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힘들고 지칠 때야말로 좋아하는 책이 최고의 위안처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 이 문구는 그저 그런, 잘 쓴 광고 문구였을 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고 그래도 뭔가 여운이 남아 한 장을 더 넘기고 '이 책을 읽고 네 명 이상에게 권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하고 나면 비로소 책 뒷표지에 적힌 저 글이 구구절절이 들어온다.
아, 소설의 매력은 이런거야!

뭔가 예감이 있었는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책 표지를 유난히 열심히 쳐다봤다. '웃음의 나라'라는 제목만으로는 정말 뭔가 재미가 담뿍 담겨있는 소설 같은데... 표지에는 파이프를 문 개가 울타리에 기대 서 있고.
"그때 나는 막..... 그러니까,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가 되려는 찰나였으니까. 신에게서 불을 빼앗은 거예요"라는 본문의 인용문구는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책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한 채, 책을 펴들었는데, 읽어나갈수록 소설의 늪에 빠져들게 되고, 서서히 느껴지는 공포감이 마침내 증폭되어 꽝! 폭발해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고, 절대 과장 광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프로필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당신은 작가를 읽고 싶은 건가, 작품을 읽고 싶은건가?'라고 묻는다. 작가의 프로필을 이야기해서 작가의 흥미롭고 이상한 삶을 보여 줘 책을 읽게 하려는 수작처럼 보인다,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찌보면 자신의 작품 자체에 대한 대단한 긍지가 느껴지기도 하고.

책의 제목은 '웃음의 나라'이지만, 나는 솔직히 조금은 공포스럽게 읽었다. 아,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말해줄 수 없는 이 답답함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공포스럽고 궁금해 미치겠는 심정이 마침내 터져버렸을 때의 그 주체할 수 없는 충격이 이 소설의 커다란 매력이다. 지금 이 책을 읽었다는 것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나는 참 대단한 소설을 읽은거야... 하하핫! 이 소설을 읽은 자들은 동감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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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2-1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서울것 같아서 선뜻 손이 안가요 ㅜ.ㅡ
마지막 문장에서 부들부들~

chika 2007-02-1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이라고 해야할지...암튼, 읽고서 뿌듯했어요! (마구 무서운 건 아녜요~ ^^;;)

물만두 2007-02-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의외로 좋더군^^

chika 2007-02-1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책 제목보고 그냥 코믹소설,인가 했는데... 정말 멋진 소설이었어요! ^^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삼류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들을 딴 학교녀석들은 '좀비'라 부른다. 학교의 평균학력이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수준밖에 안된다는 것, 요컨대 뇌사 상태인 그들은 학력사회에서 '살아 있는 시체'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
하지만 '좀비'에는 하나의 깊은 의미가 있다.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 좀비인 것이다. 영웅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 더 좀비스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학력사회에서 학력수준이 떨어질 뿐 아니라, 출신성분마저 좋지 않다고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이지만 나는 그들을 마이너리티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마이너리티가 왜 존재하는가, 말이다.
더 좀비스가 이루어내는 혁명은 단순하고, 혈기 왕성한 청춘의 힘이 느껴진다. 사회적으로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내가 보기에 간혹 당황스러운 치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해못할 그들의 혁명은 아닌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단순한 삶의 방식과 자세가 맘에 들어 나도 모르게 씨익 웃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청춘의 기쁨과 활력을 모르고 살아가는 '두뇌'시체인 우리의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일기도 하지만.

'너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나 돈이든 여자든 명예든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작정이야. 가능하면 세계도 바꾸고 싶고. 부럽지.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한껏 즐길 거야. 하지만 너만은 절대로 잊지 않을게. 네가 원했던 것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 볼 생각이야.'(150)

살아있는 동안 한껏 '즐길' 생각이지만, 가네시로 가즈키는 그런 말을 가볍게만 하지는 않는다. 도덕군자처럼 설교를 늘어놓지도 않고 심각하게 어떻게 살아야한다 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가끔 몹시 부러울정도로 발랄하고 유쾌하게 통통 튀는 청춘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면서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꿈꾸는 더 좀비스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이야기가 좋다. 질투가 묻어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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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2-1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드디어 읽으셨군요~ 헤헷

chika 2007-02-1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미뤄뒀다가 마침내 읽었어요. 이제 '연애소설'을 읽을 차례예요. ^^

