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502

 

<대구> 서평 별점 ; ★★★★

 이 책은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서재에서 처음 봤고,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고 구체적인 동기를 얻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미시세계사’라고 한다나. 큰 것 한방은 그것대로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만,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효과가 누적되면서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물고기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물고기를 고르라면 ‘명태’다. 명태는 ‘왕눈폴락대구’로 대구와 친척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명태(동태)가 흔했다. 없는 살림에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고급스런 생선은 조기였다. (고등어와 갈치의 지위는 잘 모르겠다.) 명태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이 명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명칭이다.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추태, 춘태, 망태, 조태, 찐때, 백태, 먹태) 등.

 

조금 더 곁다리 이야기를 하면, 명태만큼 흔했던 생선이 꽁치였는데, 내가 청소년기 접어들면서 두 생선 모두 보기가 힘들어졌다. 꽁치는 수출 상품이 되면서 볼 수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명태는 동해에서 잡히지를 않는다고 했었다.

 

대구는 대학 졸업할 때쯤 처음 먹게 되었는데, 맛있었다. 맛있는 명태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가격이 비쌌다. 가격 때문에 다시 먹을 생각을 못했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책인데도 술술 잘 읽었다. 그리고 나의 비관주의가 다시 작동한다. 과연 생태生態순환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될까?

 

p233 “저는 대구가 예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오도록 우리가 가만 놓아둘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30만 마리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걸 잡아버리자는 압력을 차마 견딜 수 없을 겁니다.”

 

* 밑줄 긋기

p71 만일 인내하기 위해 태어난 물고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서양 대구일 것이다.

p122 메사추세츠의 급진주의자들은 사회적인 혁명이 아니라 경제적인 혁명을 추구했다./이들은 얄팍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중 상당수의 중요한 지도자들은 (심지어 노예 소유주였던 토머스 제퍼슨조차도) 자기들이 인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수백만 노예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위선에 불과함을 이해하고 있었다.

p166 하지만 기술은 결코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p207 어민이 규제 준수를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규제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임무였고, 그 사이로 빠져 나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p231 개체군 하나가 재생되는 데 과연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과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얼마나 많은 생물량biomass이) 필요한지, 과연 몇 년이 걸리는지를 예측하는 공식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자연에서는 기적과 재난 모두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p242 생물 종들의 상호 의존성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대구가 돌아올 때까지 15년이라는 기간을 다른 생물 종들이(물범뿐만 아니라 식물성 플랑크톤, 동물성 플랑크톤, 청어, 바닷새, 심지어 고래까지도) 기다릴 수 있는지 여부다. 어쩌면 자연이 정치인들보다 더 참을성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p243 멸종 위협에 처한 종은 더 일찌감치 성적 성숙기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은 계속해서 생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이전에는 전혀 본 적이 없었던 물고기가 나타나는가 하면, 원래 있었던 물고기도 엉뚱한 깊이나 엉뚱한 온도, 또는 엉뚱한 시기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p250 생선 튀김만큼 영국의 노동 계급에게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또 있다면, 바로 외국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p251 영국은 과거의 자기 행적을 깡그리 잊어버리곤 했다./의사결정 과정에서 환경보호주의보다는 정치와 민족주의가 더 큰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p279 자연은 오락과 교육을 위한 귀중한 예시로 축소되는 중이며, 이는 사냥보다 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원을 제외하고는 자연이 전혀 남지 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물론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 하지만 1000년에 걸친 대서양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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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지요 ?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합니다. 미시사;가 의외로 재미있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줍ㅈ니다.

마립간 2014-05-02 16:26   좋아요 0 | URL
덕분에 재미있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 讀書日記 140501

 

<이방인> 서평 별점 ; ★★★ (별점은 역자노트 빼고)

 이 책은 번역 논쟁과 관련하여 읽게 되었다. 소설을 안 읽는 내가 번역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소설을 다른 두 책으로 읽은 것은 내가 봐도 놀랍고 이례적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이 글은 책 <이방인>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고, 김화영의 <이방인>과 대비되는 이정서의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대 평가인 이 두 책에서 이정서의 <이방인>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 나는 많은 사람이 장점으로 여겼던 가독성을 원작의 충실성보다 낮게 평가한다. 게다가 김화영의 <이방인>도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묘사를 포함한 세세한 것에 잘 감동하지 못한다. 오탈자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민한국’이라고 쓰여 있어도 ‘대한민국’이라고 인식한다. 내가 주로 감동하는 것은 주제와 주제를 뒷받침하는 구성이다.

