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映畵短評 140711

 

<7번방의 선물>

 

* 사실적이지 않다.

감방에 관한 비사실적 요소는 인터넷 검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에 언급되지 않는 두 가지를 추가로 이야기하면

1) 교도소와 구치소는 다르다.

2) 사법연수원의 모의재판은 연수원생끼리 역할을 나눠 하는 것이라고 한다.

 

* 연상된 영화

<I am Sam>

<Hogan's Heros 호간의 영웅들> (TV 외화)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과 유사한 것에 감동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보다 사실적이지 않은 것에 더 감동하다면 이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바른 마음> 책에 의하면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논픽션보다 픽션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생존 능력을 전제로 공감능력을 고려하여도 사실적이지 않은 것에 공감하는 것보다 사실적인 것에 더 공감해야 하지 않나. ; 개선해야 할 오류인가 아니면 총체적인 최선을 위한 불가항력적인 오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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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7-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사실성(리얼리티)라는 용어를 풀이할 때, '재현한 것의 그럴듯함'이라고 하니까요. 여기서 방점을 '그럴듯함'에 두는가, 혹은 '재현'에 두는가에 따라서 약간은 생각이 달라질 것 같기도 합니다. 즉 사실과 달라도 그것이 충분히 '그럴듯하다'면 그것(그 장면)이 리얼리티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영화에서) 일반적으로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실제의 사실과 구분되는) 영화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구요. (더구나 이 영화는 제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영화라기 보다는 판타지적인 영화에 가깝다고 보니까요. 물론 이 영화의 완성도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조금 더 극단적으로는 영화에서 사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측도 있으니까요(어떤 다큐멘터리라 해도 그것을 찍는 순간 사실 이상의 무엇인가가 거기에 들어가는 셈이니). 그러니 비사실적이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원래 모든 영화가 그래,라고 답하겠죠. 문득 든 생각은 우리가 '사실에 감동한다'고 했을 때 적어도 그것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신문에 실린 어떤 미담을 보고 감동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문이라는 매체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단지 정도의 차이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저 글을 보다가 잠깐 든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마립간 2014-07-12 08: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맥거핀 님의 글을 통해 ‘영화적 사실’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되네요.

저는 상보적 관계인 예술의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의 정답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보다 보편적 개념으로는 객관(사실주의)와 주관(표현주의)의 고민을 수도 있겠고요. 저는 대략, 객관, 주관, 그 사이의 간주관間主觀으로 삼분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객관과 순수한 주관의 양 극단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고민은 인간이 (상대적인) 사실적 영화보다 판타지적 영화에 더 감동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가치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이전에 사실적 영화보다 판타지적 영화에 더 감동한다는 사실판단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요.)

* 예술 왜곡된 사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81759

맥거핀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 讀書日記 140710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 레비스트로스와 사르트르의 논쟁은 유명하다.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엔 인간은 역사의 의해 진보한다는 사르트로의 논리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글 ‘올드보이’에서 발췌)

 

* 올드보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5646

 

질문 1 ; ‘인간 사회는 (역사를 통해) 발전해 왔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를 주저한다. 어찌 보면 발전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걸어 다니기만 했던 사람이 자동차를 발명하여 먼 거리를 이동하고, 비행기와 우주선을 타게 된 것을 생각하면 발전한 것 같다. 과학기술만 발전했다고? 사회 문화를 보자.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렸고 그것을 타당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노예 제도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는 아테네의 귀족만 존중받을 수 있었다. 다른 폴리스의 귀족의 존중을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의견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인간 누군가에 대해 가금 공감과 연민을 느낀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는 인간 사회가 발전한 것 같지만, 인간의 전쟁의 빈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계급은 사라졌으나 계급과 같은 계층이 존재한다. 외적 사회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나아졌지만, 내적 공감과 이해는 약화되었다. 무엇이 발전했다는 말인가? 또한 역사에 의한 발전은 과거의 사회가 미개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인간 사회의 어떤 점이 미개했다는 말인가?

 

질문 2 ; ‘생명은 (진화를 통해) 발전해 왔는가?’

