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709

 

<몬스터 11, 12, 13, 14, 15, 16> 책 대여점 대출

 

기본적인 줄거리의 방향 전환이 없으면서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맥거핀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다중인격의 반전은 아니다.

 

<몬스터 17, 18> 책 대여점 대출

 

책의 막판에 다다르면서 긴장감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책을 결말을 어떻게 맺을까? 이런 느낌을 받았던 만화 이현세 작품 <아마게돈>이다. ‘이런 주제와 줄거리로 이야기를 만들면 끝을 낼 수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마지막은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막판에 힘이 빠진 느낌이다.

 

이 책은 요한으로 표현된 절대악에 가까운 몬스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과연 절대악에 대한 만화의 표현이 그 만큼 파괴력을 가질지 의문스러웠는데, 다 읽고 나서 실망했다. <극락도 살인사건>과 같은 에피소드가 전개되지만, 악덕의 실감은 영화 <황해>에서 더 강력했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요한과 안나가 달리 성장했다는 것, 511 킨더하임의 출신 볼프강 그리마가 또한 요한과 달라다는 것.

 

절대악의 유래를 상상하는 것, 절대악을 표현하는 것 모두 어렵다.

 

소설대신 읽었던 만화책도 생각보다 지루했다.

 

예전에 <악의 역사 세트> 중 하나인 <메피스토펠레스>를 읽다가 말았다. 이 책을 읽다가 만 이유가 밑줄긋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더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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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7-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의 역사 세트를 말씀하시니... 혹시 <악>이란 신간을 아시나요?
제가 장바구니에 넣어 둔 책이에요. 문학 작품으로 인간의 악을 살펴보는 작품이랄까요.

저는 악과 무지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고 느껴요. 아니, 사람들이 그 둘의 차이를 헷갈려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땅콩 사건`은 악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무지 또는 미성숙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은 악을 실천하는 것인가, 미성숙해서 그런가 하는 문제에 관심 있어요.

아직 <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읽게 되면 정리해서 페이퍼를 올려 볼게요.



마립간 2015-07-10 07:31   좋아요 0 | URL
<악>이란 책, 몰랐는데 흥미가 가는 책이네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
 

 

* 讀書記錄 150708

 

<일베의 사상>

 

<일베의 사상>에 대한 다른 분의 독후감을 보니, 호평과 악평의 양극단이 많다. ‘일베에게 무슨 사상씩이나 ...’ 나는 이 책 내용에 적합한 제목은 일베에 대한 고찰이 적절하지 않을까. 수식어를 붙힌다면, 심리학적, 사회학적 고찰 정도. 사상의 의미를 생각정도로 제한한다면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제목도 아니다.

 

일베가 처음 언론에 등장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촛불집회가 아니라 나는 꼼수다였다. 내가 나는 꼼수다를 접했을 때, 조롱은 진보의 전유물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평론에서는 나는 꼼수다에 평에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달 방법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나는 꼼수다의 전달 방법이 긍정인가 의심스러웠다.

 

* 인류는 (윤리적으로) 진보하는가?

(현상적만이 아니라 진리로서) 인류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베는 반동이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다.

p10 일베와 같은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일베의 대척점

이 책에 어느 일베 유저의 증언을 서술한다.

 

p120 한 일베 유저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김치년들은 어렸을 적부터 오빠, 남동생,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란다. X발 이 때문에 김치년들은 보호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늘 오빠, 남동생, 아버지가 어려운 문제도 대신 해결해 주고 오냐오냐 키운다. ... 자기들이 싸질러놓은 일도 스스로 해결 못한다.

 

그런데 이 유저의 심리기제는 무엇일까? 질투, 열등감, 공포감? 나는 이글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책의 글쓴이 박가분 씨는 왜곡이라는 말을 썼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정서 반응 공포가 포함되어 있다. 이 공포감은 뿌리가 되는 정서라는 점에서 아래글에서 나타나는 공포와 동일하다.

 

어느 알라디너 글에서 발췌 ;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폭력과 성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JK ; “일베, 너희 찌질한 남자들, 여자들이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그렇게 두렵냐?”

일베 유저 ; “... 그래 ...”

