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1020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서평 별점 ; ★★★

 

여러 모로 기대에 비해 부족함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장자를 전공한 강신주, 도道 그리고 ‘딴지’라는 말이 나의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분량이 많지 않은 글에 감정만 과잉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의 글쓴이는 현대의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선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글쓴이의 의견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선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예로 수학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연필로 종이에 점을 찍는다고 한다. 하지만 확대해 보면 점이 아니라 원이다. 점은 위치는 있으나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점을 경험할 할 수 없다. 점은 관념 속에만 존재한다. 수학은 관념 속에만 존재하지만, 아름답고 꽤 유용하기 까지 하다.

 

사람들은 사실에 근거한 이상으로 플라톤-노자주의자 성향이 있다. 곤충의 날개는 처음에 체온 조절을 위한 기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의 깃털 역시 보온을 위한 기관이었다. 하지만 어느 역치를 넘어서 굴절 적응을 통해 나는 기관으로 역할을 바꾼다. 즉 유래와 현재의 기능(의미, 본질?)과는 차이가 있을 수가 있다. 유래를 알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는 하다.

 

‘노자’와 ‘장자’, ‘도’의 개념이 역시 현대의 개념은 현대인의 관념 속에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래는 어떠할까? 나는 현재의 관념의 도와 도의 유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신주 선생님은 도의 유래가 정치 철학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도의 개념을 동양의 자연철학으로서의 의미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의견이 ‘딴지’인지 잘 모르겠다. 그 동안 강신주 선생님의 설명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인데.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주장과 감정의 과잉이 보인다. 어디서인가 글쓰기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글을 다 쓴 후에는 ‘덜어내라’고 한다. 자기가 고심해서 쓴 글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 덜어내는 것이 글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한다. 이 책은 ‘덜어내지 못한’ 점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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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도에 출간된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 2013년 출간된 `장자 & 노자 도에 딴지 걸기`보다 책의 완성도가 더 높다.

다른 분의 글에서 강신주 선생님이 유명해지기 전의 글이라고 함. 재출간인 듯.
 

 

* 育兒日記 141016

 

* Make a short sentence with tiger.

나 ; The tiger is a big cat.

딸아이 ; The tiger is not a cat.

 

Family와 species를 어떻게 설명할까.

 

* 별이 뭐예요

딸아이 ; “별이 뭐예요?”

나 ; “별은 항성, 행성, 위성, 혜성을 포함하여 일정 이상의 크기를 갖는 우주의 물질 덩어리를 말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별들 중에서 은하에 대해 상대적 운동이 없으면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 항성만을 한정해서 말하기도 해.”

딸아이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 흑체 복사

내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이가 어깨 너머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더니

“아빠, 흑체 복사가 뭐예요?”

내게 잠시 멘붕이 왔다. “그러니까 흑체 복사는 %*&^*@#$#*&^*$#이야. 너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려 했지.”

 

아이의 질문에 대해 끝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첫 번째 질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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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1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심각하게 읽었어요. 아이들에게 family와 species를 어떻게 설명할지 저도 모르겠고, 흑체 복사는 저도 모르는거라서 ㅠㅠ

마립간 2014-10-16 11:47   좋아요 0 | URL
hnine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자고 쓴 글인데, 심각하게 읽으셨다니요.^^ 제 딸아이가 유치원생인데, 아직 광의, 협의 등, 언어의 중의적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니 설명하기 힘든 것이 많더라구요.

셰익스피어나 공자가 교양이듯이, 열역학법칙이나 현대물리학 탄생에 관한 과학사 정도는 교양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아미 세계적으로도)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눈치맹입니다. 각자에게 장단점이 있지요.

마녀고양이 2014-10-2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따님은 아버지가 자신의 질문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진지하게 여겨서 대화를 해주는 자체로도 매우 잘 자라겠네요. 그게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싶어요. 올바른 것, 정답, 해답 이런 것보다는 관심.... 따뜻하네요.

마립간 2014-10-21 07:58   좋아요 0 | URL
저의 어렸을 때, 상처지요. 어른들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나중에 배워, 네가 찾아봐. 대답이 둘 중의 하나였죠. 그 오기로 독서를 하게 되었구요.

가족 내의 인간관계는 접촉 시간으로 볼 때, 존중이라는 tool이 최고인 것 같아요. 아이가 말을 할 때부터 존중이라는 것을 염두하고 대화를 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저를 존경하죠.

(방송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안철수 씨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안철수 씨의 어머니가 안철수 씨에게 어렸을 때 부터 존댓말을 써 왔대요. 그것을 자신의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더라구요.
 

 

* 讀書日記 141015

 

<땅에 묻힌 금덩어리> 오르다 작은 철학자 9권

글 ; 김진락, 출판 ; 오르다 코리아

 

줄거리 ; 가난하게 사는 최 씨 부인과 최 씨 부인의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최 씨 부인은 빗방울을 소리를 듣고 땅을 파 보았는데 커다란 금덩이가 있었다. 최 씨 부인은 금덩이를 땅에 다시 묻어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삯바느질을 하고 다음 날 일찍 이사를 갔다. 최 씨 부인이 살던 집에 박 씨 부인 가족이 이사를 왔다. 박 씨 부인도 역시 땅에 묻혀있는 금덩이를 발견했다. 박 씨 부인은 금을 팔아서 부자로 살 수 있었다.

 최 씨 부인의 아들들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여 관직을 얻게 된다. 부자로 살던 박 씨 부인의 가족은, 아들들이 욕심을 부리고 게으름뱅이가 되더니 노름꾼이 되었다. 다시 금을 얻기 전과 같이 가세가 기울었다.

