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映畵短評 140617

 

<관상>

 

정의는 불의에 대해 반드시 승리하지 않는다.

계유정란이 과거( 1980년대)에는 신하들의 왕권 도전에 대한 왕권 수호로 (가치)판단하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평가하는 경향.

조선말 세도 정치를 고려할 때, 정도전의 신권 정치도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로 인한 권력 독점을 막는 것이 핵심.

진형(이종석 분)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자.

예전에 태종이 그리고 세조가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것에 대해 권력이란 것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참으로 독해야만 정치에서 살아 남는다고 생각.

부자父子 형제간에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 ; 권력, 돈, 여자, 완력腕力(폭력)

 

자신의 얼굴에 점을 찍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은 바꾸지 못할 숙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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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0616

 

<무의 수학 무한의 수학> 서평 별점 ; ★★★

이 책도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이다. 꼭 문헌에서 확인하지 않더라도 경험에서 ‘극克과 극克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속담에는 ‘Extremes meet.’가 있고, 동양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이 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극단적인 정의는 실제로는 부정의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중학교 수학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 a*0=0, a/0=불능不能, 0/0=부정不定

 

0에 관한 책이나 무한에 관한 책은 따로따로 읽었지만, 함께 엮어 읽으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옛 사람들의 이 두 가지 개념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0과 무한∞의 관계는 곱셈의 역산에서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곱셈’이라는 연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학적 세계를 잘 은유한다고 한다. 0의 덧셈에 대한 역원은 그 자신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특별한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덧셈이 물리학적 세계의 많은 부분을 은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책의 앞부분은 수학에 관해, 뒷부분은 물리학에 연관하여 이야기한다.

 

복소수의 곱셈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a+bi)(c+di)=(ac-bd)+(ad+bc)i

우리는 학생 시절이 이 곱셈의 정의를 실감 못하고 배우지만, 실제 이런 정의가 물리학적 세계를 잘 은유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단지 우리는 (대학교 과정의 전자기학과 같은) 특별한 학문을 배우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에서 복소수를 경험하기 어렵다.

 

* 물극필반 외에 극과 극은 통한다는 한자어가 있었던 것 같으나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래 한자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한자성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착각하고 있나?)

만류귀종萬流歸宗 ; 모든 물줄기와 수없이 많은 물결 그리고 흐름이 결국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지속된다. (주역 계사전)

 

* 밑줄 긋기

p29 공허와 혼돈에는 원초적 공포가 담겨 있으며 이는 0도 마찬가지다.

p37 다분히 미신적이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점에 비춰 봐도 피타고라스의 믿음은 비정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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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育兒日記 140613

- 아이의 잠자리 독립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딸아이는 부모와 다른 방에 자겠다고 했고 아이는 일주일째 혼자 잠을 자고 있다.

 

잠자리 독립의 처음 시작은 1년 전쯤 친구 집을 방문하고 나서 자신의 침대와 책상을 사달라고 했을 때로 볼 수 있다. 나는 사줄 수는 있으나 책상은 공부할 때 필요한 것이니 네가 공부를 할 때 사주겠다고 했고, 침대 역시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잠을 잘 수 있을 때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물건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 이후 중간 중간 자신만의 가구에 대해 욕심을 냈지만, 아빠가 제시한 조건을 실천할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이 친구 부모는 잠자리를 독립하면 침대를 사준다고 하지 말고, 침대를 사줌으로써 잠자리 독립을 한다고 하였지만, 믿기질 않았다.

 

아직 완전한 독립은 아니다. 잠은 혼자 자지만, 잠이 들 때까지는 엄마가 옆에서 지켜줘야 한다.

 

안해는 아이의 잠자리 독립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있다. 아니 벌써. 나는 담담했다. 예상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는 시기가 두 번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사춘기고, 첫 번째는 7살 전후이다. 부모가 첫 번째 독립 시기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운 7살’이라는 속설이 생겼다.

