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 능력

- 공감 능력 대상의 차이

<바른 마음>을 읽으면서 내가 제시했던 가설 하나를 확증하게 되었다.

 

나는 알라딘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남녀 관계’의 글을 올렸는데, 그 이유는 남녀의 갈등의 많은 부분이 가치관의 대립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자들은 애들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나는 직관적으로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동감했다. 한편 여성들과의 대화에서도 ‘남자들은 애들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역시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동감했다. 이런 나의 판단은 모순적이다. 만약 ‘애들 같다’라는 의미를 단일하며 동일하게 정의한다면 전제하에서 말이다.

당시에는 그런 나의 판단을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독서가 진행된 후 남녀의 사고방식 체계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남녀 비교를 할 수 있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좌뇌 사고방식이라면 여자는 남자보다 우뇌 사고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남자가 수직적 관계 지향이라면 여자는 수평적 관계 지향이며 남자가 독립 개체적 사고라면 여자는 관계 중심적 사고가 된다.

 

나는 얼마 전에 어느 여성 알라디너에게 이런 명제를 던졌다. ‘여자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지만 남자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공감은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답변을 받았지만, 나는 답변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함수관계는 아니지만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해서 여자는 좌파, 남자는 우파로 용어를 치환해서 글을 쓴다. 대게 좌파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바른 마음>에서 제시하는 5개의 도덕적 기반 중 배려-피해, 공평성-부정不正의 기반을 강하게 사용한다. 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 두 가지의 기반에 의한 도덕 감정이 약한다. 그런데, <바른 마음>에 의하면 우파는 좌파에 대한 역지사지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있는 반면, 좌파는 우파에 대해 역지사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면서 역지사지 능력이 있다는 나의 생각은 틀린 것이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좌파는 배려-피해, 공평성-부정不正에 대한 공감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의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에 대한 공감 능력은 현저하게 약하다는 것이다.

 

p508 연구 결과는 명확하고 일관된 내용을 보여주었다. 진보에 대해서든 보수에 대해서는 제일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이들은 온건파와 보수파였다. 정확성이 제일 떨어진 것은 진보파였고, 그중에서도 “매우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특히 정확성이 떨어졌다.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공감 능력이 더 있다고 생각한) 좌파가 더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p497 진보주의자가 되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언변이 좋으며 자립적이지만,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공격적이며, 순종이나 단정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우파 성향에서 보이는 전쟁의 영웅의 선호에서 침략적 전쟁 영웅보다 수비적 전쟁 영웅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p505 이번 영웅은 방어에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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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적 진화의 정향定向성


생물의 진화에 있어 수직적 가치관, 즉 위계질서에 의한 우열이 존재하는가? 쉽게 질문하자면 도마뱀보다는 원숭이가 우월한 생명체이고, 원숭이보다는 인간이 우월한가? 나는 여기에 답변으로 보류한다. 굴드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마뱀이나 원숭이나 사람, 모두 생명체일 뿐이다. 즉 수평적 가치관의 적용을 언급했을 것 같다.

진화심리학에 같은 질문은 던져본다. 어떤 인지認知 행태가 다른 인지 행태보다 더 우위에 있나? 나는 보수주의자로 잠정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단순 자연수 덧셈보다는 분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상태가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인지 행태가 다른 인지 행태보다 더 도덕적 우위에 있나? 예를 들면 생존 욕구보다 이타심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한가? 나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기대한다’고 답한다.

 

청소년 시절 나는 나름대로 위계를 만들었다. 1) 책임, 2) 진리, 3) 정情 (유대 관계), 4) 낭만 (예술 정서)이다. 2) 진리(신념윤리)가 3) 정(책임윤리)보다 앞서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은 퇴계 이황보다 남명 조식의 가치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 책임은 3) 정과 일맥상통하기도 하지만 칸트의 도덕의무론에 가깝다.

 

최진기 선생님은 정의론 강의에서 6가지 잣대를 소개해 주셨다. 시장주의, 민주주의, 밴덤 공리주의, 맑스주의,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센델/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론. (시장주의를 빼면 5가지, 칸트의 의무론은 언급만하셨다.)

