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423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서평 별점 ; ★★★★
이 책을 읽으면서 키득 웃기도 했다. ‘꼭 내 말투잖아.’ ; 훈시와 같은 느낌으로 틀린 점을 지적질 하는 것, 1970년대의 어렸을 때를 회상하는 것. 잘난 체하는 것 (아니면 남들이 보기에 잘난 체를 한다고 판단할 소지가 있는 것). 문학적 냄새를 제외하고 평가서와 같은 문체. 등등. 일단 반가웠다. 나와 같은 욕을 먹는 사람을 발견한 것 같아서. 게다가 과학 지식에 대한 이해도가 나와 비슷하다. 이과계가 아닌 문과계에서 이 정도로 대화가 되는 사람을 처음이었다. 또 하나의 처음은, 이 책은 서평집으로서, 그 대상이 과학책이라는 것이다. (혹시 다른 과학도서 서평집이 또 있나요?)
읽은 책도 있지만, 읽지 않은 많은 책들이 알라딘 보관함으로 갔다. 서평집은 나름 좋은 점이 있으나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원래의 책을 읽는 것이 식사를 하는 것이라면, 서평집을 읽는 것은 영양주사를 맞는 기분이랄까.
문과계에서 있으면서 이 정도의 과학지식이 있는 분은 뭐하고 사시나 봤더니, ... 고인이 된 분이다.
나 스스로 알라딘 활동을 하면서, 수학/과학 도서독서 홍보인을 자처하고 싶은데, 과학에 흥미 있으신 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궁금한 점 ; 문과계열에 있는 분도 이 정도 내용은 자연스럽게 내용을 이해하는지.)
* 밑줄 긋기
p31 그는 실험에 대한 혐오감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다. “실험을 통한 검증 없이 경쟁 중에 있는 가설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으므로,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큰 오점인 실험을 천시하는 생각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험에 대한 혐오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p70 물리학자 카를-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의 ‘은밀한 고백’처럼 소극적 협력적 협력은 이미 나치와 타협한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는 사실 (저항자로서) 강제수용소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쪽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지요.”
p72 내 생각은 제1차 세계대전이 사화주의(자)의 무기력함을 드러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과학(자)의 힘없음을 노출한 것 같다.
p75 “진화는 무목적이며, 비진보적이고 유물론적이다.”
p78 굴드는 과학자에게 물질적 기반의 중요성, 다시 말해 먹고 살 만해야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에 유의한다.
p135 어는 과학 전문기자가 제시하는 과학 뉴스의 다섯 가지 기준은 ‘매력도’ 혹은 흥미로운 정보의 제공, 주제에 대한 ‘기본 청중’의 크기, 중요도, 결과의 신뢰도, 시기 적절함 등이다.
p137 그것이 ‘과학’임을 보장하는 것은 ‘무언가를 발견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는가“에 있다.
p138 과학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었다.
p145 상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불신감은 냉정하기까지 하다. “사고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쉽게 구별되었다. 그들의 시선은 빈틈이 없었고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으며, 사기를 당할까 두려워하거나 그에 대해 유념하고 있었으며, 해질녘의 고양이처럼 경계심을 늦추기 않았다. 그 직업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었다. 궁정 철학자, 렌즈를 가는 철학자, 심지어 엔지니어이거나 전략가인 철학자도 있었지만, 내가 알기로는 도매업자나 소매업을 하는 철학자는 없었다.”
p158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평화롭다. 둘이 모이면 싸우고, 수백 명이 모이면 군중 심리에 휩쓸려 소란을 피운다. 그리고 수천 명이 한데 모이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p192 수학의 어느 두 분야도 산술학Arithmetric과 정수론Theory of Numbers보다 더 대조적이지 않다./산술학은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을 포함한 모든 수학의 토대이다. 이것은 과장 중에서 가장 유용하고, 아마도 이보다 더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한편, 정수론은 가장 응용력이 적은 수학 분야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술적인 진보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고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 수학 분야에서조차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일반 과학 분야와도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p194 수학자는 단지 정신의 활동만 다루고 있음을 꺼리지 않고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독창적인 고안물이 그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동일시하는 감각에 의한 인상에서 유래했음을 분명히 안다. 그리고 때때로 이 고안물이 그들이 태어난 현실과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깔끔함을 수학자들은 그들이 이룬 성과의 기준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의 창조적인 상상력으로부터 나온 것의 가치는 그것이 현실 세계에 적용되는 범위에 의해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수학적 성과는 수학 자체의 척도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과학자는 이 세상이 그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과는 무관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절대적인 완전체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놀랍도록 단순한 법칙이나 전적으로 일반적인 것 혹은 우주의 완벽한 조화를 지적하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그의 생각이 그 발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심하고, 영원한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자신이 본 아름다운 이미지가 이 영원한 존재의 속성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생각의 반향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p198 연구자 개인의 영웅적인 헌신과 지속적인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자연의 협조라는 엄청난 운까지 따라 주어야 한다.
p201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입증된 과학보다 더욱 힘이 세다는 뜻
p206 과학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이다.
p215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예측은 예언과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p219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본질적 (근본적, 발본적)이고 강력하며 압도적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적으로 옳은 단 하나의 이론은 있을 수 없어서다.
p230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p232 나는 양자역학은 다분히 직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엄밀함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철학에 가깝다는 의미다.
p234 우리가 죽음을 불쾌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드물게나마 사람 몸 내부에서 세포 수준의 생명을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을 뜻한다.
p242 분기점에서 실제로 행한 선택은 본질적으로 미리 결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선지先知의 불가능성의 문제다.
p243 어떤 조건하에서 엔트로피 그 자체가 질서의 조상이 되기도 한다./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통합하자는 그의 한발 앞선 제안과 시도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p245 열이 ‘기계적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만큼 열의 본성에 관해서 염두에 두지 않았다.
p258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게 가능한 까닭은 삼라만상에 내재한 ‘폭발성bust’ 덕분이다./“우리들 인생의 매력은 소소한 세부 사항에 있을지 몰라도, 과학의 장기는 결국 일반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p260 전쟁의 시기는 무작위적이며, 폭력이 더 줄어들거나 더 늘어나는 역사적 경향성 같은 것은 없다는 리처드슨의 결론을 지지하는 결과였다.
p266 오염 책임자들은 크게 네 가지 전략으로 규제 조치를 허물어뜨린다. 먼저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정보가 불충분하다’는 비난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들의 공격적 방어 전려이다. 둘째, ‘희생자 비난하기’ 역시 선례가 많다. 셋째는 ‘기계파괴자’ 같은 딱지를 붙여 몰아세운다. 끝으로,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보호 규제에 반대하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