 

인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생명은 발전해 왔다는 인상을 준다. 단세포보다는 다세포 생물이, 절지동물, 어류보다는 포유류가, 포유류 중에서도 영장류가, 영장류 중에서도 메타 인식을 하는 인간이 발전된 것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발전의 방향, 인식이 자체가 임의적이다. 왜냐하면 삶을, 생명을 긍정하는 시각을 부정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매미라는 며칠 동안의 성충의 삶보다 몇 년간의 굼벵이로 삶을 긍정하고 성충은 단지 번식을 위한 장치로 생각한다면 어떤 모순이 생기는가? (아무런 모순이 없어 보인다.) 만약 애벌레의 삶까지 긍정한 디오게네스-양주주의적인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 매미의 생활사를 통해 매미라는 성충으로 목표로 애벌레를 과정을 생각하는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적인 생각에는 어떤 오류가 있는가?

 

이 책에 ‘문화적 편향’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화’라는 수평적 가치관이고 ‘편향’ 수직적 가치관을 갖는다. 마치 형용 모순과 같은 이 같은 문구가 가능한 것은 맥락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화론 역시 임의적이나 맥락을 고려하면 목적론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매미라는 곤충의 구체적 실체와 삶의 실체를 벗어난 목적을 구하는 플라톤-노자주의적 견해가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견해가 맞는다면, 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도덕적 다원주의처럼 선택 사항인가? (선택 사항이라면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진화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굴드적인가? (굴드적이라고 함은 원인은 비선형적 순서이나 이유/결과는 선형적인 것을 말한다.)

* 임의적 분포가 카오스 규칙을 따른다면 또는 임의적 상황이 통계 분포를 따른다면 ; 정녕 임의적인가? (예를 들어 비행하는 생물은 비행에 관한 물리학의 제한을 받을 것이다. 완전 임의적일 수 없다.)

* 진화가 임의적이라면, 눈eye이 발생했다가 퇴화했다가 다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눈을 창발할 수 있는가? (그런 예가 발견된 적이 없다.)

* 진화가 임의적이라서 이 우주에서 생명 창발의 발생률이 극히 낮다면, 특히 인지認知를 가진 생명체의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다면 (즉 우리 우주에 생명체를 가진 행성이 유일하게 지구이며 인간이 유일하게 인지를 가진 생명체라면) 창조론의 반증을 구할 수 있을까.

 

* 굴드와 레비트로스에 반한 도킨스와 사르트르의 목적적 상위 개념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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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1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이 적극 개입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고 했는데 레비옹이 보기엔 이미 원시 사회는 현대 사회만큼 정교한 구조적 틀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죠. 과거는 야만이고 미래는 진보'다, 라는 것을 레비옹은 믿지 않았습니다. 굴드 에세이가 뛰어난 점은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서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애벌레 매미 비유만 해도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마립간 2014-07-11 07:44   좋아요 0 | URL
저도 굴드의 사상은 진화론에 바탕을 둔 과학이면서도 인문-사회를 포함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읽은 많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에서 굴드를 언급하니까요. 처음 굴드의 사상을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플라톤-노자주의자에게는 말이죠.

샤르트르와 레비트로스의 입장은 위 글에서 언급했지만 어느 쪽을 지지하기가 힘듭니다. 샤르트르의 입장을 지지하려니, 과거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면서 명확한 미래의 목적이 보이지 않고, 레비트로스의 입장을 지지하려니, 무기력을 느끼게 합니다. 어짜피 변할 것도 없는데, 뭐하라 애써...
 

 

* 공감능력이 없다고,

제가 추정했던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인간은 인간을 해석할 수 없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60834

* 두 남자를 위한 변명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61812

 

위 글에서 서울역에서 만난 남자 분을 편의상 A라고 부르겠습니다.

 

A씨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이켜보니 적절하지 못한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글에서 나타난 정보로 (그 당시에) A가 공감능력이 부족했었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시오페스sociopath의 예와 비교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A와 관련된 사건이 살인 사건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소시오패스의 사건을 예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하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위안해 봅니다.) 하지만 A와 관련 사건에서 A씨는 범법이나 명백하게 남에게 해를 끼치는 부도덕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범죄자에 대한 비유를 언급한 것은 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소시오패스가 공감능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소시오패스는 아닙니다. 저의 댓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 역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소시오패는 아니니까요. 저의 개인적 경험과 개인적으로 얻은 지식에 의하면 남자는 공감능력이 떨어집니다. 국가 기관의 공식 통계와 같은 확실한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고, 부실한 저의 경험과 지식에 의하면 남자 범죄가 여자보다 흔하고 이것이 남자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무관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지만 이것을 근거로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부도덕하지 않으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부류의 하나는 수학자들입니다. <천재들의 수학 노트>에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인 수학자 에피소드들이 나옵니다. 수학 문제를 해결을 위해 상시적이고 깊이 생각하는 집중이 상대의 표정을 읽는 능력이나 인간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에 둔하게 된 것이죠.