 

번역을 고려하지 않은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2014년 4월 24일자 독서일기에 있다.

 

* 독서일기 140424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87532

* 독서일기 140425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89252

 

앞선 독서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꽤 본말론적 경향을 갖고 있다. 소설에서는 주제와 주제를 뒷받침하는 줄거리/구성을 중요시 한다. 문체를 포함한 기타의 것은 그 다음이다. 번역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에 손상을 입히면 안 된다. 매끄러운 번역, 적절한 용어 선택은 역시 내용에 비해 평가 대상에서 뒤로 밀린다.

 

이러한 나의 평가 기준을 적용해 보면, 책세상에서 출판된 <이방인>과 새움에서 출판된 <이방인>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새움에서 출간된 <이방인>의 앞부분에서는 조금의 차이를 느꼈다. 비유해서 이야기하면 책세상에서 출판된 <이방인>이 와사비가 많은 초밥이라면, 새움에서 출판된 <이방인>은 와사비를 좀 덜어낸 느낌 정도. 독서를 진행하면서 그마저 느낌이 옅어졌다. (첫 번째로 읽은 책세상 <이방인>에 대한 인상이 각인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새로 번역된 새움 <이방인> 글에 대한 느낌은 표맥님의 글에, 번역 논쟁에 관한 느낌은 다락방님의 글에 동감하며 내 수준을 넘는 총평에 관해서는 나귀님의 글에 글에 동감한다.

 

* 이방인이 되고 만 <이방인> 읽기 ... http://blog.aladin.co.kr/aspire/6993404

* 새움 이방인(과 그에 따른 다른 것들)에 대한 생각 http://blog.aladin.co.kr/fallen77/6992195

* 칼은 휘둘렀지만 옷자라만 베어버렸네... http://blog.aladin.co.kr/budapest/6986471

 

논란 중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당방위’다. 이것은 번역 문제로 볼 수 없다. 작품 해석의 문제다. 이것은 또한 까뮈가 정당방위, 또는 정당방위가 아닌 것으로 의도했건 소설로 서술된 내용으로 판단해야 맞다. 정당방위는 (이 경우는 책에 서술된) 상황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다. 새움의 <이방인>에 나온 글만 가지고 내가 판사라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칼에 반사된 햇빛을 보고 총격을 가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방방위인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어느 나라 시내에서 데모가 있었고, 데모를 진압하는 공권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데모에 속한 어느 사람이 병을 들고 있었는데, 그 병에 햇빛이 반사되어 공권력을 집행하는 공무원 눈을 부시게 했다. 위협을 받은 공무원은 발포를 했다. 이것이 정당방위인가?) 번역을 떠나 소설의 흐름으로 보건대, 정당방위가 아닌 것이 좀 더 자연스럽다. (칼날의 반사된 햇빛이라는 해석이 위트wit있게 보이는 한다.)

 

뫼르소는 두통과 햇빛에 불편함을 호소한다. 이 두 가지를 엮어 나는 편두통 질환을 떠올렸다. 살인 있던 날에 뫼르소는 음주를 하였다. 뫼르소에게 확실히 광선과민성photophobia는 있는 것 같아 가능성 있는 질환을 인터넷 검색해 봤으나 딱히 어울리는 질환을 찾지 못했다. 첫 번째 총격과 2~5번 째 총격사이에 설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을 기억상실증으로 보고, 간질의 가능성도 고려해봤다. 역시 딱 맞는 것은 없다. 어째거나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라면 해석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해석을 적용한다면 나의 실존주의적 해석이 약화되었을 것이다. 신경과/정신과 질환이 없었다는 것이 자연스럽다. 단지 광선과민성 증상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

 

<이방인>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주인공을 정상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으로 상정하고 해석하는 것과 나와 같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주인을 해석하는 것.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원작의 의도는 까뮈만 알겠지.) 뫼르소는 솔직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솔직함이 자기믿음에 근거한 (예를 들면 리플리 증후군 같은) 솔직함이라면 살인의 동기가 햇빛인지 칼날에 반사된 햇빛인지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역자 노트에 관해 의견을 내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모두 서술하면 역자 노트만큼 분량의 독자 노트가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예로) 번역에 대해 한 가지만 내 의견을 표명해 본다. 출발어 프랑스어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므로 도착어에 한정하여 한국 상황에 맞춰 보겠다.