 

* 두려움의 극복

두려움은 동물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정서반응이다. 다른 모든 동물에도 있는 이 정서반응은 전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강력하게 나타내는데, 매개는 죽음이다. 파충류의 뇌는 현재, 기억을 가진 원숭이의 뇌는 과거, 전뇌를 사용하여 추론이 가능한 인간의 뇌는 미래를 담당한다. 이런 공포 극복은 내집단 편향으로 이뤄진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보면 남성의 내집단 편향의 사례를 잘 보여준다. 내집단 편향이라는 것에 여성도 (사람이므로) 역시 해당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관점에서 즉 성별, 지역, 정치적 성향을 통해 내집단 편향을 보여주는 것이 일베. 내집단 편향의 매개는 평등이고, 평등의 내용은 혐오할 권리의 호수성 reciprocal’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p58 물론 여성도 온갖 심각하게 불쾌한 짓을 저지를 수 있고, 여성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폭력에 관해서라면 이른바 성()의 전쟁은 유달리 일방적이다.

 

사이코패스 psychopath의 진단은 남성이 전제 조건이다. 여성에는 사이코패스가 없는데, 이는 진단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 학문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남성의 폭력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해결책도 아득하다. (누군가가 연구하기를 기대하지만 요청하지는 않겠다.)

 

p16 ‘세계를 동물화하라 ; 나는 플라톤-노자주의 선호選好자다. 인간이 일베들이 주장하는 동물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동물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나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인정한다.

 

* 개눈에는 똥만 보이는 격 http://blog.aladin.co.kr/cureless/7617413

p64 그들이 인터넷에 관철되는 논리를 인터넷을 넘어 현실에도 끌고 온다는 점이다. ; 그래서 우리는 일베를 무관심하게 놓아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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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50707

 

<일베의 사상>

 

시간상으로 먼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까, 가까운 이야기로 시작할까 하다가 가까운 이야기부터.

 

* 일베의 논리/나치 Nazi의 논리/주장, 동물애호

관심이 있었던 책이다. 그러나 읽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의 전개에서 ‘일베의 논리’를 떠올렸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일베의 논리가 뭘까? ‘의’는 (영어의 ‘of’)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내용에 따라 말 그대로 수식이 될 수도 있고, 소유, 동격, 주격 등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야기를 한 분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판단하기에는 ; 회의론적인 상대주의(p140)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과학을 할 때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나치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한다. 그래서 나치는 절대악惡이라는 판단을 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 인지부조화를 일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동물애호’다. 사람들은 나치가 동물애호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나치가 동물애호를 주장했기 때문에 동물애호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의 모순이나 인지 부조화는 널리 인용되어 현재 그 느낌은 많이 희석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였거나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에 대해 동물애호를 주장한다면, 나치의 논리를 그리고 주장을 이어받는 것이다. (아! 수식어 ‘동물애호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떤 사람, 집단 또는 사건이 연관되었기 때문에 그 대상 자체 부정적인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이런 오류에 ‘환향년’이란 단어가 있다.

 

* 어렸을 때 궁금했던 것 ; 인류는 (윤리적으로) 진보하는가?

나는 어렸을 때,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도덕적으로 더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바탕에는 사람은 아는 것을 실천한다고 생각했다. (사유하는 대로 행동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 vs 아우구스티누스) 그러나 커가면서 사회가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 중에는 악한 사람도 많고, 선善을 알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 경험에 제한되지만, 세상의 선악은 일정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인류는 진보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글을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인데, 당시 소크라테스가 속한 집단 ‘우리’라는 것에는 생각하는 아테네의 귀족만이 해당되었다. 이 집단에는 여자도 포함되지 않았고, 노예도, 스파르타의 귀족도, 페르시아의 왕족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우리(라는 자아)’에 스파르타를 포함한 그리스내의 다른 폴리스를 포함시키려 했다. 당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인류는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를 보면 자기 자신만을 안다. 성장하면서 가족을 배려한다. 조금 더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우리는 나와 가족이 대부분이고 어느 정도까지는 계층이나 계급이다.) 대개의 사람은 여기까지다. 조금 더 진보된 사람은 ‘우리’에 인류를 포함시킨다. 인종, 성별, 국가, 문화를 넘어선다. 이들보다 더 진보된 사람은 ‘우리’에 생명과 생태계를 포함시킨다. 이로서 나는 인류는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편성을 어느 정도 확신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떤 사회 구성원 외부의 소통은 내적 유대감의 약화와 집단 내 (in-group)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감소하는 것을 알았다. 개인은 외부에 개방적이며 소통-공감하면서 집단 내로도 공감하면서 배려할 수 있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인류 사회는 상보적인 행동양식을 통해 윤리적 미덕을 더 증진할 수 없다는 현상을 보여준다.

