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 음식, 그 자체로 문화

 저는 음식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이 있어 짬뽕에 관련된 책이라는 점에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읽고 서평을 쓰려 했는데, 읽을 때마다 글쓴이의 인문학적 지식을 느끼며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습니다.

 요즘에는 음식이 넘쳐나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이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은 것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얼마 전까지도 굶주림이 보편화된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나누는 것을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고 연애도 보통 식사로 시작합니다.
 음식은 문화를 반영하여 그 지방의 기후나 역사도 관여합니다. 호텔에 숙박하여 아침식사를 하게 되면 대개 buffet로 하게 됩니다. (이것이 보편성입니다.) 그러나 산속에 있는 호텔과 바닷가에 있는 호텔의 음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산속에는 산나물이 많을 것이고 바닷가에는 바다 생선회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소금에 절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식초에 절인다고 합니다.
 저는 당연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만,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르 한국동란 이전에는 각 도마다 김치에 특색이 있었는데, 전쟁 후 경상도 김치로 통일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음식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한 두 시간에 만에 헤어질 사람은 외모를 보고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키 작은 사람은 looser이죠.) 며칠 동안 만날 사람은 특히 업무적으로 만날 사람은 조건을 따집니다. 학력, 학벌, 재력, 인맥 등이 포함됩니다. (이와 같은 평가 방법 때문에 신정아씨 학력 위조사건이 났죠.) 1년 이상, 몇 년동안 만날 사람들, 특히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은 능력이 중요시 됩니다.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라면 어떤 기준이 더 필요할까요?
 맛 있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맛 있은 음식을 아는 미식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저는 음식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둡니다. 마치 백락이나 종자기처럼. <불멸의 신성가족>의 서평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요리사, 의사, 변호사는 권력 친위대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미식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 (맛집을 찾아다녀야 하므로)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상류층의 문화이죠. 음식을 통해서 사람의 평가가 가능합니다. <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는 그런 의미로 구매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짬뽕 (차폰, 잔폰)’으로 시작했지만 매운 음식, 중국 음식, 술에 대한 이야기 한참, 뒷부분에는 자급자족 생산방식과 향토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진행합니다. 부제가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인데, 책을 보다 잘 설명합니다.

 총괄적으로 몇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과연 로컬local food는 옳은 것이고 시행할 수 있을까? 우리 음식의 한계는 어딜까? 그리고 예상되는 것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문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

p258
로컬 푸드 ;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문명 속에서 자급자족은 극히 제한된 욕망만을 충족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이루어졌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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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12-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고 거의 써 놓은 상태에서 마무리를 못하고 남겨 둔 글을 한 참 뒤에 마무리하려니 조금 어색하내.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 종이, 자연 친화적일까? 세계를 누비며 밝혀 낸 우리가 알아야 할 종이의 비밀!
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상상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 숲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인류 - 멸망을 생각하라.

 제 스타일의 책입니다. 마치 논문 같이 많은 숫자와 논리들. 몇몇의 용어와 숫자들을 암기하고 있으면 어디에서 유식한 척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네요. 마지막에 (pp240~242) 깔끔하게 생활의 실천 지침까지.

 언제 무슨 책에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읽은 것이 <육식의 종말>에 읽은 소고기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입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생산 단가를 낮추고 이것의 가격의 하락으로 다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유발합니다. 그 결과는 자원의 낭비입니다.

 자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 파괴가 핵심입니다. 순환이 안 되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악설 및 비관론에 근거한 미래가치관을 갖은 사람으로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파괴는 지속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어느 임계점을 넘게 되면 대재앙이 발생하고 인류가 멸망하거나 사회적 강자 일부만이 살아남을 수도 있겠죠. 저의 슬픔 예감이 현실로 될까요? (예상은 하지만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당분간 숲의 파괴, 원시림의 파괴는 지속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멈춰야 할까?
 제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은퇴 후), 공부하고 싶은 것이 수리생물학이고 수리생태학이란 분야를 만들고 싶습니다. 환경은 변수가 너무 많아 카오스적이 움직임을 보이고 ‘외부효과’도 너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의 서평에서 이야기했지만 환경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얻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즉 환경에 관한 것은 객관적인 것보다 직관에서 호소할 수밖에 없는데, 직관에 의하면 숲은 긍정적 외부효과가 너무 많아서 숲이 파괴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사실 인간의 숲의 파괴는 ‘종이’ 발명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숲의 동물이 아니라 초원의 동물입니다. 사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 위해, 땔감을 얻기 위해, 주택의 재료로서 지속적으로 숲을 파괴해 왔죠. 숲이 완전히 소모되며 그 지역 문명은 멸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이 소모의 상당부분은 광고지입니다. 뜯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가능 경우가 허다합니다. 직장일로 사용하는 종이도 이면지 사용이 곤란합니다. 대외비에 해당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나마 직장과 주택단지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이 위안입니다. 생활에서 느끼는 종이와 관련된 한 가지 양심의 가책은 책에 대한 집착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을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데도 구입하기도 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괴델Goedel은 ‘개인이 뭐 하러 책을 구입하냐?’고 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될 터인데. 조금 더 성숙되면 책 구입을 자제하려나.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cf  투명 플라스틱 box, 당연히 종이 소모는 줄이는데, 친환경적인 것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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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독서본능>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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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 잘 읽히려면 재미가 있어야.

