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育兒日記 130729

 

* 옛날이 좋았어

 4일전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던 중

 6살인 아이가 “나는 옛날이 좋아.”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속을 조금 당황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옛날이 좋아’를 외쳤고, 그런 나에게 어른들께서는 “쪼그만 것이.”라며 어떤 대화나 공감보다 빈정대기만 하셨다.

 

아이에게 “네가 말하는 옛날이 언제야?”

 “3~4살 때.”

 “왜?”

 “그때는 어린이집을 다녔고, 양파를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서.”

 

나는 ‘옛날이 좋은 이유가 양파 때문만이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일찍 우울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 부모의 강요

 몇 년 전 동생 가족과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할 때 ;

 한 의견은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니 이것은 옳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어렸을 때 식습관은 평생을 갈 수도 있다.

 

반면 다른 의견은 누구나 특정 시기에 (특히 어린 시절에는) 먹기 싫어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나이가 들면 (대충 청소년기 들어서면서) 그런 식습관은 자연히 교정된다. 그러니 식습관 교정을 위해 갈등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이었다.

 

개인적 경험을 비춰보면, 부모님의 꾸중이 있으면 반발심에 의해서라도 더 먹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내 의견과 상관없이 밥그릇이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놓는 것을 정말 못마땅했다.

 

일단 나는 아이에게 양파가 먹지 싫으면 먹지 말라고 한다. 눈에 띄는 편식도 아니고, 다른 야채는 그럭저럭 먹으니, 건강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까지 강제할 수 있는지. 만약 흡연이었다면 이렇게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13-07-3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파는 카레나 볶음밥, 짜장면, 스파게티, 된장찌게, 김치찌게 등을 할 때 아주 잘게 썰어서 만들어주면 차츰 먹게 되요. 대개의 아이들이 양파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마립간 2013-07-30 11:18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조언 감사합니다. 저는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제 자신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1~2년전만 해도 매운 양파를 잘 먹고 좋아했는데, ... 그 시기에는 다들 그렇게 변하나 보네요. 단지 궁금한 것은 잘게 썰어서 다른 음식에 보이지 않게 해서라도 먹여야 하는 것인지, 결국 부모가 아이의 의사와 반해서 속여서 먹이는 것이니까요.

조선인 2013-08-1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기 위해 다지는 건 아니죠. 양파는 다지면 단 맛이 더 나니까요. 양파의 맛과 식감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 과정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1단부터 시작하는 뜀틀처럼요.

마립간 2013-08-13 11:22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댓글이 오늘 더 반갑습니다.^^ 알라딘 서재 10 주년인데, 저와 조선인과 제가 알고 지낸지가 10년이 되네요.

어찌 보면 행동과 따로는 현실감 없는 저의 고민일 수 있지요. 육아를 포함하여 세상 일이 자기 결정권을 핑계로 방임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저는 그 경계/기준을 잘 실감하지 못합니다.

특히 아이의 양파 섭식에 관해서는 잘 먹던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해서, 더 잘 모르겠습니다. 뜀틀에 비교하면 3, 4단을 잘 넘던 아이가 아예 뜀틀을 안 하려는 상황에 비유될까요? 일단은 지켜볼 생각입니다만, 편식의 조짐이 보이면 조선인님이 말씀하신대로 해 보겠습니다.
 

 

* 雜記 130722

 

- 부제 ; 열패감

 아이가 틈틈이 내게 묻는다. 저 분 빨간불인데, 횡단보도를 건너가네. 저 자동차는 왜 신호 안 지키지? 왜 차선을 안 지키지? 왜 담배를 함부로 버리지? ; 비교적 작은 의義에 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 패배의식이 있는 나는 딸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까?

 나는 어떤 사람에게 진보냐 보수냐를 판단하고자 한다면서 자유를 선호하느냐, 평등을 선호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을 판단하지 않는다. 상투적이고 행동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 속마음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질문은 ‘낙태’다. 나는 낙태에 관해 딱 50:50이다. 한편 이利에 밝은 사람일까 의에 밝은 사람일까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때는 질문 없이 사람을 행동을 통해 일제 식민지하에 친일親日을 기준으로 삼는다. (친일을 했겠냐고 물으면 누가 그렇다고 대답하겠는가.) 상상을 한다. 이 사람이 친일을 했을까 안 했을까?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유익한 점은 친일로 인해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게 한다는 것이 장점일까?)