해적오리 2007-02-1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있을 거 같애. 일단 보관함으로... 나 목욜에 내려감수다. 완전 배째라 행 이틀 휴가 내부런..

chika 2007-02-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가즈키, 책은 일단 다 관심이 가는 책이지. 이거 읽고 GO도 읽어보믄 좋주. 어쨌거나 목,금 휴가받았단거지? 전화허여. 함 보주. ㅋ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의 농업은 흙을 떠난 농업이 되었습니다. 대지는 이제 무기물일뿐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흙 밖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최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본질을 비껴가고 있습니다.
태양열만으로도 우리는 우리를 따뜻이 덥힐 수 있고,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기술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단지 방법적인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로부터 비롯됩니다. 인간 존재가 변화하지 않으면, 개개인이 진정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기술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우리가 최상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 또한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71-72)

인간과 대지를 연결하는 한 농부 피에르 라비의 이야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또 어쩌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아니, 그의 이야기가 새롭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모순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행동과 삶으로 표현하고 대지를 위해 쉼없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이야기를 낯설게 느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

한때 유행처럼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진행됐었고, 여기저기서 먹거리에 대한 심각성이 제기되고 황폐화되어가는 우리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올때가 있었다. 물론 '유행처럼'이라는 말은 그러한 운동이 그리 진행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그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그저 떠도는 유행가처럼 쉽게 접하고 쉽게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런 내게 피에르 라비의 이야기는 '변화하지 않는' 나에 대해 삶의 반성을 하게끔 한다. 한평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땅의 산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먹고 살만큼의 양식이 있으면 행복한 것인데 우리는 더 욕심을 부리며 땅을 혹사하고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해 생산량이 두배로 증가하자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지혜로운 추장은 부족민들에게 다음해의 경작지를 반으로 줄이라는 대답을 했다는 일화는 그냥 우스개소리가 아니다. 지혜로운 추장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떨까. 아니 나 자신은 어떤가. 욕심이 없는 척 하고 있지만 실제 삶의 모습은 엄청난 욕심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질적인 풍요가 삶의 기준이 되면서 우리는 오히려 더 궁핍하고 황폐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피에르 라비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주고 있다.
어느 날, 친구와의 산책에서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떡갈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한 피에르 라비가 친구에게 그 모습을 바라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바라 본 모습은 단지 떡갈나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판자의 수뿐이었다. 같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같은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그의 말은 간결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소비가 최고의 미덕인 줄 알고, 물질적 풍요로움이 삶의 행복이라 여기며 쉼없는 노동을 할지도 모른다. 대지를 해치고 있는 화학비료가 만들어 낸 음식물을 먹고 마시며 지구의 생명력을 해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 나의 삶이 한순간에 변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에르 라비의 삶과 사상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변화하고 노력하는 내가 있고, 우리가 모여 마침내 세상이 변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피에르 라비가 말하는 '혁명'에 대해 잊지 않는다면.

그가 말하는 혁명은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이가 늘어나길 바라며 그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첫째, 의식혁명. 우리는 지구를 대하는 이전의 모든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구를 수익성이라는 단 한 가지 관점으로 보는 것을 중단하고, 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지는 그 두께가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행성 위 모든 곳에서 지구 전체에 양분을 제공하며, 무궁무진한 생식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너무도 잘 알고 행했던 것처럼 대지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우리가 잊어가는 것들이다.
둘째, 영적혁명. ... 우리는 이 대지에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에 속해 있다. 지금 우리가 착각하고 있듯이 대지가 우리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지에 속해있는 것이다. 인류는 우리가 우주와, 우주 전체와 하나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느 날 우리가 던진 질문에 한 아메리카 인디언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대지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대지는 우리를 먹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해 줍니다. 대지는 우리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괴롭히고, 거칠게 대하며, 오염시킵니다. 대지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대지는 참고 견딥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더럽히고 오염시킨다면, 어느 날,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지구는 진저리가 나 개가 벼룩들을 털어 내듯이 몸을 흔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벼룩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될 것입니다.
셋째, 기술의 혁명. 언제나 더 많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오염시키고 동시에 인류를 오염시키는 방법 말고, 조화로움 속에서 땅을 경작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상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하지만 이상향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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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내력 - 제11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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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가의 돌 하나에도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져 있다, 로 시작하는 시작하고 있다.
어찌보면 아주 당연하고 그래서 더 철학적인듯한 문장의 시작이 이 책을 한권의 소설책이 아닌 역사로 느껴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속에 서서히 광기가 느껴지고 전쟁의 참혹함이 드러나고 끔찍한 인간상이 떠올라버렸다.