 

(TV에서 봤는지, 책에서 읽었는지) 어디 봤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느 수학자가 대중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러분들이 수학자들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학은 깊은 사고를 하는 분야입니다. 수학자들은 평소에도 깊은 사고를 하며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은 사고를 하는 수학자들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상식적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 하거나 일부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단지 깊은 사고에 의한 결과적 현상일 뿐입니다.”

 

최근 수학의 성과 중의 하나는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것인데, 이것을 증명한 수학자 페렐만은 클레이 재단의 상금을 포기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활동 자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조를 받고 있는 어머니에게 얹혀살고 있죠. 아마 추정하건데, 수학문제를 풀기 위한 고도의 정신노동 후에 더 이상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할 정신 능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봅니다.

 

사소한 오해와 몰이해가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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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7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7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7-08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내용으로 대략 짐작을 합니다만,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걸 보니 공감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거 같은데요.
공감능력이라기 보다는 용기의 문제로 봐야 할까요?^^

마립간 2014-07-08 07:5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위로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공개 댓글로 잘못 언급한 것이니, 공개 글로 사과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상황이 끝난 후 그 상황을 돌아보며 '아 그 때 그렇게 했어야 맞는 것이었구나'라고 판단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공감능력이라기 보다 추론에 의한 상황 판단이죠. (이런 것도 공감 능력으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상황이 종결된 상태라 돌이킬 수가 없죠.

통상적으로, 추론없이 직관에 의해 즉각적으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판단하는 것을 공감능력이라고 할 때, 저는 공감능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매우 속상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했습니다.

위 글, 저의 실수는 집단에 관한 정형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댓글을 남길 당시, 저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 잘못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죠.
 

 

* 讀書日記 140703

 

지금 <바른마음>과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를 읽고, 있는데, 두 책 모두 두껍고, 빠르게 읽을 수가 없다. 한 문장을 읽고 또는 한 페이지를 읽고 한 동안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두 책 모두 별점 5개가 아깝지 않지만, 나의 기준을 적용해 4개 반을 준다.) 중간 정도 읽은 상태에서 독후감의 분량이 많아 완독 전 먼저 독후감을 쓴다. (이것이 독후감 맞나?)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1~4부 서평 별점 ; ★★★★☆

 

나중에 천천히 읽으려 했던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집어 들게 된 것은 독후감에 호평 사이사이에 비판적인 독후감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이 이런 다른 평가를 갖게 하는가 궁금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그런 의문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이 좋은 평가를 한 책을 내가 나쁘게 평가한 책이 한 둘이던가.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고.) 결국 책과 독자의 궁합에 의해 평가가 결정될 것이다.

 

책의 앞 어느 부분을 읽을 때, 정말 키득 웃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읽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어느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나 과학(물리?) 책 소개에 관한 글이었다. 글쓴이는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되는 내용의 직접적 설명을 생략하고 책을 썼다. 아마 비유나 인문학적 설명으로 대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책은 가장 어려운 과학 책이 되었다.

 

한 마디로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이 책은 (어느 정도의 과학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하나 가독성은 떨어진다. 따라서 대중적인 책이며, 대중적인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굴드’라는 학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굴드의 책을 읽은 것은 얼마 전 <풀하우스>를 읽은 것이 전부다. 그러나 굴드의 책을 이미 읽은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많은 책에서 ‘굴드’라는 이름과 그의 이론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많은 책에는 진화론에 자연과학 책만이 아니라 인문학 책도 있다.

