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819
<전을 범하다> 서평 별점 ; ★★★★
어렸을 때, 신화를 읽으면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른이 돼서 신화를 읽으면 이야기 뒷면에 숨겨진 현실이 보인다. 전래 동화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전해오는 동안 대중, 민중들의 가치관, 삶이 반영되어 집단 지성이 반영된다. 13개의 전래 동화에 비판적 시각에 대체로 동의하나 <심청전>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장화홍련전’에 대한 계모 이야기가 나오는데, 많이 공감이 간다. 내가 이와 같은 감정을 예전에 갖게 된 계기는 박미선 씨가 주인공으로 나온 ‘팥쥐 엄마’ (2003년 방영)다. 하지만 맨 처음 계모의 부정적 이미지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이다.
‘김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가 떠올랐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공통분모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와 다른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심청전>은 심청에게 가해진 사회의 압력, 아버지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춰 해석한다. 그 해석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해석 초점은 사회의 압력이나 심청의 희생이 아니라 심청의 보상이다. 보통의 사람은 바르게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르게 살기를 주저하거나 바르게 살지 않은 이유는 내가 바르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사필귀정事必歸正에 의심을 갖고 있다. 나는 ‘일은 반드시 바르게 결론짓는다’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은 가끔 혹은 때때로 바르게 결론짓는다’가 맞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봐서는 ‘사필귀정’이 맞다는 압력을 행사할 필요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심청전> 줄거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춘향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의 ‘춘향전’ 페이퍼에 간단히 언급했었다.
* 춘향전 http://blog.aladin.co.kr/maripkahn/7475
글쓴이는 이몽룡이 춘향에게 어사 행차 후 춘향에게 수청을 명령하는 장면을 통해 춘향은 이몽룡을 사랑했지만 이몽룡은 춘향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삼는다. 나는 다른 시각에서 질문을 던진다.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에서도 가능한가 아니면 사랑을 시험했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사회분위기는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과학적 정의보다 당위성에 해당한다. 나는 판단 보류다.
* 밑줄 긋기
p80 오늘날 우리가 그런 것처럼 진실은 곧잘 부당하게 박해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정한 권세를 얻는 현실 앞에서 부정과 타협하고 거짓을 용납한 자신을 용서한다.
p82 우리는 사 씨의 구원과 승리, 교 씨의 징치와 패배는 결코 구조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 현재의 고난은 미래의 복록을 향해 예정된 길일 뿐이라는 위로는 가히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p121 사랑은 ... 이 자연스러움이 언제나 자연스럽다고 이해되고 축복받는 것은 아니다.
p124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오늘날가지도 유효한 금기다. ...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정 또는 ‘색다른 놀이’일 뿐이라고. 사랑에 대한 이분법이고도 명쾌한 정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p127 선덕여왕의 자애로움은 자신을 여자로서 받아들인 한 남성에 대한 연민만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감정에 휩싸인 백성에 대한 경고의 의미까지 띠고 있다./그런 경고, 사회적 위계에 도전하는 자에 대한 세련된 협박
p129 불길에 휩싸인 영묘사의 탑은 지귀의 사랑이 결국은 공동체의 안녕과 소망까지도 위태롭게 할 것임을 암시한다.
p133 자애, 사랑 (공통체 유지) ; 자애, 사랑, 공통체 유지, 3개의 tesselation
p133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고.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은 아예 존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은 돌아간다고 말이다.
p135 그러나 안평대군으로 상징되는 봉건 규율의 억압성을 실현하는 인물은 ‘특’이라는 노비이다.
p136 운영과 김 진사의 몰래 한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재물을 챙기고 배신할 수 있는 기회가 돌 수밖에 없음을 특은 증명하는 것이다.
p140 노복들조차 천하게 보는 자신의 처지를 홍길동은 고뇌하는 것이다. ; 절대적으로 홍길동을 노복들조차 천하게 봤다고 생각지 않는다. 적자嫡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처지를 느낀 것으로 생각한다. 동양 문화는 누구와 비교함으로써 불행감을 느끼지 않는가.
p143 ‘위계’가 있는 사회에서 ‘분수에 맞지 않는 능력’이란 죽어야 하는 사유가 된다.
p164 그리하여 이제 재판의 승패는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진실로 만들었느냐에 달리게 되었다.
p165 부자는 억울하겠지만 그 사회에서 유능한 사람은 바로 악인 친적이다./과연 무엇이 친척을 ‘유능’하게 만들까? 물론 가장 분명한 정답은 악행에 대한 뻔뻔함이다.
