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3분 - 폴 데이비스가 들려주는 우주의 탄생과 종말 사이언스 마스터스 3
폴 데이비스 지음, 박배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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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광자의 어떤 효과는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를 살짝 변경시킨다. 이 미세하지만 중요한 변화들은 분광학을 통해 매우 정확하게 측정된다.-69쪽

변화하는 우주(metaverse)
- 마립간 의견 ; 보다 획기적인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까. 마치 지동설이나 상대성 이론 처럼.-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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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밥상> 서평단 알림
가난한 밥상 - 배부른 영양실조에 걸린 현대인을 위한 음식 이야기
이원종 지음 / 시공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가난한 밥상

 
부제 ; 가난하지 않은 밥상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에서 호모 하빌리스 또는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에스거쳐, 현재 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호모 트위쿠스Homo Twinkus로 진화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모 트윈쿠스가 뭐지?

 앞의 글은 학회 강연에서 들어가는 말로 시작된 것입니다. 비만과 관련된 질환 당뇨, 대사 증후군, 비알콜성 지방간염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과의 관련성을 제시하는 연구도 최근에 발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반대로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는 (특히 여성들) 사회적 움직임도 있지요.

 
왜 사람들은 비만이 될 정도로 많이 먹을까? 이에 대한 수긍이 가는 가설은 유전문화 공진화에 의한 설명입니다. 사람은 수렵 채집으로 생활을 할 때 충분한 영향을 섭취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먹을 것이 있을 때 배를 채워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굶주림의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네요.

 김동리의 ‘보름달’에 나오는 글입니다.

 
나는 어려서 과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는 것은, 으레 옷매무새도 허술한 채, 변소 걸음을 할 때였다. 명절 때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

 
교과서에 나온 이글을 보고 국어 선생님께서는 김동리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시에는 굶주림의 시대였기 때문에 먹을 것이 있을 때, 명절, 잔치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과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사회 환경 동안 즉 대략 50년 동안 사람이 진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죠.

 
40대에 접어든 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아버지가 월급을 가져오시는 날이었습니다. 옆을 돌아봅시다. 세계 인구의 3/4 정도는 지붕이 없는 집에서 살거나 세끼를 모두 챙겨 먹지 못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적절하게 식사를 하는 종심從心을 갖기에는 환경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과연 유기농 농산물은 좋은 것인가. (유기 농산물이 사람에게 좋기야 하죠.) 인구 증가의 밑바탕의 원인은 화석 연료입니다. 화석 연료가 비료, 농약, 벌목으로 통한 공간 확장 등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일간지에서 음식의 양극화를 비판한 바 있는데, 상류층은 유기농 농산물, 하류층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섭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적 당위성은 모르겠으나 유기농은 경제적 비용이 더 높습니다. 만약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즉 유기농으로 돌아간다면 현제 세계 인구의 65억 명 중 아마 40억 명은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화석연료와 관계없이 육식 또는 과도한 육식, 과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상理想적입니다. 아마 이 책을 지은이도 절제된 식사 특히 자율적으로 절제된 식사를 이야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머리 위에 있는 이상理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자신의 배와 가족의 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안해에게 읽으라 하면서 책에 나온 요리들을 한번 해보라고 하니 다음과 같은 남겼습니다.

 
‘이 요리들 하려면 힘들겠어.’ ‘땅이 넓어 텃밭이 있어야겠어.’ ‘시간을 투자해야 해. 전업주부라면 몰라도 맞벌이 곤란해. 부지런해야 돼.’ ‘하나 먹는데, 구입할 재료가 여러 가지네.’ ‘돈도 많이 들겠어. 절대로 가난한 밥상?이 아닌데.’

 
(알라딘 서평단에 선발되어 서평을 남깁니다.) ; 결론은 가난한 밥상은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나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사람들의 (식탐을 포함하여) 욕심이 많아 현실적이지 않다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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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패러독스 -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하여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 엮음 / 당대 / 1999년 12월
절판


"기술 사회는 위험을 구조적으로 생산한다."
(중략) 이렇듯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물질적인 풍요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점점 불안하고 위태롭고 피폐해지는 상황이다.-13쪽

먼 과거에는 가파르고 예측 못할 자연환경(예를 들어 천재지변)이 우리의 삶에 불안과 위험을 주는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어느덧 기술환경이 이름 대체하였다. 생태위기, 안전위기, 윤리위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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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 그래서 어쩌라고 ... 자연환경의 위기로 돌아가라고?-14쪽

바로 그 기술혁신은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소외, 공동체의 해체와 정치적 무력화를 동시에 가져왔던 것이다.-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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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우리 애들 왜 이렇게 싸울까? - 부모들이 잘 모르는 자녀들이 싸우는 이유와 대처법
일레인 마즐리시.아델 페이버 지음, 서진영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 형제간에서 부모 역활

 요약 ; 읽다 보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활자화된 것을 읽으면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아이들의 삶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누누이 확인해오던 터였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형제들이 서로의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인 없었던 것이다.’