 

극단적인 플라톤-노자주의자가 창조론을 주장한다면, (물론 이에 비할 수 없지만) 굴드가 보기에 유용성에 의한 목적적 진화는 무작위적 변이의 결과를 주장하는 진화에 비해 플라톤-노자주의적이다. 책에서 보이는 학계에서 주류는 도킨스나 핑거, 윌슨을 포함한 목적적 진화론이었던 것 같다. (과거형이다. 지금은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기간 소수였던 굴드는 학문 외적인 이유로 피곤했을 것이리라는 추측을 해 본다.

 

굴드가 내게 매력적인 이유는 진화론 자체가 (계속 이야기해서 지겨우시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관점이지만, 굴드의 주장이 주는 느낌은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와 디오게네스-양주주의의 중간이다.

 

질문 ; 뼈는 왜 하얀 색인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은 뼈의 칼슘 성분 때문에 하얗다고 대답할 것이다. 뼈에 칼슘이 포함된 이유는 뼈는 내구성이 필요하고 칼슘이 이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질문’에 대해 이상한 것,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는가? 굴드적 관점에서는 질문이 잘못되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전제하에 당신은 그것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 순종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44939

우선 용어의 설명부터 해야겠다. 원인과 이유 ; 이 두 개의 용어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다르게 사용될 때 ‘원인’은 동인動因적 면에서 볼 때 사용되고 ‘이유’는 결과적 면에서 볼 때 사용된다. 가끔 F=ma 식에서 왜 F는 ma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식은 물체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a=F/m에서 귀결된 것이다. 귀결된 결과에 대해서는 ‘왜’라는 원인에 대한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떻게’라는 이유의 질문이 가능하다.

 

굴드는 뼈가 칼슘 성분이 있어야하는 원인인 내구성이 필요하지만 굳이 흰색일 필요없다는 것이다. 검은 뼈, 붉은 뼈, 파란 뼈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 질문은 ‘뼈는 어떻게 하얀 색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칼슘 성분 때문에’라는 답이 가능하지만, 왜 (검은 색이 아니고) 하얀 색인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잘못된 질문이라기보다 답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굴드에게 묻고 싶다. 생물학적(과학적) 이유에서 뼈로 가능한 성분이 오직 칼슘이고 이와 같은 이유로 뼈의 내구성, 칼슘, 흰색이 필요충분조건을 갖춘다면 ‘뼈는 왜 하얀 색인가?’라는 질문에 의미를 둘 수 있지 않을까?

 

무작위라는 (디오게네스-양주주의적) 굴드의 견해에 나는 “그럼 모든 진화는 무작위적이며 우연으로서 이유는 있으나 원인은 전혀 없단 말입니까? 정말 그래요?”라고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적인 견해로) 되묻는다.

 

어떤 진화는 무작위적인 것의 결과인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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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7-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자 관심사가 다르다는 게 좋습니다. 님의 서재에 오면 내가 몰랐던 뭔가를 배워가게 되거든요. ^^

마립간 2014-07-07 07:4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pek0501님께로 부터, 그리고 다른 알라디너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마립간의 알라딘

 

- 당신은 알라딘과 함께한 4,480일의 기간동안 1,030권 336,016 페이지의 책들을 만났습니다.

- 당신이 만난 책들을 모두 쌓는다면 아파트 8.40층 만큼의 높이입니다.

- 당신은 알라딘 회원 중 2,989번째로 많은 페이지의 책을 만났습니다.

 

- 당신이 지금까지 알라딘을 통해 자주 만난 작가들입니다.

아오먀마 고쇼, 아기 다다시, 우라사와 나오키, 마르셀 프루스트, 이원복, 고우영, 시오노 나나미, 백무현, 김세영, 이언 스튜어트, 러트런트 러셀, 로버트 기요사키, 강신주, 마이클 샌델, 허영만, 하기시노 게이고, C.S. 루이스, 김삼웅,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 (굵은 글씨는 차후에도 구매하려는 글쓴이들)

- 당신 지금까지 알라딘에서 이 분야의 책들을 가장 많이 만났습니다.

본격 장르 만화, 수학, 교양 인문학, 기독교

 

아침에 알라딘 마을에 들어와 보니 화제의 글에 알라딘 15주년을 기념하여 알라디너의 통계의 글들이 있다. ‘나는?’하고 들어가 보니 위와 같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첨언을 하면, 아마 알라딘과 함께한 4,480일은 내가 첫 구매한 날로부터 2014년 6월 24일까지 기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디로 구매하기 이전 2년 동안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책을 구매했다. 내가 만난 책의 권수 페이지 등에서 내가 선물로 구매한 책이 포함되고 내가 선물로 받은 책은 제외되었을 것이다. (서로 비슷하여 상쇄될 듯하다.)