 전보 내용에 관해 이정서씨는 ‘근조’를 ‘삼가 애도함’이라고 풀어 번역했는데, 어색하다. ‘전보’라는 상응하는 단어는 ‘근조’가 더 어울린다. 내가 초등학교(당시에 국민학교)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전보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전보는 글자 수대로 비용을 지불하므로 존칭도 없고, 의미만 전달 수 있다면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단어가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프랑스라고 달랐을까?) 내가 양로원 직원이었다면 ‘**일 모친 사망’으로 전보를 쳤을 것 같다. 이정서씨처럼 번역을 하고자 했다면, ‘전보 한통을 받았다’고 하지 말고 ‘연락을 받았다’라고 의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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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0430

- 부제 ; ‘솔직함’에 대하여

 

또, 또, <이방인>에 대한 글을 올린다. (그리고 이글 말고도 아직 한 개 남아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또는 반사적으로 솔직하랴 한다. 이런 나에게 주위 사람의 평가는 눈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의 솔직함은 긍정적인 평가가 아니고 부정적인 평가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정직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정직함에는 도덕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화 1) 어렸을 때, 흔하게 듣던 이야기다. ; 한국동란 중에 부상당한 국군을 다락에 숨겼다. 인민군이 다친 국군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 솔직해야 할까?

예화 2) 방송된 실화다. ; 아줌마 몇 명과 젊은 아가씨 한명이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여한 아가씨가 너무 못 생겼다. 대화에 참여한 아줌마는 그녀의 외모에 대해 모두 공감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아줌마의 아이가 엄마를 찾아 왔다. 그 아이는 아가씨를 보더니, “못 생겼네.”라고 말했다.

예화 3) 좀 더 과격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 한 남자가 길을 가던 중 어여쁜 여자를 봤다. 성욕이 동했다. 남자는 솔직하게 자신 심정대로 잘 모르는 상대에게 “아가씨 나는 당신과 성관계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솔직해야 할까? 솔직했다면 형사 처벌을 받을 듯.

예화 4) 할아버지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자녀들은 큰 병이 아니라고 거짓을 이야기했다. 의사로서 솔직하게 할아버지는 한두 달 후에 돌아가신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뫼르소가 유아적으로 미성숙하게 솔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뫼르소가 솔직함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만한 근거를 (한 가지를 제외하고) 찾지 못했다. 예를 들면 마리의 사랑의 여부와 결혼의 제안에 대해 뫼르소는 솔직하게 사랑하지는 않으나 결혼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행동이 부도덕한가. 위 예화 4가지와 비교해도 그렇지 않다. 따라서 뫼르소가 유아적일 가능성이 있지만, (한 가지를 예외로 하고) 그 근거들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바로 살인이다.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살인으로 이어졌고 이는 비판이 가능하다. 도덕적으로 나쁜 살인은 유아적 솔직함에 비롯되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솔직함은 정직과 다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용어를 사용한다.) 나는 솔직함이 불편할 때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보다 의중유보를 택한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른 척 동문서답을 하거나 화제를 돌린다. 나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나? 꽤 많은 <이방인>의 독후감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많은 독후감 중에서 뫼르소를 정직하다고 표현한 글은 단 한편도 없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솔직함은 사실판단의 결과다. 반면 정직은 가치판단의 결과다.

