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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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보니 그렇게 쓰여 있다.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희망"이라고. 그 ''희망''이라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 구석에 박혀 있었던 것처럼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까? 특히 세상에서 등돌리고 살아가려 하는 모든 이들,이 말이다.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빤하게 흘러가고, 굳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그 흐름을 알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어디 줄거리로 읽는 것이었더냐.
''자살''이라는 주제를 갖고 이리 유쾌하고 키득거리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 이런 주제의 글을 읽으면서 크크큭 거리며 웃고 있는 나 자신이 생소하기만 했다.
저자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말에 덧붙여 "앞서 읽은 나의 많은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꽤나 유머러스하다고 좋아했다"는 글까지 썼으니 뻔뻔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니 이 책은 그의 기대만큼, 나의 기대치보다 좀 높게 재미있는 책이기는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이 그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빤한 그런 소설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자살여행의 전개과정에서 준비와 시작단계인 1부는 조금 경쾌하게 갔는데, 2부로 들어서면서 왠지 좀 경쾌함은 사라지고 책읽는 속도가 더뎌지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왜냐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는 결코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간간이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흘리고 있는 삶의 모습과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키득 거리며 웃고 넘겨버릴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죽을''뻔''한 사건에 얼굴이 백짓장이 되는 사람들의 묘사에는 웃음이 터지지만, 에이즈에 걸려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동행의 고백에 기세등등 단죄하려는 사람들에게 그의 잘못보다는 난잡한 생활을 한 당신들이 더 감염되고 전염을 일으킬 것이라는 외침은 우리 모두를 멈칫, 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이 요소요소 담겨 있어 책장을 술렁 넘겨가며 읽을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의 예상처럼 결국 그들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미리 앞당겨버리지 않고 삶을 지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자가 얘기하려고 한 것은 ''그들은 죽지 않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희망''을 발견했다"라는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독서의 기쁨 아니겠는가.

나도 작가처럼 괜히 하나 덧붙여보자면, 소소한 마지막의 반전 이야기 하나는 경쾌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교훈을 주는 도덕책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이 책의 묘미를 살려줬다는 것에 보이지 않는 별점 하나를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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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6-1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완전 리뷰 쓰나미로군요! ^^ 대단하십니다.

chika 2006-06-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쓰나미...^^;;;;;;;
 
PING 핑 -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 지음, 유영만 옮김 / 웅진윙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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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가장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미래란 현재의 성공적인 헌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175)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순간들 중 하나는 바로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힘찬 도약을 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겠지. 하지만 나는....
나는 진작에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간혹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폴짝거리는 척 해보지만, 정말 속 마음은 ''이 우물 밖의 저 세상은 두려워'' 인 것임을 숨길수가 없다. 아니, 모두에게 숨겼지만 나 자신에게만은 그걸 숨길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잠시 짬을 내면 이 책은 약간의 흥분을 일으키며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어쩌면 지금까지 많이 읽어봤던 책들과 그닥 다를 것이 없다. 미래를 위해 움츠러들지 말고, 나 자신의 진정한 발견을 위해 힘껏 도약할 수 있는 힘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믿어라...등등등.

그래도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우물 밖의 세계를 무서워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는 마음에 대해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이 부끄럽고, 나 자신이 비참해지려 하는 순간에 핑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상태입니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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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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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가난한 사람들! 그런 혐오스러운 종족이 있는데 먼데서 찾을 필요가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 체! 얼마나 혐오스런 인간들인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미움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가책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못생긴 여자나 정신병자와 마주칠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되지는 않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그냥 못생긴 여자이기 때문이고 정신병자는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내 재산의 절반을 준다면 그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게 또한 논리거든요.

- 토할 것 같아요

- 왜요? 새삼스럽게. 그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다 싫어했잖습니까?

- 다 그러지는 않았어요.

- 진짜 예외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몇 푼 던져 주는 것으로 할 도리 다했다고? 그걸로는 안 되는 것이죠. 22세기 중반에 한 부류를 희생시켜야만 했을 때 사람들이 오래 망설인 게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134-135쪽)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다보면 왠지모를 지독함이 느껴진다. 그것이 오후 네시를 읽을 때는 참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머 그런 느낌에 뭔가 지독한 불편함이 느껴지면서도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시간의 옷은? 토할 것 같은 지독함이 느껴지지만... 전부 거짓은 아닐꺼야, 라는 생각에 더 불쾌해진다. 외면하고 싶어지고, 뭐라 반박하고 싶어지지만 선뜻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혐오스런 감정과 뒤섞인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것 처럼 노통은 자기가 내뱉고 싶은 말을 다 내뱉어버린다. <내가 내뱉는 말에 대한 느낌은 내 책을 읽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안그래?>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멜리 노통의 소설은 '다 거짓말이야. 그녀의 상상력일뿐인걸?' 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네. 그녀의 절묘한 언어 유희,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탓에 불편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아멜리 노통과는 당분간 안녕.