 

이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린이들 위한 교훈적이 동화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였다면 다시 금을 땅에 묻고 떠날 수 있을까? 어떤 아이들은 가난한 가족의 가장 역할을 맡으면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맞다.

 

이 이야기에서 불로소득不勞所得이 부정적인 요인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얼마나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알라디너 중에 복권으로 거액이 당첨되었는데, 불로소득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두려워하여 찢어 버릴 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라디오 방송에 교육 관련 전문가가 이야기한 것인데,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숙하게 하는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가난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마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각한다. 두 가지 모두 부모가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 성숙을 위해 일부러 가난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자. 가난 속에서 부모가 열심히 사는 것으로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나는 것의 충분조건이 될까?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물질적인 여유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를 생기게 하기도 한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느낌이다. 이 책의 주제와 교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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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물어보니 ; 박 씨 부인이 금덩이를 발견하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장면 ...
 

 

* 讀書日記 141014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eBook 서평 별점 ; ★★★☆

 

안 그래도 국어 문법책, 한글 맞춤법에 관한 책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구매할 책을 결정하지 못하던 중,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이 눈에 띄었다. 종이책을 구입하려 보관함에 집에 넣었는데, 알라딘에서 무료로 구입할 수 있는 쿠폰 얻었다. 감사할 뿐이다. eBook으로 읽었지만 재미있게 한 번에 읽었다. (역시 내용이 중요한 듯.)

 

‘육아일기 140108’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이가 한글에 대해 내게 한 질문이 ‘왜 소리가 나는 대로 적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답변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개 플라톤-노자 주의자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데, 임의적으로 시작되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그 자체에 이유인데, 아이들은 자꾸 원인을 묻는다.

 

* 육아일기 140108 http://blog.aladin.co.kr/maripkahn/6804035

 

아이가 내게 요즘 자주 묻는 것이 ‘애(ㅏ+ㅣ)’와 ‘에(ㅓ+ㅣ)’의 구분이다. 나는 나름대로 구분해서 발음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도무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 분명하게 존재하던 (물론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없는 것에 가깝지만) 모음조화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사라지는 것을 느꼈는데, 이제는 ‘ㅔ’ 발음이 없어지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내가 맞춤법을 지키려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답은) ‘있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 맺지 못한 연緣으로 남은 책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국어 문법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에게 빌려서 통독을 하고 돌려주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언급하는 국문법에 관한 강의는 이 책의 내용을 회상하는데 불과했다. 종로 서적에 방문했을 때 이 책이 책꽂이 한 줄에 꽉 차있었다. 인기가 있은 대중적 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의 초판은 1960년대 말이나 1970대 초반에 출판되었을 것 같다. 그 당시의 국문법과는 다른 (틀린?)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시간은 흘러 그 책을 구입하려 할 때는, 책 제목도, 글쓴이도, 출판사도 기억하지 못했다. 갈색 계통의 표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서점에 가면 알아볼 수 있으려나 했지만 이미 서점에는 국문법 책 분야 자체가 축소되었다.

 

(이 책에서 읽은 것인지도 이제는 의심이 간다. 갈수록 기억에 대한 자신이 없어진다.) ‘이다’에 관한 서술이다. 현재 ‘이다’는 (서술격) 조사로 분류된다. 조사는 활용이 없다. 그런데 이 조사는 활용을 한다. 그래서 그 책의 글쓴이는 ‘종결사’라는 새로운 품사로 정의했다. (용어가 ‘종결사’이었는지도 기억이 불확실)

 

인터넷에서 검색이 안 되다니 ...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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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日記 141013

 

<코란을 아십니까> 서평 별점 ; ★★★★

 

친구와 이슬람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예전에는 이슬람교에 관한 많지 않았다. (혹은 내가 책을 잘 못 찾았을 수도 있다.) 세계 4대 종교라고 불리는데도. 내가 접했던 책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 지역에 선교를 하기 위해 대략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이슬람교의 지역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문화는 지리를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으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부족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코란에 대한 책은 흔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들었다. 코란은 신학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표현에서 있어 문학적 표현과 음율 rhyme도 가지고 있어 그 훼손을 막기 위해 번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2>를 통해 단편적인 것만을 알고 있었다. 이 책 역시 이슬람교, 코란의 단편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라딘 검색에도 <코란 (꾸란)>이 눈에 띤다. 그 동안 이슬람의 개방화가 조금이나마 진척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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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10-1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슬람교는 형상화도 하지 않는 것 맞지요?
그런데 문학적 표현과 음율의 중요성으로 번역을 하지도 않는군요.

왜곡을 막고자 하는 태도가 참 좋네요. 음, 자행하는 행동들은 그다지 교리 그대로 반영되었는지, 의구심은 들지만 말이죠.

마립간 2014-10-14 07:37   좋아요 0 | URL
이슬람교는 형상화를 거부하여 기독교의 십자가에 해당하는 것도 없고, 예수 님 상이나 성모 마리아 상에 해당하는 마호메트의 초상화도 없다고 합니다. 형상화가 우상화를 뜻한다고 생각한다는군요. 그래서 종교적 건물에 기하학적 문양만 있다고 하네요.

이슬람교 교리중 중혼, 축접이 있는데, 이는 과부가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 위한 복지의 개념으로 권장되고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복지라는 개념(의미)이 사라지고 중혼-축첩이라는 형식만 남았죠. 이런 현상은 기독교도 이슬람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됩니다. 우리나라 이슬람교 교인이 말하기를 `한 손에 코란, 다른 한 손에 칼`이라는 말은 기독교 입장의 부정적 시각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