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0201
<권력과 인간> 서평 별점 ; ★★★☆
한 사람의 인성이 유전을 포함한 타고난 것과 훈육과 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도세자의 사망 역시, 사도세자의 개인의 문제와 정파 간의 이해가 관계가 얽혀서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덕일씨처럼 당쟁을 우선시 할 수도 있고, 정병설씨처럼 사도세자의 질병을 우선시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대립적이라기보다 보완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아래 4가지 논쟁의 주제에 대해 제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 사도세자는 미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때,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울증major depression을 포함한 정신증psychosis를 미쳤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신경증neurosis를 포함한 질환까지 미쳤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사도세자가 미쳤는지의 여부는 협의의 미친 것인지, 아니면 광의의 미친 것인지에 정의가 필요할 것을 생각합니다. p 179에 정신 분열증을 의심할 만한 환시가 보이지만 언급은 한 번만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 분열증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열증의 흔한 환각은 환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경증과 질병이 아닌 신경증적 경향의 구분도 중요. 이 구분을 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오류도 발생한다. 연쇄살인범이 있다. 연쇄 살인의 범죄는 정신병일 경우에 발생한다. 정신병자는 치료가 필요하지 처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연쇄살인범은 형사 처벌을 하면 안 된다.)
제가 군복무 시절 군목사님과 군대 와서 정신병 발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멀쩡하던 사람이 군에서 정신병이 생겼다고 군생활이 문제라 하고, 군에서는 다른 병사들은 같은 생활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 병사가 발병한 것은 당사자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사님께 드린 답변은 군입대 전에 이미 그 병사에게 정신병 발병의 소인이 있었는데, 군생활로 유발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사도세자는 친소론적이다./사도세자는 노론의 견제를 받아 죽음에 이르렀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 영향을 벗어난 것이 있나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조선 정치에서 붕당이 생긴 이후, 당쟁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사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해 민족성의 연계나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세계사를 놓고 보아도 제한된 권력을 많은 사람이 원하니 자신의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상황은 오히려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위 논란은 당쟁의 영향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소론/노론의 구체성을 띠느냐,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진실에 따라 p 293 ‘정조는 집권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역사 지우기를 택했던 것이다.’는 역사 지우기 즉 왜곡일 수도 있고,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질문한다면 ; 사도세자의 죽음의 책임에 당쟁이 대부분 (적어도 90%이상)의 책임이 있나? 아니면 사도세자의 죽음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당쟁인가?
$ 혜경궁은 사도세자의 일로 친정이 몰락하자, 그것을 변명하기 위해 한중록을 지었다.
한중록을 읽어보지 않아 내용과 느낌을 이야기할 수 없으나 논란의 양측 모두 ‘자아비판’적으로 쓴 책은 아닌 것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p 318 이 두 편의 주 독자는 순조였다. 자신의 친정이 역적이 아님을 손자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혜경궁은 더 이상 친정이 역적으로 몰리지 않기를 바랐다.
변명이 되는가 아니면 정확히 알려주는 것인가는 역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요.
제가 사도세자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대충 매체에 의한 것일 텐데, 인터넷 검색에서 나오는 가장 오래된 드라마가 ‘하늘아 하늘아’이고 저는 이것을 보지 못했으니,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국사 시간의 선생님 말씀?) 아직 <사도세자의 고백>이란 책을 읽지 못했지만, <권력과 인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 사도세자의 죽음의 원인 ; 왕실 > 아버지와 관계 > 사도세자의 인성 > 당쟁 ≅ 질병
* 밑줄 긋기
p 15 누구라도 이정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p 18 혜경궁은 친정의 책임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의적 책임이야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세자의 죽음을 방조한 역적이라는 죄명은 터무니없다는 것이 혜경궁 주장의 핵심이다.
p 25 한 심리학 논문에서 편집증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인식하는 방법의 근거에는 이분법적 사고 있다고 했다. 또 편집증 환자는 자신의 ‘정서적 생존’을 위해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엄격히 나누는데, 나쁜 것은 모두 외부로 돌린다고도 했다.
p 27 그런데 문제는 권력은 절대로 나눌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선 초기의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자도 형제도 소용없는 것이 권력이다./p 43 권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p 28 혐의는 증거요 재판은 유죄라
p 33 “신이 줄곧 곁에 있었사온데 네 글자는 듣지 못했습니다. ...”
p 41 공식화할 수 있었다
p 42 경종으로서는 늘 곁에서 자신을 보필하는 수하를 쳐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단호히 그들의 처벌을 결행한 사람이 인원왕후였다.
p 47 권위의 바탕
p 61 물론 왕비 탓이 아니다. 그렇다고 임금 탓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 굳이 탓을 하자면 냉혹한 권력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p 73 영조 곁에는 옛날 자기들 아래에서 이것저것 잔심부름이나 하던 선희궁이 안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p 75 선희궁은 자식을 낳고도 어머니가 되기를 사양했다.
p 115 사도세자는 학자형 인간이라기보다 예술가형 인간이었다./p 118 영조는 예술가형 인간인 사도세자에게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교육이 얼마나 맞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p 116 문제는 세자가 맨 처음으로 배운 검소라는 덕목이 세자의 지위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자는 현실적으로 조선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다. 사치와 가장 가까이 있기에 역으로 검소를 힘주어 가르쳤다고 할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덕목을 배운 세자가 그 가르침을 진심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그런데 궁중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교육을 행했다.
p 125 영조는 아기인 사도세자를 민가의 자식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의 중임을 맡길 후계자로만 여겼다. 나라를 이어받을 후계자에게 막중한 책임을 강조한 영조의 엄격함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
p 126 여기서는 자주성과 사회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p 127 문제는 세자의 이런 놀이가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사회성만 기른다는 것이다. ... 그러나 배동은 결코 세자의 친구가 아니다.
p 179 일반불안장애, 강박장애, 충동조절장애 등으로 신음하던 세자는 1760년부터는 헛것을 보기 시작했다./사고장애 곧 정신불열증까지 생긴 것이다./p 141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p 143 일반불안장애, p 145 의대증, 일종의 강박장애, 가학증(사디즘), 반사회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p 147 가학증, p 151 성폭행, p 153 자살 시도
p 272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받게 된 근본 원인을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에서 찾았다./영조 곁에 있던 정조는 임금과의 거리를 좁히며 무사히 왕위에 올랐지만, 반대로 어머니와 거리가 멀어졌다.
p 280 새 정권은 항상 물갈이를 한다. 정조도 등극 초기에 대대적인 정치적 숙청을 벌였다.
p 287 절대 권력에 절대 복종하라
p 293 정조는 집권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역사 지우기를 택했던 것이다.
p 326 권력의 동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