 

* 사필귀정 ; 이 사자성어가 진실일까?

 http://blog.aladin.co.kr/maripkahn/4940847

 

*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아직 못 읽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54892

 

* “우리 역사에는 정의가 패배한다.”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http://blog.aladin.co.kr/honeyssam/5697687

 

아이에게 학업에 관한 것을 가르치기는 쉽다. 그러나 도덕/윤리에 관해서는 간단하지 않다. 그러던 중 드림모노로그님의 글을 읽었다.

 

* (쓸데없는? 고민을 하던 중) 직장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

 우리나라에서 법을 알면 부자가 되고, 법을 지키면 거지가 된다.

 직원들이 사업주를 칭찬하면서 직원 이동이 없으면 그 회사 망하고 있는 것이고, 직원들이 사업주를 무서워하면서 직원 이동이 없으면 그 회사 잘 되고 있는 것이다.

 

* 정직하고 투명하게 일하려는 사람과 투명성을 극도로 싫어(두려워) 하여 술수를 쓰는 사람과 경쟁하면, 후자가 거의 언제나 승리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http://blog.aladin.co.kr/weekly/6475174

 

*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면 빙신'이 된다는 사실. 빙신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참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고,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776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인공 지능과 진화론

 

- <황제의 새 마음 - 상> 앞 부문

 <황제의 새 마음 - 상>을 다시 읽고 있다. 첫 번째 읽을 때 생각보다 쉽게 읽어지질 않았다. 문체 탓일까?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으려 한다. 우선 의문점 ; 어째서 이 글이 어째서 강 인공 지능(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 기계가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갖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읽으니 ; (컴퓨터 존재하니,) 인공 지능은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지식으로는 기계가 (인간의 이해력과 같은 사고를 지닌, 경우에 따라 감정까지 지닌) ‘인간 지능?’과 같은 인공 지능에 이를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에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앞으로 지식이 발달하면 기계가 사람의 사고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과 결코 기계는 사람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설(John Searle)이나 이 책의 글쓴이 펜로즈(Roger Penrose)는 후자의 가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펜로즈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고 설득하기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을 서술하고, 나머지는 역시 지금까지 밝혀진 인공 지능에 관한 과학 지식을 서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논쟁 구도가 진화론 논쟁을 떠올린다. 진화는 존재한다. 그러나 첫 생명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언젠가는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으로 설명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과 (진화는 사실과 다르므로)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창조론이 증명되거나 진화론으로 생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논쟁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창조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영원히 어느 쪽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남을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화의 논쟁에서는 생명의 시작에 지식의 빈 공간이 있는 반면 지능의 관해서는 완성에 지식의 빈 공간이 있다. 진화론/창조론의 지지자들이 강인공 지능의 가설에 관하여 어떤 지지를 갖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만약 강 인공 지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창조론이 지지된다’고 추론해도 되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讀書日記 130717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서평 별점 ; ★★★

 정기적으로 시집을 읽기 위해 구매. 구매할 당시에는 ‘맛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음식은 맛만 있은 것이 아니고 모양도 있고, 추억도 있다. 비빔밥의 경우 민주주의라는 비유를 사용. (비빔밥에 대한 시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시인가?) 눈이 번쩍 뜨이는 감동을 주는 시보다는 잔잔하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다양한 시들이었다.

 

 

 

 

 

 

 

<청춘 예찬> 서평 별점 ; ★★★

 교과서에 실린 글 중에서 몇 가지는 뇌리에 각인된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청춘 예찬’. 아마도 유일하게 기억되는 경수필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십이지>의 한윤형씨의 글로부터 ‘청춘’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예전의 청춘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생각을 비교하기 위해 ‘청춘예찬’을 읽기로 했다. ‘청춘 예찬’ 글만 읽으려면 인터넷 검색에도 나오지만, 글쓴이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기 위해 책으로 구입. ‘청춘 예찬’이란 글의 느낌은 예전과 같고. 예전의 ‘청춘’의 느낌은 지금의 청춘과 다르고. 민태원, 이육사님의 다른 글은 그렇게 감동이지는 않았다.

 

 

 

 

 

 

 

 

<마음의 눈> 서평 별점 ; ★★★

 시집을 읽으면서 공감각에 대한 글이 궁금해서 읽게 된 책. 특별히 공감각에 대한 신경학적인 이야기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여러 신경학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 대한, 그리고 의사로의 이야기다. 한번 글쓴이의 책을 읽어서인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보다 좀 모자란 책으로 느껴진다.

