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731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서평 별점 ; ★★★

 

문명사회가 되면서 제도권 교육의 기간이 길어졌고 사춘기와 20대에 겪어야 할 마음의 성숙이 30대로 미뤄진 느낌을 준다. 책 후반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예전에는 20대에 들었어야 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p4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살고 있다는 안정감과 자신감,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 밑줄 긋기

p7 괴테가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p10 쿨의 핵심은 언제나 쿨하게 ‘보이는’데 있다./쿨한 사람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겉으로 무관심한 척할 뿐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갈망하며, 심지어 그것에 좌지우지되기까지 한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감정을 타인에게 던져 버리고 그를 멸시함으로써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p11 남들에게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예방하기 위해 오히려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p14 이제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 아무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것, 그저 순간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 왜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지 못하는가!

p15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을 참아 내고 있는 것이다. ; 외로움을 참아 내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소통을 위한 시도 종종 실패하고 상처도 크다.

p25 <멋진 신세계> ... “그렇다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 ... “네, 저는 그 모든 권리를 요구합니다.”

p26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일 백오십번씩 선택을 할 상황에 놓이며, 그 중에서 서른 번 정도 신중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다섯 번 정도 올바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p27 가지 않은 길을 쳐다보느라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게다가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p30 일단 선택하면 최선을 다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과감히 엎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p34 도망은 회귀를 전제로 한다./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과 현재의 삶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도망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탈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p39 성장을 멈춘 우리의 마음은 극히 자기중심적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심한 비난과 비판을 쏟을 행동이 내가 원하는 경우에는 정당하고 옳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옳으며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정말로 믿고 있다는 데 있다.

p44 현대사회의 만남은 짧은 것이 특징이다./p45 한편 현대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p46 조명 효과 spotlight effect/p47 상상 속의 청중 imaginary audience

p4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살고 있다는 안정감과 자신감,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p53 멘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 조언을 주는 것은 멘토이지만 그 조언을 내 것으로 만들어 현실에 적용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p68 미숙한 방어기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p74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와 이별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떠나보냄의 작업이 바로 ‘애도’이다. ; 왜 어른이 되어야 하나? 아이 같은 순진함 childlike를 잃지 않고 아이 같은 유치함 childish를 극복할 수 있나?

p75 성장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인정한다면 나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p77 이때 관계 맺기에 별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서른 살이 넘으면 싫은 상황과 싫은 사람을 견뎌 내고 존중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갖게 된다.

p88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당신의 자식에게 물려주세요. 그게 바로 효도입니다.

p91 ‘동정 sympathy’과 ‘공감 empathy’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자아의 경계가 약한 사람들은 공감해야 할 순간에 상대방과 하나로 합쳐져 버린다. 공감을 못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공감을 받지도 못한다.

p94 파레토의 20:80 법칙에 따르면 20퍼센트의 사람이 80퍼센트의 일을 한다. 그런데 직장인들의 약 70퍼센트가 자신이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응답했다./그러니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행동인 것이다.

p95 왜냐하면 그는 이제 어른이고, 과거의 상처가 현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려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97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이드 id가 있던 곳에 자아ego를’이란 말은 본능을 자신에게 숨기지 말라는 뜻이지 그것을 모두 밖으로 표현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p104 그럼에도 서른 살 안팍 세대는 그 전 세대 사람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혼자 놀고 일하는 데 익숙한 세대라는 점이다.

p107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가’하는 문제는 다르다.

p108 아무리 성공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달리 자아이상이 높다./p110 하지만 자아이상이 너무 높거나 성공 강박증에 걸려 있어 만족을 모른 사람들은 ‘인간다움’이 부족하다.

p109 그때 나는 ‘권력에의 의지 will to power’가 인간의 본성이란 아들러의 말에 절실히 공감했다./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성공에 대한 강박을 낳는데,

p112 천사들은 스스로 무덤을 판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희생에 대한 대가로 애정을 갈구하고, 희생함으로써 상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며, 이로써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싶어 한다.

p117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p131 자신을 무조건 감싸 안아 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사람은 직장의 냉정한 계약 관계를 견디지 못한다.

