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226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노장老莊사상

 

남명도 나도 플라톤-노자주의자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플라톤주의자의 가장 큰 약점은 이데아-도를 당장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 차선책이 멀리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오류에서 최소의 오류를 선택하게 된다. 약간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가미한다. 다른 선택도 있다. 현실과 타협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를 가미하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후자의 선택을 변절로 부른다. (아마도 전자를 드문 변절로 부르겠지.)

 

p28 <부귀와 재리에 대한 멸시>는 그 자체로 드문 미덕이다. ... 이런 태도는 자연히 <오만>과 <방탄>으로 이어지기 쉽다.

p28 아마도 그의 오세傲世는 세상의 공명을 뜬구름처럼 여기는 노장에 이끌리게 했을 것이고, 그의 유협遊俠은 전쟁의 기술과 권력의 생리를 피력하고 있는 한비류에 이끌리게 했을 것이다.

p31 본지풍광本地風光

p32 겸선천하兼善天下와 독선기신獨善其身, 이 둘의 통합적 지향

p114 남명의 학문은 결코 기존의 사상을 얌전하게 따르고 묵종하는 학문이 아니었다./조선조의 유자들은 그들 양명학자로 혹은 노장류 老莊類의 인물로 혹은 불교를 존숭한 인물로 이해한다.

p278 청향당은 대나무, 소나무, 매화, 연꽃 등이 있고 이원은 그곳에서 경전을 벗삼아 거문고 연주하며 살았다.

 

- 우리 모두는 이중주의자다

 

p56 1) 기술 art로서의 지식/p57 작은 공부 小學가 학문의 알파요 오메가

p60 경전은 다만 도구일 뿐/p62 궁극은 경전經傳 너머에 있다

 

p71 제자 하나가 마음, 본성, 감정, 능력 등의 구분에 대해 물었을 때 육상산은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 따위 분석이 아니라 근본 배양, 즉 배움의 원천과 근본에 대한 자각이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라고 가르쳤다. ; 이 말이 사실이라면 왜 동양은 (문명적으로) 서양에게 뒤졌을까?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았다고 위안하면 그만인가?

 

p75 남명의 방식이 주자학보다는 상산과 양명 계통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남명의 저술을 통독하고서 짐작컨대 그는 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p107 주지하는 것처럼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완전히 자기를 버릴 때 신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p120 慾望 ; 이천伊川은 이것은 육신을 가진 인간의 존재의 한계로 보고 있다.

 

나는 세상이 플라톤-노자주의,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가 통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통합을 꿈꾸는 자체가 플라톤-노자주의자다. 추정하건대, 통합되지 않으리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讀書記錄 150225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칼을 찬 유학자

 

알라딘 배너에 책 광고가 눈을 끈다. “스스로 복종한 자는 독재자의 공범이다”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검劍이다. 내가 갖고 싶은, 상상하는 검은 양날이다. (지금 검색을 하면 도刀와 검을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예전에 내가 찾아 본 바에 의하면 도는 한쪽 날만 있는 것, 검은 양쪽 날이 있을 것으로 봤다.) 모양은 일一자이고 칼의 날밑(格, 古銅)이 없거나 작은 것이다. 한국의 정통 검보다는 중국 검이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무기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법적 곤란함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가 ‘해산선학’과 ‘포의풍류도’이다.

* 해산선학 http://blog.aladin.co.kr/maripkahn/508104

 

칼의 기원에는 폭력성이 담겨져 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기원과 아리스토텔레스적 본질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칼은 결기와 함께 절제를 느끼게 한다. 이 상징을 나는 불의 不義에 대한 저항과 의지로 여긴다. “스스로 복종한 자는 독재자의 공범이다”인 것과 같이 ‘불의에 저항하지 않다면 역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틈틈이 행동하지 않는 나를 돌아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변명은 이러하다. 누가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무오류의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정의-불의를 논하기 전에, 누가 정의-불의 판단 대상(수직적 가치관)으로 아니면 그와 같은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수평적 가치관)으로 무오류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 님이 말한 ‘착각하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 ; 이 명제에 나 역시 해당한다. 그래서 칼을 가까이하기가 두렵다.

