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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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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구자

- 선구자는 외롭다.

 선구자 또는 선각자는 외롭기 마련입니다. 어는 대학 교수님은 “교수의 길은 뜨거운 아스파트 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의 길이기에 외롭고 고달픕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p5 하지만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 전망을 마음껏 즐기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선 다소 험준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시와 철학일 겁니다.

 선각자와 선구자의 차이를 이 서평을 쓰면서 찾아봅니다. 선각자는 먼저 깨달았지만 선구자는 깨달음과 동시 실천한 사람이 아닐까? 천문학자 박석재 선생님께서는 스티븐 호킹을 자연에 관하여 높은 곳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분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으므로.)

 저의 1970년대는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초등학생이었으니.) 양정모 선수의 국내 최초 올림픽 금메달 획득, 에베레스트 산 국내 최초 등정, 기능 올림픽 세계 제패, 홍수환 선수의 권투에서 4전 5기 등. 그러나 겉으로 들어나는 것 외에 내부적으로도 역동적이었습니다. 저는 1980년대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세계사 선생님께서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조차도 표지가 바뀌어 흔하게 구하게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마치 세포 분열의 주기 중에 ‘휴지기’가 휴지기가 아니고 간기間期인 것처럼.

 <전환 시대의 논리>를 읽었지만 그 책이 그토록 유명한 책인지 모르고 읽었습니다. 감동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내부적으로 역동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혁명과 같았습니다. <리영희 프리즘>을 읽고 조심스러운 것은 어떤 인물을 우상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의사로서 <명의 2>에 표현된 명의의 허전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두려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선생님께서 살던 시대의 명암은 분명했고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나타난 것만보아도 선각자를 넘어 선구자의 역활을 해 오셨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가치관을 모범으로 현대의 가치 판단 및 행동 결정이 중요한데, 한편으로는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The Devil's advocate’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카오스 이론에서 나오는 다수의 변수와 짧은 주기의 교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즉 과거에는 옳지 못함이 분명했는데, 현재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극단적 상대주의로 무마하는 것이 옳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전망에 대해 ‘리영희와 사회과학 ; 사회과학의 고민’과 ‘리영희와 청년세대 ; 냉소소주의 시대의 우상과 이성’ 글을 통해 고민을 하지만 은수미씨가 ‘글을 쓰겠다고 한 후 이번처럼 후회를 많이 해본 적이 없다.’라고 토로한 것처럼 명료함은 조금 떨어집니다.

 오히려 저는 2010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잘 보이지 않을 뿐 내부적 역동성은 그대로 존재한다고 ; 마치 세포 분열 휴지기가 휴지기가 아니고 간기인 것처럼.

 (알라딘 신간 평가단 서평입니다.)

cf 영어라는 우상 ; 비만 환자가 의사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비만을 치료하냐고 묻습니다. 의사는 대답을 합니다. 식사량을 줄이고, 고 칼로리 음식인 인스턴트 음식, 아이스크림 등을 삼가고 운동량을 조금씩 늘리면 된다고. 환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적게 먹고 운동하면 살 빠지는 것 누가 모르나? 먹고 싶은 것 먹고 귀찮은 운동 안 하면서, 날씬해지려고 의사에게 상담을 청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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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0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을 실제로 읽어본 이가 얼마나 될까요.읽어봤다고 해야 뭔가 의식이 있어보이니까 읽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아마 앞으로는 리영희에 호감 가진 이들은 '리영희 프리즘'을 읽을 것이고 싫어하는 이들은 '억지와 위선'이라든가 월간조선 등을 읽지,더더욱 리영희의 저서는 읽지 않을 것입니다.

마립간 2010-03-09 17:0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 '우상과 이성'도 읽어봐야겠다는 느낌을 줍니다.

동대문도서관 2010-07-2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
 
여자가 도는 방향....

* 좌뇌, 우뇌

 처음 봤을 때 반 시계방향으로 보였는데, 금방 시계 방향으로 바뀌었고 주로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동안 좌뇌 우위에서 우뇌 우위로 바뀐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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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03-0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한하게 발부터 보면 반시계 방향, 머리부터 보면 시계 방향.

무흔 2010-03-1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리봐도 발이든 머리든 시계방향으로만 보입니다. 왜 반시계방향이 안보이는건지.. 내가 이상한건가?

마립간 2010-03-16 10:29   좋아요 0 | URL
자네까지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 보아 좌뇌우위가 시계 방향 아닐까?
 

* 실재와 관념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두 번째 각론 하나

 하이데거를 잘 모르고 ‘존재’와 ‘존재자’를 잘 모릅니다. 철학이나 수학(물리학)이 어려운 이유는 용어의 개념을 명확하게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논리의 ‘또는 or (논리합)’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또는’은 다릅니다. ‘운동량’도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물리량이 아닙니다. 따라서 힘이나 에너지보다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둠’ - 김춘수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이하 생량)


 김춘수님의 어둠에 한정해서 이야기 하면 저는 위의 시詩를 존재와 관념의 인식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최초의 독서는 <철학의 초대> (‘진리와 지각’ ; pp 73~89)이고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에서 책의 처음에서 오랫동안 설명이 이어집니다.