p132 세상에 옳은 선택은 없다. 그렇다고 틀린 선택도 없다. 다만 지금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 당신의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 옳은 선택, 틀린 선택이 있다. 결과가 크게 차이나는 경우가 드물 뿐이다. 대개의 경우는 어느 쪽을 택하든 큰 차이가 없다.

p136 이처럼 직장 내 인간관계가 갖는 한계점을 분명히 인식한 뒤 최대의 행복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p158 그리고 사랑에 빠진 초기에는 서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 한 경험을 실제로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열정적인 사랑은 감각의 문을 열어 놓아 직관력을 최고조로 높임으로써 연인 사이에 교감이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그래서 그 후로는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서로의 마음이나 상태를 알려면 끊임없이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p182 진정한 사랑은 배려 위에서 성장한다.

 

p122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 네 가지

첫째, 제일 먼저 휴가 계획부터 세워라.

둘째, 일이 없으면 왜 불안하가를 생각해 보라.

셋째, 당신이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넷째,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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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0730

 

<민주주의에 反하다> 서평 별점 ; ★★★

 

현실에 파악과 판단이 돋보이지만, 대책들은 고개를 갸웃뚱하게 한다.

 

우선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 보수-우파나 진보-좌파와 무관한 것 같다. 보수-우파는 위계질서가 있는 수직적 공동체를 지향하고 개인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 국민에게 애국하라고 강조한다. 반면 진보-좌파는 구성원들의 수평적 관계와 삶에 주목한다. 과거 우리의 역사 공동체적을 삶을 살았거나 공동체를 지향했다는 사실 자체는 진보-좌파적인 사고방식에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공동체의 결성은 내부 구성원의 연대와 외부의 배척을 동반하게 된다. 긍정적인 연대와 부정적인 배척이 동시에 나타난다.

 

체면도 언급되지만 여기서 문제는 각자의 체면이 다르다. 어느 사람은 위장 전입과 부동산투기를 부끄럽게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라도 재산을 축적하고 수입 고가 사치품으로 치장하지 못한다면 부끄럽게 여긴다.

 

당위성에 근거한 반발 역시 당위성에 불과하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당위성에 근거하여 반발한 민중이 나오지만 상대와 겨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의 반발이 상대편에게 폭압의 구실만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보면, 일정 당위성에 근거한 반발로도 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학살에 가까운 폭압의 구실만 제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평적 삶의 공동체는 실패로 끝났다. 공동체를 결성한 1세대에서는 비교적 수평적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바로 다음 세대가 가더라도 수직적 권력의 자기조직화가 이뤄진다. 이 책에서는 수평적 권력 자기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우리나라에도 키부츠 Kibbutz와 같은 공동체가 있었나보다. 그런 공동체 구성원의 한 명과 알고 지내셨던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공동체에서는 치약이 3mm로 통제 된다. 공동체 구성원이었던 분은 개인적으로 구두를 너무 가지고 싶었다. 어찌하다가 구두를 한 켤레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공동체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고, 공동체는 모르는 사실이다. 수평적 권력 구조 공동체에서는 수직적 권력으로 자기조직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개인행동을 통제했다.

 

p143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 밑줄 긋기

p17 힘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그런 역사를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p37 함석헌의 말처럼 “일본 군인의 총칼도 감옥의 생죽음도 무서워 않던 민중이 풀이 죽기 시작한 것은, 되는 줄 알았던 독립이 아니 돼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뒤 소위 일본 사람의 문화 정치 밑에서 사회의 넉넉한 층, 지도층이 민중을 팔아넘기고 일본의 자본가와 타협하고 손잡고 돈을 벌고 출세하기를 도모하게 됨에 따라 민중의 분열이 생기면서부터였다.”

p45 연대가 안 되니 자연스럽게 민중의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그토록 강렬했던 민중의 의지 ; 강렬했었나?

p67 미군정 하에서 ... 공권력의 사유화되고 사적인 권력이 공권력으로 위장하는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공권력 자체가 이런 사적인 폭력을 눈감아 주거나 조장했다.