 

조금 당황한 것은 작가인데, ‘아기 다다시’,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을 보고 누구지, 내가 무슨 책을 샀기 때문에 이들 작가가 언급된 것이 의문을 가졌다.

 

<명탐정 코난>과 <먼나라 이웃나라>는 아이를 위해 샀고, <마스터 키튼>, <식객>, <신의 물방울>은 안해를 위해 또는 안해와 함께 읽기 위해 구매를 했다. <신의 물방울>은 앞부분 몇 권을 구입한 후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고 있고, 내게는 충분하게 있다고 생각되는 기독교 관련 서적도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이름이 올랐겠지만, 그 이상 구매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오류는 내가 가장 많이 만난 분야에 그대로 반영되어 ‘본격 장르 만화’가 제일 먼저 언급되었다. 나는 수학 분야를 좋아하는데, 이 분야는 책 출간이 활발하지 않다. 게다가 내용의 다양성이 적용되기 힘들기 때문에 내용의 중복을 피해 구매하고자 한다면 구매할 책은 더욱 적어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요즘 가장 많이 구입하고 독서하는 분야는 심리학을 포함하여 인지 과학 쪽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너무 다양하게 읽었는지 교양 인문학으로 묶여져 있다. (반면 소설은 한국소설, 영미소설, 일본소설, 프랑스소설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말이다. 역시 독서의 주류는 소설인가 보다. 소설 안 읽는 마립간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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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4-07-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쌩뚱맞은 이름이 있어서 봤는데... 만화책은 권수로 다른 책들을 압도하기 때문인지 만화작가의 이름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알라딘에서 구매하지 않은 책들은 포함이 안되니 아쉬움이 많아도 너무 많던데요? ㅎ

마립간 2014-07-02 11: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chika님.^^ 알라딘과 맺은 인연의 날짜를 포함하여 꽤 인상 깊은 숫자였는데, 엉뚱한 작가와 분야를 보니 감동이 반감되었습니다.

2014-07-02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4-07-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난 정보였어요, 새삼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
그런데 11년 넘게 공식적으로(?) 알라딘에서 구매하셨네요, 토박이시네요, 토박이.

마립간 2014-07-03 10:58   좋아요 0 | URL
고비도 있었죠. 마치 부부 생활의 위기처럼.

처음 알라딘 서재가 생겼을 때 '나는 안티페미스트다'라는 다소 공격적이고 돌발적인 제목의 글을 올렸는데, 꽤 다른 알라디너와 대화가 되었죠. 마치 시금석과 같았는데, 이후 알라딘 서재가 속내를 터놓는 공간이 되었죠. 한번 속내를 터놓고 마음을 주니 정리하고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2003년에 활동하던 (속칭 서재 1세대) 분들이 한 둘 떠나고 서재 활동도 접을까 생각했는데, (마녀고양이님과 같은) 다른 분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셨죠. 그리고 책에 대한 정보도 여기에 남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 독서 취향이 소설을 제외한 과학, 인문 분야라서 서재를 통한 정보 획득이 다른 인터넷 서점보다 용이했습니다.

페크pek0501 2014-07-0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신의 기록, 제 것을 보고 재밌게 느꼈어요. 알라딘은 다양하게? 친절합니다. 그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열심히 하거든요.
님의 것도 흥미롭게 보고 갑니다. 님도 소설과 친해지길 바랍니다. 소설엔 굉장한 것들이 들어 있거든요.
어떤 소설은 여전히 어렵게 읽히지만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죠. ^^

마립간 2014-07-07 07:42   좋아요 0 | URL
소설과 친해지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굉장한 것이 들어 있다는 것과 매력적이라는 것에 일정 부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소설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 소설과 친해지는 것은 더 어렵네요.^^

저의 평생의 100대 책에는 소설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국지', '사람의 아들' '장미의 이름' 등 예전의 읽은 것들과 '용의자 X의 헌신' '박사가 사랑한 수식' 등

마립간 2014-09-1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40701_15th_rec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