 

* 밑줄긋기

p 92 문화상대주의는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p 230 헐이 말하는 심맹은 시각적 표상과 기억의 상실만이 아니라 본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려서 ‘여기’, ‘저기’, ‘마주 보기’같은 개념이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생김새라든가 시각적 특징 같은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려보지 않는 한 3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3의 ‘운동적’ 표상은 있으나, ‘시각적’ 표상은 없는 것이다./p 231 헐은 청각 경험이 전과 달리 강렬해지고 다른 감각기관들도 예리해져서 자연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눈이 보일 때 알았던 그 어떤 것도 뛰어 넘는, 자신이 이 세계 안에서 존재한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헐에게는 실명이 ‘암흑의, 역설적 선물’이 되었다.

p 235 졸탄 토리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심리학자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그의 편지는 실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뇌에서 정신을 만드는가, 정신이 뇌를 만드는가 하는 문제와 의식을 본질을 다룬 자신의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p 243 나는 지금까지 맹인 네 사람의 회고록을 읽었는데, 이들의 시각 경험에 대한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심맹’ 상태에 묵종했던 헐, ‘강박적 시각화’를 통해 촘촘한 내면의 시각 세계를 건설했던 토리, 충동적이며 문학적이라 할 만한 시각적 자유와 놀랍고도 특별한 공감각 능력을 지닌 테베르켄, 그리고 스스로를 ‘시각적 맹인’으로 여겼던 루세랑 ... . 세상에 전형적인 실명 경험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십이지 e-Book> 서평 별점 ; ★★★☆

‘좋은 책은 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다’라는 글을 어디서 읽었는데, 알라딘 무료 e-Book인 이 책을 읽고 또 많은 책들이 알라딘 보관함으로, 도서관 대출 대기 목록에 올라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3-07-1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많은 책을 읽으시는군요....
부럽고 감탄스러워요. 저는................... 에휴휴.

마립간 2013-07-18 07:44   좋아요 0 | URL
비가 오는 날씨인데, 건강 조심하시고, 여름 휴가 계획은 세우셨나요?
저는 마녀고양이님이 부럽습니다.

저의 문제(? complex)는
아는 것만큼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은 삶에 대한 도피로서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능력이 떨어져 남을 이해시킬만한 글을 쓰지 못한다.

저는 독서도 다다익선보다는 과유불급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 讀書日記 130712

 

<황제의 새 마음> 서평 별점 ; ?

 튜링 문제에 관한 책을 찾다가 읽게 된 책.

 다른 과학책에 비해 많이 어렵게 읽었다. 부분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 ‘플라톤적’, 시간과 엔트로피 등등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멍하다. 각 부분은 이해가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 전체가 이야기하는 것을 쫓아가지 못했다. 즉 이야기의 결말인 ‘기계는 지능을 가질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나?

 

한 가지 의문 ; 비교적 시간에 흐름과 엔트로피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빅뱅Big bang이 엔트로피를 높이는 방향이면 빅크런치Big cruch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즉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아니라고 하내! 다시 읽고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

 

* 밑줄긋기

p 50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실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p 56 생물학적 물체(두뇌)는 ‘의도성intentionality’과 ‘의미 해석semantics’ 능력이 있지만

p 56 튜링의 놀라운 발견에 따르면, 쉽게 말하자면, 어떤 명확한 복잡성과 융통성을 보이는 하드웨어는 다른 어떤 유사한 기계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p 59 그 사람과 그가 사는 집을 구분하는 차이는 구성 원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원소가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에 달려있다.

p 60 두 번째 관점(즉, ‘분간만 할 수 없음’)이 첫 번째 관점(즉, 동일함)과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7-1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려워요!!!!!!!!!
이런 책이 특별히 재미있나요?

마립간 2013-07-15 07:56   좋아요 0 | URL
물론 재미도 있고요.^^
동기는 많습니다. 남이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심리적 우월감, 눈에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를 하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 대인 관계에서 부족한 것을 메우고 싶다는 보상 심리. 갖지 못한 것(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것)에 대한 동경. 순발력은 약하고 지구력이 강한 개인적 성향 및 게으름에서 발생하는 보편성의 추구 등.

전문가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에 헛점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