전쟁이라는 것은 승자와 패자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임을 사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돌의 내력'은 누군가의 말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니, 너무 무겁게 다가와 한동안 마음을 가눌수가 없었다. 자꾸만 '왜?'라는 물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그들이 상처에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에 울부짖고 몸을 쥐어뜯지 않는다고 모든 상처가 아물어졌고 기억속에 과거의 역사가 흐릿하게 지워진 것은 아니다. 그런 아픔이 고스란히 이어져 과거가 현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돌의 내력'은 그렇게 무겁게 다가왔다. 정말 '강가의 돌 하나에도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지금은 전쟁중이 아니잖니.
- 전쟁중이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전쟁중이야. 아버지가 모르는 것뿐이지. (돌의 내력,117)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지는 돌, 위에 우리는 어떤 역사를 새겨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남는다. 인간은 잊으려 하지만, 아니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돌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 이 책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돌의 내력'과 '세눈박이 메기'라는 소설 두편이 실려 있다. 세눈박이 메기는 아버지의 장례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잔잔하게 일본의 한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일본의 민속신앙적인 관점과 기독신앙의 관점이 맞물리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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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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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비다 윈터>

처음 책을 받아들고 저자 약력을 보면서 5년에 걸쳐 창작에 몰두한 끝에 발표한 데뷔 소설이라는 글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싶은 마음이었다. 두툼한 책의 무게감을 느끼기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고,  책머리에 적혀 있는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 비다 윈터, 라는 글을 보면서 비다 윈터라는 작가가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열세번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더 뒤적여보고 처음 읽었던 저 글을 읽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가 직장을 관두고 5년에 걸쳐 작품에 몰두했다는 이야기가 새삼 강하게 와 닿는다. 제인에어 만큼이나,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강렬하게 쓰여진 작품이라는 느낌에 묘한 감동을 받는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이야기인것이다!

이야기는 아빠의 헌책방일을 도우며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를 쓰는 작가인 마가렛 리가 받은 한통의 편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조금은 냉소적인 듯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언제나 이야기를 지어내기만 하는 비다 윈터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책을 읽어갈수록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헝클어버리고 만다.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때까지 그녀가 이야기하는 '진실'의 깊이와 의미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버리게 된다.
처음 책을 읽을때 글에서 느낀 의미를 이야기의 진실을 느끼고 난 후 다시 되새겨보게 되면 또 다른 깊이에 빠져들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열세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읽고 있는 중이다.

매혹적이고 독특하고 문학적인, 날카롭고 강렬하고 신비로운... 정말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책이지만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제인 에어'때문인지 나는 자꾸만 이 책을 읽으면서 '광기어린 폭풍같은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떠올랐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광기어린 폭풍같은 삶의 슬픔은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읽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푹 젖어들어가기를 바라며 열세번째 이야기에 대한 나의 말은 아껴두려고 한다 .

비다 윈터가 마가렛 리에게 보낸 편지 글은 열세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는 이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의 첫머리를 펴들어보게 되었을 때 더 강렬해졌고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누군가의 느낌은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그 모양이나 무게, 깊이는 다를지라도 슬픔의 빛깔만큼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535)
나는 그걸 알고 있을까?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을, 그들의 슬픔을....?
 

나의 불만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지요. 지어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던가요? 굴뚝 위에서 포효하는 곰처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진실이 도움이 되던가요? 침실 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빗줄기가 그 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릴 때는 또 어떤가요? 전혀 쓸모가 없지요.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거짓말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말이에요.(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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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 울림이 끝까지 지속되어 참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chika 2007-02-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흐흐흐흐~
정말 그리 큰 기대없이 읽은 책인데, 후다닥 읽게 된 책이예요. 좋죠?
(몽땅 언냐 서재에서 본 책이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