p167 “사람도 무슨 일을 할라문 따오기초롬 교제성을 개져야 한다는 이야기우다.” ... 이 ‘교제성’이 나를 알아주는 진실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p170 정말로 위험한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은 부도덕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가정이다. ; <괴짜 경제학>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도덕의식이 약하다고 한다. 능력이 사회적 지위로 생각한다면 능력과 부도덕은 비례 관계가 맞고, 지위에 맞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무관하거나 반비례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부도덕의 능력도 능력일까?
p174 세상의 부정과 부패는 바로 그런 따뜻한 인정, 사소한 타협에서 비롯되고야 마는데. ; 내가 책임윤리보다 신념윤리를 우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176 그럼 이제 순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문제만 던지고 답을 안 주네.
p178 <호질>에서 ‘위선’이라는 양반 개인의 도덕성을 건드렸다면, <양반전>에서는 양반이라는 신분 자체의 ‘존재 방식’을 폭로했다./밥값도 못하는 ‘무능력자’ 양반은 그 자체로 모순된 존재이다.
p182 첫 장면은 얼핏 보면 무능력한 양반에 대한 비판과, 천박한 실용주의에 대한 연암의 헌사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자로서 최소한의 자의식도 없는 ‘무늬만 선비’인 자들에 대한 경멸이 녹아 있다.
p189 천민 부자는 양반이란 신분에서 ‘선비’라는 고결한 사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선’이라는 세련된 유흥을 본다./선비는 현실이 아니라 이념을 좇는 존재이다. 선비는 현실 사회의 운용이 어떠한가를 지식으로써 언제나 감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보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그 충돌을 통해 한편으로는 양반의 허례허식이 비판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금욕의 형식이 있게 하는 선비 됨의 본질을 외면하는 천민 부자의 비속함도 동시에 폭로된다.
p191 연암의 성찰은 바로 이것이다. 선비가 또는 양반이 ‘하늘이 주신 벼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오직 명분에만 매달려 자칫 금욕적으로만 비치거나, 아니면 그 벼슬을 수행하는데 부여된 혜택을 남발하여 도적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는 것.
p203 그러나 호랑이 입장에서 ‘살생’은 생활의 조건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니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신라 사람들이 도성에서 날뛰는 호랑이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살생’이 아니고 무엇인가?/공동체라는 확장된 자아의 생존을 위해 우리는 거듭 살해를 저질러 왔다.
p207 ‘야만족 처녀’/우리는 김현이 만난 ‘어진 호랑이’보다 신도징이 만난 ‘야만의 호랑이’를 기억해야 한다.
p209 호랑이를 정복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지만, 작품은 오히려 호랑이의 공격성 때문에 인간의 살육이 어쩔 수 없었다고 제시한다. 이렇게 전도된 진실의 근원에 주체의 두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담론들은 모두 호랑이를 잡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p234 오히려 이들의 믿음을 조롱하는 것은 바로 살붙이인 어머니요, 아버지 같은 점쟁이요, 형제 같은 기생이다./춘향과 이 도령의 만남을 사랑이라 믿은 것은 아무리 봐도 춘향뿐이었던 같다.
p236 반동성 ; 반동성보다 사랑을 시험
p237 순종과 보상의 ‘자동성’은 구원의 잔치와 사회적 재생의 흥겨움 속에서 심미적으로 강고해진다.
p245 중요한 것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혔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파괴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p247 사실 그 두려움이란 내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일 뿐, 결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p258 그들은 서로에게 쓸모가 있었지만 그것은 결과였지 목표가 아니었다.
p260 우리 안에서 질기게도 살아남은 유아적인 본증, ‘이기심’ ... 그 악마성이 하찮게 끝나고 말 것이라는 믿음 ; 헛된 믿음은 아닌가?
p261 자신감이야말로 ... 웃음의 원동력이다./여기에 나의 영혼을 팔아버리지 않을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p262 가끔 우리가 아무런 이득도 없이 돈을 써가며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낯섬’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p264 그 비결 중의 하나가 ‘일탈’/진부함이 앞으로 위험
p268 동정심이란 게 얼핏 보면 이타심 같지만 결국 교묘한 이기심인 경우가 많다.
p275 세상일에 관심을 끄고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굉장히 멋있어 보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패배주의적이거나 무식하다는 것이다. ; 내가 패배주의냐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p277 기성세대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p278 정말로 우리는 세상일에 관심 끄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 반어적 강조인가 정말 질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