 

(불의에 관해서는 불관용이 미덕이겠지만, 대개의 경우) 불관용보다는 관용을 윤리적으로 생각한다. 내집단 편향을 관찰된 모순이라면, ‘관용은 불관용을 관용해야하는가’는 질문은 논리적 모순이다.

 

이후에는 샤르트르 Jean Paul Sartre와 레비 스트로스 Claude Levi Strauss의 논쟁을 알게 되었다.

 

이해하기 쉽게 인류의 진보를 양성 평등으로 치환해 놓고 생각해보자. 인류는 역사를 거듭하면서 남녀불평등에서 양성 평등으로 진보해왔는가? 만약 진보하지 않았다고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 진보가 없었던 남녀평등이 어느 순간부터 black swan처럼 갑자기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실은 ‘여전히’라는 형식적 양성평등과 실질적인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억압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가 없었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의 모든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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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50706

 

<수학의 몽상>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가끔 혼돈스러울 때가 있으면, 기본으로 돌아가 본다. 나의 가치관은 수학과 같은 것을 추구했으니, 수학책을 읽는다. 그러고 위안이라는 정서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려는 목적과 부합된 글을 다른 알라디너 독후감에서 봤다. 아래에 링크한다.

 

구판 초판이 2000년 발간인데, 이제야 읽었다. 당시 수학 붐에 기여한 책인데, 지금 읽으니 약간 유행에 뒤처진 느낌.

 

p28 “수학의 본질은 자유다.” ; 나에게 자유라는 말을 너무 거창하다. 돌이켜 보면 변화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을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수학이었을 것이다. 즉 수학에서는 두려움을 가장 적게 느꼈을 것이다.

 

p41 질문: 다음 중에서 과학적인 글은 어느 것인가? 나는 4가지 제시된 글을 읽으면서 좀 당황했다. 4편 모두 과학적인 글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 영웅들의 사고방식

http://blog.aladin.co.kr/709537183/7614436

아무리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도 실전에 돌입하면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결국 그런 변수가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성패가 나뉘는 것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데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이류 모방자에 불과하고 (처해진 상황이 다르니 100% 모방할 수도 없고) 모방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 하려면 원리를 꿰뚫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따라하는 건 한계가 있고 결국 나에게 응용하여 어떻게 생산적인 결과를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거다.

그러려면 현상만 봐서는 안 되고 원리, 그것을 가능하게 한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심도깊게 연구하라는 것이다.

    

* 밑줄 긋기

p5 수학은 가장 자명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를 묻고 적절한가 여부를 따진다.

p7 이런 의미에서 수학은 이미 하나의 철학이다.

p20 왜 수학에서는 이런 무의미한 말이 진리값을 갖는 진지한 명제가 되고, 반대로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장은 무의미한 nonsense말이 될까?/p27 현실에 적절하게 적용되는가 여부가 수학적 진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p28 “수학의 본질은 자유다.”

p32 수학은 또다시 등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의 것과 다르다.

p41 질문: 다음 중에서 과학적인 글은 어느 것인가?

p47 마술사가 아니라 과학자가 되게 만든 것, 갈릴레오가 거짓 실험을 했음에도 과학혁명의 아버지가 되도록 만든 것, 그것은 바로 이처럼 운동이나 원리를 수학적인 공식으로 표현하려는 태도였다.

p58 특히 중요한 것은 분석이다. 종합은 어떤 사고나 행동에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반면 분석은 근대 과학에만 고유한 것이다.