 

* pek0501 님께서 소중한 댓글을 주셨다. (굴림체 부분)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인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처럼 살아보지 않고서는 누구든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다른 페이퍼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는 (당연히) 남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인간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노출된 정보만큼, 공개된 정보만큼, 그리고 내가 습득한 정보만큼 이해하고 판단하다. ‘나’이든, ‘남’이든, ‘인간’이든 아니면 다른 ‘사물, 사건’이든 간에.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누구를 완벽히 이해하고 비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으리라. (설령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에게도, 승무원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출된 정보만큼, 공개된 정보만큼, 그리고 내가 습득한 정보에 의존해 침몰된 배와 관련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다. 정보가 틀리거나 공개되지 않은 정보에 의해서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사실판단-가치판단-감정평가의 순서를 밟으며 확률적으로 판단한다. 나의 정형화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이 간주관間主觀적이다. 주관적인 부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객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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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30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에 얽매여서 4월의 결심 도서 '우울과 몽상'을 다 못 읽었다. '이방인'을 읽은 것도 나름 유익했지만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2014-04-30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1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화 4가지, 흥미롭게 읽었어요.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그와 비슷한 예가 나와요.

이건 제가 글 쓴 적이 있는 건데 - 만약 어느 카페에서 친구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봤고
두 사람의 관계가 수상하게 느껴졌을 때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가정이 파괴되기 전에 말해야 한다, (아니면) 오히려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세 사람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에 따라서(이 변수에 따라서) 최선이라는 게 달라지기도 하겠죠.
이런 걸 넣어서 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아직도 판단이 안 돼요.

그래서 저는 똑똑해지길 포기했다니까요... ^^

마립간 2014-05-01 07:34   좋아요 0 | URL
저와 같이 똑똑함을 포기못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죠.
 

 

* 讀書日記 140429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서평 별점 ; ★★★★

 예전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열풍이 있었다. (찾아보니 나는 1997년에 읽었다.) 핵심은 노동으로 돈을 벌지 말고, (저작권 같은 것을 포함하는 자산을 뜻하나 대개) 자본으로 수익을 올리라는 뜻이다. 거의 2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세계는) 노동보다 자본이 돈을 더 버는 사회를 이룩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 것은 이 자본을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없고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소수에 속할 것이라는 기대 또는 망상을 갖고 있었다. (주식에 투자해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은 누군가 주식에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자본이 시스템을 통해 갑甲이 되었다. 약자는 을乙부터 정丁까지 (또는 그 뒤의 순위를 놓고) 경쟁을 한다. 노동자 간의 갈등, 영세 사업자와 시간제 근로자와의 갈등. 청년/학생은 약자다. 청년/학생 간의 갈등이다.

 

나는 산업 자본도, 상업 자본도, 금융 자본도 그리고 토지 자본도 갖고 있지 않다. 노동력은 이미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곧 굶어 죽겠군.

 

내게 이 책은 최소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보다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읽혀졌어야 맞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별점 3개,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는 별점 2개 반을 주었다. 이 책의 논리로는 그보다 나쁜 책이다.

 

궁금증 1 ; 불공정은 확실한데, 공정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궁금증 2 ; 편견과 정형의 차이는? (내가 서재 활동 초기에 페미니즘을 소재로 이야기 한) 편견과 정형의 불분명한 차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꼈다.

 

나의 반대 의견 ;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했고, 역사가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자기계발이 정답이 아니듯이, 사회구조 개선 역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힘들다. 비관주의자인 나의 의견은,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이 사회의 모순은 더 강화되고 결국에는 파국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마 글쓴이도 해결방향이나 방법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 밑줄 긋기

p39 “살아보니 열심히만 하면 다 되더라!”는 훈계가 진실이 되는 것 아니다.

p54 이십대의 자기계발에서는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는 게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 못한다. 외부에서 인정하는 어떤 성과의 지표로 증명되지 않는 혼자만의 자아성장? 지금 그렇게 한가한 자기만족은 관심 밖이다.

p56 자기계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라!”, “힘들었지? 나도 힘들어. 잠시 쉬어다가 다시 해보자!”

p93 편견의 확대재생산

p115 대학생들이 학교가 어디냐에 따라 상대를 이토록 무시하는 것은 실제로 총체적 역량에서 차이가 난다는 확신을 가져서일 게다.

p116 상당부분 기성세대의 ‘살아보니까, 그렇더라!’는 식의 평가를 그저 수용하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p119 ‘불쌍한 것 불쌍한 거고 다른 건 다른 거다.’