 

간디의 7대 사회악도 함께 소개한다. 1) 원칙없는 정치, 2) 노동없는 부, 3) 양심없는 쾌락, 4) 인격없는 교육, 5) 도덕없는 상업, 6) 인간성없는 과학, 7) 희생없는 종교

 

마이클 센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4가지 잣대를 제시했다. 공리주의, 칸트주의, 자유주의, 공동선 (언급은 롤스의 평등 정의론 포함.)

 

조너선 하이트는 TED 강의에서 정의의 기준으로 5가지 기반을 제시한다. 1) 배려-피해, 2) 공평성-부정, 3) 충성심-배신, 4) 권위-전복, 5) 고귀함-추함. 나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의문을 가졌는데, 자율성은 5가지 기준으로 해석되는 것인지, 즉 파생된 잣대인지, 아니면 독립적인 잣대(단자monad, 모듈)가 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바른 마음>에 의하면 p328 내 연구 팀에서도 자유/압제 기반을 (임의로나마) 여섯째 기반으로 인식하게 되었고’라는 표현이 있으나 왜 ‘임의로나마’라는 표현을 삽입했는지 잘 모르겠다.

 

도덕의 기반 5가지 중 진보는 1) 배려-피해, 2) 공평성-부정의 기반을 강하게 사용하는 반면, 3) 충성심-배신, 4) 권위-전복, 5) 고귀함-추함의 기반은 약하게 사용한다. 보수주의자는 5가지를 고루 사용한다. 여기서 나는 이런 반론을 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는 5가지 기반을 고루 사용하나 보수주의자는 3)~5)의 세 가지 기반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진보주의가가 1) ~2)의 기반을 강하게 사용하는 과정이 3)~5) 기반을 억제함으로써 이뤄졌다는 것이다. 인지 발달, 인지 진화에 정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시간의 정향성을 놓고 볼 때, 충성심, 권위 인정, 고귀함의 추구는 인간 본성에 가깝고 (인간 사회를 통한) 진화를 통해 배신, 전복, 추함의 인정 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5)번은 종교 발달과도 연관을 갖는데, 즉 종교인은 내재적 인간본성에 충실한 반면, 무신론자는 진화과정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영spirit에 대한 개념도 고차원적인 인지활동이 아니라 원시적primitive한 인지활동이다. 5개 기반(모듈) 중에서 2개의 기반을 사용하는 쪽(다양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시간의 정향적 인지 진화가 이뤄졌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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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친구

‘두 친구’와 ‘부부라는 이름의 강’ - 사랑을 시험하다2

 

언젠가 TV에서 만화 영화를 (이번에도 우연히!) 보았다. 만화 영화 끝부분만 보았지만,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동화 제목이 ‘두 친구’였다. 분량이 적어서 그런지 단행본 책으로는 없고 어린이 동화 묶음집에 한편으로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페이퍼 링크를 위해 다시 검색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재구성한 요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청년(A)이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집행이 결정되었다. 며칠 후 사형을 당하겠지만 죽기 전 소원이 하나 있는데, 다른 마을에 살고 계신 어머니를 뵙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집행관은 그 청년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그 길로 도망가 버리면 어쩔 것인가. 이때 해결책으로 청년의 친구(B)가 대신 감옥에 갇히고 사형 집행일까지 오지 않으면 대신 사형집행을 받는 조건으로 허락된다. 계획대로라면 집행일 이전 여유 있게 도착해야 했는데 어떤 이유로 해서 시간이 지체된다. (나는 여기서부터 시청하게 되었다.) 귀로를 서두르다 청년(A)은 탈진해 쓰러진다. 쓰러지면서 ‘이대로 내 대신 친구가 죽게 되는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대신 갇힌 친구(B)는 어머니를 만나러간 친구(A)가 배신하고 도망갔을 리 없다고 생각하나 ... 탈진해 쓰러져 정신을 잃었던 청년A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해가 지면서 사형이 집행되려던 순간,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청년(A)는 돌아와 친구(B)의 사형 집행을 멈춘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에서 감동은 없었다. 다들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돌아온 청년(A)을 원래대로 사형집행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 준비하는 동안 청년(A)은 친구(B)에게 따귀를 때려달라고 한다. 비록 한 순간이지만 배신을 할 생각을 했는데, 그냥 사형을 당한다면 한恨이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친구(B)는 청년(A)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나서 친구(B)는 청년(A)에게 말한다. 나는 계속 네가 돌아올 것이라고, 배신은 있을 수 없다고, 단지 돌아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나 한순간 의심을 했으니 역시 네가 나를 때려야 너를 안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청년(A)는 자기 대신 죽을 고비를 넘긴 친구(B)를 때릴 수 없어 주저하나 결국 따귀를 때리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청년(A)은 형 집행장으로 간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이 두 친구를 모두 살려줘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후 장면은 기억나질 않는다. 어쩌면 주민들의 함성 속에서 만화영화가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완벽에 가장 가까운 신뢰를 구축한 경우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을 시험하는 행동을 생각하기 힘들다. 양쪽이 배신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신뢰보다 이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것은 우리의 신뢰가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신뢰조차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신하며서 신뢰를 시험한다.