 

p11 남명은 법가적 지향을 한 갈래로 가지고 있다.

p15 인仁이 사랑과 관용이라면, 의義는 정의와 절제를 말한다.

p15 그는 자신의 칼에다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을 새겨 두었다./p16 내명자경이란 자신의 내적 본질에 대한 주시와 자각을 말한다. 외단자의란 이 지속적 파지 위에서 분명해진 사물의 시비선악에 따라 행동을 <단호히> 결단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p19 남명은 조정의 비겁하고 용렬한 대처에 대해 울분을 금하지 못했다.

p21 남명은 외적에 대한 칼을 동시에 조정의 관료들에게 들이댔다. 그는 타협과 조정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의 대처는 냉정하고 험준하다. ;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타협과 조정에 익숙하지 못한 것을 과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p23 사회 관계를 맺을 때는 특정한 규약과 질서의 룰을 지켜야만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 조선시대, 현 한국 사회, 왜곡된 규약과 질서의 룰로서 공동체가 유지되었다는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모순적이다.

p25 오만과 결벽 ... 벽립천인壁立千仞

p27 그의 <박한 기질>은 “돈후, 주신, 박실”과는 거리가 있었으니, 이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기상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는 시비를 각박하게 가리고 출처를 엄격하게 따진다. ; 옆에 있는 사람 피곤했겠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실존주의적 개인주의를 배반하면서 시민들, 특히 지식인들에게 <사회참여(engagement)>할 것을 종용한다. <서울시립대신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讀書記錄 150224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타락墮落과 소외疏外

 

어느 영화 장면이었는지, 아니면 다큐멘터리의 재현 장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 주인공이 어느 산속에 와 보니, 종교를 믿는 수사修士들이 수양修養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과 갈등, 경쟁 이런 것을 전혀 하지 않고 (또는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스스로의 마음만 다스린다. 포교布敎를 하지 않는다.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종파는 소멸되었다.

 

이 종파는 넓게 보면 기독교이고 좁게 보면 영지주의 Gnosticism다. 극단적인 순수함 또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추구가 종교로서의 생존 욕구마저 억제하여 meme이 사라진 경우다. 만약 지고지선의 meme이 있었지만 그것을 소멸시켰다면 그것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생존은 플라톤적이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생존의 확률은 이상주의일 때보다 현실주의일 때, 그리고 근본주의일 때보다 기회주의일 때 생존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의 당파도 그렇지만 많은 정치적 입장에서 ‘강경’과 ‘온건’은 그룹을 갈리게 하는 계기가 된다. ‘강경’은 근본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온건’은 타협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강경-근본주의’는 소외로 빠지고 싶고, ‘온건-타협주의’는 타락으로 빠지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 의義로 상징되는 남명(과 나)는 우파이면서 가치지향적이고 근본주의에 가까운 좌파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마태오의 복음서 7:13)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도道의 길은 좁다. 왼쪽 낭떠러지 넓은 곳은 소외요, 오른쪽 낭떠러지 넓은 곳은 타락이다.

 

p7 그의 학풍이 광해군에서 인조로의 전환을 겪지 않았다면 조선 유학은 실천적, 실무적 기풍으로 나아갔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론과 실천 사이의 균형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불가능하지 않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讀書記錄 150223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물극필반 物極必反 ; Extremes Meet.