p120 다른 역량들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수능점수처럼 ‘단번에’에 드러나거나 쉽게 확인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을 뿐이다.

p121 “내가 이룬 성과를 존중해 달라”/과거 산업사회의 ‘전사형’ 모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어서다.

p126 ‘타인의 상승’에 대한 거부감이다. ; 박명수가 국카스텐에게 한 말.

p136 판단이 고정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런 것이 바로 자기실현적 예언의 위력이다.

p146 어느새 ‘집값’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p164 이 학력 위계 구조는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유지되지도, 확대재생산되지도 않을 것이다.

p166 학교 이름 하나로 내가 돋보이는 시대는 비록 저물었지만, 나와의 차별화를 위해 남을 ‘밀어내는’ 전략으로는 여전히 유용하다.

p167 멸시의 피해자들은 또 어떤 지점에선 멸시의 가해자로 존재한다. ; 판옵티콘에서 신옵티콘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

p171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현상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p182 참담한 현실‘만’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 십대들은 스스로도 본인들이 구조의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라고 이해하나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변혁’이 아니라 ‘일단 살고 보자’가 중요해진다.

p187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p189 그러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은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고, 그런 좌절 속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아픔은 ‘힐링’으로 힐링되지 않는다.

p190 이십대 청춘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코너에 몰아놓고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 특별한 경우를 강조하는 건 이 사회가 실제로 공정하지 않은데도 이를 문제 삼지 말라는 격에 다른 아니다.

p191 물론 긍정과 희망의 강조 이면에는 거꾸로 깊은 좌절에서 오는 패배의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처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지 모른다.

p191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는 점을 ; 그런가?

p193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 ; 그런가? 사회구조를 비평하고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개인의 역할과 책임으로 귀결되나? (남북한 통일은 남북한 국민 전체 의식 전환(어떻게?)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p208 ‘성형’도 마찬가지다. 인사담당관의 94%가 채용시 외모를 고려한다는데 누가 외모 관리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211 결코 동등한 상태에 있는 게 아니다.

p214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p233 혜민 스님은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라고 말한다. 먼저 내려놓으면 끝장인 세상은 안 보인단 말인가? 남들보다 더 잘되기 위한 탐욕이 아니라, 그저 남들로부터 배제되는 데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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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9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세 시대에는 혈통이 자산이자 계급이었다. 지식노동자 사회를 잠시 거쳐, 자본(돈)이 계급화되는 시대로 정착하는 모습. 그 이후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개 2014-04-29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와 어떻게? 에 격하게 공감하고 갑니다.

이런것들의 답이 있긴 한건지 모르겠어요.
그런것들의 답을 알고 싶어 책을 읽지만....

마립간 2014-04-29 11:48   좋아요 1 | URL
아무개 님, 저는 대학 입학을 독서를 시작하면서, 올바른 사회 또는 그에 맞는 개인의 선택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석이 되는데 그 해석을 통한 해결책에서는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도는 느낌입니다.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상정했지만, 정말로 답이 없는 것인지...

차트랑 2014-04-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후는 어떤 형태의 것이 될지는 알수 없으나
인류에 대한 전반적 포맷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마립간님께서 이미 찾아내셨을 것만 같습니다

마립간님,
이상하게도 마립간님께서 말을 아낀 내용에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지 모르겠군요
이러면 마립간님의 글을 오해하는 불상사가 생기는데 말이지요 ㅠ.ㅠ
부디, 착각은 자유라고 치부해주세요 ㅠ.ㅠ

아, 그리고
역사가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에 몰표 ㅠ.ㅠ

마립간 2014-04-29 13:58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 그냥 한 숨만 ... 저야 좋은 세상을 살았다고 치고 지나가면 될 것 같은데, 제 딸이 살아야 될 세상을 생각하면 ... 특히 세상의 변화하는 시기에는 약한 곳부터 곪아 터지게 마련인데, 제 예상이 틀리기만을 바라고 있죠.

페크pek0501 2014-04-2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190 이십대 청춘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코너에 몰아놓고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 특별한 경우를 강조하는 건 이 사회가 실제로 공정하지 않은데도 이를 문제 삼지 말라는 격에 다름 아니다.
- 이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진실을 덮어 두고 말하는 거죠.

p214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 희망은 강요해서 생겨날 수 있는 게 아니죠. 저절로 생겨야 하죠.