p70 스콧은 그동안 이렇게 힘이 있는 자들의 뜻대로 세계를 만들어 가려는 하이 모더니즘 high modernism적 사고방식이 다양성을 파괴하고 지역 고유의 지식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사람들의 자발성과 자율성, 자율적인 역량을 파괴해 왔다고 주장한다.

p71 더구나 한국전쟁 이후 이런 표준화 폭력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다른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했다.

p72 ‘내부 식민지’

p91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들이 아테네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다는 사실 말이다. 즉 선거가 아니라 추첨제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핵심적인 제도였다는 사실을 은폐되었다.

p92 선출된 대표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의 의견과 이익을 무시하거나 국익을 내세우며 나라를 전쟁과 파괴 속으로 몰아갈 때, 대의 민주주의는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나? 답은 한 가지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려라!

p94 민주주의에서 다스리는 자는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뛰어난 인물, 추종해야 할 인물이 아니라 동등하고 평등한 시민이었다.

p103 참여 민주주의의 역설 ... 민주주의가 항상 시민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할 것 같지만, 조직화된 세력이 선거에 개입해서 여론을 몰아가거나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서로 손을 잡으면, 오히려 다수의 시민이나 약자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 과정은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문제 삼기 어렵다./투표의 역설 ... 투표는 개인의 이해 관계나 선호를 따른다고 하지만, 개인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소수파들이 손을 잡아 다수파를 형성하면 온갖 이해관계를 뒤섞은 기이한 합의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p105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이 서로 충돌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면 인권의 의미가 뒤죽박죽되듯이 말이다.

p107 원래 참여는 “다르게 살고 다르게 어울린다.”는 윤리적인 말이었다. ... 참여는 자신의 차이와 삶을 드러내며 타자와 어울리는 방식이 ...

p108 인민주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권력은 정부가 아니라 민중에게 있다. ; 당위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한가? 권력은 정부에 있어 보인다.

p109 시민 참여를 당연한 권리로 전제하지 않는 법치는 기득권층의 기만적인 통치술일 뿐이다.

p111 “전쟁을 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이쪽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고 태연히 말했다.

p116 회의주의는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학습된 경험이다. ; 본성이든 경험이든 현실이다.

p117 집이나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집이나 옷을 맞춰야 한다. ; 이것이 항상 가능하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p129 또한 선거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왜 투표밖에 없겠는가. 오히려 선거 때문에 가려지는 중요한 쟁점, 선거에서 드러나지 못한 중요한 사안을 부각시키고 요구하는 정치 행위가 중요하다.

p132 집중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 분산되어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이 두렵지 예측할 수 있는 흐름이 두렵지 않다. ; 후향 확증 편향 아닌가? 분산되어 예측할 수 없지만 무시할 만큼의 미미한 흐름과 예측되지만 막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주는 막강한 흐름, 어느 것이 힘 있는 자에게 효과적일까?

p134 체면 ; 어떤 이는 옳은 편에 서는 것을 체면이라 하고, 어떤 이는 불의不義하지만 사익私益을 쫓는 것이 체면이라고 생각한다.

p139 하지만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자들이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한다면?

p140 사실 법이 정한 수단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법대로 하라는 애기는 폭력이다.

p142 개신교 신학자 마틴 니묄러의 <그들이 왔다>는 이 상황을 잘 보여 준다.

p143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p145 한국처럼 불복종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 ... 불복종하는 시민은 언제나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p154 시민의 개념을 중산층이라는 특수 계층의 운동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p158 한국의 사법부는 줄곧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p179 사실 법 제도가 지금처럼 배타적 소유권을 보호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소유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소유‘권’은 근대적인 발명품인 것이다.

p183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 그 권리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 낭만적 원시인 아닌가?

p195 왜 대안이 없는가? /지금의 헌법 제 23조 2항에 따르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하고 제 33조 1항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 교섭권 및 단체 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것이 대안이다.

p208 협동조합 ; 낭만적 원시인과 같이 작은 공동체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p210 자기조직화 ; 권력 지향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아닌가?

p289 국적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관한 착각>에 의하면, 인식의 중요성에 과학적, 객관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바른 마음>에 의하면 사람들이 이유가 없더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실이 중요하다.

p290 함석헌이 이야기했듯이, “국가주의가 있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이 왔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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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7-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 가슴을 쾅, 때리는군요.

