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중유보와 거짓말

 
초등학교 때 TV에서 방영한 디즈니 영화 중 하나가 기억납니다. 줄거리는 청춘 남녀가 서로 좋아하다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야기 중간에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남녀가 다투고 나서, 헤어지네 마네 하던 중 남자가 사과하고 다시 사귀려고 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때 여자의 아버지는 변호사이면 자신의 딸이 이 청년과 교제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이 때 남자 친구를 돌려보내면 교제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자가 여자 친구 아버지께 여자 친구가 집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집에 없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딸의 남자 친구를 돌려보내고 남자 친구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집에 없다고 생각하고 갑니다. (사실은 여자 친구가 집에 있었습니다.) 이 두 남녀는 다른 경로를 통해 화해를 하고, 여자의 아버지가 남자 친구를 돌려보낸 것을 알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 친구와 다투기는 했어도 헤어질 정도는 아니었고, 남자 친구가 일찍 찾아와 대화를 하였다면 오해와 불편한 감정을 해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따집니다. “아버지, 왜 그 때 제가 집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셨나요?”
 
아버지는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법률적으로는 ‘의중유보’라고 하지. 나는 네가 집에 있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없다고 하지도 않았어.” 나중에 여자의 아버지는 딸과 딸의 남자 친구와의 사랑을 이해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 드립니다. 결혼식을 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도 재미가 있었지만 (철학적) 의문을 남깁니다. ‘의중유보’는 거짓말일까? 저는 일단 거짓말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후 실생활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위와 같이 암묵적인 대화만을 하거나 명시적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실화

 
의중유보에 관한 제 실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 안해와 있었던 것입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머릿속에는 ‘제주도까지 와서 안해 선물도 없이 가면 분명히 바가지 긁을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대편 회사에서 제주도까지 출장 왔다고 인사로 ‘천혜향’ 과일 한 상자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잘 되었다. 안해 선물로 갔다 줘야지.’

 
집에 와서 저는 “당신을 위해 가져왔어.” (생략된 말 ; 선물로 받은 것인데, 저녁에 안주거리로 먹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을 안 먹고,)
 
안해는 “고마워요. ......” (생략된 말 ; 당신 같은 성격에 선물을 안 사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해 선물을 사 오다니,)

 
저는 안해가 명시적으로 돈을 주고 사 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돈을 주고 사 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굳이 오해를 교정하거나 해명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직장 동료들과 부부 모임이 있었고 제 안해는 그 과일 상자가 제가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고 상대 회사에서 출장 간 사람에게 일괄 지급된 선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안해는 제게 물었습니다. “그 때 왜 저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 때 제 말의 문구를 정확히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 가져왔다고 했지, 사왔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이것을 법률적 용어로 의중유보라고 하지요.” (선물을 줄 때, 의식적으로 말했기 때문에는 이것은 사실이다.) 안해는 저에게 더 이상의 항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학적, 윤리적인 답은 궁금합니다. 명시적인 소통과 암묵적인 소통이 다를 때,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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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중 유보2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1-04-26 08:37 
    * 의중유보2신의 성실의 원칙( 줄여서 신의칙)은 법률 용어로 시작은 민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이나 계약 관계를 법을 판정할 때 이용되는 민법 원리입니다. 근래는 공법 분야에도 적용되는 법원리라고 하는데, 저는 공법에 구체적으로 적용된 신의칙의 개념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부부 사이에 신의칙, 임대인과 임차인의 신의칙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저와 대중 또는 공공에 (도덕, 윤리와 다른) 어떤 신의칙이 있을까하면 떠오른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
 
 
조선인 2011-04-2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중유보는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상호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지요. 따라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상대방을 기망하여 해하려거나 나만 부당이득을 얻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정도야 생활의 애교, 혹은 부부도(일본 드라마 제목)로 넘어갈 일이 아닐까 싶어요.

마립간 2011-04-25 13:36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의 댓글을 읽으니, 의중유보2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의중유보에 관심이 있거나 이를 이용하는 이유는 선의의 거짓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마녀고양이 2011-04-2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건 거짓말은 아니지만 슬쩍 빠져나가신거잖아요.
조선인님께서 저보다 더욱 명확하게 말씀하셨네요. ^^

아마 옆지기님께서 항변을 안 하신게 아니구, 그냥 아량으로 덮어주신 듯 한걸요. ㅋ
즐거운 한주되셔요.

마립간 2011-04-25 13:40   좋아요 0 | URL
^^ 맞습니다. 사실 제 안해가 평소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의중유보'보다 '선의의 거짓말'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sweetmagic 2012-01-0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ㅋㅋㅋㅋ
 
당신은 무슨 색입니까?

