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부姑婦 갈등

- 고부 갈등과 장서丈壻 갈등, 모녀母女 갈등, 그리고 부자父子 대결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글에 댓글로 남겼던 것을 정리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부 갈등이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고부 갈등이 적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댁이 싫어 시금치도 안 먹는다나. 그리고 고부 갈등의 이유가 ‘남성 중심의 유교적 문화가 (한) 원인이다’라고 했다. 남성 중심의 유교 문화가 약화되면 같은 의미로 양성 평등이 강화되면 고부 갈등은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여자들끼리 왜 그래.’)

 

1990년대에 들어서면 과거보다 양성 평등이 실천되면서 고부 갈등은 예전보다 줄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시모와 며느리 갈등이 줄면서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늘었다는 것이다. 나는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댁의 관계에서 처가의 관계로 갈등의 전환은 이해가 되는데, 왜 시모-며느리 대척점인 장인-사위가 아니고 장모-사위인가 하는 것이다. 얼마 후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기사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예전 고부 갈등과 같은 갈등이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가정 내 불화 주체에 아버지, 장인, 아들보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며느리, 딸이라는 여성 주체가 더 많이 언급될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갈등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갈등이라는 용어보다 대결이라는 어울린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근본적 이유를 부자간의 대립,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발로 설명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의 궁금증은 ; 나의 직관에 의하면 부자의 대결과 고부 갈등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런 나의 직관이 맞는가? 신경 생리학적으로 뇌의 다른 부분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인식의 체계에서 다른 정신 기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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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9-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 양성평등사회'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전히 기울어진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부 갈등이 줄어들자 장모 사위 갈등'이 늘어났다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니....
옛날에는 며느리들이 친정은 거의 못 가고 시댁에만 가고는 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시댁과 친정 고루고루 다니지 않나요 ? 옛날보다는 남편이 아내 친정 가는 경우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빈도수가 높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 추측해봅니다.


마립간 2014-09-04 12:27   좋아요 0 | URL
실제로 -> 과거보다 로 수정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여)
과거에 비해 양성 평등 쪽으로 향했다이지 양성 평등이 실현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거와 비교하여 시댁 대비 처가의 접촉 빈도수가 높아 갈등이 생긴 것에 동의합니다. (신문 기사에서도 그와 같이 설명합니다.) 제 의문은 왜 갈등의 주체가 남성보다 여성이냐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2014-09-0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소견으로는 가정생활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정생활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상황의 주체도 '여성'일수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육아를 '돕는다' 또는 집안일을 '돕는다' 라고 표현합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내가 '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저는 거의 제 주변에서 듣거나 본적이 없습니다.
주체적으로 가정일을 하는 것이 아닌거죠.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은 압니다만, 제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저의 판단입니다.

그러니 다른 쪽, 가정일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끼리의 갈등이 빈번할수 밖에 없지 않나 싶네요.


마립간 2014-09-04 14:10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의 말씀을 타당성있게 생각합니다. 윗 글 말미에 사회문화적 요인때문인가를 넣으려다 말았습니다.

저의 궁금증은 ; 가족 내 관계 갈등의 원인에 신경 생리학적인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죠. 넓게 보면 문화-유전 공진화로 인해 양쪽 모두에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페크pek0501 2014-09-0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 땐 인식 체계의 문제 같아요. 어머니들은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이 있어요.
예를 들면 어머니인 자기에게 갖다 주던 월급을 결혼 뒤엔 며느리에게 월급을 갖다 준다든지... 모든 걸 어머니와 상의하던 아들이 이젠 며느리와 상의하게 되어 소외감을 느낀다든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데 이젠 아들이 사랑하는 일순위는 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 등으로 서운한 게 많은 상태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은 여자가 이젠 아들의 반려자라며 아들이 애지중지하니 상처 받을 일이 많아지고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고 봐요.

장인과 사위보단 장모와 사위가 갈등이 많은 건 아무래도 접촉 빈도수가 높다는 것, 장인보단 장모가 살림에 많이 관여한다는 것, 그리고 성격의 문제가 있어요.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하죠. 장인은 대충 생각하는 반면 장모는 여자라서 따지는 게 많다는 것이에요. 또 가정에 대한 집중도가 남자-장인보단 여자-장모가 아무래도 높겠죠.