 

* 마립간의 철학적 관점을 설명하는 핵심어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459932

6) 뫼비우스의 띠

 

짧게 정리해 보자.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두 분 모두 대학자다. 나는 이 두 분의 가치관의 정오正誤를 가릴 수 없을뿐더러, 우열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호불호好不好는 이야기할 수 있다. 현실을 이야기한 율곡보다 이상을 이야기한 퇴계를 더 좋아한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비교도 같다. 나는 인仁을 이야기한 퇴계보다 의義를 이야기한 남명이 더 좋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에 비해 남명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그냥 남명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p13 남명은 퇴계와 더불어 영남의 사람을 좌우로 갈랐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동안 잊혀져 있었다. 1)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 부침이다. 2) 그는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잊혀졌다.

p5 그 까닭을 사람들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이 몰락했던 정치적 요인에서 찾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학문론> 자체에 기인한다.

 

위 글을 읽고 떠오른 인물은 ‘디오게네스’이다. 내게 디오게네스는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그가 또는 그의 학파가 주장한 가치관이나 가치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궁금했다.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알렌산드로스 대왕과 일화가 전부다. ;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찾아와 곁에 서서 소원을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그곳을 비켜 달라고 하였다는 말은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내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

 

이 책에서는 남명이 많은 저작을 남기지 않은 것에

p6 그는 “주자周子, 정자程子의 입언立言에 털끝만큼이라도 더할 것이 없다”면서 도학의 경학화經學化를 경계했다. ; 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p5 그는 오연하고 결벽한 성격을 타고났다. ; 이 문장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철학은 완벽할 수 (없거나 최소한 남명의 시대까지 완벽할 수 없었고 현재까지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결벽증이 있는 남명은 글을 (많이) 남길 수 없었다.

 

가장 우파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명은 가장 좌파적인 가치관을 가진 디오게네스와 같은 행동을 하고만 것이다.

 

저작著作으로 남으면서 완벽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있는데, 종교의 경전이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身邊雜記 150212

 

* 올해 수학 식式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라고 해 봤자 예전에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공대 출신의 친구들이 도와주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대단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세 사람, 그 중에 가장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것은?

 

1) 30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을 중간에 회상 recall과 재인 recognition할 에피소드가 없었음에도 장기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2) 30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은 무의식에 가라앉았는데, 그 공식을 수학적 감각으로 유도해 내는 사람.

3) 30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이 이해관계( 예를 들어 직업)가 없음에도 꾸준히 공부하여 30년 동안 내내 기억하고 있는 사람.

 

나는 1), 2), 3) 모두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네 번째 타입이 될 것 같다.

 

4) 30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을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30년 만에 다시 공부 시작하는 사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2-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의 정석 표지가 노란색에서 연두색으로 바뀐겁니까? 4번 유형의 사람처럼 수학을 다시 공부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세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5-02-12 11:06   좋아요 0 | URL
제가 공부했던 `수학의 정석`은 `수학 1 (상, 하)`와 이과용 `수학 2`였습니다. 너무 낧아 다시 구입한 책은 중고로 `공통 수학`과 `수학 1`, `수학 2`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링크하려 했는데, 검색이 귀찮아 색 표지가 이쁜 것으로 했습니다.

문제 풀이와 더불어, 증명, 암산까지 곁들여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생각보다 어렵네요. 확실한 자신김을 갖고 푸는 문제는 초등학생용 문제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02-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우, 마립간님의 묘사는 정말 좋아요, 요즘 아이들 말로 코드가 맞아요, 제게.. ㅋㅋ

마립간 2015-02-13 07:47   좋아요 0 | URL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저에게 고독감을 덜어줍니다.

마녀고양이 님도 코알라와 함께 수학 공부를 시작해 보심이 어떻할지요?

마녀고양이 2015-02-13 10:34   좋아요 0 | URL
수학 공부여~, 언젠가는 개요 정도는 다시 훑고 싶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코알라는 중3이니까, 스스로 혼자 해야 하는 시기라서 그냥 맡기려구요. ^^

솔직하게 수학은 영 당기지가 않아서. ㅠㅠ

조선인 2015-02-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번. 정말 수학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립간 2015-02-16 08:19   좋아요 0 | URL
수학의 천재가 같은 사람이 제 친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