* 나의 색
- 내가 좋아하는 색깔

 
저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색은 노란색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친구들 중에는 노란색을 좋아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저도 노란색을 좋아해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노란 색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많은 친구들이 노란 색을 좋아하니 약간 경쟁 심리가 작동하여 저도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며 행동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색깔 있는 과자를 나누어 줄 때, 혹은 가게에서 장난감을 고를 때, 친구들이 노란색을 경쟁적으로 고르니, 저도 모르게 부화뇌동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제 본능에 의해 좋아하는 색이 생겼습니다. 파란색입니다. 파란색 중에서도 cobalt blue hue가 정확한 색깔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싫어한 색이 생겼는데, 갈색과 (무채색이니 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회색입니다. 갈색은 ‘이기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회색은 ‘지저분하다’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옷을 제가 고르기도 했는데, 일자一字바지, 짙은 파란색(일본식 표현으로 곤색), 검은색 바지만 입었습니다. 대학 입학하면서 같은 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었습니다. 대학 친구는 저에게 “강의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봤는데, 네 모습이 딱 눈에 띄더라.” 이후 복장 때문에 그 친구는 저에게 ‘김일성 대학교 대학생’이라는 별명을 붙쳤읍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쭉 그 복장.) 대학 입학 후에는 호감 가는 색에 대한 변화가 있었는데, 그렇게 싫어하던 회색을 좋아하게 되고 파란색은 검은 빛이 나는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안해가 옷을 골라 주면서 붉은 계통의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안해가 처음 사 준 옷이 보라색 계열이었습니다. 파란색 검은색 외, 다른 색깔의 옷은 거의 입지를 않아 처음에 어색했지만 입다보니 점차 익숙해지며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좋아하는 색이 하나 더 추가 되었는데, 짙은 갈색입니다. 피치 블랙peach black.


 
지금은 무슨 물건을 사든 색깔을 고른다면 넷 중 하나입니다. 검은색, 회색, 짙은 파랑색blue black, 짙은 갈색peach black. - 나의 심리 상태는 무엇일까?

하이드님의 ‘당신은 무슨 색입니까?’ 페이퍼를 읽고 써 놓았던 것을 마녀 고양이님의 페이퍼에서 <색채 심리>라는 책 제목을 보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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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랑도 좋아했었군요~ 색깔로는 좋은데 옷을 소화하기 힘든거 같아요.^^
결혼 전에는 보라색이 들어간 옷을 즐겨 입었고, 몸이 불어나고는 주로 검은색을 입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뜻하게 입으려고 초록색을 즐겨 입어요.

마립간 2011-04-16 11:08   좋아요 0 | URL
노란색은 잠깐 좋아하다가 한동안 싫어도 했습니다. 노랑색은 '본능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러다가 그럭저럭한 색깔로 보고 있는데, 때가 타면 흰색보다 더 두드러져, 제가 노란색을 고르는 일은 없습니다. 제 딸은 색깔 구별하기시작한 이후 녹색에 일편단심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1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색, 회색, 짙은 파랑색, 짙은 갈색.
안정적인 색상이네요 모두. 만일 색채 심리 입장으로 말씀하시라면
살짝 외롭거나 우울하거나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구요. 하지만
남자분들은 원래 밝은 색상을 많이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보라색은 치유의 색상이라고 하더군요. 붉은 따스한 기운과 파란 물의 기운이
조합되어 사람을 보살펴준대요. (물론 상반된 면도 항상 존재합니다만.)
옆지기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옷을 사주셨나봐요, 아 부러워라~
(이런 것을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나요? ㅎㅎ)

마립간 2011-04-18 12:18   좋아요 0 | URL
해석 감사합니다. 약간의 우울증은 독서의 동력입니다.
 

* 내가 뭘로 보이니? 개구리?

제목 ; 개구리의 색시 ; 씽크베베 전래동화 5권
출판사 ; 한국듀어
저자 ; 허필여
서평 별점 ; ★★★

 
줄거리 ; 딸 셋이 있는 아버지가 딸에게 좋은 사윗감(, 책의 표현은 멋진 신랑)과 짝지워 주기를 원했다. 꿈에 산신령이 사윗감이 있다고 지목한 곳에 개구리가 있었고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개구리와의 결혼을 거부했고 셋째 딸은 결혼 승낙을 하였는데, 그 개구리는 왕자였다.

 
슈퍼스타 K2에서 김지수와 장재인이 서인영의 신데렐라를 편곡해서 부른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가창력에도 놀랐지만 신데렐라의 가사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넌 몰라 뭣도 니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냐
 
아무것도 넌 몰라 뭣도 니눈에 보이는 난 내가 아냐

 
이 노래의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의미는 성性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위의 첫 구절만 놓고 보았을 때 우리가 왜 철학을 하고 과학을 하고 수학을 하는지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구절은 ‘개구리의 색시’ 동화의 주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요 ‘신데렐라’를 언급했지만 동화 ‘신데렐라’와는 큰 차이를 느낍니다. 동화 ‘신데렐라’에서 왕자는 처음부터 왕자였지요.