p69 사물의 수학화 ... 시장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가 그것이다. 이는 자연의 수학화와 나란히 진행돠었던, 서구의 근대 세계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p71 계산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어떤 대상이 갖는 질적인 측면이 추상되어야 한다. ‘추상 abstraction’이라는 말은 특정한 속성만 남기고 다른 것은 제거한다는 뜻이다. 즉 수로 추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양적인 속성만 남기고 다른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p79 이처럼 -22는 전혀 다른 성질의 수다. 음수는 대수적인 수인 반면 2와 같은 무리수는 기학적인 수다.

p142 수학적인 법칙 Gesetz’

p262 예를 들어 모든 추상적 개념의 집합A라고 할 때, 이 집합 A 자체가 추상적 개념이라고 하면 이 집합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다. 반대로 구체적인 개념의 집합B라 하고, B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말하면, B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을 U라고 하면, U 자신은 U에 포함되는가, 아닌가? 포함되면 U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하는 집합이 되어 가정과 달라진다. 또 포함되지 않으면 U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하지 않는 집합이므로 U에 포함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도 모순이다./그런데 자기서술적이지 않은이라는 말은 어디에 속할까? 그것이 만약 자기서술적이지 않다면 자기서술적인 것이 된다. 반대로 자기서술적이라면 자기서술적이지 않은 것이 된다./p266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돈을 낳은 돈돈이 않은 돈은 같은 돈인가 다른 돈인가?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앞의 돈은 자본이고, 뒤의 돈은 이윤이나 이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새 하나가 되어 또다시 돈을 낳은 돈으로 하나가 된다. 최초에만 구분되는 이 두 가지 은 곧바로 통합되어 같은 돈이 된다. ... 그 합산된 돈에 새로이 아지를 계산하는 것은 과연 수학적으로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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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50703

 

<일베의 사상>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내가 실천하고 여부를 떠나서 이상을 삼는 바는 신독愼獨이다. 일베(일간 베스트)는 신독과 대척점에 서 있다. 몰이상의 이상, 내게는 몰이성의 집착으로 보인다. 물론 이성이 정의나 최선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밑줄 긋기만 먼저. (처음으로 4색을 사용했다.)

 

* 밑줄 긋기

p8 일베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유머 커뮤니티다. 가입자 수만 해도 백만 명에 육박하고 동시 접속자 수는 평균 1~2만 명이다.

p9 인터넷이 진보적 유저들에게 친화적이라는 그동안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p9 일베가 만들어낸 신조어와 유머 코드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일베가 많은 네티즌들의 프레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p10 그러나 그들을 비인격화하거나 벌레 취급한다고 해서 (설사 그들이 실제로 벌레 같은 짓을 한다고 해도) 일베와 같은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p12 마지막으로 그들은 더 이상 국가로부터 결정적인 변화나 개혁을 기대하지 않는다.

p12 의사소통 행위, 즉 공적인 숙의 deliberation

p13 칭찬받은 인터넷 환경 ... 공론장의 합리성과 시민의식 같은 윤리적 규범을 타인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고서도 서로 재미를 추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p15 말하자면 동물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동물화란 이성의 실종이나 인간성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인정욕구에서 초래된 방향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 악에서 선으로 정향성은 무엇인가?/p16 ‘세계를 동물화하라

p19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들의 거울쌍이다./진보좌파에 대한 반동에서 연유한다. 일베는 본질적으로 진보와 좌파의 증상이다. 진보와 좌파의 존재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베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33 타인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행위나 획일적인 분위기를 지칭하는 민주화라는 단어의 이러한 부정적인 용례는 사실 일베 이전부터 활동했던 보수적인 네티즌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p33 ‘가치 전도

p36 무엇보다 일베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네티즌들을 저격하고 신상을 터는그 특유의 공격적인 방식 때문이다.

p38 삶의 분노를 표출시키는 것, 인터넷이라는 광장을 통해서 집단화하는 것, 설사 그 자체가 배설일지라도 일베 현상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p39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른바 팩트.

p42 “빠가 까를 양산한다.”

p51 같이 병맛스럽게 노는 곳으로 여겨지던 곳(이외수도 디씨에 자주 접속하는 유저였다.)에 갑자기 훈계조로 나서며 사과문을 쓰라고 대응하는 것이 유저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이다. ... 나름대로 유저들 간의 평등한 상호인정을 추구

p56 일베 스스로 독자적인 서버를 확장하며 유저들이 직접 자신의 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운영 방침을 바꾼 것이다. ... 일베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p59 유머 코드 ; 나에게는 하나도 웃기게 보이지 않는다.