 어떤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큰 형은 명문대를 나와서 판사가 되었다 둘째는 대학도 못 가고 (물론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백수다. 그 가정 형편과 개인의 성품을 어찌 알겠느냐 만은 언뜻 떠 오른 것이 ‘부모님이 은연중에 너의 형은 그렇게 혼자 공부도 잘하는데, 너는 뭐냐.’라는 식이 비교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동생의 태어남으로써 왕좌王座에서 물러나는 맏이의 느낌에 쓴 글을 읽을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여러 형제를 대할 때, 형제 내에서도 감정처리가 쉽지 않겠구나.’라는 큰 감정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p37부터 있는 형제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새 배우자에 대한 비교로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감정을 다루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기’부터 ‘아이들이 싸울 때’ 부모로서 행동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까지 추스르는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구나!’라는 느낌 때문입니다. 이 책을 유치원 자녀나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읽히면서 ‘너희 형제는 이러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또는 ‘이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연 모든 부모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감정을 바르게 추스르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는 올바르게 받아들일까?

 p106 형에게 큰 빵조각을 주고 동생에게는 작은 빵조각을 주었다. 작은 아이가 형보다 작다고 불평한다. ; 부모의 반응 ‘왜, 넌 아직 배고프니? 빵 반쪽 더 줄까’ - 공평하게 대하는 것보다 각자 필요에 맞춰 대하세요.

 이 만화에서 동생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빵 반쪽이었을까? 제 생각에는 형과의 비교입니다. 실제로 조금만 아이가 다 먹지도 못하면서 형제들 것을 빼앗은 후 결국 남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청소년기 후반에 모두에게 자동차가 필요하고 모두 자동차를 사달라고 조르면 어떻게 할까. 게다가 경제적 여유도 넉넉하지 않다면.)

 p107 아이 ‘엄마는 누가 제일 좋아요?’ 엄마 ‘똑 같은 사람은 없어. 네가 딸인 게 너무 좋아’

 아이가 사람 나름대로 특별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부모에게 형제 중에 누가 더 좋으냐고 물을 것 같지 않습니다. p109의 ‘각자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내어주세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의 경우 부모의 마음을 자신이 자식을 갖은 후에 깨닫는다고 하죠.

 부모가 규정한 역할이 아이의 굴레가 될 수 있지만 또한 격려(책의 표현대로 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대체하는 것(p184-185)과 부모가 마지막 결정(p202)의 상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의 새로운 결론은 ‘아이들에 맞추는 것이다.’입니다. 그러나 역시 이 또한 부모가 슈퍼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의 상태를 정확이 파악하는 것은 쉽나요. (아이들의 공부 및 진로를 결정할 때, 아이들의 재능을 중시하라고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재능을 어떻게 압니까? 본인도 본인의 재능을 모른데. 이것저것 다 시켜본다. 역시 돈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이 책이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않지만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으면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이 몇 가정에서는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년기의 경험과 감정은 개인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으며 그 시작은 아이들은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알라딘 서평단에 선발되어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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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10-16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배달이 지난 주에 도착했습니다. 여유있게 좀 보내주세요.
 
초한지 세트 - 전8권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 항우를 위한 변명

 신** 사건을 두고 대중大衆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 거리의 범벅이라고 했습니다. 돈, 권력, 여자. 마립간은 잘난 체를 하고 싶어 한 줄을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고 혼자 제 잘난 멋에.) 그런데, 바람구두님이 2007년 9월 27일자 ‘항우의 <해하가>와 우미인의 <우희가>라는 페이퍼를 읽고 나니 갑자기 같은 글의 내용의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중학교 때, ‘보물섬’이라는 TV 만화영화와 그리고 역시 TV에서 방영한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서부영화, 그리고 어느 재벌의 부자간의 경영권 다툼. 이 사건을 보고 남자 사이에 부자父子간의 인연도 필요 없고, 형제, 친구도 필요 없는 주제가 4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가 권력, 둘째가 돈(재력), 셋째가 여자, 넷째가 주먹(완력, 폭력)입니다.


 유방과 항우와 관련된 사건은 생략하고 바람구두님과의 다른 감정만 기술합니다.


 바람구두님이 항우에 대해 우미인에게 마지막에 남긴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그의 모습 또한 옹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고 ‘그런가?’라고 하였습니다. 바람구두님이 그렇게 느낀 것을 제가 어찌 할 바 없지만, ‘왜 나는 바람구두님과 다른 느낌이 들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항우의 하해가 7언절구는 우미인의 우희가 5언절구 보다 길었다. 변명이다. (변명이어서 길었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 허세를 부렸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때문에 처음에는 강동으로 도망하려다, 자결과 유사한 결과를 맺는다. 맞습니다.

