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 1 - 초원의 바람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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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원늑대에게 있어 식탐과 전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불가침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지켜진 신성함 때문에 진정으로 늑대를 숭배하는 초원의 목축민들은, 기꺼이 신비스러운 자연장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초원늑대의 영혼처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224)

내가 늑대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어릴적 '모글리'를 읽으면서였을 것이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의 삶을 통해 늑대의 습성을 알게 되었고 인간사회에 온 모글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모질고 탐욕스러운 존재인가를 느꼈었다. 아니, 사실 말하자면 아주 어릴적 난느 그런걸 알지는 못했겠지. 학교 수업시간에 간간이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걸 되새겨보다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명에 길들여진 나는 초원과 황야를 떠올리게 되면 먼저 광활한 만주벌판을 떠올리기보다 '벌꿀과 클로버'가 있어야 한다는 영국의 초원과 폭풍의 언덕을 상상해보면서 히이드가 무성한 무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내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처음 '랑'을 받고 그저 '늑대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하고 책을 펴들었는데 이건 그저 늑대이야기라고만 해서는 안되는 책이라는 걸 느꼈다.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던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랑'은 문화혁명후 초원에서 11년간 유목생활을 한 장룽이 초원에서의 실제 경험과 생활을 통해 얻은 체험을 소설로 쓴 글이다. 커다란 줄거리는 베이징 출신의 한인 대학생 첸젠이 유목민과 생활을 하게 되면서 새끼 늑대를 키우는 과정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지만 그속에 유목생활의 의미와 유목민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또한 늑대의 습성과 초원생태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와 더 나아가서는 지금의 생태 환경에 대한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것은 몽골 유목민들의 역사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이며 더 나아가 지구의 역사가 되고 가르침이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랑을 읽다보면 지금 내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는 인간의 욕심에 치를 떨게 된다.
유목민들은 양떼와 소뿐아니라 말까지 헤치는 늑대와의 전투를 해마다 되풀이하며 손해를 입지만, 또한 그를 통해 용감하고 날랜 말들을 얻게 되고 늑대의 존재가 자신들의 목축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까마득한 옛날부터 깨달은 지혜가 있었다. 지혜로운 유목민과 늑대들은 마르모트를 잡을때조차 새끼와 새끼를 밴 암놈은 잡지 않는다. 그래서 수백년 이어진 마르모트의 굴이 파괴되지 않고,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더 위 선조들도 그 굴에서 마르모트를 잡으며 해를 넘기고 유목생활은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들은 오로지 지금 자기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생태를 파괴하고 잔인하게 짓밟아버린다. 그 결과는 굳이 다른 예를 들지 않아도 바로 엊그제 내린 황사예비경보가 말해주고 있다. 푸르고 생동감이 넘쳐나던 자유로운 초원은 이제 누런 먼지만 날리는 사막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던 늑대들이 사라져가면서 초원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쓸모없는 모래바람뿐.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 아득한 옛날, 푸른 초원을 맘껏 뛰어다니던 늑대들의 힘찬 몸짓이 보이는 듯 하다. 날쌘 말을 탄 몽골유목민들의 말치는 모습도 보이는 듯 하고 자유로운 바람결을 따라 그들의 길고 깊은 노랫가락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걸 잃어버린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똑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초원 늑대와 몽골유목민들의 지혜로움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다. 내 욕심만을 채울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통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작게는 내 이웃과 더불어, 크게는 인류의 공존을 위해. 그건 아마도 이 땅의 평화와 푸른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우리 삶의 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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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까불까불거리는 녀석이지만 처음 봤을 땐 수줍게 말없이 모범생처럼 앉아있던 네녀석을 알게 된 것도 벌써 십년이구나.
어릴때부터 신부님이 될꺼라고 말하는 네녀석을 다른 어른들은 무척 대견스러워했지만, 나는 유독 '생각없이 무작정 신부가 되겠다는 녀석보다는 뭔가 깊이있는 녀석이 사제가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별로 이뻐하진 않았었어. 오히려 니 단짝 친구 녀석이 더 맘에 들었었단 말이지. 하핫;;;;
(설마 배신감 느끼진 않겠지? 그래도 내가 꾸준히 네 녀석을 이뻐라 했잖냐. 그지? ^^)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너는 사제의 길을 걷고 있고, 그것이 어쩌면 너에 대한 믿음이 더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여전히 까까머리 중학생 녀석으로 보이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의젓한 신학생으로 보이는 것이 조금 낯설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아냐? 난 여전히 네가 걷고자 하는 '부르심의 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무지 궁금한거. 내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자꾸만 다른 이들의 '성소'라는 것에 대해 궁금해지거든...
오늘 '포도 나무를 베어라'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각자 자신이 해야하는 것이겠지? 우리 각자가 베어 던져 버려야 할 포도나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를꺼야.