공감합니다. ^^

마립간 2014-04-29 13:59   좋아요 0 | URL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 전에 경주 리조트 사건을 보면서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해 줘야 할지 난감합니다.

saint236 2014-04-29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개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그때에는 별점을 3개 정도 줬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 수록 과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만지작 거리던 책인데 조만간 구매를 해보렵니다.

마립간 2014-04-29 15:21   좋아요 0 | URL
saint236 님의 댓글을 읽으니 역시 편견일지도 저의 가치관이 강화되네요.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갈수록 평가가 낮아지는) 베스트셀러 책을 읽을 것이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평가가 높아지는) 스테디셀러 책을 읽을 것.^^

위의 책들, 저의 별점 3개는 당시에 별점이 박하다는 평가도 있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4-3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 굴드가 아마... 풀하우스에서 말했나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데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레비스트로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죠.
제가 사르트르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아마 사르트르는 역사는 지식인의 투쟁에 의해 진보한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
레비와 피터지게 싸웠던 적이 있었죠... ( 정확한 팩트는 아닙니다. )

마립간 2014-04-30 17:24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도 역사의 진보를 믿지 않는군요. (사고의 개방성을 위해 제 의견에 반대하는 글도 좀 많아야 되는데.^^)

저는 샤르트르에서 까뮈로 전향했고, 도킨스와 굴드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 讀書日記 140428

 

또 <이방인>과 관련된 글을 올리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뫼르소의 재판 과정이 부조리하지 않다고, 그와 같이 판단한 근거?가 되는 이야기를 올린다.

 

A와 B는 강도(또는 절도 및 상해)죄로 재판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약국에 침입해서 고가의 약과 돈을 훔치고 약국 주인에게 상해를 입혔다. A는 계획된 범죄이고 B는 우발된 범죄이다. 이 두 사건은 이웃동네로 같은 법을 적용 받는다. ; 누가의 형량이 높아야 된다고 생각하나?

 

A는 동네에서 가난하지만 성품이 착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인사성도 밝고, 옆집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도와주었다. 표창을 받은 바 없으나 선행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병환이 나셨고,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때마침 치료약이 약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을 훔치기로 계획하고 약국에 침입했고, 필요한 약 1000만 원 어치과 함께 눈에 띈 돈 1000만원을 훔치던 중 약국 주인에게 상해를 입혔다. A는 체포되었고,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범죄 사실에 대해서 논란이 필요 없었다. 변호사는 평소 A씨의 선행에 대해 증인을 신청하여 평소 선행에 대한 질문을 하니, 검사가 외쳤다. "이 재판이 A의 범죄 사실을 재판하기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A씨 선행을 칭찬하기 위한 것인가요?"

 

B는 동네에서 성품이 나쁘다는 평가를 들었다. 어르신들에게 막 대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기도 하고, 술주정뱅이다. 법적으로 처벌받은 적은 없으나 비행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유흥비가 없어 불만이 있던 중, 때마침 문이 열려 있는 약국을 보았다. 돈을 훔치기로 했고, 1000만원을 훔치면서 눈에 띈 고가 약 1000만 원어치를 함께 훔치던 중 약국 주인에게 상해를 입혔다. B는 체포되었고,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범죄 사실에 대해서 논란이 필요 없었다. 검사는 평소 B씨의 비행에 대해 증인을 신청하여 평소 비행에 대한 질문을 하니, 변호사가 외쳤다. "이 재판이 B의 범죄 사실을 재판하기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B씨 비행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요?"

 

법조문만 놓고 보면 A가 B보다 최소한 형량이 같거나 높아야 한다.

 

* 독서일기 140425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89252

* 독서일기 140424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8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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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4-2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처럼 헷갈려서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세상엔 얼마나 많은지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또 달라지는 판단력...
그래서 저는 똑똑하기를 포기했어요.

마립간 2014-04-29 14:00   좋아요 0 | URL
pek0501 님의 '이방인'에 대한 글과 다락방님의 댓글을 통해 다른 방식의 이해를 얻고 있습니다.

2014-04-29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9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9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