 그 변명은 남자의 자존심을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자존심은 경쟁의 승리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는데, 경쟁의 주제는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입니다. 권력, 재력, 여자, 폭력. 유방과 항우의 경쟁도 다르게 느끼지 않습니다. 단지 그 당시 두 사람의 경쟁할 당시는 네 가지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되는 권력은 재력이 바탕이 되는 토지와 분리할 수 없고 여자도 또한 승리한 자가 차지하며 현재 전쟁(주먹, 폭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미인 앞에선 항우, 전쟁에서 패했고, 권력도 없고 토지(경제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남은 것은 여자 즉 우미인만 남았습니다. 바람구두님은 항우가 해하가를 통해 우미인에게 최종선택을 넘겼다고 하지만 정황으로 미뤄 볼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바람구두님의 글에서도 ‘항우는 우미인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우미인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유방의 후궁으로 사는 것을 좋아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아들였던 이유가 탈출을 해서 귀족의 지위가 없이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저의 의견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왕비가 ‘나와 후궁의 격을 놓고 비교하지 말라.’라는 대사도 있었습니다.


 천하를 제패하려면 ‘후흑’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유방이 그랬듯이, 한신은 깡패의 다리 사이를 지나갔고, 훗날 유비가 또한 그랬습니다. 이들에게는 후흑이 있었습니다. 반면 항우는 양성을 함락한 뒤 5천명의 포로를 매장하는 행동을 보여 관용( 또는 관대, 포용, 용서 등)과 거리가 먼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함락 계획보다 늦은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한 행동으로 미뤄 볼 때 항우는 강동을 탈출한 뒤의 재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마 유방이 항우와 우미인를 놓아 주어도 항우는 폐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 계백이 했던 행동을 하였거나 항우와 같이 우미인에게 자결을 압박하거나. 둘 중 어느 것이 통이 넓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있던 원인(항우에게 후흑이 없다는 것)과 예상할 수 있던 결과(유방에게 패한 것)와 둘 중의 하나의 선택(계백과 같은 가족의 몰살 아니면 우미인의 자결 권유), 그리고 다시 똑 같은 결과.


 이미 구겨진 남자의 자존심, 그리고 남아 있는 것 여자 우미인. 초초한 항우는 우미인에게 묻습니다. 어찌하면 남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겠소?


 둘 중의 하나의 선택을 한 항우를 위한 변명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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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7-10-1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가 곤란합니다. 어른에게 하기도, 아이들에게 하기도

ㅇㄴ 2007-12-1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변명이다라는 추측은 진짜 개소리네요 그렇다고 자존심에 상처을 받아서 그렇다는것도 아닌것 같은데 제가보기엔 일종의 허탈함을 상징합니다 해하가는요 항우는 모든 해하에서 장군과 병사들이 투항을 합니다 특히 항백과 종리매 계포의 투항은 그에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이순간 항우는 자신의 생이 다했다는걸 깨닫고 그허탈함에 해하가을 부른거죠 그리고 항우는 우미인에게 선택을 넘겼다고 하셨는데 이분진짜 어이가 없네요 사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여자에게 선택을 준것은 대단한처사이죠 그시대에는;; 항우는 우미인에게 유방에게 투항하라고 분명히 말하였고 사서에도 나옵니다;; 좀알고씨불리셈 사실그에게는 치욕이지만 그만큼 항우의 도량이 높은것임 사실 항우가 옹졸하다 미련하다라고 하시는데 그거야 우리는 결과을 알고봐서 그런거고 여기에는 사만천의평가도 포함되구요 사실 항우가 바보가 아니라 장량이나 진평 유방의연기력이 최고인거죠 그래서 범증이 높히평가되는거구요 속을수밖에없습니다 그누구라도 말이죠 그리고 항우는 만약에 강동에 탈출성공했으면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애기는 글쌔요 뭐한신과 유방의 갈등을 언급을 빼고 말하자면 솔직히 폐인은 아니죠 여기서 중요한거 항우의 나이입니다 그때 30이라는데 이것은 분명 더성장할수도 있다는 증거구요 그리고 면목이라는 고사을 유래시킨 순간부터 항우는 어느정도는 자신의 실수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증거죠 그렇다면 항우가 강동으로 갔다면 어느정도는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것을 당현한거고 막말로 세상물정깨달았다는거죠 그리고 강동땅에는 권토중래에서도 나오듯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인재들이 난무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것은 흔히 삼국지에도 손책이 강동평정하나로 원소담으로 조조랑 세력이 비스무리해니는 것도 그증거고 암튼 강동에는 인재들이 난물한는곳으로 유명했기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여담으로 계백이랑 비교하시면 안되죠 계백은 자신의나라가 어차피 망하는 상황이었기때문에 그런거고 항우는 재기할곳있는데 자신이 거절한게 항우가 한실수 몇개중에 가장 아쉬운 선택이라는겁니다 이미정해져 있는 상황이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