p62 네티즌들은 이러한 증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기도 한다./그렇게 공격받고 상처 입은 만큼 다시 공격하고 성처를 주는 것이 인터넷 세계에 존재하는 일종의 윤리이다.

p64 그들이 인터넷에 관철되는 논리를 인터넷을 넘어 현실에도 끌고 온다는 점이다./p85 인터넷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호수성을 인터넷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는 데 있다.

p64 증여와 답례의 호수성 reciprocity’ ... 그들 나름대로의 평등하고 수평적인 사회질서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p68 유희로서의 ; 대부분 긍정적으로 사용되었던 유희가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 않음을 나타낸다.

p68 여성 커뮤니티 안에서도 특정 정치인이나 논객에 추종 분위기가 형성되기고 하고, 남성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반대파에 대한 상당히 과격하고 음험한 비방이 일어나기도 한다. ... “여성시대는 여자들의 일베 같은 곳이야” ... 어디에든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77 하지만 그러한 공간이 반드시 평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

p79 이러한 난장은 이를테면, 하버마스가 규범화했던 공론장의 모델과 다르다. ; 나는 난장보다 수학적 증명을 좋아한다.

p83 우리가 오늘날 악성 댓글이라든가, 일베와 같은 존재에서 보게 되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들은 사실은 원래 강준만에게는 일종의 이상이었던 셈이다.

p85 무엇보다 인터넷의 호수성이 지닌 이러한 양면성은 인터넷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무의식으로 규정한다.

p87 여기서 곤란한 점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분노하고 항의할수록 상대와 똑같은 수준으로 격하된다는 점이다.

p89 일베 유저들은 시위나 집단적 의견 표명 방식을 꺼린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네티즌들과 다르고 심지어 일본의 넷우익과도 다르다.

p90 <나는 꼼수다> ... 공적/국가적 정의진리를 말한다는 정치적 환상이 부여

p91 일베 유저들은 ... 인터넷에서는 어떤 욕망이든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적이고 평등한 공간이며, 무엇보다 거기서는 모두가 희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

p95 우리는 일베와 같이 자신의 혐오 문화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젊은 우파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인터넷 문화가 결코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p96 ... 일베 역시 이미 존재했던 반여성주의, 지역 혐오, 정치 혐오 정서들이 네트워킹에 의해 결집시켰다. ; 일반 정감의 부정적이 예이다.

p100 우리가 획득한 국가의 이미지는 현실의 부족함을 극복하는 언젠가 도래할 정상국가의 모습이었다./p103 오늘날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상국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줄 국가란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한민국이다.

p105 애초에 인터넷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한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수직적인 위계 질서가 아닌 상호 평등한 네트워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보에 더 친화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p106 특기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군필자 남성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안티 정서가 인터넷상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p107 급속한 심리적 환멸과 실망이 사람들을 차악이 아닌 최악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에서 얼마나 실망하든, 옳은 것은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꾸준히 외쳐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환경단체에 가입해서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꾸준히 문제의식을 느껴온 사람들은 현실의 정치인에 대해 아무리 실망을 해도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

p110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p114 일베의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초 사이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혐오 성향 내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이가 있다. ; 무슨 차이냐 하면/태도를 더욱 공공연하게 과시하기 때문

p116 이러한 관지자의 방침은 바로 혐오발언을 하나의 문화적 권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유래한다.

p117 시사IN의 한 기사가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일베 유저는 특별한 종류의 소수자이다.

p119 요컨대 여성에 대한 억압은 성별화된 자신의 모습공적으로드러내지 말 것에 대한 암묵적인 요청에 기초해 있다.

p120 물론 여기서 묘사된 여성의 섹슈얼리티, 성적 특질은 굉장히 왜곡된 형태로 표상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왜곡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의견에 어떤 분은 문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p121 법학자인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일베여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p123 만일 우리가 일베에 대해 관용과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가 일베를 관용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일베를 관용하더라도 일베의 공격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베가 보수든 진보든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거기게 있다.

