벽한 수신修身이 가능한가, 만약 고위 공직에 오르려하는데, 자신의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가 만약 탐욕이 있다면 공무원에 응시하면 안 되는가? 이것은 연좌제와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설명에 출전, 한자 해석, 그리고 끝.

* 추천하고 싶은 대상 ; 고등학교 학생용 한자 공부, 화장실에서 읽어도 변비 생기지 않을 것 같다. 輕小短薄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cf ; 책 제목이 ‘고전의 숲에서 지혜를 만나다’가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앞의 제목으로 다른 책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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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6-2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 숲에서 **을 **하다
이런 류의 제목이 너무 많아 솔직히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

마립간 2009-06-30 12:09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댓글을 받아 봅니다.^^ 조선인님과 가족들도 잘 지내시요.
 
<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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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문화기행

 <고뇌의 원근법>을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낍니다.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언뜻 책제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 핏줄 도서를 떠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억지로 기억 속에 찾으려 하니, <남미 인권기행>이 가장 비슷한 책일까. 하지만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책이 아니잖아. 왜 기시감을 느꼈을까, 왜 <남미 인권기행>을 비슷한 책으로 떠올렸을까? 이 느낌은 아마 EBS에서 또는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 보았을 법한 다큐멘터리를 착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무슨 문화기행> 또는 <무슨 무슨 테마기행>

 책을 읽으면서도 여행지를 함께 가는 것 같고, 옆에 안내자가 명승지를 설명한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부의 제목도 통일독일 미술 기행)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고흐를 제외한 다른 화가의 그림의 낯설음에 흥겨운 크게 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전에 TV에서 드라마 ‘악마파’ (85년)를 계속 떠 올렸습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악마파가 아니고 문학의 ‘사실주의’와 같이 현실을 반영하더라도 추하고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예술적 평가적 가치관이 서 있지 않는 저에게는 이 책을 쫓아가는 것은 ‘낯설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글을 통해 그림에 대한 설명이 한결 부담감을 덜어주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미적 감각은 서양 미술에서 그리스나 인상파의 밀레나 고흐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근대미술을 교양으로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사과를 맛이 있어 먹는가, 아니면 영양 때문에 먹어야만 하는가? 영양이 풍부한 맛있는 사과라면 고민이 없지만 둘 중 하나만 있다면 선택에 있어 가치관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고흐가 나와 잠깐 저의 미적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른 가치관과 마찬가지로고 미술(=아름다움의 가치관)에서도 합리성 사고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선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폴록Pollock의 추상화조차 그림 안에 프랙탈Fractal이 있었고, 그리스 조각에는 황금비가 있습니다. 사람의 인상 속에서 한 번의 왜곡을 거친 것을 포함한다면 더욱 더.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cf 김내성의 ‘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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