 
아래 그림을 보면서 블록이 몇 개냐고 제 딸에게 물으면 아마 21개 (세어보니 눈에 보는 것이 21개네요.)라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인이라면 최소한 보이는 21개보다 많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이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생긴 것입니다.


 
은유적으로 표현된 개구리가 개구리만이 아니라는 여러 은유적 표시를 다시 줍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죠. 카네기나 포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구글이나 페이스북 창립자) 등은 그와 같은 안목이 있었기에 (경제적으로 성공, 속된 말로 대박과 함께)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글샘의 문학수업 82회 [신경림, 장자를 빌려 - 원통에서] 발췌 ; ‘장자를 빌려’인 이유는, <장자> 추수편에 큰 앎은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살핀다는 글귀가 있대. 진정한 앎은 먼 곳에서도 보고, 가까운 곳에서도 보는 지혜가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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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이론은 없다 - 거꾸로 보는 현대 물리학
마르셀로 글레이서 지음, 조현욱 옮김 / 까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 수필로 분류되어야 할 책
- 과학서의 탈을 쓴 문학서

 
이 책의 제목은 매우 도발적입니다. 그 만큼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글쓴이 개인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포함하여 물리학이 발전과정을 보여 줍니다. 간략하면서 쉽게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던 중 p 167부터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조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p 198부터는 글쓴이의 의견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표출되는데, 읽다 보니 이것이 과학 서적이야 수필집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알라딘 별점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역시 한 개, 두 개)

 
내용의 반론입니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바는 ‘최종 이론은 없다’입니다. 최종 이론은 증명된 것이 아닙니다. 없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연구 중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 제시된 자료 없이 어떻게 과감하게 ‘최종 이론은 없다’고 주장하며 책 제목으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가 제시한 근거는 비대칭성입니다. 우주의 발생이 비대칭성이 있고, 4개의 힘에 비대칭성이 있고, 생명에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종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칭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쓴이도 마릴린 먼로의 점에 비유했듯이) 대칭이 아름답기도 하고 비대칭이 아릅답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하얀 백지 스케치 북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백지는 대칭성이 있고 낙서가 된 것 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글쓴이가 만물의 이론, 최종이론 등의 명칭에 얽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만물의 이론은 만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최종이론이 밝혀지면 학문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데 사람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위와 같은 명칭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최종 진리가 존재한다고 그토록 간절하게 믿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필요가 없지요. 연구적 열정을 위한 필요를 제외한다면. 글쓴이는 필요와 희망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에 가설, 어느 정도 증명된 이론, 법칙, 추상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추상적인 진리는 신에 영역에 해당하거나 플라톤의 이데아이거나 글쓴이가 비판하는 전일성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수준에서는 가설의 영역에 있는 것을 증명된 법칙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 뿐입니다. 목표가 필요할 뿐입니다.

* 새로 정리된 문제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7045
* 철학의 끝없는 물음 http://blog.aladin.co.kr/maripkahn/2993217

 수학과 과학에는 그릇된 목표로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그 과정과 결과물이 과학적으로 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연금술에서 화학이 발전했고, 점성술에서 천문학이 발전했습니다.

 
주장을 하지 말고 증거를 달라고!