 알라딘에서 ‘파워 블로거’라고 하면 누가 선정되고 누가 선정에서 빠질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러 저러한 이유로 즐겨찾기에 여러 명의 알라디너를 포함하고 있지만, 때로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나와 생각이 같기 때문에, 때로는 나와 생각이 달라서. 파란여우님의 경우 즐겨찾기한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잘 쓴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잘 쓴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재미가 있게 글을 쓴 것을 말합니다. (한 분 더 계신데, ‘마냐’님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플라시보’님이나 ‘로쟈’님이 내신 책도 구입했지만 그 때는 그냥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깐깐한 독서 본능>은 바로 구입했습니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을 책을 읽고 같은 느낌을 받고 서평을 썼는데, 제가 쓴 글은 무색, 무취, 무미한 반면, 파란여우님은 서평 자체가 필력을 느끼게 했습니다. 어떤 서평의 경우는 원래 책 보다 ‘파란여우’님의 서평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목차에서 제가 읽은 것을 먼저 확인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독서를 재미 즉 희열을 느끼기 위해 읽습니다. 그 희열은 통찰력에서 나옵니다. 즉 행간行間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독자가 얻는 통찰을 재미있게 표현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음식으로 따지면 영양가도 있고 맛도 좋고. 아마도 통찰력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책에서 나온다면 재미는 문학에서 나오겠지요.

 저의 독서의 약점인 문학을 보충하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 5년만 독서하면 된다. 늦지 않았다.
‘파란여우’님의 필력, 다음 책에서도 기대하겠습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이지만 구입도 했습니다.)

cf 개인적인 의견으로 <깐깐한 독서 본능>의 목차를 확인하고 원래 책을 읽은 다음, 자신의 서평을 쓰고, 이 책의 서평과 비교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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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12-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제가 생각하는 알라딘 최고의 고수와 비교되다니...가문의 영광임다...더구나 눈높이 높다고 생각되는 마립간님으로부터..ㅎㅎ 종씨 챙겨주셔서 감사요 (^^)(__)

마립간 2009-12-15 08:19   좋아요 0 | URL
마냐님도, 겸손한 말씀이죠. 마냐님과 같은 고수가 또 어디 있다고. 저의 몸은 저 아래에 있고 눈만 높습니다.^^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 지피지기 1, 개정판
남영신 지음 / 리수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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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를 통해 떠오르는 질문

 국어의 한자 사용이나 현대 우리나라 사람의 영어 사용, 외래어 사용은 힘의 영향력, 사대주의 사상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현학적 한자 사용, 영어 사용은 부차적으로 여깁니다. 오히려 외래어 한글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간지에 심해 새우 ‘아르고스길라 그라하미’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더 자세한 자료를 찾고자 했는데, 정확한 영어 이름, 학명을 몰라 자료 검색을 할 수 가 없었읍니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토박이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에 있어서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토박이말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1970년대에는 ‘벤또’, ‘와리바시’ 등의 일본 외래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도시락, 나무젓가락의 토박이말로 정착되었습니다. Well-being은 ‘참살이’로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토박이말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고 토박이말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책의 상당 부분은 우리나라 언어 습관 또는 국어에 대한 정책에 대한 주장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저의 오랫동안 의문이 떠오릅니다. 학창시절, ‘문인文人은 언어를 파괴하고 국어학자는 문인이 파괴한 언어를 문법으로 정리한다.’고 배웠습니다. 저의 의문은 ‘문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올바른 문법이 있었나? 전 국민 어느 한 시기에 정해진 문법에서 예외 없이 사용한다면 언어는 진화를 멈춤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법을 무시한 무한정한 자유로운 언어 사용은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언어의 극단적인 상대주의겠지요.

 저는 물론 보수적 생활태도를 갖고 있어 (현재) 문법에 맞는 어법을 좋아합니다만... 과연 궁극적으로 옳은 것은 무엇인지?

cf 제가 주위사람 무시하고 혼자 사용하는 토박이말 ‘날틀’ -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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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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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생활의 가치관

 이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열심히 사는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일상생활에서의 가치관입니다.

 천재 사회학자가 중세 시대에 삶았다면 국가 자본주의나 다국적 기업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어느 사회학자는 ‘그런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청소년 시절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모순은 정반합에 의해 사회 발전이 되는데, 공산주의까지 변화되면 사회발전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적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즉각적인 의문은 ‘그럼 (수정) 자유 민주주의’는?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더 나은 떠 오늘 것이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이상적인 가치관이라면? 적성에 맞는 직업, 그리고 유능한 직업인, 가족에게 충실하고 남자는 안해를 배려하고 자녀들도 인격체로 대우하며 이웃과 특히 인종적, 문화적 편견이 없고. 최선을 다하지만 치열한 경쟁은 배제하고 남에게 배려하며. 과소비와 사치는 환경파괴와 에너지 과소모를 발생하므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

 위에 보는 가치관은 현재에 당연한 듯 보이지만 위와 같은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솔직히 재미도 없는데, 돈 때문에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가치관에 있어서는 제가 흔들릴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 학원에 보내야 할까? 아니다. 지구 저 반대편에 사는 어느 아주머니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이는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아 그녀(이 책의 저자 임혜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고 있는 책이 <핀란드 공부법>인데, 느낌이 비슷합니다.
 한번 묻고 싶습니다. 임혜지씨, 한국에서 독일에서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저는 독일에서와 같은 삶을 한국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하며.) 지쓰카와 마유씨, 일본에서 당신의 자녀를 핀란드의 교육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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