 

나의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이 정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관계 ; 예를 들면 이몽룡이 춘향에게 수청들라하며 시험을 한 것과 같은 불완전한 신뢰/사랑(여기서 이몽룡은 춘향이를 사랑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계가 있을 때,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해야 할까 (스펙트럼으로) 그냥 불완전한 신뢰/사랑 관계라고 해야 할까. 다시 말하면 사랑을 시험할 생각이 든다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 관계는 청산해야 하나?

 

사랑의 시험의 결과가 해피엔딩인 MBC 코미디 드라마를 소개한다. (어렴풋한 기억에 ‘웃으면 복이와요’의 ‘부부라는 이름의 강’편)

 

남편 구봉서, 아내 배연정이 주인공인데, 남편이 심하게 아내를 무시하고 타박한다. 어느 날 남편은 어떤 여자로부터 연정의 편지를 받는다. 그 후 보다 적극적인 제안을 받는다. 남편은 처음에 호기심, 그리고 당황, 우왕좌왕하다가 마지막에 남편은 그 여자에게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아내가 나타난다. 남편에게 유혹하려 했던 여자는 아내의 후배로 아내의 부탁을 받고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아내는 사랑이 없다면, 이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려 했던 것이다.

 

이 줄거리에서는 사랑을 시험한다는 것의 부정적 의미가 거의 탈색脫色되었다. 코미디 드라마 형식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갑을관계에서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을에 위치에 있던 아내가 갑의 위치에 있던 남편을 시험한 것은 사람들에게 크게 부정적 인상을 주지 않은 것이다. (반면 춘향전에서 사랑을 시험한 사람은 갑의 위치는 이몽룡이다.) 만약 나의 판단이 맞는다면, ‘사랑의 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 도구는 이성이 아니고 직관이다. 나는,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랑의 시험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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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시험하다

 

곰곰생각하는발 님과 <춘향전>의 어사출또 후 이몽룡이 춘향에게 수청들라고 제안하는 장면을 두고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가 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유년 시절에 TV에서 어떤 장면을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께 여쭤봤고, 어머니는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답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에 TV에서 봤던 줄거리(TV였는지도 불확실하지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시험하고 그 과정에서 일이 꼬여 불행한 결말이 났(을 것이)다. 만약 사랑을 신뢰하여 시험하지 않았다면 결말은 행복하게 났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의 교훈은 사랑은 시험하지 말라는 것.

 

사랑을 믿음으로 치환하여도 같은 논리나 느낌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분류하고 정의하려면 이 또한 이야기가 길어지니, 사랑을 무정의 용어로 사용한다. 마립간의 정의에 따르면 사랑은 천년 정도는 변하지 않아야 가히 ‘사랑이다’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마립간의 판단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사랑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즉 사랑이라는 의식 작용은 단일 ‘정체성’을 갖지 않는다.

 

마립간의 정의에 맞는 사랑이라면 사랑을 시험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 길어야 100 년이니 일생 변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시험을 한다고 해도 모두 통과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개념에서 사랑은 변할 수 있다고 한다.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만약 움직이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움직였는지 안 움직였는지 시험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인가? 아이들 중에는 동생이 생기면서 퇴행을 하거나 아프다는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의 많은 경우가 엄마의 사랑을 놓고 동생과의 경쟁 관계에서 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다. 비록 무의식에 이뤄지는 것이지만.