음... 어쨌거나 이제 너는 또 한걸음 사제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내 욕심에 맞는 책을 권해주고 싶다.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 신학생들이 신학서적을 읽기도 벅차서 일반 서적을 그리 많이 읽지는 못할꺼라는 생각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선물해주는 것이니 예전 교리선생님의 선물이라는 압박을 느끼면서 꼭 읽어봤음 좋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독후감은 필수! 알지? 하핫;;;;

 

 이미 한신부님에게 선물을 해서 폭발적인(?)반응을 얻은 책이지. 우리가 믿는 천주교의 역사가 편향적이지는 않은지, 또 그속에서 진정 찾아야 되는 '믿음'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대학생때 0읽었던 책이지. 사회과학서점에 꽂혀있던 것이 신기했던 책이었는데 어찌보면 천주교 신자인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더 신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사제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신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까지. 무지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길 바라는 의미에서.



네가 사제가 된다면 언젠가 교도소사목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뭐 교정사목을 담당하지 않더라도 천주교에서 반대하는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지. 단지 인위적인 사형은 안된다는 신학적 차원의 대답만이 아니라 정말 모든 인간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사제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추천하는 책이야. 우리가 모든 걸 경험할 수 없으니 이렇게 책을 읽는거잖아?

 

 

 

 

그래서 말인데, 아직 동성애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필리핀으로 방학생활체험을 다녀왔으니 너도 뭔가 생각해본적은 있겠지? 신학생들 캠프에서도 그런 물음이 나왔었다면서? 신학에 대해서는 니가 더 잘 알테니 읽고 느낀점을 얘기해주렴. 이건 정말 궁금하다.
유령인명구조대는 자살을 막는 자살한 유령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앞으로 많은 신자들을 상담해야하는 네게 유용한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
그리고 우리 주교님께서도 이주사목에 관심이 많은거 알고 있지? 이주사목은 '관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것같아. 이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노곤한 삶에 대해 특별히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있는 사제가 되었으면 해. 물론 그런 의미에서 '길에서 만난 세상'도 네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지.
덧붙여.. 오늘도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했지.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기념하는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은 평화의 날이기도 하잖아. 아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자에 띄운 편지는 그 중 하나일꺼야.

욕심같아서는 정말 많은 책을 더 권해주고 싶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좋은 책을 선물해주고 싶구나.
네가 하느님만 아는 바보 신부님, 이 되는 것도 좋지만 내 인간적인 욕심으로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 더 큰 사제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 가득한 하느님의 거룩한 사제가 되기를 ...
맑은 웃음 지을 줄 아는 멋진 사제의 모습을 기대하는 교리선생님이 기도 한방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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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2-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시종직을 받는다고 하는 녀석에게 책 선물을 하려고 살펴보다가... 얼결에 이벤트 페이지를 봐버렸다. 원글은 내 서재에 두고, 복사해서 이벤트 페이퍼로도 올릴 생각. 아, 이거.. 내가 누군지 들통나는 일은 없겠지?;;;;;

해적오리 2007-02-2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홍... 자래 들어갔당 잠 안왕 다시 나완.. 쩝 잘 시간이 다섯시간도 안남았는디..ㅠ.ㅠ 이거 퍼가크라..

딸기 2007-02-26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추천. 여기 나온 책들 다 저도 읽고싶어요

chika 2007-02-2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어쩌면 천주교,라는 것과도 상관없이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그런 책들입니다.
 