마립간 2014-07-31 07:29   좋아요 0 | URL
누구가는 자신은 반드시 숙청하는 사람이 될지언정 숙청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과 자신도 숙청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를 먼저 숙청해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어떤 이가 보기에는 침묵한다고 하고, 소수의 어떤 이야기가 보기에는 나름의 목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확신할 것은 숙청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Ralph 2014-07-3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시대, 나찌 시대, 육이오 전쟁, 해방후 혼돈, 이런 시대에 못지 않은 시대가 우리가 사는 지금이아닌가 합니다.

마립간 2014-07-31 07: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Ralph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장 비슷한 시대 상황을 꼽으라면 세도정치가 있던 구한말을 꼽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망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비관적으로 봅니다.

식민지 상태나 전쟁과 같은 임계상황을 넘은 상황에서는 남을 돌아보고 배려할 여지가 없습니다. 어제의 결과도 오판일지도 모르는 저의 판단을 더욱 강화하게 만드는군요.
 

 

* 身邊雜記 140729

- 동생네 가족이 다녀갔다. ; 이민자들의 모국어 유지

 

내 여동생 가족은 1990년 말 직장 문제로 이민을 갔는데, 지난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하였다.

 

3년 전 나는 여동생의 아이들 조카들만 만났을 때,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 나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영어로 이야기할 때, 뜸을 들인 후 이야기하게 된다. 머리에서 한 번 생각한 후에 입에서 나온다. 반면 조카들은 한국말을 할 때 뜸을 들인 후 이야기를 하였다. 큰 아이는 3세 때 이민, 둘째 미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조카들이 한국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조카들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니, 지난 번 방문에는 틀려도 한국말을 하려 했는데 이제는 한국말이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한국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굳이 한국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예전 한국 언론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이민자들은 지신들의 모국어를 잊지 않는데, 한국 이민자들은 쉽게 모국어를 잊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과연 그런지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동생의 답변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한국인들이 특히 모국어를 쉽게 잊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은 어찌하여 모국어가 유지되는가 물었다. 중국어가 특별히 영어권에서 유지되는 이유는 중국인 부모들이 (1.5세대, 2세대) 자녀들에게 (한국에서 영어공부 시키듯이) 중국어 공부를 엄청나게 시킨다는 것이다. 동생이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가능성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민 중국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들의 차이나타운과 같은 사회 형성이 가능한 것을 지적했다.

 

중국인 사회의 모국어 유지가 몇 세대 정도 지속되는지 물었다. 다른 국가에 비해 한 세대 정도 더 유지되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개의 나라들이 2세대까지 모국어가 유지된다면 중국의 경우는 3세대까지이다.

 

동생과 이야기 끝에 나는 우리 민족이 한국어를 특별히 잘 잊어버리는 민족이라는 언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한국 2세들에게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한국에 대한 특별한 의식 및 한국어를 강조하는 것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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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4-07-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큰조카는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애는 1학년 입학할 때 주재원으로 파견나간 아빠로 인해 중국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둘 다 영어는 알파벳도 겨우 할 정도였는데 엄청 공부를 한 결과인지 아무튼 영어에 완벽히 적응했고 (작은녀석은 미국인들이 인정할정도로 원어민과 발음 구분이 안된다더군요) 그 학교에 조기유학을 다니는 한국애들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말도 꽤 합니다. 우리나라 애들이 쓰는 은어나 개콘에 나오는 표현도 할 줄 아는 정도. 물론 집에서 아빠하고 한국말을 해야하니 한국어를 잊을수가 없는 환경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90%이상 영어만 쓰고 있는 환경에서 한국말을 잘 하는거라 생각합니다. 맞춤법이 가끔 틀리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맞춤법이 엉망인 애들을 생각하면 그리 심각한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조카애들이 한국어를 특별히 공부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한국어책을 많이 읽고, 한국어의 흐름을 알게 하기 위해 한동안은 일부러 (한국에 다시 들어올때를 대비해서) 한국방송 티비를 설치해 보게 해 줬다고는 합니다.