 

화목한 가정을 위해 사랑의 표현을 자주하라고 한다.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이것은 사람에게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을 사랑의 표현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긍정적이겠지만, 좀 미숙한 방법인 사랑의 시험을 했다고 해서 많이 부도덕적인지 모르겠다. 사랑과 믿음이 깊으면 눈에 띠는 행동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심전심 以心傳心, 염화미소 拈華微笑로 표현될 수 있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깊은 의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미숙함을 거쳐 성숙함에 도달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적이 좋은 학생이 긍정이지만, 공부를 게을리한 학생을 (물론 본분을 다하지 못했으니 부도덕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이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의 시험은 불행한 결말을 가져올 수다.’ 하지만 도덕은 결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랑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1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브리서 11:17)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야고서 1:13)

 

성경을 살펴보면 ;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나 하나님의 시험은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긴 이야기는 욥기Job 자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할 수 있다. (당위성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할 이유가 없다. 창세 이후 사람은 불완전했고, 하나님은 완전했으므로. 순종이 리더십의 결과물인 것처럼, 사랑의 시험 여부는 관계의 결과물일 뿐이지, 당위성도 전제 조건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판단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사람을 시험할 수 있다. 시험을 줄 능력자 권리자이시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것이니까. 나는 이 논리에 반론이 없다.

 

(우리 집에 <춘향전>이 없네. 분명히 읽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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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2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지적이시군요.ㅎㅎ. " 사랑을 표현 " 하는 것과 " 사랑을 시험 " 하는 것은 동일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립간 님 글 읽다가 문득 ( 퍼득, 갑자기, 불현듯 ) 든 생각인데, 만약에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시험해 보고자 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적어도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는, 식은 사랑.. ) 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정말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 의심을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남편은 시험을 할 자격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아내를 시험해서 아내의 사랑이 거짓이라고 판명이 된다고 해도 남편은 아내를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수학적 계산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 개인적으로는 "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아니다 " 정도가 아닐까요 ? ㅎㅎㅎㅎ

제가 춘향전에서 이몽룡을 비판한 것은 이몽룡은 춘향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점이었습니다. 아, 이거 말이 길어지니 저도 따로 글을 쓰도록 하죠.....ㅎㅎㅎㅎㅎ

마립간 2014-08-21 10:53   좋아요 0 | URL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 동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가 불안감으로 동일하다는 것이죠. 명백히 사랑의 표현은 긍정적인 반면, 사랑의 시험은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가치판단에서 원인적 판단이 아니라 결과적 판단이라는 것이죠. 다른 의견은 곰곰발 님 글을 보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 書欌日記 140820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적분>

 

책 제목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구입했다. 미적분이 재미있나? 미적분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재미있는 미적분’ 이런 제목이 붙은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그냥 ‘미적분학’의 책을 구입한다. 책 제목에 ‘재미있는’의 형용사는 피수식어 ‘미적분’과 함께 형용모순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생각해서 미적분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덜 딱딱하고 덜 지루한 책의 수사로 받아들이자. ... 하지만 그것을 실감할 정도가 가능하단 말인가?

 

이 책에 대한 나의 판단은 ... ^^ 원제는 <The Cartoon Guide To Calculus>

 

<내머리로 이해하는 E=mc2>를 읽고 조금 놀랐다. 이렇게 쉬운 설명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책 서문에도 있는데, 쉬운 설명에는 하한선이 있다. 무한정 쉽게 설명하여 E=mc2을 유치원생까지 이해할 정도까지 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분수 (초등 3~4학년 과정), 논증 기하 (중학교), 미적분 (고등학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학이나 확률/통계가 쉬운 것은 아니나 위 세 가지 과정은 그 교육과정(그 연령)에서 보다 더 추상적 개념/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학 자체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이들 보다 더 추상적인 수학분야가 위상수학일 것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소개만 한다.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아이들만 수학을 어려워하나 어른들도 수학을 어려워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는 무리짓기에 적합하고 그렇게 진화해 왔다. 1+1이 2라는 수학적 판단을 하기보다 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1+1이 3이라고 할 때, 다수의 판단을 따라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사람을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쉽게 하는 ‘무리짓기’에 무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일정 부분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별점은 10년 뒤 딸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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