흥미로운 문제를 써 주셨네요. 앞으로 연구해 볼 만한 문제예요.

마립간 2014-09-04 17:23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 여러 분의 댓글을 통해 다차원 해석으로 상황이 대강 설명이 된 듯 합니다.

공통 관심사에 의한 주체들의 갈등이라면 ... 해석은 되었어도 보다 명확한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군요.^^
 

 

* 讀書日記 140902

 

<패러독스 논리학> 서평 별점 ; ★★★☆

 

아인슈타인의 수수께끼, 몬티 홀 딜레마 등 비롯하여 예전 꽤 놀라움을 주었던 문제들이 있어 반가웠다. 아인슈타인의 수수께끼는 패러독스라 부를 수 없는 끈기만 있으면 풀 수 있는 방정식이다. 아들 혹은 딸 수수께끼는 이전에 풀었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또 틀렸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너무 지명도 있는 문제만 모아 놓아 낯익은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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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0901

 

<이순신과 임진왜란 2> 죽더라도 천자의 나라에 가서 죽겠노라 서평 별점 ; ★★★☆

 

이 책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대한 묘사가 없다. 책의 앞부분은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쟁 및 전투에 대비하였나가 서술되고 있다. 무협 영화나 스포츠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무술을 연마하는 또는 스포츠를 연습하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산악을 달리거나 윗몸 일으키기, 무거운 것을 끄는 장면 등. 우리는 모두 안다. 이런 준비 과정이 고통스럽고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짧게 처리한다. 이 괴리는 현실과 사람의 욕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성과를 위해서는 수고가 동반된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고와 지루함이 동반된 준비 기간을 짧게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사실을 반영하기보다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선조의 이야기와 육지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결과는 우리나라 군대가 왜군에게 패한다. 나는 여기서 또 하나의 괴리를 본다. 직책의 권한과 능력의 괴리! 지금도 마찬가지, 군대의 통수권은 최고 권력자에게 있다. 즉 조선의 군대의 통수권자는 왕에게 있다. 하지만 왕이 전지전능, 만능일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군사학의 대가이지만, 최종 결정은 선조가 하며 결정 범위도 넓다. 지금은 대통령을 국민 투표로 선출한다.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경기 침체를 벗어나게 하고 극빈층을 구호하는 사람, 아니면 군사, 외교적으로 뛰어난 사람? 미래는 알 수 없다. 전지전능 만능인 사람도 없다.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에 의하면 ; 조선은 일본에게 기습을 당한 것이 아니다. 수차례 침약의 뜻을 비쳤지만, 아무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 준비를 하지 않은 이유는 준비를 강행했다가 만약 일본이 침략이 없으면 본인만 징계를 받게 된다. 준비를 하지 않아 일본의 침략이 실제 있다고 해도 (사실이 그랬지 않는가) 다른 모든 사람이 준비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으니 본인만 처벌 받을 이유가 없다. (역시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개인을 이익을 위해서는 게임의 이론에 따라, 그리고 ‘무리짓기’ 법칙에 따라 전쟁 준비를 하지 않는 다수의 무리에 속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 책의 글쓴이는 끊임없이 시문詩文놀이를 비판한다. 그리고 경經과 영營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학 지식이 지금과 같이 축적되지 않은 시대에서 시문과 같은 인문학은 전체적인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나의 의문 ; 시문놀이와 인문학은 어떻게 다른가? 경經와 영營을 공부한다는 것이 현대의 실용개발서에 집중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밑줄 긋기

p168 그는 노모에게 아뢰기를 “생각하옵건대, 충효는 양전兩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 대개의 충효는 동전의 앞뒷면으로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마치 자유와 평등이 동전의 앞뒷면이듯이. 그러나 동전의 앞뒷면을 동시에는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양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p185 송상현이 주장한 도리론은 유교적인 가치관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간에도 도리론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군사학(병법)으로 대결할 뿐이다. ; 이런 사실 자체가 전쟁을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p186 사실적 판단, 도리적 판단 ; 나는 사실판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p207 신립은 평소에도 성질인 잔인하고 사납다는 평판이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여 자신의 위엄을 세우니, 수령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백성을 동원해서 길을 닦게 하고 대접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니, 대신의 행차도 이것만은 못하였다.