랑 3 - 영혼의 부름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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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개처럼 끌려가기 싫어서 목이 조이는 고통까지 감수해가며 저항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었다. 또한 사자나 호랑이, 혹은 곰과 코끼리를 늑대와 구분해주는 것이기도 했고, 대부분의 사람과 늑대를 구분짓는 근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했다.
초원에서는 이와 같이 자신의 본성을 벗어나 사람에게 쉽사리 굴복하는 늑대는 단 한마리도 없을 것이다. 복종을 거부하고, 끌려가는 것에 완강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몽골초원의 늑대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절대적인 자세였다. 그것은 늑대무리 속에서 자라보지 않은 새끼늑대에게도 당연하게 적용되는 천성이었던 것이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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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2-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원늑대에게 있어 식탐과 전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불가침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지켜진 신성함 때문에 진정으로 늑대를 숭배하는 초원의 목축민들은, 기꺼이 신비스러운 자연장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초원늑대의 영혼처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chika 2007-02-2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정화작용,뿐만아니라 '욕심'을 부리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임을 새삼 느낀다.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는 초원과 야성이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로 요즘 불어닥치는 황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랑 2 - 푸른 늑대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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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늑대의 본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만 성공한다고. 내가 늑대를 잡지 못하는 건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야. 담력이 부족해서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지.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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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2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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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다'의 뜻이 뭘까, 다시 생각해보지만 대충 꿰차입고 보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향수조차 몇년전것을 쓰고 바닥내려고 뿌리는 (그것도 여름에만 생각나면 쓰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 책이 술술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의 부제는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이 아니던가. 어쩜 그리 나와는 쌩판 다른지!

이 책은 들어가면서부터 대놓고 '럭셔리'를 외쳐대고 있다. 들어가며 '럭셔리한 생활'에 대해 줄줄 늘어놓더니 럭셔리 라이프의 절정을 보여주고 나가면서는 지상 최고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고가의 가구와 지나치게 화려한 인테리어, 초호화판으로 차려진 식탁...1700년 신임대법관의 부인 퐁샤르트랭 백작 부인이 선보인 연회는 요즘말로 쉽게 얘기하자면 돈자랑 파티,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퐁샤르트랭 부인의 우아하고 화려하며 세련된 스타일의 연회는 오늘날 유명 인사들의 부인들이 보더라도 절로 감탄할 정도이다. 이는 베르사유 시대에 만들어진 호사스런 삶의 기준이 지금까지 여전히 통용된다는 증거일 것이다'(331).
호사스런 삶의 기준이 여전히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나는 그가 말하는 '첨단 패션과 유행'을 엿먹으라고 던져버리겠다. 

아니 그런데 왜 말이 점점 더 험해지는 것인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고 럭셔리를 비난하고 있다니.
그렇지만 어쩔건가. 이 책을 읽은 느낌을 얘기하려하면 노동으로 세상을 움직여나간 수많은 민중들은 안중에도 없이 럭셔리한 생활로 사치만을 일삼은 프랑스의 귀족들에 대한 반발만드는데.  
이 책은 17-18세기의 프랑스 미시사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요리, 패션, 인테리어, 파티에 이르기까지 호사스러운 명품과 첨단 패션의 선구자가 태양왕 루이 14세라고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프랑스 최고를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는 사실 약간 꼬여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 옛날 태양왕이라 일컬어지는 루이14세가 프랑스를 말아먹던 (ㅡ,.ㅡ) 17세기에도,
다이아몬드를 사치스럽게 몸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고.
루이 14세는 다이아몬드 옷이 너무 무거워서 밥을 먹고는 바로 뛰어나가서 옷을 갈아입었다나?
그 당시 다이아몬드를 캐던 인도의 노동자들은 요즘의 아프리카 광산 노동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겨우 천쪼가리 하나만 걸치고 혹사를 당했으며,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는 조짐만 보여도 눈알을 빼는 고문을 당했다. 무서운것들!

벌써 아주 오래전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 물론 구체적으로는 하나도 안떠오르지만 - 떠오른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복식사에서도 왕과 양반의 옷차림새를 배우긴 했지만 당시 백성들의 의복 변천사도 아울러 배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기대한 미시사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 강한 배신감이 느껴지고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첫느낌이 갈수록 증폭되어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튀어나오고 만다. 럭셔리? 개뿔은-!!

<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은 어쩌면 그냥 가볍게, 호화롭고 사치스런 '그들'의 생활을 흘려가며 읽으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한마디면 되는 것을... 안그렇겠는가.
이 책, 스타일 나다 어떻냐고? 내 스타일 아냐!
이건 첨단 패션과 유행과 아주 거리가 먼 나의 질투어린 항변이 아니다. 최고의 패션과 유행이 소수의 가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것이 최고이며 여전히 그 호화로움이 현재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저자에게 나의 어떤 말이 통할것인가. 그냥 한마디만 하자.
럭셔리 라이프? 개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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