 

역시 책은 구체적 상황을 제시하지 않지만, 보편적 상황에는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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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벌써 다른 방에서 자겠다고 선언했어요? 멋진데요...
친구가 본인의 물건을 가진게 꽤나 부러웠나 보네요. 자아 개념이 확실하게 생기고 있군요.

중2인 저희 딸은 아직도, 악몽 꾸면 방 건너 오는데 말이죠. ㅋ

마립간 2014-06-14 07:52   좋아요 0 | URL
잠들기 전에 엄마가 필요하니, 불완전한 독립이죠. 부모 방으로 오기보다 엄마를 불러들이는 전술입니다.

안해가 아이의 잠자리 독립을 보면서 약간 서운한 감정있는 것과 달리. 저는 다른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것이 섭섭함의 다른 표현형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초등학교 입학 1년전 저의 모습이 스틸컷처럼 떠오르거나 몇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는데, 아이가 이제 그 나이가 된 것이죠. 아이의 모습과 제 기억이 오버랩되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 讀書日記 140612

 

<후흑학>

 이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추천이다. 그 과정에 약간의 혼선이 있어 추천 도서는 이종오의 <후흑>이었지만, 도서 구매는 신동준의 <후흑학>, 실제 독서는 이종오의 <후흑학>으로 하게 되었다.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주제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 사필귀정 http://blog.aladin.co.kr/maripkahn/4940847

 

나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대신 정의의 입장에서 불의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여울마당 님의 글에 남긴 댓글의 일부 ; 지금이 만약 한일합방 초기라면, 그래서 친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 그에게 (정의, 도덕, 아니면 현실적 이익을 포함하여) 어떤 시각/방식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 고민 중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초등 교육은 유신 체제하에서 이뤄졌는데,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일제 식민지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친일은 나쁘다고 배웠고, 공산주의 독재가 나쁘다고 배웠다. (당시의 나는 국가 지도자가 친일 경력이나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독재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첫 번째 의문은 ;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친일, 친독재는 () 나쁜 것인가?

 

어렸을 때, 교육에 의한 각인에 의해 나쁜 것이라는 직관은 있지만. 세도정치, 친일, 친독재, 친재벌의 이력을 갖는 사람이나 집안이 있다고 하자. 이들의 일관된 가치관은 자신을 위해 (이기주의 또는 집안(혈육)이나 학맥을 위해) 강한 것에 철저히 복종하고 나보다 약한 것들에 대해 철저히 통제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강한 것이 바뀌면 복종의 대상도 바뀐다. 조선말 서인西人 당파의 중국 사대事大에서, 일제 식민지 때는 일본, 개발 시대에는 친미로. 조금 더 단기적으로 국가 통수권자가 바뀔 때마다 복종의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두 번째 의문은 ; 법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일부는 법 위에 있고 그 나머지 대부분이 법 아래 있다고 할 때, 이 상황이 (왜) 나쁜 것이냐?

 

* 세월호 01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09661

 

모든 사람이 법 아래 있다고 해도 법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한쪽(기득권)은 일방적인 권리와 부를 다른 한쪽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책임을 지우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위 질문들은 다른 형태의 질문으로 변형될 수 있다 ; 대학교육이 학문의 탐구가 아닌 기업의 지식 노동자 양성소가 되면 (왜) 나쁜 것인가?

 

나의 이런 마음이 은연중에 얼마나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후흑학>에는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내용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굴드의 의견이 설득적이다.