p267 선조는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고, 자리를 옮겨서 문신으로서의 공을 쌓게 한 다음 다시 군의 지휘를 맡겼는데, 이들은 그 후로도 비슷한 실책을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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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9-04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리짓기’ 법칙에 따라 전쟁 준비를 하지 않는 다수의 무리에 속하는 것이 안전하다 - 이 부분이 현재 사회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전쟁 대신 그 어떤 말로 채워넣을 수 있겠지요. 다수의 결속에 속하지 않으면 패배자나 열외자가 되는 환경에서 그 누가 제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요.^^*

마립간 2014-09-04 09:55   좋아요 0 | URL
옳은 것을 위해 다수에 속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분들, 위인이거나 최소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죠.
 

 

* 이승만

- 김구, 신채호, 이승만

 

<바른 마음>의 상당부분이 보수-진보의 가치관을 설명하기 때문에 예전에 쓰다만 글을 정리한다. 이 글은 시작은 여자 중학생(친구의 딸)이 간접적으로 나에 대해서 묻기를 ‘아저씨는 진보예요?’라고 묻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통상적으로 생물학적, 사회적인 이유로 남자, 어른신은 보수, 여자, 젊은이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장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는 보수-진보의 대립을 표현한다. 그런데, 여중학생이 중년 남자에게 자신과 비교하여 진보냐고 묻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도 있고, 사회 변화의 한 단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정형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것도 일종의 보수주의자 성향이다.) 정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오류나 약점을 작용할 수 있지만, 나의 문제는 집적적인 자료를 근거를 하기보다 책과 같은 한 번 정제된 것을 기반으로 한다. 책이 선택의 편견이나 책 내용의 편견이 나의 정형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

 

내가 대학생 시절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자연스럽게 정치 담론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정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사회 현실을 직접 들여다보기보다 이 책, 저책을 뒤적거렸다. 최종적으로 나의 정치적 보수-우파, 진보-좌파의 개념은 <도덕의 정치>를 읽고 정리되었다.

 

마지막 정리는 <도덕의 정치>로 하였지만, 이 책 이전의 내가 단순화한 개념은 보수의 자유와 진보의 평등이었다. 그리고 대표적 인물로는 보수에 백범 김구를 진보에 단재 신채호를 꼽았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분류는 주위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김구와 신채호 모두 진보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누가 보수의 대표적 인물이냐고 하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을 꼽을 수 있다.

 

나는 ‘이승만’의 이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이 상황의 판단은 뒤로 미뤄졌다. <바른 마음>과 그리고 직전에 읽었던 <민주주의에 反하다>를 계기로 판단을 다시 시도해 본다. 내가 청소년 시절과 대학생 시절에 접한 이승만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 중에는 이승만이 반일反日적이라고 했지만, 내가 접한 책 및 정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민주주의에 反하다>에서 언급한 ‘힘을 가진 자’,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자들의 대표적 인물이 이승만으로 보였다. 이런 생각을 견고하게 만든 것이 ‘백년 전쟁’이라는 동영상이다.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고 사고방식의 정의와 분류이다. (물론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분들의 반론 댓글을 환영한다.)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서인, 친일 친독재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들은 힘에 복종한다. <바른 마음>의 보수, 진보 가치관의 분류에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인간의 뇌구조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영장류의 뇌’의 3개의 층위를 갖는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가치관에 관련된 것이고, 인간 사회 집단을 유지하는 도덕과 관련된다. 이것은 ‘영장류의 뇌’의 해당된다.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성향은 이기주의다. 개인, 가족,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당파, 학파, 엘리트 의식, 재벌)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익은 개체 (또는 소규모 집단) 생존의 추구이다. 그렇다면 사고 체계는 ‘포유류의 뇌’의 사고에 해당한다. 정리하면 ‘영장류 뇌’의 가치관에 보수 백범 김구와 단재 신채호가 있다면, 동일 선상에 있지 않는 ‘포유류의 뇌’에 이승만이 있다.