p128 이렇듯 일베는 누군가를 혐오할 권리위에서 유저들 간의 고유한 상호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상호 비존중의 상호인정 속에서 자신들만의 형제애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p132 이러한 혐오 문화가 일베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인터넷의 혐오 문화, 타인에 대한 비아냥거리는 능력의 과시 등은 오히려 진보적인 인터넷 논객 쪽에서 시작되었다./일베는 일종의 인터넷의 민주화 현상

p134 일베는 자신들만의 언어 습관과 의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유럽의 네오나치보다는 미국 사회의 히스패닉이나 흑인 커뮤니티에 가깝다.

p136 이른바 팩트.

p139 그들(일베)... 이러한 의심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주장이든 가치판단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현실을 초월한다.

p140 일베 유저들은 커뮤니티 바깥에서 논쟁할 때 흔히 회의론적인 상대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p140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이중성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중성이 일베만의 것은 아니다.

p144 일베 유저들은 몰이상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몰이상성 역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념적이다./p145 일베의 사상이란 한 마디로 몰이상의 이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p147 ‘팩트 대 감성팔이라는 저 구분 자체가 감성적이고 이념적이다. 예를 들어 일베 유저들 자신이 항상 논쟁 과정에서 팩트에 강하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5 18이 폭동이라는 의혹을 제기할 때 ...

p146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 너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

p153 미학 aesthetics이란 18세기 독일의 비평가 바움가르텐에 의해 고안된 용어다. 그것은 오늘날 흔히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성에 관한 학이다.

p156 일베는 ... 미학적 공동체 ; 즉 일베는 감성 공동체이다. 부정적인 일반정감의 결집

p169 어떤 사건에 대한 역사적 의미 부여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p178 한편 공론장에서 자유로운 논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해 가능성 Verst ndlichkeit, 진리성 Wahrheit, 정당성 Richtgkeit 그리고 진실성 Wahrhaftgkeit이라는 선험적인 의사소통의 행위 규범들이 요청된다.

p219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에서 단어를 순화시키고 말투만 점잖게 바꾸면 대부분의 남초 사이트에서의 주류 사상이나 발언과 일치한다.

p236 이 모든 것들은 일베 내에서도 이 사회 속에서 청춘과 젊은이들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며 기만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정의감과 공분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241 이와 같이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난 날 촛불이 들었던 이들이 자기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을 반성하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의 국가에게 불가능한 이상이나 도덕성을 국가와 정치인에게 기대하거나 설교하는 상상력 대신 일상 속에서 타인들에게 먼저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가족 정도에게 겨우 소통하는 정도, 그나마 열린 생각을 가졌을 법한 알라딘에서도 상대는 나를 벽으로 나는 상대를 벽으로 느끼는 경우가 있으니.

p243 이렇든 일상적인 자치활동과 내부의 민주주의에 의해 축적된 역량과 자신감이 국가 개입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p246 ‘거창한 사상 대 소시민적 현실’/맑스주의자들의 전향 배후에 추상적인 사고와 구체적인 삶에 대한 실감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정신적 동요를 발견한다. 말하자면 그러한 동요가 반복되는 것이다.

p247 자신의 이상에 대한 환멸을 견디는 것

p251 상위의 국가에 대한 지지와 항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태주의가 되었든, 여성주의가 되었든, 맑시즘이 되었든,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가 되었든 정치적 이념과 대의는 먼저 수평적인 관계어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만들어나가야 한다.

p252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성폭력도 문제이지만 수평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성폭력의 문제가 훨씬 까다롭다. 수평적 관계 속에는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부터가 개인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한 것인지, 어디부터가 폭력적인 것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p254 무엇을 할 것인가/p255 오히려 그렇다면 촛불을 들었던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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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04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그닥 찾아 읽고 싶진 않으나 궁금은 했었습니다
마립간님의 꼼꼼한 줄긋기 덕분에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볼까?싶기도 하구요~~~
한 번씩 님의 좋은 글들 읽으면서도 안부는 여쭙지 못했었네요~~잘지내시죠?^^

마립간 2015-07-06 08: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읽는나무 님.

책읽는나무 님의 근황을 서재글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재에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2000년 초부터 알고 지내는 알라디너 분들은 마치 고향 분을 뵌 것 같이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