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映畵鑑賞 150616

 

<마지막 사중주> 평점 ; ★★★★☆, DVD

 

기억에 남는 영화들 ; 철학적 의미라는 리스트에 또 한 개의 영화가 추가되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2672787

 

Tessellation ; 뭔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가 아니라, 인생이! 완벽해서,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변화되고 조화되는 질서. 긍정적으로 판단하면 삶의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풀지 못한 한, 맺지 못한 연, 이루지 못한 원이라는 상흔을 남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25년간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 ; 억눌러온 감정을 포함하여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본질적 해석이 아닌, 실존적 해석을 하면 어떻게 되나?

 

Tessellation의 한 가지 현상. 등장인물 줄리엣 겔바트는 여성들!, 여성이 남자나 가족에게 소모하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돌려라라는 여성주의 입장을 충실하게 견지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한 가장 크게 반발하는 이는 그녀의 딸 알렉산드라 겔바트다.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다른 사람 영화평에는 음악에 대한 혹평이 많다. 나는 음악에 대해 문외/無腦한이라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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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50616

 

소설을 안 읽는 대신 만화책을 읽기로 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집어든 책. 기대보다 못하다.

 

<몬스터 1, 2> 책 대여점 대출

 

<공작왕>을 떠올리는 시작, 정의正義의 딜레마. 대의大義를 위해 소의小義를 희생할 수 있는가? 정의에도 공리주의를 적용할 수 있는가?

 

<몬스터 3> 책 대여점 대출

 

방랑을 통한 이야기 전개

<원탁의 기사 円卓騎士物語 燃えろアーサー'> 일본 후지 TV (1979)/한국 TBC 1980/ KBS1 (1981)

<도망자 The Fugitive> 미국 ABC TV (1963)

 

<몬스터 4> 책 대여점 대출

 

다시 <공작왕>을 떠올리게 하는 암시. 정말 <공작왕>과 같은 반전일까?

 

<몬스터 5> 책 대여점 대출

 

<레미제라블>을 떠올리는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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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50615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 해설로 읽는 사단칠정에 군더더기 없이 사단칠정론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밑줄 긋기는 1장에서만

 

p87 퇴계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한 정감과 일반 정감을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라는 구도로서 대립적 해석을 하고, 이것은 둘째 이치와 기의 관계 역시 대립적 구도로 설정하면서 이치와 기는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여기에 따라 셋째, 이치가 기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동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p98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 결과다.

 

p91 이이는 ... 이치가 기를 주재하고 기는 그러한 이치를 싣고 운행하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이치는 기가 아니면 자신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기는 이치가 아니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운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리통기국론理通氣局論,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 밑줄 긋기

p20 하지만 학문의 대상이 반드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에만 머물러야 하는지는 한국에서 한국철학을 하는 필자에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p21 선한 정감 四端과 일반 정감 七情

p21 사단칠정 논쟁의 목적은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개인의 정감을 수양을 통해 이타利他적인 정감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 사단칠정 논쟁의 형식은 이성적이지만, 그 주제는 정감이다. 정감은 사람 행동의 직접적인 이유이며, 따라서 수양의 대상이기도 하다.

p23 많은 사람이 그 마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키워가고 타인의 불행이나 기쁨과 같은 정감에 예민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참으로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사회로 한 단계 더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p31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의 정감은 곧잘 부정적인 시선에서 비껴나지 못했다. 정감과 관련된 우울증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 분노와 증오는 종종 폭력을 수반한다. 순간적인 성적 욕망으로 인해 .../p32 그러나 전쟁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 정감을 포기했던 사회는 사랑이나 즐거움, 행복과 같은 따뜻한 정감도 잃어버렸다.

p39 사람의 행동은 특별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 말고는 대부분 그 날 그 날, 혹은 그때 그때의 정감에 따른다./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행위들도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정감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p40 그런데 문제는 정감이 지닌 이중적 가능성에 있다. ... 정감은 일반적으로 개인적 속성에 속하고, 선이나 악과 같은 단일한 속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p42 공적公的 정감 ... p43 즉 사단四端/p43 사적私的 정감

p46 라는 강제화된 행동 및 문화 규범의 내면에 인함을 배치하면서 탄생한다. ; 다른 분의 설명은 예는 질서

p47 유학은 현실적으로 악한 사회도덕적인 이상 사회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p48 ‘하늘로부터 받은 것’ ; 순환논리의 모순이다.