 

굴드의 진화론에 의하면 진화는 진보적이지 않다. (통계적으로 부분적으로 진보의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원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무작위적이다.) 이 이론을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는 항상 진보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정의가 승리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정의와 불의의 긴장관계가 있다. 그 긴장의 균형점이 내 생각보다는 상당히 불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가치관은 성악설을 지지한다. 경우에 따라 불의가 균형점보다 더 우위를 갖는 불균형점으로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불균형은 원래의 정의-불의의 균형점으로 복귀하기도 하고, 다른 힘에 의해 불균형의 균형인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불의가 계속 지속되어 파국으로 끝나기도 할 것이다. (파국 후에는 다시 균형으로 가는 반동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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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1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동준의 후훅학를 읽으셨군요. 글구 보니 제가 읽은 후흑학도 이분인데 ?! ㅎㅎㅎㅎ. 신동준 이 분 이번에 묵자를 출간하셨더라고요. 묵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제대로 된 묵자 사상이 없어서 읽지 않고 있었ㄴㄴ데 이번에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마립간 2014-06-13 07:47   좋아요 0 | URL
저도 묵자를 읽어보려고 (10년 동안?) 벼르고 있었는데, 계속 뒤로 미뤄지네요. 읽어보고 좋은 면 추천해 주세요.^^
 

 

* 讀書日記 140611

 

<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 서평 별점 ; ★★★

다른 사람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의 사춘기 전후는 명백하게 구분이 된다. 나의 사춘기 어두운 감성을 촉발한 가요가 있는데, 장욱조의 ‘고목나무’다.

 

* 고목나무 http://www.youtube.com/watch?v=mJeV1uIaBPE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그랬겠지만,) 고독과 외로움은 나의 기본 정서가 되었다. 이 가요에 잘 맞는 사진을 보았는데, 캘리포니아 화이트마운틴에 강털 소나무로, 나이테로 판단하건데, 5000년을 정도 산 것 같다. 환경이 척박하여 생물학적 경쟁 상대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오래 산 생물로 남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런 정서와 잘 어울리는 문학적 단어 중에 하나는 ‘은일사隱逸士’다. 사군자의 은일사는 국화菊花다. 그러나 퇴계는 매화에게 은일사라는 명칭을 주었고, 초본 식물보다 목본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퇴계의 생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엄밀하게 식물의 생태학적 측면을 보면 국화가 은일사에 더 어울리고, 한사寒士로 불리는 매화는 선구자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시 중에는 매화를 소은小隱(속세를 떠난 은사隱士)이 아니고 대은大隱 (세상에 살면서 은사의 가치관 품위를 갖는 것)에 비유한 것이 있는데, 매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대은이 아니고 소은이기 때문이다. 대은을 은유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봤는데, 연蓮꽃이 적당할 것을 생각된다. 매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국화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였다. 매화의 매력에 자태姿態가 있지만, 국화의 자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국화는 정말 은일사답다.

 

책의 수록된 시詩가 전반적으로 매화의 매력을 발산하기보다 매화에 대한 퇴계의 애정이 두드려져 보인다. 시에서 부족한 매화의 매력을 보충하는 것이 그림이다. 송필용 화백이 그린 그림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데, 소현 이은실 화백이 그린 그림이 서양화풍이 가미된 동양화라면, 이 책에 실린 송필용 화백의 그림은 동양화 방식으로 그려진 서양화이다.

 

(나와 어울리지 않지만, 그나마 문학 분야에서 나와 친숙한) 시집은 (딱 정해놓은 기간은 없지만, 의무적으로)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틈틈이 함께 구입한다. 한시와 매화의 조합으로 구입하게 된 이 책을 읽으면서 백지영의 가요 ‘총 맞은 것처럼’, 마음에 구멍 난 느낌을 받았다.

 

* 수양 딸 http://blog.aladin.co.kr/maripkahn/4704029

* 매처학자 http://blog.aladin.co.kr/maripkahn/6589

 

* 밑줄 긋기

p23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철석鐵石 같은 심장’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매화 앞에서만은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곤 하였다. ‘철석심장’이 녹아버리는 것이다.

45 ‘절우사節友社’란 추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절개를 지키는 정신, 즉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와의 모임(동아리)를 뜻한다.

p52 “자연(/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삶을 마치고 돌아갈 뿐,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p110 옥골빙혼玉骨氷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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