마립간님 말씀처럼 우리 민족이 한국어를 특별히 잘 잊어버리는 민족이라는 언론의 판단이 틀렸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중국애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는다는 관점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모르면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사실 코리아타운에서만 생활하는 한국인 이민 1세대 중에는 미국에서 몇십년을 살아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들었거든요.

아이고, 아침 업무를 하기 전에 잠깐 들어와본것이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게 됐습니다 ^^;;;
영어를 몇십년(!) 공부해도 정말 늘지않고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어'에 민감한 반응을...ㅎ

마립간 2014-07-29 11:17   좋아요 0 | URL
제가 전해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 어느 공무원이 서남 아시아 어느 나라에 파견에 갔고, 공용어로 영어가 사용되는 이유로 그 나라에서 배려 차원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한 반은 책은 유창하게 읽으면서 회화는 전혀 못 하는 그룹(한국인 공무원도 여기에 속했습니다.), 다른 한 그룹은 회화는 유창하게 하면서 ABC도 모르는 (저는 정말 ABC도 모를까 과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야기를 하신 분은 그렇다고 하심) 그룹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국은 (민족성인지 사회적 환경인지 모르겠으나) 듣기, 말하기보다 읽고 쓰기에 치중했을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저는 제 아이의 영어 실력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 만큼 늘겠죠.

페크pek0501 2014-07-3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하나가 중학교 때 미국 이민을 갔는데, 처음에 한국어로 편지를 쓰더니
나중에 영어로 쓰더라고요. 중학생 때였으니 재미로 그런 줄 알았는데 쭉 영어로 쓰더라고요.
나중에 한국에 잠깐 들러서 얘기를 들어 보니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하기 때문에 영어로 편지를 썼다는 거예요.
그때 깜짝 놀랐어요.
싸움도 영어로 한다는 말에 또 놀랐지 뭐예요.
아마 지금쯤 한국어를 잊었을 것 같네요.

마립간 2014-07-31 07:34   좋아요 0 | URL
저는 저의 삶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저의 삶을 투영한 가치관, 또 가치관에 일부분인 국어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부모의 욕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저와 제 아이의 말을 자세히 보면 단어 사용에서 꽤 차이를 느낌니다. 하물며 외국에서 국어 사용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Ralph 2014-07-3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교포 2세가 한국어를 못하는 이유는 ..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과거 한국어의 효용성이 적어서 라고 생각됩니다. 효용성을 특별히 따진다기보다는 .. 아무래도 그런 영향을 받게된다는 .. 십년전만해도 부모나 자녀에게 한국어를 기를 쓰고 배우도록 해야할 이유가 별로 없었지요. 특별한 부모가 아니면 자녀에게 한국 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여러가지로 한류 영향, 한국의 위치 향상등 한국말을 배워야할 , 배우고 싶은 필요성이 있어서.. 좀더 많은 교포 2세기 앞으로는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마립간 2014-07-31 07:46   좋아요 0 | URL
언어의 헤게모니 역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헤게모니와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제가 판단이 잘 안 서는 것은, 언어를 정체성과 연관지어 당위적으로 강조한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국력이 커져 한국어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인으로 기대하는 바이지만, 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터라...
 

 

* 身邊雜記 140728

- 동생네 가족이 다녀갔다. ; 영어 문화권의 경험과 영어 습득

 

딸아이 유치원 친구들 몇 명은 이미 영어권 나라(미국, 캐나다, 등)에 (길게는 6개월 정도 머무는) 거주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한 아이가 출국 예정이다. 일부는 아이의 영어 공부 때문에 외국에 나간다고 하고 일부는 놀러 나간다고 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마음은 한가지일 것이다. 아이의 영어 습득을 기대하고 나가지만, 결과적으로 놀다 오는 것이 될 것이라는.

 

내 여동생 가족은 1990년 말 직장 문제로 이민을 갔는데, 지난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하였다.

 

나는 여동생에게 그 동네에 영어 배우러 오는 한국인이 많은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영어 습득을 하고 가는가, 부정적인 면은 없는가 등을 물었다.