p52 맹자가 중시했던 것은 이러한 정감이 선천적이며, 따라서 누구나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p54 맹자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사람이 가진 선한 감정이 마음 전체에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역시 순환논리의 모순이다.

p56 그것이 비록 사람만이 가진 특징으로 정리되고 있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보편적 정감의 실정 가능성을 보여준다./선한 감정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감을 객관화해가려는 노력이 이론적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다. ; 보편적, 객관적으로 단정되지 않는다.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뜻이다.

p59 선한 정감이 영역만큼은 우주 보편의 이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객관화될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통일된 행동 양식을 만들려 했다.

p60 보편과 특수, 70억 인구가 같고도 다른 이유/사실 보편이나 형이상학 등과 같은 개념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특수한 사실들과 동떨어져 있다./p62 그러면 이 같은 70억 전체의 각기 다른 특수를 묶어서 하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 특징은 무엇일까?

p62 보편과 특수는 결코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동일한 형태로 섞여 있지도 않다./p65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형체나 변화, 운동 등은 변하게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질서와 그에 따른 변화가 합쳐진 것이다.

p68 그렇다면 사람에게 주어진 사람의 이치는 무엇일까? 주희는 ; 사람에 불성이 있다고 했던 불교를 차용하고, 맹자를 따라 선한 본성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p70 ‘모든 사람에게 강제화시키는 이론으로서는 취약성을 노정하고 있다.

p71 여전히 문제인 것은 선한 정감이 아닌 일반 정감이다. 일반 정감 역시 원론적으로는 본성이 정감의 형태로 그대로 드러난 것이므로 그 자체는 본성을 실현하는 정감이다. 그러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은 선한 정감이므로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든 설정해야 하는데, 주자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p73 <천명도설>에서 선한 정감인 사단四端을 이치가 발현한 것으로, 일반 정감인 칠정七情은 기가 발현한 것으로 정리하자

p75 사람이 선한 정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객관화하기 위한 이론화의 과정에서 그것을 절대적 선함인 이치의 영역으로 보려 했던 이황의 입장과, 본성이 정감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그 정감의 일부인 선한 감정으로 보려던 기대승의 입장이 부딪친 것이다.

p78 선한 본성으로서의 이치가 선한 정감과 관계하고, 다양한 속성으로의 기가 일반 정감과 관계하기 위해서는 이치가 선택적으로 제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해 이치도 능동적인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주자학 입자에서는 능동적 속성은 기의 영역이다. ; 이황은 주자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했지만 사문난적으로 몰리지 않았다.

p79 그러면 이황은 기대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할까? 그것은 선한 감정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확보함으로써 ; 플라톤-노자주의의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완성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항상 약점을 만들게 된다./정감으로 드러난 후 그것이 각각의 상화에 맞도록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곡학파와는 ;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관점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기회주의적인 이기주의자나 악덕에도 같은 논리를 제공해 준다. 율곡학파의 후계자가 서인이 되고, 세도정치를 하지 않았나.

p80 기대승 ; 일반 정감 역시 본성에 의해 발현된 정감이라는 주장은 여기에서 나온다.

p81 정감을 잘 다스려서 선한 정감으로 만들면 그것이 선한 정감이지, 태생부터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정감이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호락논쟁과도 일맥상통하고 데카르트의 주장한 이원론의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p81 비록 이치와 기가 하나처럼 섞여 있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그가 중시한 것은 이치와 기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은 존재라는 점이다. ; 나는 이기일원론을 지지한다.

p85 ‘나는 수영을 배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이론은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들이 대단히 많다. ; 이런 풍토는 수학을 순수학문을 위축시킨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도 수학을 수단을 생각했다. 공부는 합격을 위한 수단을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는가?

