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고 믿곤 하지.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곳에 내가 태어났노라!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인간의 삶은 그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가족이란 마치 거미줄과 같은 것이지. 어느 한 곳을 만져도 다른 곳에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어. 전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야....................
태어난 순간이 시작이 아니라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었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 뿐이지. -86-87쪽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끔찍한 고통에는 쉽게 익숙해지는 법이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종종 잊곤 하지.-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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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고독은 사람을 기분좋은 감상에 취하게 하고 막연한 불안은 꿈을 말하는 데 꼭 필요한 안주가 된다. 홀로 고독에 시달리며 불안을 달고 살아가는 때는 사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때이며 오히려 다부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때인 것이다. 쉼표도 없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나날, 보기도 지겨운 사계절의 방문. 그것들이 쉬는 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겠지, 하고 짜증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그저 천천히, 영원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작되어야 할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 첫발을 떼지 못하는데 대한 초조감.-238쪽

하지만 그런 괴로움도 일단 무언가가 시작된 다음에 뒤돌아 보면 그토록 낭만적인 것도 없다.
참된 고독은 그저 흔해빠진 생활 속에 존재한다. 진짜 불안은 평범하기만한 일상의 한 귀퉁이에 존재한다. 술집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도 한낱 푸념에 불과한 답답하고 특징 없는 것.
어디를 향해 날아올라야 할지 몰라 활주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비행기보다 착륙해야 할 곳을 알지 못해 허공에서 헤매는 비행기가 훨씬 더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239쪽

이 세계와 나 자신, 그 애매한 간격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한없이 느릿느릿 이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광대처럼 진한 화장을 한 검은 옷의 저승사자가 무표정하게 나타나 어딘가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순간부터 시간은 발소리를 내며 마라톤 주자처럼 달려간다.
그때까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에 마음을 기울이며 천천히 지나갔던 시간은 문득 역회전을 시작한다. 지금에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다. 종말로부터 지금을 향해 시간을 새기며 저벅저벅 다가온다.-239쪽

나 자신의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 거기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올라오는 인생의 카운트 다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현실을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다.그런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ㅌ어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는 이상, 나 자신의 손목시계만으로는 운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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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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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낯설지만 그 그림에 담긴 러시아인의 정서가 우리의 그것과 썩 잘 어울리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이런 구성을 통해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러시아 미술은 '낯설면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미술'이라는 점이다. 미술을 통해 나타난 그들의 투쟁, 고통, 격정, 인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역사 경험이 달라도 각자의 경험에 대한 기억과 정서 반응에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들어가며, 작가의 말에서>

그래, 딱 그느낌이었다. 낯선듯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
물론 겉표지의 그림(미하일 브루벨, 백조공주, 1900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보면서는 역시 '눈의 여왕'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고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드는 이 뿌듯한 마음. 나는 역시 이주헌님의 책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편애를 하게 되고 만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 작품의 예술적인 감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시대, 작가의 가치관까지 모두 아우르면서 바라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주헌님의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장 드 봉의 초상화를 보면서 '오오~'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사실 훌륭하다는 그림을 보면서 누구나 모두 '오~' 하는 감탄을 내뱉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대책없는 자신감은 내 생활과 동떨어진듯한 '예술'작품들을 이제는 내 생활과 친숙하게 맞물리며 바라볼 수 있게 된 데서 나왔다.

아무튼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책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배경설명이 있고 우리가 - 아니, 우리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으니 '나'라고 해야겠다. 내가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민중적 관점의 종교화가 나오고, 러시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역사화에 대한 설명이 있고, 장르화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이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역시 가장 관심있게 봤던 부분은 종교화였는데 이미 내게는 익숙한 이콘에 대해서는 새삼 더 깊이있게 바라보게 되었고 참 좋았다. 물론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천사'라고 표현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살짝 유감이 섞여들기는 했지만.

언제나 항상 조목조목 차분히 설명해주는 이주헌님은 책의 끄트머리에 아니나다를까 참 친절하게도 '간추린 러시아 회화사'까지 정리해 넣어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간추린 러시아 회화사를 읽다보면 책의 정리도 될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저자의 들어가는 말에서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다보니 오히려 더 모자란 점이 많다고 했지만, 러시아 미술에 대한 첫 술로 이 책은 대만족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분명 다음에 더 풍성한 상차림을 약속했으니 설레는 맘으로 훗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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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1-2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레는 맘으로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주헌씨의 책. 한번빠지면 팬이 되어버리고 마는 마력이 있다죠? ^^

chika 2007-01-2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멋진분이라고 생각해요! ^^

2007-03-1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07-03-1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웅~ 저, 뭔가 했어요! (이제 눈치 챘다는! ㅋ)
감사감사~ ^^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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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쩌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서 쉽게 이 책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한참 일이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듯한 생활에 뭔가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에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야기가 토막, 토막 잘려나가는 듯 해 쉽게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아, 심난해져버렸지만, 그래도 다른 책을 집어 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는지 그냥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나는 이 책이 너무 가볍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토막토막 잘라 이야기하고 있는 짧은 글속에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이다. 뜻밖에도.

더구나 중간을 조금 넘어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나는 릴리 프랭키가 말하는 그의 '엄니'에게 푹 빠져들어버렸다. 더구나 노친네에게 툴툴 내뱉는 말들이 어쩜 그리도 불효막심한 내가 내뱉는 말과 똑같은지. 내가 너무 못되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렇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새삼 북받쳐올라 이 밤 늦은 시간에 눈물 콧물 흘리면 얼굴이 띵띵 불어터질 것을 걱정하면서도 마구 쏟아내야만 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이런 저런 일에 찌들어 있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듯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훌륭한 엄니를 만난 릴리 프랭키가 부러워, 라는 말이 아니라 내게도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성질부리고 화내듯이 얘기도 잘 하지 않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도 위안이 된다. 아직 불효막심한 나를 돌려 세울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 책은 한 권의 소설로,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울림이 눈물과 콧물 투성이 얼굴에 그래도 미소짓게 되는 그런 진실함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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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자신이 창피를 당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창피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게 엄니의 예의범절이었다.
...
예절이란 자신을 위한 체면치레가 아니다.
식탁에서라면 요리를 해준 사람에 대해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매너일것이다. 젓가락 쓰는 법 정도의 일로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딱딱거리는 사람은 으레 요리사에게 "나는 돈을 낸 손님이야!" 라는 태도로 거만하게 구는 예의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유독 그런 사람일수록 계산은 남에게 넘겨 버리는 일이 많으니, 그 예의없음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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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1-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전혀 예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