 

1) 유치원 정도의 나이에 영어를 사용하는 생활에 대한 경험 ; 이 나이에 언어에 대한 가소성可塑性 때문에 쉽게 영어를 습득한다. 문제는 가소성이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1~2년 거주 후 귀국하면 영어를 잊어버리고 다시 한국어를 습득하게 된다.

(30년 넘게 지난 이야기지만,) 나의 은사 A님의 큰 딸과 둘째 아들의 경우 ; 초등학생이었던 큰 딸은 영어 문화권에 대한 기억과 발음을 포함한 영어의 기억이 남아 있지만, 둘째의 경우는 영어에 대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하셨다.

 

2) 고등학교 고학년 이후, 사춘기 이후 ; 이 나이에 이주하는 사람은 문화에 대해 이해가 떨어져 행간의 의미를 완벽히 파악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설령 영어권 국가에 영주하게 되더라도 100% 동질화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동생에게 영어를 위한 영어권 국가의 경험이 한국에 귀국을 전제로 어느 시절이 적절한지를 물었다. 대답은 사춘기 시절이었다.

하지만 직장 동료였던 B씨의 이야기는 ; 그 나라에 있으면서 외국 친구들과 싸움만 했다고 한다. 한국 청소년이 한국에 있어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데, 유년시절과 다른 문화 충격을 긍정적으로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즉 3) 사춘기는 (귀국을 전제로 한 bilingual을 위한) 언어 습득에는 오히려 적기이지만 문화적 차이에 의해 정서적 안정감이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동생에게 다른 경우는 없냐고 물었다. 동생은

4) 대학생 정도의 자기 의지가 확실한 사람이 (귀국을 전제로 한 bilingual을 위한) 영어를 배우기 위해 1~2년 정도 머물면서 한국인이 없는 지역의 매점에서 임시 직장을 구하는 것과 같은 외국인과 접촉이 많은 환경을 만들고 본인이 노력하는 것이 또 하나의 영어 습득 방법의 모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라고 한다.

 

4) 번의 경우 본인 노력이라는 변수를 생각하면 가장 효율적인 것은 당연하다. 환경( 주로 부모의 의지)에 의한 방법 1) ~ 3)경우 이야기를 듣고 내게 떠오른 것은 tessellation (trade-off, 공짜 점심은 없다.)이다. 모든 것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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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0723

 

<한여름의 방정식> 서평 별점 ; ★★★

 

제목에 ‘방정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데, 어찌 읽지 않으랴.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과학 추리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물리학자 유가와, 해저열수관상 채취, 물 로켓 발사 등 과학적 소품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사건의 트릭이 과학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한 마디 ; 집필할 당시, 이전의 두 작품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성녀의 구제>와는 분위기를 다르게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첫째로, 조금 명랑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내용이 명랑한가? 명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용의자 X의 헌신>와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로 모든 인과관계 파악할 수 없지만, 과학에서는 원인이 존재하면 결과가 존재하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생이 꼬인다는 것이 완전해소가 가능한가? 인생이 꼬인다는 것은 마치 meme처럼 재생산되는 것일까.

 

16년 전 사건은 한 사람이 오롯이 결과를 부담함으로써 사건은 완전히? 종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 자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새로운 사건을 낳게 된다. 그리고 현재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미래의 사건을 잉태하고 이야기를 끝낸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속편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케 한다. (‘늦가을의 함수’, ‘추운 겨울의 피타고라스 정리’, ‘이른 봄의 뫼비우스 띠’ 이런 시리즈 후에 완결되는 것은 아닐까?)

 

측정의 한계 때문에 모든 다면성을 파악할 수 없다. 규모에 의해 효과 및 외부 효과는 다르며, 사람이 인지하는 효과 및 외부 효과도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현상을 창발이라고 부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다름을 인간 지적 능력으로 파악하기는 곤란하다.

 

질문 ; 인간의 어떤 갈등적 원인, 예를 들면 살인 사건과 같은 것이 완전히 해소되어 비非갈등적 결과로 귀결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예’로 답을 한다면 완전 범죄는 가능하다. ‘아니요’로 답을 한다면 인간 사회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으면서 형태가 바뀌는 것뿐이다. 지구 종말 이후에도 문제는 남는다는 모순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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