p85 흔히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 이 말은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86 퇴계 ; 공부는 자신이 품부받은 본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사적 정감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자기의 일반 감정을 제어하도록 하는 공부이다.

p87 고봉 ;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공부인 성성 공부는 바로 자신의 생각을 경전이나 시비지심 등을 통해 점검하여, 그것이 옳게 드러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피는 것이다. ; 공교롭게 다른 이유에 의해 남명은 공부 방법으로서 독경讀經을 중시 여기게 된다.

p87 퇴계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한 정감과 일반 정감을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라는 구도로서 대립적 해석을 하고, 이것은 둘째 이치와 기의 관계 역시 대립적 구도로 설정하면서 이치와 기는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여기에 따라 셋째, 이치가 기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동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p91 이이는 ... 이치가 기를 주재하고 기는 그러한 이치를 싣고 운행하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이치는 기가 아니면 자신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기는 이치가 아니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운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p95 맹자와 순자의 입장까지 모두 집대성한 주자학은 맹자의 입장을 중심철학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적인 악의 가능성에 대해 순자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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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映畵鑑賞 150612

 

<황해> 평점 ; ★★★☆, DVD

 

어느 분이 <황해>에서 하정우의 연기가 일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되었다. 하정우, 김윤석의 연기는 일품이다.

 

반복적인 회상 장면이 나와 이것이 뭔가 했는데,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다. 그러나 이 반전은 영화의 완성도를 망가뜨렸다. 마지막의 반전의 그야말로 사족蛇足이다. (별점에는 반영을 하지 않는다.)

 

* 갑자기 영화평을 쓰게 된 것은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영화평 때문이다.

 

* 프로이트와 매드 맥스 http://blog.aladin.co.kr/749915104/7591934

*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583948

 

나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의 지은이),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지은이),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지은이)가 이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배경으로 여성주의입장에서 줄거리를 전개한다면 어떤 줄거리가 가능할까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보지 못했다. <황해>에서 여성주의에 입각한 가치관을 가진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인공이 등장한다면 어떤 줄거리가 가능할까? 내 상상력을 넘는다.

 

전통적인 남성중심주의의 여주인공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동방불패>의 동방불패 애인이 해당된다. (내가 지지하는) 자유주의 여성주의 입장의 주인공에는 <미녀와 야수>의 책 읽는 벨 Belle, <슈렉>의 외모를 포기한 피요나 Fiona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정희진, 우에노 치즈코, 리베카 솔닛의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어느 주인공이 가장 그들의 가치관에 근접한 인물일까? 델마와 루이스? 이들이 <황해><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상황이라면 퓨리오사 Furiosa 이외의 다른 캐릭터를 가질 수 있을까?

 

퓨리오사는 여성이 맡은 남성화된 캐릭터라는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평가에 나는 동의한다. ; 퓨리오사는 <sex>는 여성이지만, <gender> 는 남성'인 캐릭터'. 그녀는 "모세" 가 되어서 여성을 이끌고 꿀과 젖이 있는 가나안으로 가려 한다.

 

* 여자에 대한 생각들 (만화영화 여주인공)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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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6-1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해, 아윽, 황해... 참 싫은 영화였어요. ^^

여성성에 대한 글을 읽으니, 떠오르는 기억 또는 통찰.
저는 남자들만 가득한 사회 생활(IT 관련 업종 대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또는 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여성성을 더욱 이용했었습니다. 잘 웃고 싹싹하게 굴고 애교 떨고
여성스럽게 부탁 잘 하고, 분위기 돋우고, 그러면서 일은 열심히 하고...... 그래서 남성들 틈에 끼어 있었죠.
어찌 보면 서글픈 일입니다, 내가 그랬지, 싶은 생각....... ㅎㅎ

마립간 2015-06-12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내가 참 싫은 환경일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간접 경험, 이로 인해 보다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한마디로 삶에 대한 치열함을 느꼈습니다.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로는 괜찮았습니다.