* 밑줄긋기
p 23 일어난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이 스스로 엉켰다. 여기서 삼위일체는 공간, 시간, 물질이다.
p 24 원형우주 prototype universe, 다중우주 multiverse, 메가우주 megaverse ; 몇몇 현대 이론들은 다중우주는 영원하고 그래서 원인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p 26 과학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틀, 원리와 법칙이라는 골격이 필요하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무엇인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이들 법칙은 검증된 범위를 넘어서까지 타당한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다.
p 99 내가 앞서 썼듯이, 검증될 수 없는 물리 이론 - 혹은 검증 가능성의 영역에서 항상 벗어나 있도록 편리하게 조정될 수 있는 이론 - 은 과학의 정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p 115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없다./물질과 복사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간은 할 수 있다. 이것을 금지하는 물리 법칙은 없다.
p 263 지금까지로 보아서는 물질의 근본적 비대칭성과 생명의 비대칭성 사이에 아름다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해답일 듯싶다.
p 292 우리는 신화적인 보물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 없이도 대양을 탐사할 수 있다.
p 300 우리는 물리학의 두 가지 표준모형, 즉 물질의 기본 입자를 다루는 모형과 빅뱅을 다루는 모형이 상당히 큰 숫자(약 30개) 의 자유 상수에 의존하고 있음을 안다. 자유 상수에는 전자와 쿼크의 질량과 전하, 힉스 입자의 질량, 우주내의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양,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의 양/자연의 기본 상수 ; 빛의 속도, 중력 상호작용의 값을 정하는 중력상수 그리고 양자 효과의 크기를 정해주는 플랑크 상수 h 등이 그것이다.
* 반론 밑줄 긋기
p 291 정말로 의심스럽다. ; 이 의심에 한편으로 수긍할 수 있으나 이 의심이 뒤에 가면 근거 없이 확신으로 바뀐다.
p 291 즉 우주가 요행의 산물이라면 우리의 목적 관념, 의미 탐구의 방향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그렇지 않다. 요행을 증명하면 된다.
p 292 오히려 유일무이한, 최종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우리의 고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 탐구를 지연시키고 있는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 연금술은 화학을 발전시켰다. 별로 지연시키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지연시키는 증거를 대지 않고 있다.
p 297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발견되어야 할 진리, 창조뒤에 있는 원대한 계획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이다. ; 없다는 것을 주장하지 말고 증명하거나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증거없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p 302 이것은 우주에 따라서 각기 다를 수 있다. ;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리 우주의 자유상수를 구하고 다른 우주에는 왜 다른 자유상수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할 수 도 있다. 또한 그 복잡도가 극도에 다해 미처 다 설명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실재로 3체 진자는 존재하지만 3체 진자를 설명하는 방정식은 없다. 마찬가지로 최종 이론은 없거나 있어도 한 참 후에나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
p 304 우주가 생명에 꼭 맞다. ; 우주의 최종이론과 생명 현상에 대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cf ;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신론적 과학자를 비판하는 방식은 과학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저를 포함하여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주종자이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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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4-1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문학에 분류되었더라면 별2개
역주는 굉장히 마음에 든다.
 
한 권으로 읽는 도교 - 도교의 역사에서 배우는 개인의 행복한 삶 한 권으로 읽는 유불도 1
장언푸 지음, 김영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 도교와의 인연
- 때 늦은 독서

 
도교에 대한 호감은 너무 오래되고 시나브로 시작되어 처음 좋아하게 된 때의 기억조차 없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TV에서 불교영화 (주인공이 목련이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목련 존자>가 거의 확실한데, 한국영화인지 조차 모르겠다.)를 해 주었는데, 저는 주인공 보다 잠깐 조역으로 나오는 젊은 청년 모습을 한 바위에 갇힌 산신령 (이름에 정 뭐라고 했다.)이 더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제가 왜 도교를 좋아하게 설명하기는 간단하지 않으나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동양권 문화가 도교 문화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불교의 문화의 상당 부분은 도교와 겹칩니다. 중국의 불교가 정착하는데 있어, 이미 토속신앙으로 자리 잡은 도교와 공통점이 많아 쉽게 정착했다고 합니다. 저도 책을 읽다보면 어떤 것은 이것이 도교에서 유래한 것인지 불교에서 유래한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신라 시대의 골품제도에서 성골, 진골의 어원은 도교의 성인과 진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연自然( 이때의 자연은 자연 환경의 자연, 도올 김영옥의 표현으로는 그린벨트의 자연)인데, 도피적 성향도 있지만 목가적인 분위기, 안빈낙도의 매력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도교 계통의 사람은 흰색이나 회색 복장을 하고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교 회화에서도 산천의 배경은 기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철학적 의미의 자연自然( 이때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무위자연의 자연)입니다. 저의 가치관 중에 하나가 ‘하지 않은 것은 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입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때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입니다.

 
기억나는 영화대사 ;
http://blog.aladin.co.kr/maripkahn/4331965

 그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 플라톤적 사고이나 그 이유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것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이유 없음일지라도.

 
이 자연은 무욕無慾과도 연결되는데, 저는 무욕이 너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과욕의 끝이 대부분 좋지 않는다는 교육의 결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도교에 관해 철학적 이해 없이 (지금이라고 해서 철학적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도교를 노자와 장자로 대표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자는 플라톤과 공통점이 있고, 장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공통점이 있는 것 같고, 황로사상(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노장 사상을 황로사상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은 또 다른 별개로 여겨집니다. 황로사상은 디오게네스와 공통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친숙해서 그런가? ‘도교’라고 명시된 제목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네요. 이 책은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 전진교의 왕중양, 구처기 등의 인물과 활인사묘등이 도교와 관련된 것들이라 체계적인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중국에서는 역사,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 컸다는 것입니다. 도교의 인물과 용어가 역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삽화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도교 서적들의 이 이름만 남은 것인지, 아니면 실존하는 것인지와 그 책들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신선술에서 과학적인 면은 어느 정도 있는지 (아니면 전혀 없는지), 현대의 초자연 현상(투시, 염력, 텔레파시)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간략한 도교에 대한 정보는 얻었으나 보다 전문적인 강의를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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