 자연 과학적인 입장에서 실재가 없다면 그 연구 대상이 허망한 것이지요. 하지만 실재를 알게 된 것은 지각과 사고(기억을 통해 변형된)를 통해서입니다. 장자의 호접몽이나 영화 매트릭스의 경우 지각을 초월한 실재가 있을까 고민을 하지만 이미 과학에서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전자기를 느낄 수 있는 감각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기가오리가 전기장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알 수 있는 직접적 방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간접적인 방법은 있습니다. 청각장애가가 음악을 볼 수 있습니다. 음계는 색깔로, 박자는 점등과 소등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에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도 똑 같이 느낄까? 혹시 나는 빨간색을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은 파란색으로, 내가 파란색을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은 빨간색으로 느끼는 것을 아닐까? 한참 뒤에 답을 얻었지만 의문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위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을 택해서 그녀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정되고 나면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정자와 난자가 우연에 의해 누군가의 아이가 되지만 그 아이는 다른 우연에 의해 생긴 아이와 다르게 특정됩니다. 철학을 보편성을 지향하지만(이것을 거시 철학?) 개인을 조명한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미시철학?) 청각장애자에게 소리가 실재하지 않는 것과 동치겠지요.

 ‘꽃’ - 김춘수
 일부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꽃이 되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느낀 또 하나는 제가 서양철학의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자연철학이 중심이었다면 (제가 잘 모르는) 근대 이후의 철학이 인문철학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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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03-0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maripkahn/2761
 

* 개별적? vs 전체적?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허접한 서평이 총평이었다면 그 중 각론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p 64~65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 듯
   (이하 생략)


 김남주 시인의 주장이 옳다고 봅시다. 근면하지만 사유 없이 주어진 일에만 성실한 공무원은 모두 퇴출시켜야 하나요?
 개(생물학적인)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개(예를 들어 shepherd)는 조직 폭력에 있는 사람을 주인으로 하고 철거민 퇴거에 이용된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이 개 종류는 모두 죽여서 멸종 시켜야 할까요. (너무 과격한 예였나요? 아니면 상관없는 이야기인가요?)

 갑순이는 공부도 잘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가짐과 실제 실천도 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을 위해 한 남자 갑돌이를 만났습니다. 갑돌이는 똑똑하기도 하고 아량도 넓습니다. 갑순이는 갑돌이를 마음에 들어 하며 갑돌이의 직업을 묻자,
 “저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데, 레이더 연구 개발을 하는 부서에서 근무합니다. 그리고 개발에 성공하면 국내 전투기에 장착될 것이고 성능이 좋아 미국에도 수출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갑순이가 당장 그 회사를 그만 두라고 합니다.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의 민간인을 죽일 수 있는 일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갑돌이는 연구 분야가 워낙 전문적인 것이라 직장을 옮기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갑순이는 “당신이 직장을 그만 두지 못하면 개입니다. 그 직장에서 근무한다면 당신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갑순이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요?

 변호사는 의뢰인의 비밀을 사회 공익과 관계없이 지켜야 해야 될 의무인가요?
 (http://blog.aladin.co.kr/769785163/3391728)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7040)

 의사의 경우는 어떨까요?
 (http://blog.aladin.co.kr/maripkahn/2466052 - 중간에 나오는 이야기 의사)
 (http://blog.aladin.co.kr/maripkahn/801485 - 서평 중간 의사 이야기)

 소설 삼국지에서 의사 ‘길평’은 의사이면서도 환자인 조조를 죽이려 합니다. 김남주 시인은 당시에 선이라고 생각하는 황실을 위해 조조를 죽이려고 했던 의사를 대의大醫, 만약 질병을 치료해서 조조를 살렸다면 소의小醫라고 평했을지 모릅니다.

 저는 과학의 중립성에 관하여 광우병을 시발로 드팀전과에 대화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개별평가를 해야겠지요. 이에 대한 설명은 가능합니다. 동양은 전체 속에 개인을 파악하려 하고 서양은 개별 그 자체를 인정하려는 가치관을 갖습니다.
 (http://blog.aladin.co.kr/biometrics/3379021)

 전문직 (예로 변호사나 의사)의 경우, 그 역할을 개별적 고유에 업무에 비중을 둘 것이냐 아니면 사회적 긍정적 결과를 중요시 하여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할 것이냐에 다르겠지요. 따라서 서양권의 문화의 변호사 (또는 의사)가 의뢰인에 관련된 비밀을 공개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입니다.

 방송인 이영자의 지방 흡입술을 공개한 의사는 진실을 밝힌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나요? 갑돌이의 행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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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엔씨리포트/한겨레 신문-정치,경제,사회 성향 설문조사(자가진단)

* 한겨레 신문-정치, 경제, 사회 성향 설문조사

결과 ; 시장 자유 -6.25, 개인적 자유 -2.22

알라딘 서재 활동 9년 만에 점차 빨갱이가 되어 가는 구만.

(http://h21bbs.hani.co.kr/politicalcom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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