아, 그리고 본문을 인용한 저 말에 대해서, 노통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 그 진의를 알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지독한 표현이다. 사실 요즘... 몇몇 사람들에게선 '가책'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몇 푼 던져줘야 할 존재들에 대한 귀찮음을 느껴봤기 때문에 더 지독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그들을 <인간>에 포함시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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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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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을 읽으려고 책을 펴들었을 때, 일러두기에서 굳이 이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이 책의 내용에 나오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구분해서 표기하고...어쩌고.. 하는 글을 읽으며 ''뭔 소리야?'' 하고는 무심코 넘겨버린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제 그 말이 무엇인지 확연히 알 것이다.

온다 리쿠의 전년도 작품 <밤의 피크닉>은 굳이 일본에서 서점 종사자들이 제일 판매하고 싶은 책이다, 라는 말이 없어도 밤을 꼴딱 세면서 읽을만큼 재미있었던 책이다. 단지 걷기만 했을 뿐인데...라는 문장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던지.....
아, 지금은 [삼월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지?
하루만에 책을 후다닥 읽어버렸다.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도무지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가 없는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오히려 말문이 막혀버린다. 내용을 이야기해버리면 다음에 책을 읽는 사람에게 흥미를 반감시켜 버릴 것만 같고, 무작정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모자라지 않는가.
전체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처음 읽을 땐 술렁술렁 책장을 넘기며 재밌어지려하고 2부에서는 아앗, 이렇게 전개되는 거였어? 하다보면 3부에서는 벌써부터 4부가 기다려지는 책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읽는 속도와 흥미진진함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뭐랄까.. 조각조각 난 것들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 그런 느낌을 이 책은 갖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인간은 ''잘 된 이야기''에 감명을 받을까?이야기의 내용에 감동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부모자식간의 사랑, 삶과 죽음의 갈등, 아낌없이 주는 사랑,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감정이입한다. 그것은 알겠다. 하지만 ''잘 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감동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맞았다는 쾌감이다.(343쪽)''
은근슬쩍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괜히 고개를 끄덕여본다.


* 상태평점은  별 셋이다. 그 이유는, 제본상태때문이다.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인데 이 책은 감히 책을 펼치기가 겁날만큼 절반으로 뚝 갈라져버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조금만 조심하지 않았어도 벌써 두쪽나버렸을 것이다. 그걸 방지하느라 책을 넓게 펴지도 못하고 두손으로 부들거리며 조심히 잡고 책을 읽어야 했다. 지금도 책을 잡으면 겉표지에 나뉘려는 자국이 보여 심히 불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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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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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카파'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문구가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그의 사진이 얼마나 포토저널리스트들 사이에 전설적인지, 그의 사상이 어떤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포착해낸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이라는 카피라이터를 봤을 때 막연히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이라는 것만을 떠올리며 책을 펼쳐들었다. 이렇게 나는 막연히 듣기만 했던 '로버트 카파'라는 사람에 대한 것을 그 자신이 직접 쓴 그의 2차대전 종군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뿐이다.

한편의 소설처럼 극적이고 반전이 뒤엉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읽으며, 이거 소설 아닐까? 라는 의심으로 자꾸만 저자를 다시 확인해보게 될 만큼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시작되었고, 종전 소식을 알리는 45년까지의 3년간의 기록은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그가 말해주는 전쟁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꾸며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죽음을 비껴나가며 전장을 누비고 있는 카파의 모습에선 '전쟁영웅'이라는 말은 전혀 떠올릴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의 진군, 이탈리아 프랑스 탈환, 진군, 진군... 승리를 알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죽음은 전쟁의 승패를 떠나 어느 누구에게나 오고 있음을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길을 택하겠어" 라고 말하는 카파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 유명한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말은 단지 기사의 카피가 아니었다. 포격이 뒤엉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사진을 찍고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고, 두려움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음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도망치듯 나와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가슴을 치며 슬퍼하고 '비겁한 놈은 나야'라는 말을 하는 그는 결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닌것이다.

그런 그의 사진에는 거짓이 없다. 먼 발치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며 사진 몇 장 찍어대고 영웅인척 하는 거짓은 카파에게서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승리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아군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적의 총탄에 숨져버린 앳된 군인의 죽음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사진은 '전쟁'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이 더 마음을 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 한복판에서 "공중을 날며 노래하는 것이 새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머리 바로 위로 포탄이 날아다녔다. 박격포탄은 휘파람 소리를 내고, 순양함은 쇳소리를 내고, 장갑차는 삑삑거리는 고음을 내며 서로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독일군 박격포도 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내게서 불과 100미터도 안되는 언덕 위에 떨어졌다. 나는 덤불 속으로 더 낮게 머리를 파묻었다. 태양이 내 등을 비추어 따뜻한 온기가 전해왔다. 불현듯 '아! 공중을 날며 노래하는 것이 새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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