여성성 ; 여성성은 긍정적인, 평화적인 환경에서는 분명히 남성성보다 효용이 있지만, 부정적인,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효용이 있나 ... (통상적인) 페미니스트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마녀고양이 님의 댓글에 있는 행동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평가도 궁금해지는군요. 과연 긍정적일지.

지적 호기심을 떠나 세상이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제가 여성이었으면 꽤나 서글펐을 것입니다.
 

 

* 디폴트 ; 기본값 default value

 

1)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2) 왜 인류는 지속되어야 하는가?

 

* 새로 정리된 문제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7045

 

1) 번과 2) 번의 질문은 나의 오래된 의문이었다. 그리고 별도의 의문은 3) ‘윤리/도덕의 기반이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3) 번의 기반은 임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 ) 윤리/도덕은 무엇을 임의의 기준으로 삼았는가 고민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나는 살아야 한다.’이거나 인류(확장된 나)는 지속되어야 한다.’이다.

 

그렇다면 악은 어떤 임의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이에 대한 결론은 나는 살아야 한다.’이거나 인류(임의의 확장된 나)는 지속되어야 한다.’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에 등장하는 ‘TaniyamaShimura-Weil conjecture’의 수학자 타니야마 谷山 豊1)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없어 자살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써 불가역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살아야 될 이유가 없어 생을 끝낸 뒤 살아야 될 이유를 찾게 되면 삶을 되살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의와 선과 같은 미덕美德이 악덕과 같은 뿌리를 함께 한다면, 선악, 정의를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궁금증] 악덕에서 미덕으로의 정향定向성은 존재하는가?

 

나는 타니야마와 달리 자살하지 않는 설명을 디폴트로 이야기한다. ‘나는 살아야 하고, 인류는 지속되어야 한다가 기본값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 세상의 미덕과 악덕에 대한 3가지 관점

1) 지고지선至高至善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2) 지고지선을 향한 실천적 목표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선의 여지가 있다. 3) 세상의 다면성(다중 지위)을 고려할 때, 현재의 미덕과 악덕은 균형점에서 균형점으로 이동할 뿐이다. (지고지선에 양성평등을 바꿔 넣어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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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6-1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가 이렇게 어렵습니까?
저는 조금만 수준이 높아져도 못 따라갑니다. ㅋㅋ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 왜 자살하지 않는가?
저는 가족 때문에라도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나 없이는 못 살 가족이 친정 어머니 포함해 넷이랍니다.
외식을 해도 제가 빠지면 김빠져 한답니다.


마립간 2015-06-12 11:39   좋아요 0 | URL
저는 가르치려는 남자입니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가족에 기대는 것은 1)의 이유를 2)으로 돌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안해로 부터 많이 듣는 이야기죠. 하지만, 2)번의 이유도 감정이란 것 이외에 이유가 없을 뿐더러, 교통사고와 같이 가족 중에 홀로 남는 경우에도 삶의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기 보다 새로운 이유를 찾게 됩니다.

모든 것의 기반에 어느 정도의 임의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단칠정에도 동일합니다.

마녀고양이 2015-06-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심 궁금합니다, 마립간님.

실존 철학을 하시는 분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자체가 타의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하고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자신의 의미라... 참으로 모호한 명제입니다.

마립간 2015-06-12 08:06   좋아요 0 | URL
현재 저의 관심은 선과 악이 `개체보존본능`과 `종족보존본능`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다면, 어떻게 다른 본질로 정의할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디폴트가 아니였다면, 제 자신의 의미는 `의미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을지 모르겠습니다. 타니야마처럼요.

푸른기침 2015-06-1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저의 경우에는 1) 2)의 `왜`에 방점을 두는 편이기에 준거로서는 망성여집니다.

개체마다 `왜`가 다른 상황에서 단지 `살아야 한다`나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기암시에 불과한 것 같아서요. ㅎ

뜬금없는 댓글이었습니다.

좋은 계절 보내시고요^^

마립간 2015-06-12 08:09   좋아요 0 | URL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뭔가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죠.

댓글 없는 서재라 뜬금없는 (그러나 뜬금없는 것이 아닌) 푸른기침 님의 댓글이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