 

모든 인간은 ‘파충류의 뇌’의 기반 위에 ‘포유류의 뇌’가 있고 그 기반 위에 ‘영장류의 뇌’가 있다. (자연주의의 오류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극단적 상대주의의 오류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뇌 체계의 하위 기반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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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8-2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생각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법 한데 ...

혹시 저의 생각이 편견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 추천하는 책(reference)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립간 2014-08-28 16:57   좋아요 0 | 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281600531&code=940301

때마침 이런 기사가. ... ;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긍정의 무게에 비해 부정적인 면의 무게가 훨씬 더 큰 것 아닌가? 그 부정적인 면은 잘 드러나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페크pek0501 2014-08-3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댓글이 등록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여러 번 썼는데 계속 그러네요.

마립간 2014-08-30 12:07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버 에러이겠죠. 처음에는 괄호 에러로 생각했습니다. 부등호는 댓글에서 에러를 일으깁니다.

제가 읽었던, 이번에 되려나 제가 읽었던, 메일로 9번 도착했네요. 서버 정상화되면 다시 알려주세요.^^

페크pek0501 2014-09-0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때 제가 책 제목을 쓸 때 괄호를 써서 그래요. ( )이것 말고 다른 괄호요... 그게 에러를 일으켰나 봐요.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라는 책을 어느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그 지인이 박정희 광팬이라서
제가 준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단 그런 내용의 댓글을 썼어요. (길게 썼는데 더 이상은 생각 안 남... ㅋㅋ)

다음에 쓸 땐 주의하겠습니당... ^^

마립간 2014-09-04 17:32   좋아요 0 | URL
부등호를 사용하면 브리핑에서 안 보여도 댓글 등록이 안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프로그램이 바뀐 모양입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면이 있고 어느 정도의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과오가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과오를 넘는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환경에 살고 있는지라...^^
 

 

* 讀書日記 140827

 

<바른 마음> 서평 별점 ; ★★★★★

 

나의 서재에 최근 방문하셨던 분들은 예상을 하셨겠지만, 이 책의 별점 평점은 5개다. <도덕의 정치>나 <빈 서판>,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와 일부 내용이 겹침에도 도덕적 기반을 충분히,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p230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보다는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이다.

 

나의 이 책에 대한 좋은 평가가 가능했던 이유는 글쓴이의 연구방향이 ‘도덕의 기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도덕으로 생각하느냐로 접근했던 것이 주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이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모럴 아포리아> 등을 통해서 도덕의 기반이 허약함을, 심하게 이야기하면 도덕의 기반이 없음을 느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도덕이나 윤리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도덕의 실체는 없을지 모르지만 도덕은 실재한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내가 느꼈던 부족함을 메워주었다.

 

p517 도덕적 자본은 도덕 공동체를 지탱시켜주는 자원으로 정의할 수 있다./도덕적 자본이란 어떤 공동체가 가진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그리고 이와 맞물린 진화한 심리 기제의 정도를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좌우 가치관 논쟁에 대한 설명도 훌륭하다. 글쓴이는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자신이 지지했던 좌파의 약점에 충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스스로는 ‘우파, 보수주의’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으니 이번 글에서 생략한다.) 하지만 왜 나는 일반적으로 (수구주의가 아닌) 우파, 보수주의라 불리는 사람들과도 ‘우리’라는 소속감이나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까? 나는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6가지 기반을 모두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의 기반의 감정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의 ‘우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황홀경의 역치도 높았다고 해석한다. 나는 권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권위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우러나와 권위를 인정할 만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권위를 인정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니 충성심을 추구하지만 충성심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고귀함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교를 떠날 생각이 없으나 내 눈에는 종교를 통해 고귀함을 느끼기보다 추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군집 스위치가 잘 켜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반공 강연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강연에 몰입하고 있는데, 나는 강연내용을 분석하면서 강연에 빠지는 친구들을 관찰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서 나의 가치관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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